복수명문! 사립 낙원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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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과 이어짐

DUMMY

“정의철 의원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아, 그건 말이지요···.”



***


“당 이름은 뭘로 하는 게 좋겠나?”

-그건 의원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죠. 왜 저한테 그런 중요한 걸 떠넘기세요?


“떠넘기다니! 이거 섭섭하구만. 이게 다 유령 자네가 만들어 준 기회 아닌가!”

-의원님.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이제 낙원과는 연을 끊으시죠.


“...왜?”

-저희는 범죄자니까요. 의원님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려고 하시는 분이고요.


“...알겠네.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하지.”

-알겠어요. 말씀하세요.


“당 이름 좀 지어 줘.”

-아휴, 참! 그냥 아무거나 적당한 걸로 하세요. 당 이름이 뭐 중요하다고.


“아까는 중요하다고 하더니?”

-공정당, 정의당 뭐 이런 걸로 하면 되잖아요.


“안타깝게도 이미 존재하는 이름들일세. 다른 걸로 부탁하네.”

-까다롭기도 하시네요. 대충 지어도 되나요?


“당연하지. 나 말 바꾸고 그런 사람 아니네.”

-그럼 정정당당으로 하시든지요.


“오?”


그렇게 말장난같은 당명이 정해졌다.



···


[‘정정당’ 당 창당. 당대표 정의철 의원]

[여당 대표 “당명이 장난? 정의철 도가 지나쳐”]


···


[의원들 대거 이적, 창당 한 달만에 의석 수 100개 도달한 정정당당]

[정의철 “이제 국민 정서에 맞게 법률안 개정 필요해”]


정의철은 소년법 개정안에 대해 입법예고했다.

골자는 강력범죄에 한해 형량을 늘리는 것.


다만 법리학적인 관점에서는, 마냥 형량을 늘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책임이 커지면 권리 또한 늘어나야 하는 법이니까.


정의철은 의석 수로 밀어붙여 소년부 판사를 늘려줄 것을 법무부에 요구했다.

왜냐하면 지금은 소년부 사건 수에 비해 판사 인원이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법무부는 정의철의 의견을 수용했다.

소년부 재판은 조금 더 신중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다.


결국 소년법 개정법률안은 통과됐다.

강력 범죄는 그 죄에 걸맞은 처벌을 받게 되었다.


소년부 판사의 수도 늘었다.

판사들은 더 꼼꼼히 사건을 살펴보았다.

억울한 청소년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여론은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대놓고 낙원 편이네. 진양시 사건이랑 그 학교 폭력 사건 의식한 거 아님? 물론 주어는 없습니다 판사님.]

[뭐, 그게 어때서?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지.]

[소년 범죄율 급감했단다. 형량이 올라서 그런가?]

[그것도 있는데, 인터넷에 재밌는 썰 있더라. 낙원 갔다가 출소한 소년범 얘긴데 아마 그 영향도 있지 않을까?]

[어찌됐든 드디어 소년법 개정되네. 솔직히 낙원 아니었으면 건드리기나 했겠음?]

[아니 낙원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정의철 의원이 법 개정한 건데.]

[그게 그거 아님? 너무 순진하신 듯.]


문제는 정의철과 낙원의 유착 관계가 기정사실화 되었다는 것이었다.


“정의철 의원님! 낙원과 유착 관계가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십니까?”

“음··· 이거 좀 부끄러운 얘긴데요. 이젠 아닙니다.”


“...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유령한테 차단당했습니다.”


정의철은 눈물을 글썽였다.


“낙원의 그 유령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 기자님. 그럼 고스트를 의미하는 거겠습니까?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어쨌거나 범죄자들과 결탁하려고 하셨다는 얘긴가요?”

“마냥 범법자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는 꼴인데요.”


