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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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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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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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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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막 내린 오야붕

DUMMY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는 출력이나 사역을 나가지 않았다. 세 평 감방에서 건빵이나 별사탕으로 만든 장기놀이를 하며 긴긴 오늘이 아무 탈 없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시간이, 그리고 세월이 웬수였다.


“우리 정우가 징역 선배님이네?”


“근데, 이모 방 경제범은 무슨 사기를 그렇게 크게 친 거야?”


“돈깨나 있는 사모님처럼 생겼는데, 지주(地主)들한테 땅을 사겠다고 계약금만 주고 넘겨 받아서 다른 사람들한테 되파는 수법으로 수백억을 해 먹었다고 하더라.”


“맞아요. 이모! 사기죄로 큰 돈 빼돌린 사람들은 형량도 많지 않고 감춰둔 돈도 많아서 느긋하게 있는데, 오히려 피해자들이 합의 해줄 테니까 가져간 돈 절반이라도 토해내라고 사정한다니까.”


“그 여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는 사람들이 접견 오고, 합의한다고 변호사도 와서 특별 면회 나가고 하더라.


“이모, 법은 돈으로 손해 끼치는 잘못은 큰 죄라고 보지 않아. 그래서 날마다 사기꾼이 늘어나겠지만.”


이 때 면회가 끝났다는 부저가 길게 울렸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정우야, 다음에 올 때는 중요한 얘기가 있으니까 변호사님이랑 같이 와라.”


“변호사님이랑 같이?”


“그래. 전화해서 같은 날 들어오라고.”


마지막 얘기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교도관이 밀치듯 이모님을 데리고 나갔다. 무슨 중요한 얘기가 있다는 것 일까?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


다음날, 이모님이 살았던 기와집을 찾아갔다. 평소라면 체육관이 딸린 기와집은 거들먹거리는 깡패 새끼들이 진을 칠텐데 빈집처럼 썰렁했다.


안주인 부재 탓인지 넓은 마당엔 낙엽만이 뒹굴었다. 오야붕 사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모님 말대로 은행 통장을 찾았다. 수 백 만원을 찾아서 할머니께 생활비를 전해 드리고 나머지는 변호사에게 전해 주라고 했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 할머니는 단 한 푼 생활비가 나올 곳이 없다고 했다.


“할머니, 이모님이 이 거 전해드리라고 했어요.”


“두어 달 지나도록 한 번도 안 오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겨?”


“별일은 아니고요. 약간 복잡한 일이 있어서요.”


차마 감방에서 징역을 살고 있다는 얘기를 사실대로 전할 수는 없었다.


“그놈이 또 때린 겨? 여자를 때리는 놈은 죽는 날까지 그 손 버릇 고칠 수 있나?”


아마도 할머니는 오야붕이 때려서 이모님이 오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네, 할머니. 비슷한 일이에요. 시간 지나면 해결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죽일 놈! 벼락은 그런 놈들이 맞아야만 하는데. 늦게 얻은 딸 하나를 보쌈 하듯 강제로 끌고 갔으면 때리지라도 말아야지.”


“할머니! 오야붕이 이모님을 강제로 끌고 갔어요?”


“그럼, 그 인간이 스무 살도 되기 전 울면서 시집가기 싫다고 하는 애를 끌고 가다시피 했지.”


“그럼, 경찰에 신고하지 그랬어요.”


“그것이, 속 모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 쉽지. 날마다 깡패 새끼들이 집까지 찾아와서 진을 치며 ‘이제는 오야붕 사모님이 됐으니까, 기와집에 자가용 타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식당까지 못하게 했다니까.”


“그 때는 식당 하셨어요?”


“암만.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손님들한테 치여서 고생했지.”


“그럼 그때부터 생활비를 꼬박꼬박 대준 거고요?”


“할 일이 없던 영감은 그 일로 맘고생을 하다가 얼마 후 홧병을 얻어 죽고, 딸아이가 심심찮게 목돈을 생활비라고 가져 왔으니까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런 악연으로 시작 됐네요.”


