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명문! 사립 낙원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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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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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7)

DUMMY

“형님. 저도 이제 형기가 1년 6개월 남았슴다. 혹시 밖에서 연락드리면 받아주십니까?”

“물론이죠. 남은 1년 6개월 동안 제가 말씀드렸던 것 잘 부탁드려요.”


“최선을 다하겠슴다. 장재춘 그 새끼,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슴다. 이번에 이형호 주임 사건에 열받은 사람들도 많고요.”

“죽이지는 마시고요.”


“예. 죽이는 건 너무 너그러운 처사 아님까.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슴다.”

“형기 늘어나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당연함다. 원래 은근하고 사소한 괴롭힘이 더 큰 고통을 준다 아닙니까. 저는 확 패버려야 직성이 풀리긴 한데, 이런 쪽으로 잘 아는 애들이 있으니 도움을 구해볼 검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오래 남아 직접 했어야 하는 일인데···.”


“아이고, 아님다! 형님같은 분이 이런 곳에 계시면 국가적 손실 아니겠슴까. 하루라도 빨리 나가셔야 함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셔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십쇼.”

“우리 모두 그래야겠죠. 다시는 교도소에 오지 맙시다.”


“예. 앞으로는 착하게 살겠슴다.”

“나가면 뭐하고 살지 생각해 보셨어요?”


“막막하긴 함다. 치킨집을 할까 싶은데··· 치킨 싫어하는 사람 없잖슴까.”

“치킨이라··· 괜찮은 생각이네요. 보육원 애들도 치킨 좋아하던데···. 사업 말고 정규직 쪽으로는 생각 없으세요?”


“없다기보단 생각 자체를 못 하는 검다. 누가 저같은 사람을 입사시켜 주겠슴까. 저도 주제 파악 정도는 함다.”

“정규직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초봉은 한 5천 정돈데. 물론 보너스는 따로 있고요.”


“쯧... 사람 놀리지 마십쇼. 형님. 그런 데서 저를 왜 갖다 쓰겠슴까?”


유영은 피식 웃었다.


“속는 셈 치고 나오면 연락해요. 물론 입사 시험은 거쳐야겠지만, 족집게 과외 선생님도 공짜로 소개해 드릴게요.”

“아니··· 진짬까? 만약 진짜면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슴다.”


과연 코치의 지독하고 혹독한 훈련을 버틸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만.

유영은 어쨌든 나쁜 놈의 비율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했다.




안경이 수줍게 손을 들었다.


“저··· 유령 님. 저도 어떻게 취업 알선을 부탁드려봐도 될까요···?”

“뭐, 가능하죠. 그런데 그 회사 대표가 좀 괴팍한 면이 있어서···. 안경 씨한테는 한 가지 조건이 붙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뭔데요?”

“횡령해서 코인으로 버신 수익금 다 사회에 환원하셔야 돼요. 가능합니까?”


“... 사실 그런 말씀 안 하셔도 그렇게 하려 했습니다.”

“한두푼이 아닐 텐데 진짜로요?”


“믿어달란 얘기 안 하겠습니다. 나가서 행동으로 보여 드릴게요. 아마 뉴스에 나올테니 따로 연락은 안 드려도 되겠네요.”

“만약 그렇다면··· 혹시 재테크도 잘 하세요?”


가만 듣고 있던 몽디가 호쾌하게 웃어제꼈다.


“재테크는 잘 하지 않겠슴까! 그거 하다가 온 놈이니 말임다! 흐하하하하! 오히려 못 하게 막아야 하는 거 아님까?”


안경은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부들부들 떨었다.


“투자는 자신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투자해도 자금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에 20%정도는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오··· 상당하네요?”


상당하다? 그런 말은 과소평가였다.

연 수익률 20%는 말도 안 되게 높은 수치니까.

세계 최정상급 펀드매니저나 낼 수 있는 수익률이었다.


혼자서 연평균 수익률 20%를 찍을 수 있다?

