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조각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걸린 도진의 광고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백 년도 더 전에 쓰였던 광고문구를 인용했다는 것도 눈길이 가는 부분이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광고를 내건 사람이 다름아닌 권도진이었다는 점이었다.
“이 사람, 상온초전도체 개발했다는 사람 아냐?”
“그게 진짜겠어?”
“일론 머스크도 인정했잖아. 얼마 전에 한국에서 검증작업도 완료했고. 최소한 상온초전도체 실물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야.”
“그런 사람이···연구소를 차린다고? 상온초전도체 관련한 연구를 하려는 건가?”
“몰라. 아무튼, 난 거기 가볼 생각이야. 넌 어때?”
상온초전도체를 만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발명가이자 과학자가 설립한 연구소.
굳이 연구소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더라도, 상온초전도체 실물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 연구자들에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물론,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건 같은 나라인 한국의 과학자들이었지만 말이다.
“상온초전도체 실물을 만날 수 있다니, 당장이라도 가야지!”
“혹시 조금이라도 팔아주면 좋겠는데. 상온초전도학회 그 작자들은 자기들끼리만 둘러보고 앉아있으니, 원.”
“파는 건 기대도 안해, 그냥 잠깐 빌리기라도 할 수 있으면 충분하지.”
그 덕분에, 도진이 광고를 통해 공지한 날 새만금 한복판은 수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외국인과 한국인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기본적으로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각 과학분야의 인재들 수백 명이 억새밭을 밀고 남은 광활한 대지위에 모인 모습은 나름 장관이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그들은 눈 앞의 광경을 보고 자신의 눈을 의심할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게?”
그들의 눈을 의심케 한 건, 다름아닌 눈 앞에 세워진 3층짜리 건물이었다.
면적은 겉보기에도 수백 명이 들어가더라도 부족함이 없을만큼 넓어보였지만, 문제는 그 외관이었다.
“컨테이너······?”
“아니,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거 같은데?”
“설마···저게, 연구소는 아니겠지?”
우툴두툴한 금속판으로 사방을 감싼 컨테이너들이 창문과 문구멍이 뚫린 채 다닥다닥붙어있는 모습은, 연구소 건물이라기 보다는 항구의 컨테이너 산을 연상케 했다.
도무지, 상온초전도체같은 최첨단기술을 연구하는 곳이라고는 상상되지 않는 모습에 과학자들은 당황할수밖에 없었다.
저벅 저벅
컨테이너의 산에 뚫린 정문을 열고 한 남녀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곧, 두 사람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둘 중 남자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권도진······!”
“미스터 권?”
“드디어 보게 되는군.”
권도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를 눈 앞에서 마주한 그들의 머릿속에서 컨테이너 가건물에 대한 생각은 씻은 듯이 사라져있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권도진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온 것은 그때였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이라면 제 이름 정도는 다들 아실 거라고 생각하니 넘어가겠습니다. 아, 혹시 모르는 분 있으시면 손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하하하하.”
약간의 유머로 사람들의 긴장을 푼 다음, 도진은 말을 이었다.
“좀 놀라신 분들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제가 방금 나온 건물은 은하컴퍼니의 싱크탱크가 될 미래연구소가 맞습니다. 임시긴 하지만요.”
“아무리 임시라고는 하지만, 컨테이너 건물이라니······.”
“연구환경도 중요한 요소인데, 저기서 제대로 된 연구, 아니 냉난방은 제대로 되려나?”
언제 웃었냐는 듯, 도진의 설명을 들은 과학자들은 실망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 유수의 대학이나 연구소들에서 최고의 대우만을 받아왔던 그들에게 눈 앞의 컨테이너 건물은 분명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느정도는 연구자의 의지로 해결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연구환경이란 건 결국 연구의 질과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꽤 멀리서 오신 분들도 계실텐데, 건물이 좀 초라하긴 하죠?”
하지만 도진은 실망할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이건 임시일 뿐이고, 제대로 된 연구소 건물은 현재 공사계획을 잡아놓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보기엔 저래도 내부는 연구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신경을 많이 써놓았고요. 혹시나 그 부분이 걱정인 분들이 계셨다면, 염려는 접어두셔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과 함께, 도진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주먹만한 크기의 동그란 네오디뮴 자석, 그리고 그 위에 둥둥 떠 있는 금속조각.
그 것이 무엇인지, 이 자리에 있는 과학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여러 영상과 자료들을 통해 몇 번이나 봐왔던, 도진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사, 상온초전도체!”
“드디어 실물을 보게 되다니······.”
조금의 조작도 없이 자석 위 허공에 고정된 되어있는 금속조각.
현대과학으로는 불가능하다 여겨졌던 상상속의 물질이 눈 앞에 나타난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모습에 도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께서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이 녀석을 보기 위해서라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자리에서 한 가지 확언을 하고자 합니다.”
자석을 오른손에 쥔 채 도진은 자신을 향해 집중되는 시선을 느꼈다.
과연 무슨 말을 할 것인지 기대하는 눈빛을 받으며, 그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미래연구소에서 연구하기를 원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이 상온초전도체에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원한다면 이 상온초전도체를 응용해 자신만의 연구를 하시는 것도 허용하겠습니다.”
순간.