“애가 둘만 됐어도 이렇게 적적하진 않았을텐데, 무남독녀에다가 수 십 년째 손 버릇 고약한 억센 놈을 만나서 아직껏 같이 사는 것이 용한 일이야.”


새롭게 알게 된 할머니 얘기를 듣고 보니 오야붕이 한층 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할머니, 이모님 말고 하나 더 낳지 왜 이모님만 두었어요?”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점지하는 애를 내가 갖고 싶다고 맘대로 욕심대로 가질 수 있나? 그럼 이 세상에 애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


허긴, 어떤 사람들은 잠자리서 손만 잡고 잤는데도 원하지 않은 애가 생겨서 몸 버리고 돈 버리며 낙태 수술을 한다고 소란을 피웠다. 지난번 칠순 잔치를 했던 장씨 어르신도 애들을 어찌나 많이 두었는지 사람 찍어내는 기계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했었다.


슬하에 자식을 두는 일은 어떤 사람은 너무 많아서 탈이고, 어떤 사람은 안 생겨서 탈이고. 참으로 불공평한, 의지 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나머지 인간은 하나님이나 부처님 같은 신 적인 존재를 믿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다 아는 일 감출 것 있나? 걱정되니 한번 다녀가라고 해. 내가, 지금은 용을 쓰고 있지만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할머니는 다행스럽게도 이모님이 사위인 오야붕과 부부 싸움을 해서 못 온다고 믿고 있는 듯 했다.


“알겠어요, 할머니! 그렇게 얘기할게요.”


적잖은 나이가 되면 말은 안 해도 그려지는 것들이 있었다. 할머님도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그대로 믿었다.


“할머니한테 얘기하면 주실 거라고 이모님이 서류 가방 챙겨오라고 하던데요.”


“틈틈이 와서 본인만 들여다보는 가방을 챙겨 오라고 했단 말이야?”


“예. 뒤주 속에 있다고 했어요.”


“그래, 저기 쌀 뒤주 속에 있으니까 꺼내서 챙겨 가. 나야 당최 아는 것이 있나.”


***


윗목 목재로 된 어깨 높이 반듯한 뒤주를 열자 케케 묵은 냄새가 났다. 옛날 부잣집에서는 이곳에 1년 내내 쌀을 담아두고 먹었다. 기다란 가죽 끈 밤색 가방이 눈에 띄었다.


드문드문 가죽이 벗겨지고 구김 간 것이 척 봐도 수십 년 된 가방이었다.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 지퍼를 열어 보았다. 은행 통장과 잡다한 서류가 두텁게 들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겉표지 ‘신체 포기각서’가 보였다. 이런 서류는 양 당사자가 손가락 건 후 약정하고, 지장 찍고, 인감 증명까지 첨부된 도장을 찍었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없는 것이었다.


불법은 적법절차를 지켜서 작성했다 하더라도 원천 무효인 셈이었다. 가령 불만이 있던 두 사람이 정정당당하게 주먹으로 겨루자며 서로가 책임을 묻지 말자고 각서 작성 후, 쌈박질 한쪽에 피해가 발생하면 두 사람이 작성한 각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불법에 따른 약정은 물 위에 쓴 글씨처럼 효력이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비겁한 오야붕이 빤하게 알면서도 채무자나 약점 있는 사람들에게 뭔 가를 뺏으려는 압박감에서 작성한 서류로 짐작되었다.


여러 개 은행 통장도 있었다. 정우 옛날 이름 ‘이구석’ 통장도 두 개나 되었다. 이모님 명의로 된 통장도 많았고 등기권리증도 몇 개나 있었다. 집 문서, 땅 문서. 채권 서류가 수북했다.


“할머니! 이젠 오야붕 그 새끼하곤 어쩌면 끝날지 몰라요.”


“뭐여?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직은 저도 잘 모르지만 그 사람 좀 아파요.”


“아프다고? 고놈 천벌을 받는 중이고만! 그런 놈은 한시 바삐 죽어야만 해.”