그럼 직업 선택을 매우 잘못 한 것이다.

은행원이 아니라 자산관리사를 했어야지.


보통 연 10%만 해도 괜찮은 자산관리사다.

복리로 따져 8년이면 자산을 두 배로 불려 주는 셈이니까.

20%라면? 겨우 4년만에 자산이 두 배가 된다.


그러니 안경이 규모가 있는 자산을 탐낼만도 했었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큰 수익을 낼 수 있으니까.


“사실 제가 그 회사 대표거든요? 그럼 기본급 외에 보너스는 수익금의 50%로 하는 것으로 할까요?”

“헉! 아뇨! 아뇨아뇨! 너무 높아요!”


“너무 높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번 돈의 절반은 가져 가야죠.”

“통상 성과 보수는 수익금의 20% 미만입니다. 그것도 팀이 나눠 가져가니까 개인에게 떨어지는 돈은 수익금의 1~2%정도 되는 셈이죠.”


“너무 적은데요? 그래가지고 동기 부여가 되겠습니까?”

“50%는 지나치게 부담스럽습니다. 양심에도 어긋나고요.”


“그럼 20%는 어떻습니까?”

“정말 너그러운 제안입니다만··· 10%만 받겠습니다. 이것도 말도 안 되게 후한 조건이거든요.”


웃기는 놈이었다.

자기 성과 보수를 깎는 자산관리사라니.


하지만 유영은 그래서 안경이 믿음직스러웠다.


“그럼 그렇게 하죠. 하지만 일하는 게 마음에 들면 그냥 제 마음대로 보너스 꽂을 거니까 그건 거절하지 마세요.”

“저··· 죄송하지만 운용할 자산 규모를 좀 알 수 있을까요?”


유영이 안경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안경은 펄쩍 뛰었다.


“그렇게나 많이요? 거의 제가 횡령했던 돈이랑 맞먹는데요?”

“아 그건 제 개인 재산이고··· 동료들 돈이랑 합하면 몇 배는 될 겁니다.”


안경은 침을 꿀꺽 삼키고 머릿속 계산기를 두들겼다.

그런 규모의 돈이라면··· 횡령해서 코인으로 번 돈 따윈 정말로 필요 없었다.

유령의 개인 재산만으로도 고작 몇 년이면 그 이상 벌 테니까.


“평생 충성하겠습니다. 주인님.”

“그런 부담스러운 호칭은···.”


“주군.”

“대표라고 하셔도···.”


“신이시여.”

“자꾸 그러시면 고용하지 않겠습니다.”


“예. 대표님.”

“일단 얼마 정도 맡겨놓을 테니까 나오시기 전까지 교도관들 편의를 좀 봐 주세요. 어쨌든 장재춘이 저렇게 돼서 고생하시는 건 교도관 분들이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대표님.”

“안경 씨는 형기가 얼마나 남았죠?”


“저도 몽디 형님이랑 비슷하게 남았습니다. 7년 받고 6년 살았으니 1년 남았네요.”

“그렇군요. 그럼, 나중에 다시 만납시다.”




“영 아쉽구만 기래. 정 붙이지 않으려 했건만···.”

“어르신. 나가기 전에 몇 가지만 여쭤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루 하라. 어차피 영영 헤어질 사이에.”

“진짜로 간첩이세요?”


내용은 무례했으나 유영의 눈빛은 진지했다.


대포동 또한 진지하게 답했다.


“기래. 옥살이가 억울할 것도 없디. 내래 124 부대···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남파공작원이었어.”


몽디와 안경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대포동은 그간 전혀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으니까.


사실 대놓고 대포동에게 간첩이냐 물어본 사람도 없었다.

그냥 그 옛날 억울하게 잡혀들어온 사람 중 하나였지 않을까 했을 뿐.


다시 생각해보면 이상하긴 했다.

