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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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가면
그림/삽화
은빛가면
작품등록일 :
2024.07.26 18:09
최근연재일 :
2024.09.16 23: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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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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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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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새벽의 약한 빛이 이트라크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었다.


그의 눈가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떠오른 생각들은 그를 괴롭혔다.


'엠마 선생님, 어썰브, 마본...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들은 과연 무사히 도망쳤을까?'


그는 자신이 어쩌면 그들의 희생을


헛되이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내가 그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만든 건 아닐까?'


라는 자책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속으로 몇번이나 자책했다.


그의 눈에는 슬픔과 절망이 깊게 박혀 있었다.


그때였다.


"첨벙!"


소리와 함께 바다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아이고! 내 짐을 떨어뜨렸구나!"


노인은 탄식하며 자신의 실수를 탓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당황과 황급함이 뒤섞여 있었다.


"이놈아, 내가 네 목숨을 구하였으니 내짐이 바다에 빠졌다면


네가 뛰어들어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


몸이 늙어 구부러진 내가 물에 빠져야 하겠느냐!"


이트라크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


깊은 생각에서 벗어나 주변을 살폈다.


그제서야 그는 노인의 짐이 바다에 떨어진 것을 이해하고 상황을 파악했다.


'짐이 바다에... 배는 멀어져 가고 있는데,


어르신을 물에 빠트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트리크는 잠시 망설였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졌다.


그는 이미 밤새 이어진 추격과


격렬한 생존 투쟁으로 마나가 고갈된 상태였고,


짧은 휴식은 지쳐 있는 그의 몸을


달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힘겹게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베스티기움해의 차가운 물살은 여름의 태양 아래에서도


무심하게 그의 체력을 갉아먹었다.


파도는 그의 진행을 방해하며,


두 번 헤엄칠 때마다 한 번은 되밀려 나가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짐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가 바다를 헤엄치며 돌아본 풍경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 배가 냉정하게도 수평선을 향해 멀어지는 모습이었다.


'아아, 조금만 기다려준다면...'


이트라크는 마음속으로 절규하였다.


마음이 급해지니 파도를 가르는 것은 점점 더 힘겨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인의 짐을 발견하고 그것을 꽉 붙잡았다.


멀어져 가는 배를 바라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짜내며 배를 향해 헤엄쳤다.


무한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난 후,


그는 겨우 배의 난간을 잡을 수 있었다.


그의 손이 난간을 움켜쥐려는 순간,


노인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놈아, 먼저 내 짐을 건네지 못할까?


그 안에는 물에 젖어서는 안 될 귀중한 물건이 들어있다."


"제발, 배를 멈추고 저를 먼저 도와주십시오.


이대로라면 짐도, 저도 모두 바다에 빠지고 맙니다!"


"에이, 말대꾸는! 어서 짐부터 내놓지 못할까?!"


노인의 목소리는 다급했으며, 그의 요구는 무자비했다.


몸이 녹초가 된 이트라크는


더 이상의 말싸움이 자신에게 무익하다는 것을 깨닫고,


무거운 짐을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짐을 받아든 노인은 이트라크를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짐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트라크는 남은 힘을 모아 배의 끝자락을 붙잡고,


겨우 몸을 끌어올려 배 위로 올라섰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추스르는데,


노인의 목소리가 다시금 귀를 울렸다.


다만 이번에는 전과 달리 온화한 말투였다.


"그래 이제 머리가 조금은 맑아진 것 같으냐?"


노인의 말에 이트라크는 마치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트라크가 인지도 못하는 사이 노인은 단순한 행동으로


많은 것을 이트라크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이트라크는 그것을 깨닫고 잠시 멍해졌지만 금세 눈앞의 현실로 돌아왔다.


살생과 죽음의 기억으로 어두워진 마음이었지만,


노인의 짖궃은 행동과 한 마디의 따뜻한 말이


그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일어선 이트라크는 노인을 바라보며 질문했다.


"어르신, 도대체 어떤 분이십니까?


어제는 제 목숨을 구하시고,


오늘은 제 마음까지 구해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노인은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야, 나를 '아바' 같은


어떤 신성한 길잡이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나는 그저 이름 없는 늙은이일 뿐이란다."


'아바'는 인간 중에서도 도를 닦아 승천한 이로,


엘로힘의 곁에서 엘로힘을 모시는 존재로


민간 신앙에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막심 황제의 측근 중 한 명으로,


생명의 속성을 기반으로 한 마나를 지니고 있어


수많은 병자들을 치유하고 많은 이들에게


선한 엘로힘의 가르침을 전파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엘로힘교의 창시자로 추앙받고 있었다.


노인의 눈빛은 이트라크를 꿰뚫듯이 바라보았고,


그의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그의 음성은 깊은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불의 상을 하고 있구나. 좋은 상이다.


만가지 상 중에서도 근본이 되는 상이로구나...


그렇다면 너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트라크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확고한 답이 있었다.


"저는 아직 어리고 배움이 얕습니다.


또한 가진 포부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로 가서 좋은 스승을 찾아 배움을 얻고,


그 지식을 백성들을 위해서 사용하여


위로는 막심 제국의 충신이 되고자 하고 아래로는 천지를 평안케 하려 합니다."


노인은 이트라크의 대답을 듣고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오히려 노인의 얼굴이 어두워 지더니 주름이 자글자글 지어졌다.


"어허... 불의 상을 가진 아이가 빛의 뒷면으로 가려 하다니,


이는 바른 방향이 아니거늘. 너가 가야 할 곳은 그곳이 아니란다."


이트라크는 놀라서 되물었다.


"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 건가요?"


