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 통로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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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백
작품등록일 :
2024.08.10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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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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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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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백만원

DUMMY

일당 백만 원


서류뭉치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10여 평의 현장사무소에는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책상에 앉아 연신 키보드의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고, 50대 초반의 현장소장과 20대 중반의 근로자가 사무실 중앙의 원형 탁자에 마주 보고 앉았다.


20대 중반의 조태백이 현장소장 최수광에게 단호한 목소리 말했다.

“더는 여기서 일 안 합니다.”


조태백의 말에 최소장은 얼굴에 곤란한 표정을 역력하게 드러냈다.

“태백아.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봐라. 일당을 백만 원씩이나 주는 일자리가 세상 천지에 여기 말고 어디에 또 있겠냐?”

“소장님. 저, 진짜로 이 일 더 할 마음 없습니다. 일당이 백이 아니라, 이백이래도 더는 못합니다. 그러니 저한테 더 말씀하지 마십시오.”


최소장은 더는 권하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알았다. 알았어. 더는 안 권할게. 커피 식으면 맛없다. 커피나 마저 마셔라.”


그제서야, 조태백은 종이컵을 입으로 가져갔다.

조태백은 적당하게 식은 종이컵에 든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조태백이 종이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자마자, 최소장이 종이 한 장을 조태백에게 건넸다.

“자. 여기 있다.”


조태백은 최소장이 건네는 서류의 내용을 꼼꼼히 살펴봤다.

그러고는, 서류를 조심스레 접어 가방에 넣으며 최소장에게 한 번 더 다짐받았다.

“그럼, 전 이걸로 의무를 모두 마친 거 확실히 맞죠?”

“그래. 확실하다. 그 확인서 잘 보관해라. 그거 잃어버리면 너 여기 다시 와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전산으로 처리는 끝났다.

조태백이 신줏단지 모시듯 애지중지하며 가방에 넣는 확인서가 있든 없든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다만, 선지급 받았던 연봉 3억 원에 대한 모든 의무를 이행하고 이곳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게 종이로 된 확인서 한 장뿐이라, 최소장이 의례 던지는 실없는 농담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태백이 일 년 전에 메고 왔던 배낭을 둘러메며 일어서자, 최소장이 따라 일어나며 조태백에게 물었다.

“어디 정해진 데는 있고?”


“아직은 없습니다. 한 달 정도 쉬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음. 그렇구나. 그러면 말이야. ···.”

“소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조태백은 어떤 경우라도 그곳엔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갈 곳이 정해질 때까지만이라도 여기서 일해 달라며 붙잡으려는 최소장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조태백은 최소장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등을 돌렸다.


조태백은 ‘차원 통로 KR1HHL(KR4,926) 관리사무소’라 쓰여 있는 문을 열고 나섰다.

문을 나서는 조태백의 뒤통수에 최소장의 애타는 목소리가 꽂혔다.


“알았어. 안 잡어. 안 잡는다고. 그래도 세상일은 모르는 거다. 태백아! 혹시 이 일 다시 하게 되면 꼭 나한테 와야 한다. 알았지?”


차원 통로에서 일하는 일 년 내내 계약 기간이 끝나는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단 하루라도 이날을 상상해 보지 않은 날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관리사무소를 나서자 뚜렷하게 갈 곳이 없는 조태백이었다.


‘아, 진짜 어디로 가야 하나?’

‘먹고 살려면 노가다라도 해야 하겠지?’


차원 통로에서 일하기 전에 조태백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공시생이었다.

용돈이 궁할 때, 가끔 알바로 막노동을 하긴 했으나, 결코 막노동꾼은 아니었고, 절대로 막노동이나 하면서 세상을 살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1년 동안 완전히 손 놓았던 공무원 시험 준비를 다시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조태백이 당장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노가다였다.


새벽 이른 시간부터 성북구의 황소인력사무소에는 일당벌이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일 좀 하려고 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던 중년의 여직원은 조태백의 말에 고개도 들지 않고 신분증과 연락처를 요구했다.

“신분증 주세요. 연락처는 어떻게 되시죠?”


“여기, 신분증 돌려받으시고요, 빈자리 찾아서 앉아 계세요.”

“아, 예.”

조태백은 며칠의 휴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그러고는, 꽤 오랜 기간 비어있던 게 틀림없어 보이는 지하 월세방을 얻어 이사했다.


이사 다음 날, 가까운 인력사무소를 찾았다.