정말 억울하게 잡혀들어왔다면 재판 받을 기회는 많지 않았겠는가?

40년 간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


“이런 반쪽짜리 간첩두 간첩이라 할 수 있겠냐만은···.”

“반쪽이라뇨?”


“첩자 짓을 하딜 않았으니까. 내래 삼팔선을 넘어 보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루 지옥을 견뎠어. 꿈에도 그리던 아우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서. 그리고 남조선에 오자마자 한 일은 탈영이었디.”


교도소는 방음이 안 된다.

어느새 옆 방에서 소곤거리던 말소리가 없어졌다.

주기적으로 들려오던 교도관들의 구둣발 소리마저도 멈추었고.


“어찌저찌 아우 소식을 찾아 부산까디는 갔어. 기런데 아뿔싸··· 같은 남파공작원 동무들이 나를 찾아낸 거이 아니갔어?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디. 이대로 아오지에 갈 것인가. 아니믄 생사고락을 함께한 동무들의 모가지를 딸 것인가.”


대포동은 창문 너머 조그맣게 보이는 밤하늘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북으루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었어. 어떻게 온 남조선인데. 기럼 답은 하나 아니겠네? 품 속의 도끼를 꾹 쥐었는데···. 아우 얼굴이 떠오르는 거이야. 기렇게 피를 뒤집어쓰고서 만나믄··· 아우가 기뻐하갔어? 잘 했다고 하갔어?”


닳고 닳은 듯한 담담한 말투.

얼마나 많은 슬픔을 지나보내고 나서야 담담해질 수 있었을까.


“일단 도망쳤디. 하디만 동무들은 끈질기게 나를 쫓았어. 누군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추격전인 거이 뻔했드랬디. 기런데 도망치는 와중에도 남조선 삐라가 눈에 뜨이지 않았갔어? 멸공방첩. 어둠 속에 떨지 말고 자수하여 광명찾자.”


노인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기래서 광명을 찾았다··· 이 말이시. 내래 겁쟁이야. 겁쟁이두 이런 겁쟁이가 따로 없디. 첩자 짓도 못 했고, 동무들도 못 죽였고. 동생도 못 찾았고, 기렇다고 조국을 배신하지도 못 했어. 아예 전향을 했으면 나름 좋은 대우 받고 살았을 거인데···.”

“지금이라도 나가실 생각은 없나요?”


“두려워. 내래 여기서 너무 오래 살았거든. 담장 너머도 두렵지만은··· 만약 내가 나가게 된다믄 아우부터 찾겠디. 기런데 살아는 있을까? 기걸 알게 되는 일이 두려워. 지금두 수소문하려면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기러지 않은 이유는··· 내래 겁쟁이라서 기래.”


정말 보고 싶은 마음과··· 절망적인 결과만큼은 외면하고 싶은 마음.

두 가지 상충되는 감정의 공존.

유영은 그런 모순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노인의 선택을 존중하였다.

완전히 같은 입장이 되어볼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유영은 노인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하거나 캐묻지 않았다.

그저 들어주었을 뿐.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겠거니···. 기렇게만 생각하구 싶어. 정말 겁쟁이도 이런 겁쟁이가 따루 읎디···? 아마 류령 자네는 이해하디 못할 게야.”

“만약 동생 분이 바깥에 살아 계시다면은, 다시 재판 받으시겠어요?”


“... 뭐 아는 게라두 있는 거이야?”



유영은 대포동과 닮은 사람을 알았다.

말투는 괴팍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손재주 좋은 노인을.


유영에게 ‘맑은 영혼'을 지녔다고 말해주었던 대장간의 노인.

항상 갑옷을 입고 있어 얼굴까지 닮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왠지 목소리는 비슷한 듯했다.


만약 유영의 추측이 옳다면, 이념과 전쟁으로 깨어진 가정 하나를 다시 붙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겸사겸사, 남파공작원 출신의 기술을 배울 수도 있는 것이었고.

