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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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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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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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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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VIP 룸

DUMMY

스물여덟 청년 나이!

보통 사람들 같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 마친 사회 초년생이거나 비슷한 나이 대였다.


이 나이, 이 만큼 큰 돈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은 1% 부자이거나 운이 엄청나게 좋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돈을 어떻게 써야만 할까? 큰 돈이라서 생각은 단 한순간 그치지 않고 잠자리까지 정신을 또렷하게 했다.


이 만한 돈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노력 대가일까? 아니라면 운이 좋은 것일까? 애매한 것들이 섞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 백, 수천 가지 생각을 했다. 잠을 거의 설치다시피 푸석푸석한 얼굴로 아침을 맞았다.


가장 먼저 통장을 넘겨준 감방 이모님이 생각났다.


정우는 삼십 리를 가야만 있는 은행으로 갔다. 청구서에 1억을 찾겠다고 도장을 찍었다. 처음 해 보는 엄청난 일이라 동그라미를 속으로 세느라 고개를 몇 차례나 끄덕였다. 1억 원 돈의 무게는 얼마쯤 될까? 도장을 꾹 누른 느낌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희한한 것이었다.


창구 여직원이 몇 차례나 정우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어떻게 드리면 되겠느냐? 물었고 뒷줄에 앉은 남자 직원과 무슨 내용인가를 공유하기도 했다.


잠시 후, 뒷자리 남자가 천천히 걸어와 정우한테 말을 걸었다.


“어휴, 사장님! 젊으신데 사업체를 운영하시나 봐요? 이렇게 오랫동안 목돈을 저축하기가 쉽지 않은데. 잠시 들어오셔서 차나 한잔 하고 가시죠? 수표는 그 사이 준비하겠습니다.”


“네에.”


정우는 처음 겪는 일이라 이 남자가 하는 말을 단박에 이해하지 못했다.


“이리 들어오시죠.”


남자가 가리키는 손짓에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쿠션 좋은 의자도 손님도 한산했다. 이곳은 보통 사람이라면 들어 올 수 없는 VIP룸이었다.


이제야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은행 직원들이 돈 냄새를 풍기는 정우를 알아보고 극진히 모신 셈이었다. 남자는 영업부 차장이라며 명함을 내밀었다. 천천히 허리를 숙이는 모습이 깡패 조직이 하는 구십도 배꼽 인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차장 말대로 ‘사장’이고 정상적이라면 정우도 지갑 속 명함을 꺼내서 주고받아야만 하는데 직업이 없으니 명함도 없었다. 약간은 주눅이 들었다.


그럼에도 졸개들이 오야붕을 모시듯 최고로 극진하게 대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은행 VIP가 되었다. 이모님이 주신 2개 통장은 VIP 신분증 같은 것이었다.


차장 말대로 자신이 사업체를 운영하는 성공한 사장님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돈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마치 장난감 빈 총과 실탄이 장전 된, 무게감 느껴지는 총을 허리에 차고 있는 것처럼 달랐다.


망망대해서 등대를 만난 것처럼,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고 암울하게만 보였던 것들이 이젠 뭐라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


오늘은 인호한테 면회를 갔다. 정우보다 두 살 아래 인호는 결손 가정에서 자랐다. 공부는 안 하고 뒷줄에서 ‘일진’ 노릇을 하다 보니 수표교 김두한 같은 의리 있는 건달이 되기 위해서 깡패 조직에 들어왔다고 했었다.


없는 것보다 못한 부모님이 있다는 것만 빼고는, 정우보다 나을 것이 없는 애였다. 자신 말대로라면 날마다 싸움만 하는 부모는 차라리 ‘구석이’형처럼 없는 것이 낫다고 했었다.


인호는 처지가 비슷한 ‘구석이'를 친형처럼 따랐다. 오야붕이 본보기로 철거민 대표를 병신 만들어야 물러난다며 전과가 없는 인호에게 칼침을 놓으라고 시켜 조직 내 충성심을 실험하자고 명령했었다.


그러나 정우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인호한테 ‘총대 메고 감방 가는 일’을 시킨다는 것은 믿음을 배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머지 오야붕에 대한 반항심에서 직접 명령하는 형님과 싸우다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칼을 뺏어 찔렀던 것이었다.


인호는 조직 내 일행들과 용순이를 유괴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다. 유괴는 적극적인 행동이 없었다 하더라도 정범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 자체 만으로도 큰 죄가 되었다.


