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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4)

DUMMY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5급 교정관, 보안과장은 극대노했다.


“고작 며칠 사이에 손가락을 잘랐다 붙였다 떼었다! 무슨 손가락이 탈착식이냐고! 떼었다 붙였다, 떼었다 붙였다. 손가락이 떼부떼부 씰이야? 어? 입이 있으면 대답 좀 해 봐! 이 주임!”


하필이면 기독교 행사 인솔 담당도 이형호였다.

명단에 장재춘이 들어 있으면 다들 기피했기에.

결국 항상 묵묵히 성실하게 일하는 이형호가 똥을 치웠다.


일요일만 무사히 넘기면 2주 병가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은 지도록 하겠습니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책임을 질 건데? 정보 새어 나가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고!”


서강록은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냈다.


“과장님!”


이형호는 서강록을 말렸다.


“조용히 해. 서강록.”

“하지만 주임님···!”


눈물을 머금고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이형호.


“과장님. 죄송합니다. 해당 사건의 책임은 모두 저에게 있습니다. 병가 상신했던 거 기결취소하고, 당직근무도 남들보다 더 서겠습니다. 정직, 감봉, 견책···. 징계위에서 주시는 대로 처벌에 순응하겠습니다. 다만요···.”

“다만 뭐?”


“서 담당은 징계 대상자에서 빼 주십시오. 서강록은 아무 죄 없습니다.”



보안과장은 헛웃음을 쳤다.


“하하하! 이 주임. 어이가 없네? 이게 고작 7급 교위 하나 뒤집어쓴다고 끝날 일 같아? 너무 자의식 과잉 아니야?”

“부탁드립니다.”


“이 주임. 내가 뭐 하나만 물어 보지.”

“예. 과장님.”


“진짜로, 이 주임은 이게 이 주임 잘못이라고 생각해?”

“예. 그렇습니다.”


“재소자들이 저지른 짓인데도? 128번이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어야지. 재소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다는 건 잘 아는데.”

“국가는 이미 장재춘에게 합당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 이상의 처벌은 과하죠. 그러니 재소자들 간 사적 제재를 막지 못한 것은 제 잘못이 맞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그래도 이 주임 혼자서 죄를 뒤집어쓰는 건 안 되겠어.”

“과장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언제 앓는 소리한 적 있습니까? 사동 근무할 짬도 아닌데 과장님이 부탁하셔서 온 것 아닙니까. 교대근무 빵꾸날 때마다 땜빵도 두 말 없이 했고요. 승진 밀려도 이해해달라 하시면 참아왔지 않습니까!”


“이 주임.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건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한국 말은 끝까지 들어, 이 주임.”

“예.”


“이거, 자네 혼자서 뒤집어 쓸 일 아니야. 자네는 빠져.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어디 7급 교위 주제에 이런 큰 사건에 총대를 메고 나서길 나서나.”



이형호와 서강록의 눈이 커졌다.

이기적인 걸로 유명한 보안 과장이 죽을 때가 되었나?

무슨 중병에라도 걸려서 죽기 전에 회개하기로 했나?


“꼴도 보기 싫으니까 썩 꺼지고, 병가 기결취소는 결재 안 해줄 테니까 그냥 둘 다 2주 간 나오지 마.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형호와 서강록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대답했다.


“예. 과장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엿이나 드시고, 513 데려와.”


“513이라면··· 유영 말입니까?”

“그래. 이런 짓 할 새끼가 그 놈밖에 더 있어? 증거만 잡아내면 그 놈도 끝이고 나도 책임질 일 없으니까.”


서강록은 생각했다.


‘어차피 자기가 책임질 생각 없었구나. 와··· 그나저나 과장은 과장이다. 왜 나는 513이 저지른 짓일 거란 생각을 못 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나 뻔한데.’


과장은 아무래도 유영이 죗값을 치르게 할 모양이었다.


“이 주임은 513번 데려 오고, 서 담당은 그 날 목공소 CCTV 따 와.”