할머니는 가슴에 한이 맺힌 듯 쉬지 않고 악담을 퍼 부었다.


“예, 할머니.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


이모님 심부름을 마치고 할머니 집 대문을 나왔다.


“오랫동안 안 오면 걱정 되니까 쉽게 한번 다녀가라고 해.”


“네, 할머니. 꼭 전해 드릴 테니까 걱정 마시고 건강 챙기세요.”


정우는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모님이 중요한 얘기가 있다고 다음 면회 때는 변호사와 함께 들어오라고 했었다. 그리고 챙겨오라고 한 오래 된 가방 속에는 은행 통장이나 여러 종류 채권 문서가 잔뜩 있었다.


신체포기각서 등으로 미루어 이런 것들은 애초 오야붕 것으로 보였다. 오야붕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아니라면 이모님이 아무도 몰래 빼돌린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야붕 삶이 광대가 외 줄을 타거나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언제 감방에 갈지 모르는 것이라 아내인 이모님 명의로 모든 것들을 감춰 둔 것이라고 추측이 되었다.


회장님은 좋은 차만 타고 다니며 어깨 힘이나 주었지 주머니엔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란 얘기를 조직원에게 들었었다. 갑자기 병원에 있는 오야붕 근황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병원을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고기수!!!'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 이름은 ‘고기수’로 오야붕 이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부상 전 서슬 퍼런 분위기와 달리 병실 주변 졸개들은 고사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아마 치료 해 봤자 회복도 안 되고 의식도 없다는 걸 알고 무등산 형님 등 부하들이 이미 다른 곳으로 줄서기를 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개들로부터 팽 당한 것이었다.


끈 떨어진 연이었다. 오야붕 일이긴 했으나 의리라고는 벼룩 간 만큼도 없는 양아치 같은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인과응보, 자업자득인 셈이었다.


평소 때라면 오야붕 앞에선 오금을 저리며 음식점에라도 가는 날이면 호호 입김을 불어 구두를 겨드랑이에 닦아 받치고, 하마 같은 투박한 손으로 오야붕이 사용할 이쑤시개를 들고 다니던 놈들이었다.


헌데 앞으론 ‘고기수’가 오야붕을 못할 것이라는 분위기를 간파 한 듯 했다. 세상은 비정했다. 수십 명 졸개들이 밤낮없이 하이에나 떼처럼 냄새를 맡고 따라다녔는데 단 한 사람 볼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서성대다가 아침저녁 하루 두 차례씩 할 수 있다는 중환자실 면회를 했다. 감염을 우려 병원에서 준 소독이 된 비닐 겉옷을 입었다. 파마 할 때처럼 머리카락까지 싸맸다.


수십 가지 마음으로 중환자실을 걸어 들어갔다. 코와 입에 호스를 끼고 누워있는 오야붕이 어찌나 처참한지 순간 다른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소통에서 수족관처럼 하얀 거품이 보글보글 피어올랐다.


수십 명 졸개를 거느린 오야붕은 고사하고 이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모습이었다. 잠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론 화가 나면 헐크 얼굴이 되어 세간살이를 부수며 이모님을 폭행하던 순간도 떠올랐다.


오야붕은 오늘이 며칠인지? 누가 왔다 갔는지도 모른 채 보글보글 생기는 산소 방울을 이용 겨우 호흡만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인간사(人間事) 자신보다 힘없는 사람들을 쥐 잡듯 때려잡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느껴졌다. 생명 붙은 것들은 뭣이라도 죽어가는 모습이 초라하고 안타까웠다.


‘그러니까 좀 착하게 살지 왜 그렇게 살았어요?’


정우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오야붕을 향하여 혼잣말을 대뇌였다.


‘1억을 가져오든지, 아니면 손목을 자르겠다.’고 서슬 퍼렇게 겁주던 순간이 떠올랐다. 나쁜 사람이라고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병실을 나왔다.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으나 그나마 모든 재산을 이모님 앞으로 해 두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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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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