도회지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 지어진 교도소, 이곳은 바라보는 것 자체 만으로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함이 느껴졌다. 정우 감방 시절 역시 인호가 심심찮게 접견을 왔으니 처지가 역전된 셈이었다.


침침한 접견실, 푸른 수의 인호가 들어왔다. 그리곤 화들짝 반겼다.


“형님! 개미 새끼 한 마리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죽고 싶었는데, 진짜로 감사합니다.”


감방도 바깥 세상과 마찬가지였다. 접견 오는 사람이 없으면 같은 재소자끼리도 가족한테서도 ‘버림받은 사람’이라며 은근히 무시했다.


“인마, 감사하긴. 그래, 잘 지냈냐? 이제 서서히 공짜 관복이 몸에 편할 때도 됐는데.”


“형님! 약 올리지 말아요. 하루가 48시간 같아요.”


“너, 콩밥 체질인가 보다. 살찌고 얼굴도 좋은데?”


“형님! 살 찐 것 아니고 부은 거예요. 어젯밤 감방에 거미가 나와서 혹시 누구라도 올까 봐 기대했는데, 형님을 만나게 되네요.”


감방생활은 누구나 하는 것처럼, 별거 아니라는 듯 대화해야만 했다. 위로나 공감한다는 의미로 절망하거나 낙담하는 모습을 보이면 도움이 아니었다.


“인마,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냐? 이 형님은 세 바퀴나 돌았다. 언제가 선고냐?”


“다음달 14일이에요.”


“그럼, 인제 며칠 안 남았네.”


모든 것이 별일 아닌 것처럼 장난처럼 해야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인호야, 지금은 용순이도 돌아와 학교 잘 다니고 있고, 너는 적극적으로 데려가자고 안 했으니 선고 날 출소할 거야.”


“형님! 그렇게만 되면 소원이 없겠네요.”


“그렇게 된 다니까. 우리 100만원 내기 할래?”


***


감방에서 부러움의 극치는 법원에서 재판 받고 돌아와 출소한다고 들떠 있는 놈들이었다. 자신이 보던 잡지나 쓸 만한 것들을 나눠주며 면회 오겠다고 동료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심지어 민원 해결하듯 동료들이 꼭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이 나가서 해 주겠다며 순서대로 적는 인간도 있었다. 그러나 철문을 나가는 순간 약속은 개뻥이었다. 의리를 지키는 놈은 한 놈도 없었다.


칠순을 넘긴 어느 대기업 회장은 살 수 있는 것이라면 1년 세월을 100억씩 혹은 1,000억씩 사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감방 재소자들은 거꾸로 팔 수 있는 것이라면 자신의 징역을 웃돈을 얹어서라도 팔고 싶은 고통의 세월이었다.


“인호야, 누가 접견 다녀가고 그러냐? 부모님도 한번이라도 오시고?”


“아니요. 부모님도 그렇고 데리고 있던 동생들도 싸가지 없는 새끼들이 한 놈도 안 왔어요. 지난번 형님 왔다 간 뒤 접견실에 오늘 처음 나왔네요.”


“콩밥은 먹을 만하고?”


“형님도 잘 아시면서. 여긴 동재 똘마니들 우글우글 해서 명함 잘못 내밀었다가는 반 송장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다. 너는 국선 변호인이지?”


“네, 맞아요. 접견 한번 왔다 갔는데, 어떻게 변론 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도 없고 유괴는 사회적으로 악질 범죄라고 겁만 주고 가더라고요.”


“인호야, 너무 걱정마라. 이모님 변호사한테 네 사건 얘기하고 물어 봤더니, 전과 없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그랬어.”


“형님! 진짜로요? 전, 형님 밖에 없어요. 여기 가슴에 꽉 막힌 것이 사이다 마신 것처럼 시원하게 내려가네요.”


“내가 훈수 둘 입장은 아니다만, 출소하게 되면 뭘 하고 살지 그거나 고민해 봐라.”


“예. 생각이 무척 많아졌어요. 이젠 철부지 청소년 나이도 아니고.”


“그래. 이제 양아치 생활은 청산 해야지. 선후배도 따지지 않고 연장 쓰는 깡패 새끼들이나 있지, 주먹 쓰는 김두한 같은 의리 있는 건달이 어디 있겠냐?”


“맞아요, 형님. 그런 생각 하루면 백 번씩 해요.”


