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명문! 사립 낙원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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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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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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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6)

DUMMY

[옥중 편지]


소장님. 건강하시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느새 형기도 절반이 남았네요.

어떻게 보면 절반이나 남았고요.


이게 참··· 갇힌다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네요.

여기 오고서야 뼈저리게 알았어요.


자유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예요.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자유.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자유.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자유.


여긴 그런 자유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괴로운 건···.

소중한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거예요.


말은 그렇게 해놓고 면회 오지 말라고 하니 웃기시지요?


죄수복을 입고 있으니 수치스러워 그렇습니다.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은 욕심일까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 소장님도 안녕히 지내십시오.


유영 올림.




***


장재춘은 도망갈 곳이 없었다.

심지어는 자신의 머릿속에서조차도.


새벽 두 시.

장재춘은 악몽인지 환각인지 모를 것에 시달리고 있었다.


닥터의 ‘치료’는 효과가 있긴커녕 피해망상증을 더 극대화시켰을 뿐이었으니까.


“아악! 아아아아아아악!”

“128! 수면 시간에는 조용히 해!”


“살려주세요! 유령! 유령이 지금 이 방에 들어왔다고요!”

“513을 말하는 거라면 아까 본인 방에서 점호를 받았다. 헛소리 하지 마.”


“아니에요! 여기! 여기 좀 보시라니까요! 지금 방 구석에서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잖아요!”


교도소는 방음이 전혀 안 된다.

새벽 두 시에 일어나는 소란을 반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재소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마! 장재춘 개쉐이야! 잠 좀 자자!”

“씨벌럼아 대체 며칠째냐! 유령 님은 다른 방에 잘 계시다 안했냐!”

“교도관 뭐해! 징벌방에 처넣어! 아 진짜 씨발 미쳐버리겠다고! 이거 인권 유린이야!”



이형호는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대체 이게 며칠 째인지.


“128. 정 불안하면 징벌방으로 보내줄까?”

“싫어! 싫어! 거기도 유령이 있어! 혼자 있으면 찾아와! 제발! 제발! 누구라도 좀 같이 있어 줘!”


“언제는 감방 혼자 쓰게 해 달라며. 그래서 다른 재소자들도 괴롭힌 것 아냐?”

“아니에요! 다시 돌려보내 줘요! 혼자서는 무서워서 못 자겠어요!”


“너랑 한 방 쓰고 싶은 재소자는 없어. 치료 감호소라도 다녀올래? 거긴 513이 없으니까.”

“아아아아아아악! 치료 감호소는 안 돼! 절대 안 돼! 찌릿찌릿하고 따끔따끔하단 말이야! 거기 의사도 한패야! 낙원 놈이라고!”


“에휴···. 128. 손 깍지 끼고 머리 위로. 뒤돌아서 벽에 붙어. 내가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줄 테니까.”


이형호는 마음씨가 너무나도 따뜻했다.

그게 문제였다.


장재춘을 측은히 여기다니.



이형호가 방에 들어가 손전등으로 이곳저곳을 비춰 보았다.


“봐. 아무도 없지? 이제 조용히 하고 자라. 계속 못 자니까 정신이··· 야! 이거 안 놔!”


장재춘이 이형호를 뒤에서 붙잡았다.


“씨발! 이감시켜 줘! 이감시켜 달라고 이 개 씨발 새끼들아!”


눈은 실핏줄이 다 터졌고 침을 줄줄 흘리는 장재춘.

이형호의 목에 칫솔을 겨눴다.


끝을 날카롭게 갈아낸 칫솔이었다.


“128. 진정해. 진정하고 이야기하자. 너 이러면 안 돼!”

“씨팔! 너라면 진정하게 생겼어! 이감시켜주지 않으면 니네가 나 죽이는 거나 다름 없다고!”


장재춘은 이형호를 끌고 복도로 나왔다.


“이감시켜주지 않을 거면은 죽여! 죽여! 제발 나 좀 죽여 달라고! 사형 집행 해 이 개새끼들아!”



상황실에서는 난리가 났다.


“비상! 비상! 현재 나동 3층에 상황 발생! 128이 이형호 주임을 인질로 잡았다! 교도대 출동! 다시 한 번 전달한다! 나동 3층으로 교도대 출동!”

