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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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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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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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DUMMY

51. 대지진이 끝나고


일루얀카와 전투 이후.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일루얀카를 푸코 교수의 검으로 마무리하고,

지진으로 인해 금이 간 아타튀르크 댐의 붕괴 위험을 아일라가 아난시의 권능을 이용해 수습한 일행은 튀르키예 동남부의 도시, 아디야만으로 복귀했다.


“···이제 균열이 발생한 아타튀르크 댐을 보수하고 일대의 피해를 복구하는 건 튀르키예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이지. 근데···”


의기양양하게 베아트리체와 장미십자회 튀르키예 지부의 학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아디야만으로 돌아온 시현과 일행은 도시의 상황을 목격하고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일루얀카가 일으킨 대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아디야만 일대는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갈라지는 피해로 인해 아비규환의 현장이 따로 없었다.


사방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한 구조대의 사이렌 소리와 부러진 팔다리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재산을 잃은 사람들의 허망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중에서도 시현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부모를 잃은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였다.

손에 장난감 하나를 들고 세상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리는 어린 소년은 찢어진 티셔츠 사이로 보이는 등의 맨살에서 보이는 큼직한 상처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시현이 푸코 교수를 바라보며 그의 아조트 검으로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권능을 쓸 수 있지는 않을까 물으려 했지만 그 전에 푸코 교수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신의 권능들이 민간인에게 노출되면 지금 이보다 더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시현은 그 이야기가 아니라 푸코 교수의 서글픈 눈빛에 납득했다.

푸코 교수 역시도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푸코 교수가 걱정하는 것은 신의 힘을 빌려 사람들을 도왔을 때의 부작용을 이미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장미십자회와 그들로부터 갈라져 나온 일루미나티가 원인이 되어 발생했던 두 차례의 큰 전쟁.

푸코 교수의 침울한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그 전쟁에 스러져간 수많은 민간인들과 동료들의 모습일 것이다.


시현은 애써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서 고개를 돌리려 하였으나 상처입고 서글피 우는 소년만큼은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럼 저 아이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건 괜찮겠죠?”

“그래. 우리는 오늘 그냥 평범한 민간인으로서 이 사람들을 돕자꾸나”


푸코 교수의 허락이 떨어지자 시현과 아일라는 어린 소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꼬맹아, 너희 부모님은 어디에 있니?”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민 젊은 남녀의 질문에 소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소년은 아마 부모와 떨어진 상태에서 이번 대지진을 맞게 되었을 것이리라.


“그럼 일단 우리랑 같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지 않을래? 너희 부모님도 거기 계실지도 모르잖아”


아일라의 친절한 말투에 소년은 금새 울음을 그치고 동행을 선택했다.

시현과 아일라가 소년을 데리고 베아트리체가 있을 병원을 향해 가는 동안 푸코 교수와 마리오, 아테나는 멀찍이서 조용히 따라오고 있었다.


그렇게 소년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는 동안, 시현과 아일라가 소년을 달래면서 알게 된 소년의 이름은 이스멧.

이스멧은 과일가게를 하는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동네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놀다가 갑작스레 흔들리는 땅에 놀라서 집으로 돌아와 보니 건물은 무너져 있고, 어머니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 소년의 어머니가 무사하기를 기도하며 시현과 아일라는 이스멧의 왼손과 오른손을 각자 잡아주며 기도했다.


그런 시현과 아일라를 보며 푸코 교수와 마리오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뒤따라가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 베아트리체와 장미십자회 튀르키예 지부의 학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병원에 도착하자 많은 건물들이 무너지고 도로가 갈라지는 와중에도 굳건히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병원 건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용케도 이 병원 건물은 무너지지 않았네”

“그럼요 여기 병원은 장미십자회 소속 학자들이 설계한 건물이거든요”

“그러면 믿을 만하네요 베아트리체와 학자분들도 아마 이 곳에 있겠죠?”


시현이 앞장서서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절규와 비명 소리로 가득 찬 고통의 현장이었다.

상처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환자들과 그 사이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 이 도시를 덮친 참사의 규모가 어떠했는지를 현장감 넘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발적으로 나서서 응급처치와 환자 분류 등을 돕는 자원 봉사자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베아트리체!”

“응? 어! 시현아! 무사했구나!”


다리가 부러진 환자의 환부에 부목을 대 주고 있는 베아트리체는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빛나는 외모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우아하게 파도치는 금빛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와중에 비어져 나온 머리카락 몇 가닥이 땀에 젖어 그녀의 입가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땀에 푹 젖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그 모습에 시현은 반갑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고개를 숙이고 환자에 집중하던 베아트리체가 시선을 홱 돌리더니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시현에게 곧장 달려왔다.


그러자 그 동안의 전투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를 용케도 버텨내던 시현의 몸이 긴장이 풀리며 주저앉아버렸다.

시현은 점차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보이는 베아트리체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포근한 편안함을 느끼고는 이내 정신을 잃었다.


52. 아테나의 방패


베아트리체와의 재회 이후.

정신을 잃은 시현이 깨어난 것은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였다.


“···낯선 천장이다”


왠지 그렇게 말해야만 할 것 같아서 무심코 말해 놓고는 괜한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다리 쪽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시선을 아래 방향으로 내리깔았다.

