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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post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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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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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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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DUMMY

53. 후일담


사건이 끝나고, 대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아디야만 시의 복구작업이 시작된 한 때,

시현은 폐허에서 홀로 서럽게 울던 소년, 이스멧을 병원까지 데려왔다.

이후 그 동안 쌓인 피로 때문에 기절해버린 시현은 베아트리체의 간호 덕분에 무사하게 깨어났다.

밤새워 시현을 간호하던 베아트리체는 시현의 다리를 베개 삼아 자다가 마침내 깨어나,

병상에 등을 기대고 앉은 시현과 눈이 마주쳤다.


“베아트리체, 밤새 날 간호해 준거야? 고마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네”


장난스러운 시현의 인사에 베아트리체가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시현이 너 이번 사건에서 대활약했다면서! 아버지랑 교수님한테 다 들었어!

봉인에서 풀려난 악룡 일루얀카를 처치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면서?”

“음··· 가장 큰 역할이라기엔 좀 부끄럽고,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일이라 무작정 뛰어들었지”


그 사이 일어났던 일들로 시현과 베아트리체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아일라와 함께 흡혈귀, 바토리 에르제베트와 맞서 싸우다가 인질들과 아일라를 먼저 보내고 혼자서 승리를 쟁취한 베아트리체의 이야기에 시현이 혼을 내기도 했고,

페르소나와 싸우다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필호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둘 다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러 술병이 가득 들어있는 더플백과 함께 일루얀카의 아가리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시현의 이야기에는 너무 무모하다며 역으로 베아트리체가 크게 화를 냈다.


둘이 떨어져 있었던 한나절 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시현과 베아트리체는 갑작스레 열린 병실 문에 이야기를 멈췄다.


“어머, 이야기 중인데 저희가 방해한 건 아닌지 죄송하네요”

“시현, 이 분께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하셨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 아일라와 아테나의 등 뒤에 따라서 들어온 것은 중년의 현지인 여성.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고 따라 들어오는 소년, 이스멧이었다.


“형!”

“이스멧!”


어제, 폐허가 되어버린 건물 잔해들 사이에서 혼자 울고 있는 소년은 시현과 아일라의 도움으로 이 병원 건물까지 와서 어머니와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하는 이스멧의 뒤를 따라온 소년의 어머니가 시현을 향해 고개를 깊숙히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우리 아이를 데리고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이스멧과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아이구 별 거 아닙니다. 저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이스멧을 발견했다면 당연히 병원으로 데리고 왔을 거에요”


고개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이스멧의 어머니와 한사코 사양하는 시현의 실랑이가 한 차례 지나간 후 이스멧 가족은 병실을 떠나가고 아일라가 시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시현 씨가 어떤 생각으로 이스멧을 데리고 왔는지는 알 것 같아요.

이 도시에 일어난 재난에 대해서 뭔가 죄책감 비슷한 무언가를 느끼고 있는 거겠죠.

우리가 좀 더 일찍 일루미나티의 계획을 저지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시현은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불을 꽉 움켜쥔 그의 떨리는 손가락이 그 마음을 대변했다.

분명 시현 일행에게는 이번 대지진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회가 몇 차례나 있었다.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마중나온 사람이 보이지 않았을 때,

이상함을 눈치채고 곧바로 카파도키아로 향했더라면.

아일라를 처음 만나고 들었던 이야기들에서 곧바로 아타튀르크 댐이 타겟임을 눈치챘다면.

아디야만의 뒷골목에서 마주친 페르소나를 놓치지 않고 붙잡았다면.


일루얀카의 부활도, 필호가 죽임을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이번 대지진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나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고개를 숙인 시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어쩜 이렇게 무능하고 무력한지,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시현의 떨리는 두 손을 잡아주는 손길이 있었다.

아일라와 베아트리체가 시현의 두 손을 각자 하나씩 감싸쥐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누구도 시현 씨에게 이 사건을 막아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어요.

애초에 이번 사건을 일으킨 건 시현 씨의 능력 부족이 아닌, 악당들의 비겁한 악의 때문이잖아요”

“그래 시현아, 너는 장미십자회에 갓 들어온 신입 단원일 뿐이야.

그런 사람에게 첫 번째 임무에서부터 세상을 구하지 못했다고 책임을 요구할 사람은 없어.

오히려 너는 이번 일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일 이상으로 크나큰 일을 해 낸거야”


그러나 그런 위로의 말로도 시현의 가슴 속에 차오르는 울분을 씻어낼 수는 없었다.

시현 본인도 이 이상 잘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성과를 얻어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현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다름아닌 필호의 죽음이었다.

갓 성인이 되자마자 아버지를 잃은 시현에게 때로는 아버지를 대신해주고, 때로는 길을 이끌어주는 선배가 되어 주고, 때로는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의 역할을 해 주었던 필호는 며칠 전 볼로냐에서 수업을 했을 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는 필호를 죽인 페르소나와의 싸움에서, 마지막 일격만을 남겨두고는 마음 속의 망설임을 이겨내지 못하고 원수를 갚을 절호의 기회마저 놓쳐버렸다.