“부장님. 교도대는 늦어요. 제가 가겠습니다.”


“야! 서강록! 네가 가긴 어딜 가! 여기서 대기해!”


서강록은 교도봉을 뽑아들고 나동 3층으로 달렸다.


‘안 돼. 안 돼, 안 돼···.’


상상하기 싫은데 최악의 상황이 자꾸 그려졌다.

착한 사람은 오래 못 산다는 말이 왜 떠오르는지.


이형호 주임은 천사라는 말로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죄수들을 포함해 모두에게 따뜻했고 배울점이 많은 훌륭한 선배.

그렇게 바쁜데도 가정에 충실한 존경받을만한 가장.


장재춘 따위가 이형호 주임을 죽이게 둘 순 없었다.

이 새벽에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그건 장재춘이었다.

이형호 주임이 아니라.


서강록은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행형법이고 커리어고 나발이고, 딱 한 가지만 생각했다.


‘장재춘, 내가 죽인다.’




서강록은 숨을 헐떡이며 현장에 도착했다.


“128. 죽는 게 소원이야? 내가 그 소원 이뤄 주지.”

“서강록! 상황 근무는 어쩌고 여길 왔어! 교도대 올 때까지 대기해!”


“이히히히히히히! 죽여! 죽여 줘! 다 죽어어어어!”


이형호의 목덜미에서 피가 쭈르르륵 흘렀다.


교도봉을 쥔 서강록의 손이 분노로 인해 벌벌 떨렸다.


“장재춘. 주임님은 놔 줘라. 그러면 내가 한 방에 끝내 줄게.”

“야, 서 담당! 이런 쓰레기 새끼 때문에 니 인생을 망치지 마라! 가족도 생각해야지!”


“... 이 주임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쓰레기 새끼라고···?”


장재춘은 놀랍게도, 배신당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형호는 자신의 말실수에 대해 후회했다.

그리고 본인의 끝을 직감했다.


주마등이 스쳤다.

어째 교도소 바깥보다 교도소 안의 기억이 많았다.


주된 정서는 괴로움이었으나, 간혹 보람도 있었다.

진심으로 마음을 주니 결국 변했던 죄수들이 떠올랐다.


열명 중 하나.

아니, 백명 중 하나라도 교화가 된다면.

그렇다면 의미가 있는 일이라 믿고 살았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됐군···. 세상에는 죽어야만 하는 놈들도 있는 거였어.’


이형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장재춘은 입술을 꽉 깨물고 손에 힘을 줬다.


“이 위선자 새끼···. 결국 너도 똑같은 놈이었어! 죽어!”


그러나 익숙지 않은 왼손은 땀으로 번들거리는데다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몇날 며칠간 제대로 잠들지 못해 극도로 신경이 쇠약해진 탓이었다.



아주 잠깐의 빈틈.

그 찰나의 시간을 비집고 들어온 교도봉이 장재춘의 두개골을 까부쉈다.


퍽!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털썩. 장재춘이 바닥에 쓰러졌다.




···


“징계심의위원회 심의결과를 말씀드립니다. 서강록 교도. 근무 명령을 어기고 상황 근무를 소홀히 한 점. 경비교도대가 해야 할 임무에 나서 월권 행위를 한 점. 재소자에게 회복이 불가능한 중상해를 입힌 점. 위급한 상황이었음을 충분히 인지하나, 모든 점을 고려한 징계 결과는 해임입니다.”


해임.

파면 다음으로 높은 중징계였다.


그렇게 서강록은 채 2년도 채우지 못하고 실직자가 됐다.





“...미안해. 여보. 어렵게 얻은 직장이었는데···.”

“아니야.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해. 형호 씨 목숨을 구했잖아.”


만삭의 아내.

강록의 처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당신 건강하고 튼튼하니까 또 취직은 될 거야. 내가 틈틈이 저축해놓은 돈 있으니까 기죽지 마. 서강록! 너 옳은 일 한 거야. 어깨 펴. 우리 씩씩이도 멋진 아빠라고 할 걸?”


가난한 부부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꼈다.



참아야 했나.

서강록은 수십 수백번을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천 번 만 번이라도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었다.


사람 목숨에는 경중이 없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로 모든 목숨은 같은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이형호 주임과 장재춘의 목숨이 같은 값일 수가 있나?