“그래도 선거 때 낙원을 무너뜨리겠다고 발언하신 약속은 지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그래야지요. 낙원 같은 단체는 나오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앞으로 더욱 힘써서 더 이상 대한민국의 사법 체계 아래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끔 힘쓰겠습니다. 그러면 낙원의 존재 이유도 없어질 테니까요.”



***


“소장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의철 말이 맞지. 낙원은 존재하지 말았어야 해.”


그랬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이수정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수정의 집안은 그림으로 그린 듯 완벽한 가정이었다.


단호하지만 자상한 부모님.

여동생을 잘 챙기는 오빠.

넉넉한 경제 사정을 바탕으로 베푸는 삶.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했다.


그게 ··· 그렇게 아니꼬왔을까?


한 인간의 얄팍한 악의는 너무나도 손쉽게 한 가정을 박살내 버렸다.


휘발유 한 통, 성냥 하나.

이수정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 재료였다.



가해자는 이수정의 가정만 불태운 것이 아니었다.

법정에서 피고의 증언은 이수정의 심장도 까맣게 태워버렸다.


항상 오며가며 봤는데··· 언제나 다들 활짝 웃고 있잖아요.

너무 행복해 보여서 홧김에 그랬어요.


나는 불행한데··· 나는 괴로운데···.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아시죠?

저··· 저 가족이 저를 더 불행하게 만들었어요.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요!

그냥 집만 불태우려고 했어요.

진짜··· 진짜에요!


···사실은요.

그날 조현병 약을 깜빡해서 충동적으로 술을 마셨어요.

이게 그 약을 먹지 않으면 자꾸 환청이 들리고, 반 강제적으로 술을 찾게 되거든요.


한 병을 먹으면 두 병을 먹게 되고, 결국 세 병을 마셔서 제가 제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판사님.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판결은···.


소주 세 병을 마셔 정상적인 판단이 어려웠던 점.

조현병 환자로, 환청에 시달려 심신이 불안정했던 점.


귀갓길에 주유소에서 말통을 훔쳐 그 길로 방화한 것으로 보아 계획적인 범죄가 아니라는 점.

피고가 집 안에 사람이 있는 줄 몰랐다고 일관되게 진술한 점.


피고가 초범이며 반성하고 있는 점.


그러나 방화로 인해 세 명의 인명 피해가 일어나 죄질이 매우 나쁜 점.


이 모든 것을 고려해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그렇게 이수정의 세상은 무너졌고 영원히 활활 불타는 지옥불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수정이 다시 웃을 수 있게 된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간 지 오래인데도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았으니.


영원한 고통은··· 이수정이 스스로를 파멸시켜야만 끝날 것이었다.





“소장님. 그런데··· 정말로 낙원이 없어져도 괜찮은 그런 때가 오면 말이에요. 정말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오면··· 그 때는 어떡하실 거에요?”

“혹시 법무부장관이랑 했던 10분 토론 봤니?”


“세 번 돌려 봤는데요.”

“내가 거기서 뭐랬지?”


“자수하신다고···.”


유영의 눈이 커졌다.


“안 돼요, 소장님!”

“왜?”


“... 아무튼 안 돼요.”

“살인교사죄. 상해치사 및 치상교사죄. 상해교사죄. 폭행치사 및 치상교사죄. 폭행교사죄. 범죄단체조직죄. 사기교사죄······.”


자신의 죄를 줄줄 읊는 이수정.


유영은 아예 귀를 막아 버렸다.

언젠가 낙원이 없어져야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마지막 장면에 이수정이 자수하는 그림은 없었다.


“소장님이 자수하시면 저도 같이 자수할 거예요.”

“그러든가. 하지만 대한민국 사법부는 너에게 죄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 걸.”


“무슨 소리에요. 제가 직접 범죄를 저지른 사람인데.”

“아무튼 그런 게 있단다. 아휴, 목도 뻐근하고 눈도 빠질 것 같아.”


이수정은 기지개를 켰다.