모래톱 위로 정적이 흘렀다.
“상온초전도체를···직접 연구에 이용할 수 있다고?”
“그게···정말이라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상온초전도체를, 마음대로 연구에 이용할 수 있다.
그 것도, 지구 전역에 존재하는 모든 과학자들보다 먼저 말이다.
꿀꺽
여기저기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돈이나 권력를 탐내는 과학자들에게는 별 의미 없는 이야기였겠지만, 이 자리에 모인 과학자들은 모두가 과학적 성취를 이루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상온초전도체 하나만 보고 이 텅 빈 간척지까지 달려왔을 리 없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도진이 제안한 것은 그들에게 있어 최고의 미끼이자 포상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상온초전도체 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동안은 향후 미래연구소에서 개발되는 모든 기술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비밀유지조항 정도는 당연히 있겠지만, 최소한 여러분의 연구에 제가 터치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연구를 한다는 건 이들에게 가장 큰 자유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이었다.
특히, 자신의 연구가 상온초전도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격렬했다.
“···상온초전도체를 활용할 수 있다니. 그러면, 내 연구의 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이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야.”
“잠깐, 설마···미스터 권에게 상온초전도체 말고 다른 기술이 있는 건 아니겠지?”
이미 도진의 앞에 모인 과학자들에게, 연구소의 건물이 허름한 컨테이너라는 사실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분들께는 연구소 건물이 완공된 이후 연구비를 무제한으로 지원하겠습니다. 물론, 연구의 종류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어진 도진의 제안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결정을 저울질하고 있던 이들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난 미스터 권과 함께하겠소.”
“나도, 나도!”
“상온초전도체를 이용할 수 있겠다는 말, 지킬거라 믿겠습니다!”
너나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과학자들을 바라보며, 도진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이후로도 도진은 한동안 임시로 세워진 미래연구소 건물에 묶여있어야 했다.
연구원 계약과 같은 자잘한 일은 아리아를 비롯한 고용된 직원이 해야 할 일이었지만, 그에게도 할 일이 없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돈 쓴 보람은 있네. 누가 이게 컨테이너 건물이라고 생각하겠어?”
연구소장실을 둘러보며, 도진은 피식 웃었다.
그의 말 대로, 허름해보이는 외관과 달리 연구소장실의 내부는 꽤나 깔끔한 편이었다.
수백 권의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장과 제법 고급스러워보이는 가구들, 천장의 시스템에어컨이나 꽤나 비싸보이는 공기청정기들은 가건물에서 임시로 쓸만한 것들은 분명 아니었으니까.
-이 행성에서도 모듈러공법이 거의 완성된 상태더라고요. 그래서 비교적 저렴하고 빠르게 공사를 끝낼 수 있었어요.
“저렴이라기엔, 너무 많이 쓴 거 아냐?”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아리아의 목소리에 대답하며, 도진은 오른쪽 위의 자원탭을 바라봤다.
[자금력: 425]
[영향력: 32,816. 생산량 1,321/h]
이 건물 하나를 위해 자금력의 거의 절반, 한화로는 거의 60억 가까이를 사용했으니 너무 많이 썼다는 도진의 말은 엄살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걸 원하셨던 거잖아요?
“뭐, 그렇긴 하지.”
아리아의 대답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원탭의 세 번째 자원을 확인했다.
[기술 포인트: 25]
25 기술 포인트.
500에 가까운 자금력을 연구, 정확히는 이 가건물과 직원들의 고용에 사용하면서 얻은 결과물이었다.
“교환비가 꽤나 안좋긴 하지만···초반이니까 어쩔 수 없지.”
미래연구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억지로 자금력을 기술 포인트로 바꾸지 않더라도 기술 포인트를 생산할 수 있을것이다.
그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도진에게는 이렇게까지 기술 포인트를 얻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럼, 다음 기술로 넘어가볼까?”
상온초전도체에 이은, 또다른 기술을 연구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네, 잠시만요. 테크트리 창을 열어드릴게요.
팟!
아리아의 대답과 함께, 도진의 눈 앞에 그물망처럼 펼쳐진 테크트리 창이 나타났다.
습득이 완료되어 하얗게 빛을 내고 있는 [상온초전도체]버튼을 제외하면 불 꺼진 회색의 버튼들로 이루어진 그물들.
그리고, 이제 도진은 불 꺼진 버튼들 중 하나를 더 켤 생각이었다.
“뭐···이미 정해져있지만 말야.”
도진의 머릿속엔, 이미 성간문명으로 도약하는 지름길이 그려져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가 습득할 기술은 그 지름길의 두 번째 퍼즐이었다.
“그럼······.”
도진은 허공에 뜬 손가락을 테크트리 창을 향해 가져다댔다.
이윽고.
삑!
도진이 수 많은 회색 버튼 중 하나를 누르자, 창이 떠올랐다.
[소모 기술포인트: 20]
[기술을 연구하시겠습니까?]
그가 망설임없이 눈 앞에 떠오른 메시지창에 붙은 [예]버튼을 손가락으로 누른 순간.
[컴퓨팅-초양자컴퓨터 연구를 완료하였습니다.]
퍼즐의 두 번째 조각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
- 작가의말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중 군안시는 군산시와 부안시를 합친 가상의 도시입니다.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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