노인은 대답 대신 이트라크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너는 어째서 나와 같은 낯선 늙은이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려 찬물에 뛰어 들었느냐?"


이트라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큰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그저 스승님께 배운 대로, 도움이 필요한 이가 있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망설임 없이 행동에 옮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트라크를 주시했다.


"그러면, 네가 짐을 가져와서 배에 오르려고 할 때,


내가 먼저 짐을 내놓으라고 했을 때의 불쾌함은 어떻게 참았느냐?


네가 오히려 화를 내고 강경하게 대응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이트라크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으나,


곧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의 노력으로 일을 성취한 뒤,


그것을 제 기분 한번에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해온 모든 일이 무의미해지니까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트라크에게 말을 건넸다.


"흠, 대단하구나.


네가 이 나이에 이미 사람들을 다루는 근본적인 진리를 깨달았구나.


불의 상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태워버리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빚을 지우는 방법을 알고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빚진 자는 그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런 사람을 이끌고자 한다면,


그는 너를 위해 목숨조차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지혜를 너에게 가르친 스승은 대체 누구인가?"


이트라크는 노인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스승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정이 가득 차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이트라크의 어께가 펴지고 가슴이 당당해 졌다.


"저에게 만가지 은혜를 베푼 스승의 성함은 엠마라고 합니다."


노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였다.


그는 이트라크의 대답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했다.


"엠마라... 그 철벽의 엠마인가?"


이트라크는 노인의 반응에 당황했다.


엠마는 팔레스타의 고아원에서 조용히 살면서,


자신의 과거나 진정한 신분에 대해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것이다.


이름 마저도 세명의 제자들에게만 알려져 있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그저 원장 선생이라 그녀를 불렀었다.


이름을 아는 세명의 제자 마저도


그녀가 과거에 어떤 존재였는지는 전혀 몰랐다.


"철벽이라니요? 스승님은..."


노인은 이트라크의 혼란을 짐작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네 스승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과연 시대를 잘못 만난 영웅이 다음 세대를 길러 냈구나."


이트라크는 노인의 말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스승이 과거에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았는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트라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배움이 부족하다고?


아니, 너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네.


네 안에 잠재된 능력을 깨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야.


그리고 그 일은 황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이트라크는 노인의 말에 혼란을 느꼈다.


엠마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던 지식과 교육의 중요성과는


동떨어진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인의 말에서 느껴지는 경험과 지혜가 이트라크를 설득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생의 교훈이 묻어나왔고,


그것이 이트라크의 대답을 이끌어 내었다.


"그렇다면,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노인은 이트라크의 질문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이트라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네가 가야 할 곳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내가 네게 빚을 하나 졌으니 그 수고로움을 갚아야 겠지. 내리거라."


이트라크는 노인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배에서 내려 노인을 따라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의 정상에서, 노인은 이트라크에게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신비롭게 보이는 오래된 석조의 문이 서 있었으며,


그 문은 이트라크가 지금까지 본 어떤 것과도 다른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저 큰 문이 보이느냐?"


"네 잘 보입니다!"


비록 낡고 주변의 돌벽은 무너져


형태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석조 문이었지만,


이트라크의 시선은 자꾸만 그곳으로 이끌렸다.


"저 문이 나의 셈이다!"


"네? 제가 왕도로 가면 안된다고 말리시더니


갑자기 무슨 선문답 이십니까?"


"어허 나는 이미 셈을 치렀다.


삶이란 것이 늘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때로는 질문 자체가 답이 되기도 하지.


저 문이 바로 네가 찾는 답을 줄것이다.


너의 눈으로 확인하고,


너의 발로 걸어가도록 하거라."


그렇게 말하고 노인은 갑자기 사라졌다.


이트라크는 노인이 갑자기 사라진 모습에 당황스러워하며 뒤돌아섰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다가 노인이 걷던 길을 따라갔지만,


그는 이미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후였다.


마치 유령이라도 만난 것처럼,


이트라크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자신을 추스렸다.


이트라크 앞에는 오래된 석조의 문이 있었다.


이 문은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디어 내며


처음의 깨끗함과 바른 모습은 사라지고


어딘가 무너지고 기울어져 있었다.


그나마 석조로 되어 있어 그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것이 목조였다면,


벽이 무너지기도 전에 썩어 없어졌을 것이다.


이트라크는 혼자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엇을 보아야 하고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 것인가?"


그는 노인이 가리킨 오래된 석조의 문을 유심히 살폈다.


문 근처의 집터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주변은 모르는 잡초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문 주변의 풀들이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해 푸석푸석하고 윤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반면, 문에서 멀리 떨어진 수풀은


키도 크고 빛깔마저 영롱하여 생명력이 넘쳐흘렀다.


이트라크는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에서 자신이 깨달아야 할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사색에 잠겼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에 이미 젖었던 몸은


말랐으며 한기가 돌던 몸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땀이 나기 시작하는 와중에도


이트라크는 찰나의 움직임도 없이


석조 문 주변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렇게 응시하던 이트라크의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 것은 두시간이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마를 잔뜩 찌푸려 주름을 만들고


고뇌하던 이트라크는 고개를 한번 크게 끄덕이더니


이때까지 북서로 향하던 방향을


동쪽으로 바꾸어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쓸 수 있을까 편히 보시기에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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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021. 드디어 불어오는 검은 바람 (1) 24.09.09 1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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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019. 세 영웅 (2) 24.09.02 1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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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17. 움직이는 톱니바퀴 (3) 24.08.26 19 1 12쪽
17 016. 움직이는 톱니바퀴 (2) 24.08.22 2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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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01. 해와달 (1) 24.07.26 117 2 9쪽
1 000. 프롤로그 - 금서 "어느 동화책" 24.07.26 155 4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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