“영아, 우리 텁텁한 소리 그만 하고 산책이나 가자. 올 지 안 올 지도 모르는 미래 걱정하느라 소중한 시간 버리지 말고.”

“...네.”


···


이수정은 말없이 걸었다.


유영 또한 그랬다.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애처롭게 들렸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 같아서.


“영아. 손 시렵지 않니?”

“날이 쌀쌀해졌네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 나는 손이 시렵네.”

“... 그럼 다시 들어갈까요? 실내에서 걸어도 되는데.”


“아! 손이 시렵네!”


유영은 눈치가 더럽게도 없었다.

하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 그 문제를 당장 해결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네요.”

“뭐든 좋으니 좀 도와 주겠어? 실내는 답답해서 싫고.”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유영은 이수정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코트 주머니에 소장의 손을 집어 넣었다.

그런 다음 자기 손은 주머니에서 쏙 빼냈다.


이수정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픽 웃었다.

이걸 창의적이라고 해야 되나?


“나는 다른 간단한 방법도 떠오르는데. 진짜 이 방법밖에 없는 거 맞아?”

“그럼 혹시... 손 잡아도 되나요?”


아··· 혹시 유영은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을 피하려 한 것이었을까?


소장은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해 상냥하게 말했다.

여리디 여린 톰슨 가젤을 노리는 수풀 속 암사자처럼, 기회가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려고.


“이제부터는 일일이 물어보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니까.”

“제가요··· 최근에 42.195킬로미터를 3시간 45분 52초만에 주파했거든요. 비공식적인 기록이지만.”


“어··· 잘 했네? 그런데 갑자기 그 얘기는 왜?”



유영은 이수정을 와락 껴안았다.


“예전에 다짐했거든요. 충분히 심장이 강해지면 소장님한테 안기기로.”


이수정은 온 몸이 뜨거워졌다.


“안기기로··· 했다고? 말이랑 행동이랑 너무 다른데?”

“뭐, 일일이 물어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으니까요.”



함박눈이 내렸다.

눈은 이곳저곳 쌓였지만, 유영과 이수정의 머리에 떨어진 눈은 닿기도 전에 녹아 버렸다.


둘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저 그러고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하고 상처 입은 마음이 괜찮아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


재판장.

3명의 판사가 상의를 마쳤다.


“이제 판결하겠습니다. 피고인 유영은 조갑철 회장을 대상으로 한 사기교사죄 혐의를 인정하였습니다.”


방청객들은 안달복달하며 판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대체 유영이 왜 자수를 한 것인지 아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피고가 자수한 점, 증거를 스스로 모아온 점, 검찰 수사에 협조적이었던 점, 업무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많은 탄원서가 쏟아져 들어온 점, 피고가 본인의 잘못을 인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였습니다.”


희망적인 분위기가 비치자 방청객들은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았다.

제발 낮은 형량을 받길 바라면서.


판사의 말만 들으면 집행유예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피고를 징역 1년에 처한다. 이 판결에 불만이 있는 경우 1주일 안에 항소 가능합니다. 이상으로 재판을 마칩니다.”


초범이고 자수까지 했는데 실형이 떴다.


사법부는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우습게 보는 유령을 싫어했으니까.

그래서 국민 여론을 고려하는 선에서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형량을 선고했다.


1년도 과하다는 사람이 있었고, 1년은 너무 적다는 사람도 있었다.

의견이 나뉘는 것으로 보아 그게 딱 적당한 판결이었던 듯 하다.


유영은 감옥에 갔고, 항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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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사형수(4) 24.08.29 9 0 11쪽
44 사형수(3) 24.08.28 9 0 11쪽
43 사형수(2) 24.08.27 12 1 11쪽
42 사형수(1) 24.08.26 11 0 11쪽
» 단절과 이어짐 24.08.25 13 0 11쪽
40 유영과 소장의 데이트 24.08.24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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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걔 안 죽었는데요? 24.08.20 1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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