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프롤로그 - 금서 "어느 동화책"
태초에 우주는 완전히 비어 있었다.
크기, 양, 색상 등 모든 개념이 없는 완전한 '일치'의 상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는 긴 순간이 지나고, 태초의 파동이 발생했다.
처음으로 나타난 '차이'... 그것은 회색이었다.
회색, 처음으로 발생한 이 파동은 점차 자신의 크기를 확장해 나갔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 다시 흐른 후,
회색이 우주의 끝에 도달했을 때,
회색 파동에서 세 가지 새로운 파동이 탄생했다.
그들은 빨강, 파랑, 그리고 초록이었다.
새롭게 탄생한 이 색상들은 천천히 회색을 지워 나갔다.
빨강, 파랑, 초록이 등장한 이후로 우주는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되었고, '나'와 '너'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다른 것들이 생겨남에 따라 그 사이에 벽이 생겼고,
그 벽 때문에 서로의 차이를 더욱 인지하게 되었다.
회색은 자신으로부터 탄생한 빨강, 파랑, 초록을 깊이 사랑했다.
비록 그들이 자신을 점차 지워나가고 있었지만,
회색은 개의치 않고 여전히 빨강, 파랑, 초록을 몹시 사랑했다.
빨강, 파랑, 초록 역시 회색을 사랑했다.
그들은 회색으로부터 탄생했으며,
항상 따뜻하게 자신들을 바라봐주는 그 거대한 존재를 존경했다.
그러던 중, 회색의 시작에서 빨강, 파랑, 초록이 처음으로 서로를 만났다.
처음으로 마주한 '유사함'은 각각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그들은 각자 회색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과 회색만이 이 우주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만남으로 그 믿음이 무너졌다.
빨강, 파랑, 초록은 회색의 시작에서 서로 충돌했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아니 이 충돌로 자신들이 어떻게 변한지 모른채 퍼져 나갔다.
이 충돌 이후, 다양한 색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각 색은 빨강, 파랑, 초록 중 하나를 선택하여
그들의 뒤를 따라 우주를 여행하기 시작했다.
다시 우주의 끝에 도달한 빨강, 파랑, 초록은
자신들을 따르는 많은 색들을 이끌고 회색의 시작점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색의 시작점에 도착했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회색에게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 누구인지를 경쟁하듯 물었다.
회색은 당혹스러웠다. 그는 빨강, 파랑, 초록, 그리고
그들로부터 탄생한 모든 색을 차별 없이 사랑했다.
회색은 그들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빨강, 파랑, 초록의 사랑은 어느새 분노로 바뀌었고,
그들은 혼자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회색을 물리치기 위해 힘을 합쳤다.
다시 한번의 소리 없는 거대한 충돌이 일어났고,
그 충돌에서 알 수 없이 많은 색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더 이상 우주에서 회색을 누구도 볼 수 없었다.
빨강, 파랑, 초록은 자신들을 따르는 색들을 이끌고
다시 우주의 끝을 향해 나아갔다.
자신들이 어떤 색으로 변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1317년 앗 딘 "색깔 이야기"-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인사 드리는 은빛가면 입니다. 시작이라 조금 짧지만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이야기인 만큼 제일 처음 시작으로 가장 알맞다 생각하여 적어보았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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