빈자리를 찾아 앉은 조태백 옆자리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대머리를 감추려는 듯 모자를 깊게 눌러쓴 50대 초반의 남자였다.

“어이. 자네. 첨보는 얼굴이네.”


남자의 말에, 조태백은 초짜 티를 팍팍 내며 큰 소리로 공손히 인사했다.

“아, 예. 조태백이라 합니다. 오늘 처음 나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허. 이 친구. 보기 드문 친구네. 인사성이 밝아. 좋네. 좋아.”

“감사합니다.”

“그래, 뭐하던 친군가? 이런 일은 해 봤고?”

“전에 몇 번 해 봤습니다. 운전하다 왔습니다.”

“운전? 아! 택시 운전?”

“예.”

“왜? 그게 더 낫지 않나?”


지난 1년 간의 차원 통로 생활로 막노동이라면 지겹게 한 조태백이었다.

그렇지만, 조태백은 누가 보더라도 초짜로 보이도록 일부러 어리숙하게 행동했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행세하는 게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게 ···.”

미리 준비해둔 답을 하려던 조태백은 말을 멈춰야했다.

대머리 남자의 옆에 앉아 있던 반백의 남자가 대화에 끼어들어서였다.


“택시 운전은 일은 쉽지도 않으면서, 수입은 우리 반밖에 안 돼.”

“그래? 그럼 차라리 이 일이 낫겠구먼. 그런데 김 사장 자네는 그걸, 어찌 그리 잘 아누?”

“박 사장, 자네는 내가 그렇게 여러 번 얘기했는데 기억도 안 나나?”

“아하! 그랬지. 김 사장이 전에 개인택시 했었다 했지.”

“그려. 나도 법인 택시만 20년 몰다가 가까스로 개인택시 장만했었는데, 강원랜드 카지노 드나들다가 집도 차도 다 날렸잖아.”


처음 조태백에게 말을 걸었던 대머리 박 사장과 반백의 김 사장이라는 두 사내는 조태백에게는 더 이상 하등의 관심도 없다는 투였다.

벌써 몇 번씩이나 주고받았을 게 분명한 자신들의 과거 얘기에 몰두했다.


“박지용 씨, 김도출 씨, 그리고···, 조태백 씨. 아파트 도장 잡부로 나가세요.”

“어! 김여사, 웬일이야? 초짜한테 첫날부터 일도 주고?”

“김여사가 하도 오랜만에 젊은 놈을 봐서 그렇지. 요즘엔 젊은 애들은 이런 데 안 오잖아. 일당 백만원짜리 일이 어서옵쇼하고 있는 데 이런 델 왜 오누.”

“두 사장님이 요즘 하도 비리비리하게 힘을 못 써서, 젊은 사람한테 기(氣) 좀 받으라고 붙여준 거니까, 기나 보충하세요.”

두 사람의 실없는 농담이 처음은 아닌 듯 했다.

인력사무소의 여직원은 능숙하게 두 사람의 농담을 받았다.


“하하! 알았어. 알았어.”

“어이! 초짜. 나가자.”

조태백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대하며 자신들의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하던 박지용과 김도출은 중년의 여직원과 조태백을 가운데 두고 실없는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조태백을 앞세우며 일어섰다.


일을 마치고 인력사무소에 돌아와 일당을 받아 호주머니에 넣는 조태백에게 대머리 박지용이 은근한 기대를 나타냈다.

“태백이. 첫날인데 쐬주 한잔해야지?”


“뭐. 그러시죠. 제가 오늘은 쏘겠습니다. 김 사장님도 같이 가실 거죠?”

“당연하지. 나 빼고 가면 섭섭하지.”

“하하. 자, 가자고.”


인력사무소에서 나오자마자 두 사람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빠르게 앞서 나갔다.

두 사람은 오로지 빠르게 걷는 데에만 집중했다.

조태백이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끔 뒤돌아보는 걸 제외하고는.


아파트에서 페인트칠 일을 할 때에는 단 한 번도 서두른 적이 없던 두 사람이었다.

세상이 무너져도 결코 바뀌지 않을 것처럼, 항상 느긋하게 움직이던 두 사람의 돌변한 모습에 조태백은 약간 당황했다.


‘오늘 잘못 걸린 거 아냐? 이거 오늘 일당 다 토해내는 걸로도 부족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두 사람의 활기찬 뒷모습을 보면서 조태백은 자연스레 호주머니 걱정을 했다.

조태백의 그런 걱정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두 사람은 앞장서서 걸었다.