정말로 인권은 평등한 것이 맞나?


서강록은 지독한 두통에 시달렸다.



띵동.


-강록아. 나다.


인터폰 너머로 보이는 이형호의 몰골은 초췌하단 말론 모자랐다.


서강록은 달려나가 이형호를 맞이했다.


“선배. 아니··· 미안해하실 필요 없다니까 왜 찾아오셨어요. 어휴··· 술 드셨어요? 술도 못 하는 양반이 왜···.”

“미안하다. 미안해···.”


“일단 좀 들어오세요.”

“아니··· 제수 씨 뵐 낯이 없다. 이거··· 전해주러 왔어.”


“선배. 뭐가 이렇게 무거워요?”

“... 내 목숨 값이지. 구해줘서 고맙다. 내가 널 구했어야 하는데···. 면목이 없다.”


“이거 혹시 선배 퇴직금이에요? 안 돼요! 이런 큰 돈은 받을 수 없어요.”

“아내랑 상의 다 하고 온 거야. 애들도 이제 독립할 때가 됐고. 내 노후 걱정은 말고, 네 앞날이나 걱정해라. 받아. 받으라고!”


“싫어요. 못 받아요!”



부다다다다, 끼이이이익.

낡은 아파트에 시끄러운 오토바이 한 대가 주차했다.


바이커는 배낭을 두 개나 짊어지고 계단을 타타타타탁 올라와 서강록의 집 앞에 섰다.


“배달이요.”

“뭐··· 시킨 적 없는데요?”


“아, 제 명함부터 드릴게요.”


[법인 ‘유령 회사’, 오 도 현 이사]


“우리 회사에서는요, 사회의 빛과 소금 같은 의인 분들께 후원을 한답니다. 우선은 이형호 씨. 맞으세요?”

“네. 맞는데···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아니긴요. 평생을 교정직에 몸바쳐 교화와 갱생이라는 교도소 본연의 목표만을 위해 희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받으십시오.”

“아··· 아니, 이런 큰 돈은 받을 수 없어요.”


“어쨌든 저는 여기 두고 갈 겁니다. 대표님 뜻에 따라 반환 및 양도는 어떤 경우에도 불가하오니, 정 받기 싫으시면 불태워 버리세요.”


이형호는 얼떨떨한 와중에 배낭을 넘겨 받았다.


“그리고 서강록 씨? 본인 맞나요?”

“예. 맞습니다.”


“의인을 구한 의인이시네요. 여기, 배낭 받으시고.”


오토는 억지로 배낭을 떠넘기고 손을 탁탁 털었다.


“자. 이로써 후원금은 다 전달했습니다. 참, 제가 회사를 두 군데 다니거든요? 이번에는 다른 쪽 사장님의 전언입니다. 여기, 명함요.”


[낙원 교도소 소장 이 수 정]


“새로운 직장을 구하시려거든 연락 달라고 하셨습니다. 경력직으로 대우해 주시겠대요.”


이형호와 서강록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았다.


“참, 낙원은 또 지긋지긋한 범죄자 새끼들을 상대해야 하니 싫으실 수도 있겠네요. 그럼 유령 회사로 오셔도 돼요. 복지나 급여도 낙원 못지 않고, 여기는 봉사 활동을 주로 하거든요. 어느 쪽이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자기 할 말만 끝내고 오토는 쌩하니 가 버렸다.



묵직한 배낭과 두 개의 명함을 받아 든 서강록과 이형호는 여전히 얼떨떨했다.

평생 먹고살기 충분한 돈에, 재취업의 기회까지 얻다니.


“평생 다니던 직장에선 쫓겨나듯 퇴직했는데···. 노고는 다른 데서 치하해 주네.”

“선배님. 다행이에요. 진짜 다행이에요. 솔직히 너무 막막하고 괴로웠었는데···.”


통한의 차갑고 비릿하던 눈물은 어느새 따뜻한 기쁨의 눈물로 바뀌어 있었다.




***


“고생 많으셨슴다. 형님.”

“이제 내일이면 출소하시네요.”

“시간도 참 빠르다야. 기래두 우리 쌓은 정이 있는데 더 있다 가디 기래?”


“무슨 끔찍한 소릴 다 하십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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