“하··· 그럼 그렇지. 두꺼비가 책임을 지려고 할 리가 없죠.”

“말 조심해라. 서 담당. 교도소는 벽에도 귀가 있다고 누누이 말했잖아.”


두꺼비란 보안 과장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포악하고 탐욕스러운데다 한 번 찍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다 해서 붙은 별명이다.


직원들은 모두 보안 과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갓 들어온 서강록 교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재춘이 쓰는 진정서는 두려워했으면서. 모범적으로 생활하는 유영은 데려다 심문을 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야. 너무 미워하지 마.”


“처음에는 무슨 파충류 외계인이 보안과장 몸을 차지했나 싶었습니다.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고 했을 때는요. 근데 허, 참···. 결국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던 거군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서강록.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 안 그러면 못 버텨.”


“주임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영 말예요. 만약 장재춘 조지러 온 거면 오히려 응원해야 되지 않습니까?”


신규 교도관이라서 할 수 있는, 지나치게 솔직한 발언이었다.


눈을 질끈 감는 이형호.


‘교정직이 이렇게 생각할 정도면··· 일반 시민들 생각은 들어볼 것도 없겠군.’


“너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내가 말했잖아. 국가는 이미 장재춘에게 처벌을 내렸고, 그 이상은 사적 제재의 영역이라고. 법은 모두가 지키기로 한 약속이야. 법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이 그걸 어길 수는 없어.”


이형호의 낯빛은 너무 어둡고 피곤해 보였다.


서강록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참았다.


‘그럼 우리가 괴로운 건 누가 알아주고 보상해 주는데요. 저는 장재춘 감싸고 돌기만 하는 보안과장보다, 진정으로 합당한 처벌을 내려 주는 유영이 더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경솔하게 말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너는 잘 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버티자. 힘든 건 다 지나가기 마련이야.”


“예. 그러면 저는 상황실로 가 보겠습니다.”

“그래. 일요일인데··· 고생 많았다. 미안하다. 험한 꼴 보게 해서.”


“... 저도 죄송합니다. 아무런 도움이 못 되어 드려서요.”

“도움은 내가 너한테 줘야지. 아휴, 피곤하다. 이제 진짜 각자 갈 길 가자고.”


“휴가 중 편히 쉬십시오. 주임님.”

“그래. 좀 쉬고··· 나중에 다시 웃는 얼굴로 보자.”


서강록은 터덜터덜 걷는 이형호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왜 좋은 사람들은 항상··· 고통받는 걸까.’






“과장님. 513번 데려 왔습니다.”

“수고했어. 나가 봐. 2주 간 잘 요양하고 오도록.”


“예. 과장님.”


이형호는 경례하고 보안과장실을 떠났다.


보안과장은 유영을 데려다 앉혀 놓고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강록이 테이프를 들고 찾아왔다.


“과장님. 그 날 보안카메라 기록입니다.”

“어. 2주 뒤에 보자고.”


“예. 과장님.”


보안과장은 서강록이 나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말도 없이 유영을 바라봤다.


···


“노오란 병아리 명찰이 잘 어울리는군. 죄수번호 513, 유 영.”


유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네가 제아무리 그 유령이라도 말이야. 기록은 속일 수 없는 거거든. 사람의 인지는 속여넘길 수 있어도, 영상까지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이야. 너, 그런 것까지는 생각 못 했지?”


이번에도 유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새끼가··· 보안 과장이 얘기하는데 말이야. 대답 안 해!”

“뭘 대답하란 말입니까? CCTV의 존재를 몰랐냐고요? 당연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게 장재춘이 손가락을 잘랐어. 대한민국 교도소가 우스워!”

“우습진 않습니다. 다들 고생이 많으시죠.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 받고 말도 안 되게 힘든 일 하시는 분들을 왜 비웃습니까.”


“그러니까, 뭘 믿고 CCTV에 뻔히 찍히는데 장재춘이 손가락을 잘랐냐고!”

“보안과장님요.”


“뭐? 이 자식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보안과장은 품속에서 커다란 쇠막대기를 꺼냈다.