걷던 세 사람이 멈춰 선 곳은 인력사무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한 식당 앞이었다.


식당은 ‘돈(錢)이 돈(豚)으로 환생하는 맛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식당의 출입문에는 5만 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서 입을 쭉 찢고 있는 돼지머리가 그려져 있었다.


두 사람을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가며 조태백은 벽에 붙은 메뉴판을 재빠르게 확인했다.

가격을 확인한 조태백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나마 다행이네.’


“자네는 저기 앉아 있게.”

조태백은 대머리 박도출이 가리킨 술 냉장고 앞의 테이블로 향했다.

조태백이 테이블 위의 수저통을 뒤져 세 사람이 사용할 숟가락과 젓가락 정리를 했다.

조태백이 정리를 끝내기도 전에 한 사람은 술잔을, 그리고 또 한 사람은 김치 등의 기본 안주를 챙겨왔다.


두 사람의 행동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조태백은 두 사람이 식당의 주인과 인척 관계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조태백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에 테이블 바로 옆의 술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내 번개 같은 속도로 잔을 채웠다.


두 사람의 행동을 보며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 조태백을 향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태백이 자네는 왜 차원 통론가 뭔가 하는 거기 일을 안 하고 여기로 왔나?”

“그래. 나도 궁금하다. 거기 일당이 백만 원이라면서?”


“건강 진단에서 떨어졌습니다.”

차원 통로에서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했던 것처럼 온갖 것들을 부풀려 영웅담 삼아 떠들어 대기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조태백은 손톱만큼도 결코 자랑할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차원 통로에 대한 부정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추호도 발설하지 않겠다는 비밀서약서를 작성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애초부터 조태백은 그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웬만해선 안 떨어진다던데 아쉽겠네. 그려.”

“차원 통로. 그거 엄청 많이 생겨서 일할 사람이 턱도 없이 부족하다면서 왜 나이 제한을 두는지 몰라.”

“나이 제한이 마흔 살이라 했던가?”

“그려. 만 나이로 마흔 이래.”

“아깝다니까. 아까워. 딱 10년인데 말이야.”

“하하. 나이 타령은 그만하고 자 한 잔 들어.”

“태백이. 자네도 들게.”

자기들끼리 열심히 떠들며 주문한 돼지껍데기와 돼지갈비가 나오기도 전에 주거니 받거니 벌써 한 병을 비운 두 사람이 그제야 조태백을 챙겼다.


“차원 통로에서 일하면 일 년 치, 3억 원을 선불로 준다면서?”

“그래. 나도 그런 얘기 들어봤어. 태백이 자네도 들어봤지?”

“예. 저도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일 년이면 365일이니까 일당이 백만 원이면 3억 6천 5백만 원이지 왜 3억 원이야?”

“아따. 이 사람아 쉬는 날은 빼야 할 거 아녀? 하루도 안 쉬고 일 년 내내 일만 하나?”

“일당이 백만 원인데 쉬는 날이 대수여? 난 뭐가 빠져도 한다.”

“김 사장. 자네 뭐 빠질 게 있기는 하고? 하하.”

“박 사장, 자네보다야 내 께 더 낫지. 하하하.”

“실 없기는. 마셔. 태백이 자네도 어서 마시게.”


박지용과 김도출 두사람의 대화 패턴은 정해져 있었다.

먼저 한 사람이 조태백에게 한 마디 물었다.

그리고, 조태백이 뭐라 답을 하면 그때부터는 조태백은 없는 사람 취급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은 한참 대화와 함께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조태백을 가끔 한 번씩 끼워주며 잔을 마주쳤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조태백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차원 통로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에 마음이 포근해지는 조태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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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브레인 버스팅(Brain Bursting) 24.08.22 73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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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더블 엑스트라 라지(XXL) 클래스 몬스터 24.08.20 77 2 12쪽
9 마나스톤 24.08.19 72 4 11쪽
8 서브 휴먼(Sub-Human) 24.08.18 71 1 12쪽
7 서쳐(Searcher) 24.08.16 79 2 13쪽
6 KR1HHL(KR4,926) 24.08.15 82 2 14쪽
5 차원통로 개척회사 공제회 24.08.14 88 4 15쪽
4 다시 차원통로 24.08.12 92 3 13쪽
3 9억원 24.08.11 98 4 14쪽
» 일당 백만원 24.08.10 119 3 12쪽
1 프롤로그 : 차원 통로 개척 24.08.10 146 4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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