첩보 임무에는 실패했지만 실력만큼은 진짜 아니겠는가.


대화로 유추해 보건대 대포동은 같은 정보국 출신 여럿을 단신으로 해치울 자신이 있었던 듯했다.

실력은 녹슬었을지라도, 노하우는 남아있을 가능성이 컸다.



다만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40년 동안이나 그리움에 가슴앓이하는 노인 아닌가.

절망에 빠지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 아직 확실치는 않아서요. 만약에 제 생각이 맞다면, 다시 오겠습니다.”

“간나, 싱겁기는···.”




···


유영의 출소일.


“영아. 고생 많았어.”


소장은 하얀 두부를 들고 서 있었다.


“감사합니다. 소장님.”

“사람 많은 건 싫어할 것 같아서, 나 혼자 왔어.”


“더없이 충분하죠.”


둘은 한참 동안 서로를 꼭 껴안고 있었다.

말은 필요가 없었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


“죽여줘! 죽여줘! 죽여줘! 제발 죽여줘! 이 고통을 끝내 줘! 유령···. 유령이야! 끄아아아아아아아아! 꺼내줘! 꺼내줘! 살려줘!”



“아··· 시끄럽네. 징벌방에서도 저러니 어떡합니까?”

“냅둬라. 뇌가 다쳐서 저런다잖냐.”


“재갈이라도 물려야 안 되겠습니까?”

“인권위에서 하루 종일 물리지 말래. 취침 시간 쯤 해서 채우자고.”


“지들이 듣는 소리 아니라고 고고한 척 하기는.”

“듣다 보면 적응된다. 나는 듣기 좋아.”


“듣기 좋다고 하셨습니까? 저게요?”

“어. 너는 쟤가 행복하게 지내던 시절을 못 봐서 그러는데, 내가 장담하지. 저 새끼 웃고 다니던 때가 진짜 고통이었어. 지금 비명 지르는 건 아름다운 교향곡처럼 느껴질 정도로.”


“와···. 이런 곳에서 행복하게 지냈었다고요?”

“완전 자기 집처럼 지냈지. 먹여줘, 입혀줘, 재워줘, 소일거리도 줘···. 게다가 사형수랍시고 무슨 폭군이라도 된 듯이 행패를 부리고 다녔다니까.”


“그런데 어쩌다 저렇게 됐나요?”

“이 새끼가 빠져가지고··· 고참한테 썰풀이를 시키네.”


“앗, 죄송합니다.”

“됐다. 심심하니까 얘기해 주지. 나름 재밌는 얘기니까. 낙원의 유령이 여기 있었던 건 알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형호랑 서강록이라는 교도관이 있었는데···.”



장재춘은 영원히 도망칠 수 없는 곳에 갇혀 버렸다.

스스로 만들어 낸 공포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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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사이비 종교(1) 24.09.07 9 0 13쪽
53 특별 훈련 24.09.06 11 0 13쪽
52 대통령의 의뢰 24.09.05 10 1 12쪽
51 필요악 24.09.04 11 0 13쪽
50 대통령의 진노 24.09.03 10 0 12쪽
49 호들갑 24.09.02 12 0 12쪽
» 사형수(7) 24.09.01 11 0 13쪽
47 사형수(6) 24.08.31 10 0 11쪽
46 사형수(5) 24.08.30 10 0 11쪽
45 사형수(4) 24.08.29 9 0 11쪽
44 사형수(3) 24.08.28 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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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사형수(1) 24.08.26 11 0 11쪽
41 단절과 이어짐 24.08.25 13 0 11쪽
40 유영과 소장의 데이트 24.08.24 13 0 12쪽
39 층간소음 보복 임무(3) 24.08.23 15 0 13쪽
38 층간소음 보복 임무(2) 24.08.22 15 1 10쪽
37 층간소음 보복 임무(1) 24.08.21 18 0 11쪽
36 걔 안 죽었는데요? 24.08.20 16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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