그러자 시현의 다리를 베게 삼아 엎드려 잠든 금발의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밤새 시현을 간호한 것인지 눈가에 피곤이 가득한 베아트리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난 시현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 있자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일이 다 끝나고 나서야 일어난 게냐? 거 참 게으른 영웅님이구나”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방 한 구석을 바라보니 소녀 모습의 여신님이 팔짱을 낀 채로 시현을 흘겨보고 있었다.


“네놈이 잠들어 있는 동안 내가 얼마나 뛰어다니며 바삐 일했는지 아느냐? 여신이 그러는 동안 여기 가만히 누워서 여인의 간호나 받으면서 잠이나 자고 있다니 팔자가 좋구나”


아무래도 무언가 단단히 토라진 듯한 모습의 아테나였다.

그런 아테나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시현은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혹시 그 이후로 아타튀르크 댐 관련 일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필호 삼촌은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가 이 병원에 도착한 이후로 장미십자회가 모든 인력과 인맥을 동원해 시설 전체를 수색하였으나 필호와 페르소나의 전투가 벌어진 흔적은 있었으나 그 외의 것들은 털 끝 하나 찾아낼 수 없었다고 하는구나”


자신이 친삼촌처럼 따르던 필호의 안타까운 소식에 시현은 침울하게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러자 아테나가 시현의 바로 옆까지 다가와 고개를 들이밀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내가 여신의 몸으로 인간들을 돕고자 온갖 허드렛일과 자원 봉사를 했다고 하는데 나에게 뭐 해줄 것은 없느냐?”

“어···? 그··· 참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어리둥절한 시현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아테나는 시현의 손을 잡아끌며 재차 말했다.


“베아트리체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나는 그 말 한마디로 때우겠다는 것이냐? 이건 차별이다!”


난데없이 여신님이 투정을 부리자 시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아테나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는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여신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는 것은 불경한 짓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시현의 손길에 만족했는지, 아테나는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고 나서는 베아트리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아이도 밤새도록 자네를 간호하느라 고생이 많았으니 나중에 일어나면 감사를 표현하도록 하거라”


시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테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의 화제를 전환했다.


“그리고 일루얀카를 처치한 뒤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 말이다···”


그 말에 시현은 지난 날 일어났던 사건을 떠올렸다.


일루얀카를 처치하고, 다시 부활하려는 거대한 뱀을 푸코 교수가 아조트 검을 찔러넣어 봉인한 이후에 일어났던 일이다.

일루얀카의 거대한 몸뚱아리가 쓰러져 있었던 자리에서 시현이 발견한 작은 실뱀 한 마리.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었던 그 실뱀이 시현의 몸을 타고 올라오더니 사라졌던 일이다.

그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척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던 아테나가 시현에게 다가와 둘만의 비밀로 하자는 뜻을 전했었다.


“그 실뱀이 나타난 후 자네에게 깃들자 나의 권능에 변화가 있었다네”

“권능이요? 어떤 변화였죠?”


그러자 아테나는 자신의 상징적인 무구,

제우스를 길러 낸 염소, 아말테이아의 가죽을 덧씌운 방패 ‘아이기스’를 꺼냈다.

이전까지는 그저 튼튼한 방패였을 뿐인 아이기스의 겉모습에 이전과 다른, 눈에 띄는 차이가 있었다.

둥근 방패의 한복판에 입을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낸 뱀 한 마리가 양각되어 있는 것이다.

아테나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방패 위에 새겨진 이 뱀이 보이느냐? 본래 나의 방패에는 뱀의 여신을 상징하는 고르곤의 머리가 있었느니라. 그 고르곤 또한 하나의 여신으로서 권능을 발휘할 수 있었지.

그 이름도 유명한 메두사의 석화의 권능이었네.

지금은 오랜 세월이 흘러 그 권능을 잃어버렸으나 일루얀카를 처치하고 그 실뱀이 자네에게 깃든 이후에 조금이나마 석화의 권능 비스무리한 힘을 쓸 수 있게 되었네.

내 생각에는 뱀 신을 처치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싶네”


시현은 그 이야기를 듣다가 익숙한 이름이 들리자 호기심이 들었다.


“메두사라면, 그 영웅 페르세우스가 처치한 그 괴물 말인가요?”

“괴물이라니! 원래 메두사는 뱀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대지의 여신이었다네.

비록 그녀가 맡은 역할이 가뭄의 여신이었기에 퇴치의 대상으로서 신화 속에 등장하지만, 정통성을 가진 여신으로서 나와 합일되어 아테나의 일부가 된 여신이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대상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을 지닌 흉악한 존재로 유명해진 메두사가 사실은 아테나와 부분적으로 동일시되는 대지의 여신이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들려던 참에,

시현의 다리를 베고 잠들어 있던 베아트리체가 뒤척이며 깨어나려는 낌새를 보였다.

그러자 아테나는 이야기를 멈추고 병실 밖으로 향하며 말했다.


“자네가 이 곳으로 오면서 데리고 온 소년, 이름이 이스멧이었던가?

그 소년의 어머니 또한 이 병원에 대피해 있었다네.

그녀가 자네가 깨어나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었으니,

잠시 이 병실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게”


그러고는 쌩 하니 병원 복도를 향해 총총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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