결국 시현은 필호에 대한 그리움, 죄책감, 그리고 자기혐오를 이겨내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 시현의 모습에 아일라와 베아트리체는 난처한 표정으로 시현의 등을 두드려 주는 것 말고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시현과 베아트리체의 첫 번째 임무, 튀르키예 파견 업무는 일루미나티와의 충돌 이후, 허울뿐인 승리와 비참한 결말만을 남기고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54. 복귀


아디야만을 덮친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도시의 복구 작업이 시작될 즈음,

푸코 교수와 마리오, 베아트리체와 시현은 다시 이탈리아를 향해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떠나려는 일행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장미십자회 단원들은 저마다 선물과 덕담을 해 주며 자신들을 도와준 시현 일행을 향한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일라와 그녀의 아버지, 이스마엘만을 남겨두고,

이스마엘은 베아트리체를 안아주며 흡혈귀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있을 때, 시현은 아일라와 마주보고 서서 악수를 나눴다.


“시현 씨, 만일 시현씨가 다시 튀르키예에 올 일이 있다면 꼭 저희를 다시 찾아주세요. 그 때는 튀르키예의 전통 문화와 아름다운 관광지들을 둘러볼 수 있게 가이드를 해 줄게요”

“물론이죠! 언제가 되었든 반드시 튀르키예에 다시 돌아올게요”


시현과 아일라가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자,

베아트리체와의 인사를 마친 이스마엘이 시현과 아일라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아일라에게 무언가를 넘겨주며 말했다.


“아일라, 사랑하는 내 딸아. 시현 군과 작별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아일라는 자신의 아버지가 넘겨주는 물건을 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스마엘을 쳐다보았다.

이스마엘은 그런 아일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여권과 밀라노행 비행기표란다. 서류가 필요한 것들은 내가 다 해결해 놓았으니 너는 시현 군을 따라서 이탈리아로, 그 이후에는 한국으로 유학을 다녀오도록 하려무나”


일전에 아타튀르크 댐을 향해 떠나는 시현에게 말한 적이 있듯,

이스마엘은 정말로 아일라를 한국으로 보내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일라는 왈칵 울음이 터지는 것을 애써 참으며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아버지···”

“나는 너를 내 친딸처럼 여기고 있지만,

너도 알다시피 너는 한국에서 온 내 수양딸이 낳은 내 손녀란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의 손에 자란 너는 잘 모르겠지만,

네 어머니는 항상 고향인 한국을 그리워했단다.

비가 많이 내리는 무더운 여름과 새하얀 눈이 온 세상을 뒤덮는 겨울.

꽃 피는 봄과 낙엽 지는 가을이 아름다운 한국에 가서 네 어머니의 소원을 네가 대신 이루어 주려무나”


한 동안 아일라는 자신의 아버지를 끌어안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시현과 일행들은 그런 부녀의 뜨거운 인사를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부녀의 작별인사가 끝난 후, 이스마엘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시현을 향해 건네주었다.

목에 걸 수 있게끔 줄을 단 그것은 파란색 유리로 동심원 형태의 공예품으로, 얼핏 보면 눈 모양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한 시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스마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스마엘이 설명했다.


“이건 튀르키예에서 나자르 본주(nazar boncuğu) 혹은 악마의 눈이라고 불리는 전통 공예품이란다.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 신의 눈을 형상화한 것이라고도 하고 메두사의 눈이라고도 하는데, 악한 것을 더 악한 것으로 물리친다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은 부적이지.

이 것을 선물로 줄 때에는 받는 사람의 행운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서 주는 것이란다.

만약 이 구슬이 깨지거나 금이 간다면, 어떤 사악한 존재의 시기와 질투로부터 소유자를 지켜냈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단다”

“감사합니다, 이스마엘 씨. 앞으로 항상 목에 걸고 다닐게요”


시현은 곧바로 그 부적을 목에 걸며 말했다.

그러자 이스마엘이 시현을 양팔로 꼭 끌어안으며 귀에 속삭였다.


“고맙기는, 내가 더 고맙지.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할 게 있단다”

“무슨 부탁이요?”

“우리 아일라를 행복하게 해 주게나”

“예?!”


시현이 당황하며 되물었지만 이스마엘은 그런 시현을 무시하고는 푸코 교수에게 다가가서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마 잠시 이탈리아에 머물게 된 아일라에 관한 무언가의 부탁을 하려는 것이겠지.


그렇게 장미십자회 튀르키예 지부와 작별인사를 마친 시현 일행은 푸코 교수가 야누스의 권능으로 연 문을 넘어 튀르키예의 가장 대표적인 대도시,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어라? 바로 공항으로 가지 않는건가요?”

“아직 비행기 시간까지는 몇 시간 정도 남아있네.

자네들도 기껏 튀르키예까지 왔는데 관광이라고는 하나도 못하지 않았는가?

자유 시간을 좀 줄 테니 각자 알아서 관광을 하고 비행기 시간까지 이 자리에 다시 모이는 것으로 하세”


푸코 교수가 자유 시간을 주자 베아트리체와 아일라는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시현을 끌고 번화가가 있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별 관심 없는 듯 하던 아테나 또한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다는 아일라의 이야기에 홀라당 넘어가 번화가를 향하는 그들의 질주에 합류했다.

그런 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푸코 교수가 옆에 있는 마리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시현 군은 여자아이들에게 시달리며 고생을 할 팔자인 모양이로군. 그렇지 않은가?”

“시현이 녀석이 그렇게 되는 건 상관없지만 제발 거기에 제 딸이 엮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가 봐도 베아트리체가 앞서서 시현 군을 끌고다니는 것 같네만”


마리오가 퉁명스럽게 자신의 소망을 말했으나 푸코 교수는 그의 소망을 단 한 마디로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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