“나도 지금껏 절간에서 무 뽑고 땔감이나 하고 있다만. 사형스님이 딴따라 기질이 있다고 해서 뭘 할까 고민 중이다.”


“맞다. 형님 노래방 가면 죽이잖아요?”


책상에 앉은 교도관은 무슨 내용을 적는지? 계속 적고 있었다. 접견 일지가 때로는 가석방 심사 자료가 된다고 했다.


접견 시간 8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종료를 알리는 부자가 길게 울렸다.


“인호야, 긴 말은 할 수 없고. 생각도 않던 공돈이 생겨서 영치금 삼백 넣었다. 사식 시켜 먹고 건빵 많이 사 먹어라.”


“네에??? 삼백만 원이요?????”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한 인호가 교도관에게 밀리듯 접견실을 빠져나갔다.

서울 회장님한테서 백 만원 수표를 받았듯이 답답한 감방, 오늘 하루 만이라도 휘파람 부는 날이 됐으면 하고 바랐다.


재소자에게 영치금은 생명수 같은 것이었다. 심심할 때면 개구쟁이 군것질 하듯 과자나 건빵 말린 오징어 등, 주전부리를 해야 참담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은행에서 인출한 1억 중 인호 영치금을 사용했으니 아직도 엄청난 돈이 남았다. 이 돈은 부처님께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봄, 3년 감방생활을 마치고 전과자 몸으로 운방사를 찾는 순간은 절망적이었다.


구례서 수십 년 택시를 운전, 모르는 것이 없다는 기사 아저씨도 이 시간에 왜 운방사에 가는지 모르겠다고 혼잣말을 했었다. 그러나 보국스님 사형스님을 만나서 시주 한 푼 없이 ‘구석이'란 이름자를 ‘정우’로 바꾸었다.


그리곤 몸이 부서져라 부처님께 15,255배를 했었다. 산다는 것은 무척 단순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주전자 물로 하루를 살아가는 연주 암 주지스님도 만났다.


좋은 생각을 해야만 좋은 사람으로 바르게 살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꼬였던 실타래가 풀리듯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사형스님이나 보국스님 역시도 척박했던 초년 운은 지나고 대운이 들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대운이 들어오는 전조(前兆)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은 감방에서 나온 후 새롭게 알게 된, 모두가 바른 사람들이었다.


***


“정우야, 찬바람 불기 전에 양식 좀 가지고 연주암에 다녀와야만 하는데 언제 다녀 올 수 있겠느냐?”


“예, 사형스님. 내일이라도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도연스님이 두어 해 다녀봐서 연주암 가는 길을 잘 알고 있을 테니 함께 다녀오도록 해라. 신발도 편한 것으로 갈아 신고.”


지난번 기괴한 바위 밑에서 우연찮게 보았던 백사가 생각났다. 황금 줄무늬 백사는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다.


“예, 사형스님. 저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망설이지 말고 해 보거라.”


“예, 사형스님! 제가 운방사에 지난 봄 왔으니 벌써 6개월이 지났습니다.”


“오호, 엊그제 온 것 같은데 벌써 반년이 됐느냐?”


“예. 스님도 아니면서 그동안 절 밥 먹고, 사형스님이나 여러 스님들로부터 좋은 말씀 듣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누구나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본다는 것은 전진하기 위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


“옳은 말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뭔가 역할을 좀 해보려고요. 자세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지만, 돈이 좀 생겨서 부처님께 올리고 싶습니다. 받아 주세요.”


정우는 통 크게 1억 돈이 담긴 봉투를 사형스님께 내밀었다.


“이런! 제법 진지하게 말을 걸어와서 이젠 절간을 떠나겠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돈이라니.”


“나중에 차차 말씀 드리겠지만 생각조차 않던 돈이 생겨서요.”


“기특한 일이구나. 반년 먹은 공짜 밥값을 부처님께 한꺼번에 내겠다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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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도연스님과 연주 암 가는 길 24.09.17 208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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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화 변호인 24.09.15 251 10 12쪽
35 35화 막 내린 오야붕 +2 24.09.14 254 11 12쪽
34 34화 이모님!!! 24.09.13 283 11 12쪽
33 33화 운명 24.09.12 300 11 12쪽
32 32화 약장수, 딴따라! 24.09.11 297 7 12쪽
31 31화 이정우 입니다! +2 24.09.10 327 11 12쪽
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72 10 12쪽
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67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96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48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55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32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32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90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51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70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615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33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71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81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722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44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86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826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828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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