크롬 도금되어 반짝거리는, 묵직한 직육면체의 무언가를.


“이게 뭔지 알아, 임마?”

“흐음··· 강력한 자석 같네요.”


“그럼 이걸로 CCTV 테이프를 문지르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아?”

“비디오 테이프 기록이 다 지워지겠죠.”


보안 과장은 씨익 웃으며 자석을 테이프에 갖다대고 삭삭삭삭 문질렀다.


“기록이 다 지워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증거가 없어지고 저는 무죄가 되겠죠.”


“무죄가 아니라 무혐의, 이 새끼야. 증거가 없어진다고 네 죄가 없어져?”

“아니죠. 그런데요, 그러면 사라지지 않은 죄는 어디로 갑니까?”


“보안과장이 뒤집어 쓰겠지. 하하. 브로커랑 손잡고 특별 면회권을 팔아넘긴 씹새끼가 말이야. 하하하.”


보안과장이 이상한 말을 했다.

마치 자신이 보안과장이 아닌 것처럼.


유영은 놀라는 대신, 한숨을 쉬었다.


“역할극은 재미있으셨어요, 코치?”

“아, 너무 재밌었어요. 유령 님. 장단 맞춰 주셔서 고맙네요. 아이씨. 가면 이거, 답답하고 찝찝한데 벗을 수도 없고.”


한 순간에 보안 과장의 걸쭉한 아저씨 목소리가 코치의 목소리로 변했다.


낙원의 분장 팀 실력은 세계 제일.

특수 제작한 가면을 덧씌워 코치를 보안 과장으로 둔갑시켰다.

예전에 코치가 바텐더로 위장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진짜 보안 과장은 어디 있어요?”

“뭐··· 낙원에 보낼만한 중범죄는 아니었으니까. 간단하게 렉스 형네 부지에 감금해 놨대요. 일 끝나면 죗값 치르게 해야죠.”


“렉스 형이랑 오토 형은 잘 지내요?”

“잘 지내죠. 그 다음 질문은 뻔하니까 미리 답하자면, 소장님은 바쁘세요. 외로움을 잊으려는 듯 일만 하고 계시죠. 누가 마음만 달궈 놓고 빵에 들어오는 바람에요.”


유영은 피식 웃었다.


“코치. 죽고 싶어요?”

“죽고 싶은 사람은 없죠. 왜요, 선은 안 넘은 것 같은데? 그리고 보안 과장이랑 척져서 좋을 것 없을 텐데요. 보안 과장의 권한이면 소장님이랑 ‘특별 면회’도 시켜드릴 수 있다고요.”


“... 됐어요. 이런 모습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요.”

“왜요? 죄수복이 은근히 잘 어울리시는데? 그나저나 이제 국가 공인 범죄자가 되셨네요. 별이 하나! 하하하하하.”


유영은 코치를 패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보안 과장 역할이 매우 중요하긴 하니까.

꾸우욱 참을 수밖에.



무엇보다 임무를 빨리 마치고 나가는 게 더 중요했다.


“그보다 장재춘, 운동 시간에 나오도록 해 줘요.”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무슨 수로요? 다들 빵 밖에 나가려고 안달인데 장재춘 그 새끼는 진짜 미친 새끼이긴 한가 봐요. 체질이 감옥 체질인가?”


“꼬시든 협박을 하든 보안과장님이 알아서 하셔야죠. 잘 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나저나 운동 시간은 왜요? 지켜보는 눈 많을 때보다 출역 때라든지 종교행사 때가 더 괴롭히기 좋을 텐데.”


“지켜보는 눈이 많을 때 해야 되는 일이 있어서 그러니까, 해 달라면 해 줘요.”

“참내. 이건 또 무슨 부탁법이야? 무리한 요구를 엄청 당당하게 하시네. 하하하.”


무리한 요구를 당당하게.

소장이 부탁하는 방식이 딱 그랬다.


그 부탁에 제일 많이 당한 사람은 유영이었다.

그래서일까? 유영은 어느새 소장을 닮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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