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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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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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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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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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스님과 재소자

DUMMY

7월,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얼굴로 흘러내렸다. 나뭇가지 매미는 덥지도 않은지 아침부터 암컷을 부르는 수컷 매미가 허리를 위아래로 들썩이며 방아를 찧었다.


세상사, 생명체는 ‘암수’가 따로 있었다. 암컷과 수컷은 사이좋게 만나 종족 번식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생명을 이어갔다.


밀어내고 한편으론 당기는 N극 S극처럼 건강한 암, 수컷은 무조건 짝이 되었다. 하나님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은 이런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스님은 금욕(禁慾)하며 절간에서만 살았다. 스님들만 산다면 후대는 없었다.


스님 생활은 느리고 청빈(淸貧)했다. 빈곤하니 청빈할 수밖에 없었다. 수입이 없는 감방 재소자처럼 산속 절간에서만 지내니 당연히 수입은 없었다. 그물을 치지 않는 어부 와 같은 것이었다.


보국스님처럼 민가를 돌며 시주 받은 양식이나 금품이 고작이었다. 부처님을 찾아 온 처사나 보살은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손바닥에서 똥 냄새가 나도록 부비며 대웅전 시주 함에 금전을 넣기도 했다.


결혼 운, 자식 운, 사업 운, 건강 운!


인간은 누구나 잘 먹고 잘 살기를 원했다. 절간을 몇 차례쯤 방문, 주지스님을 만나 인생 상담을 하고 나면 그 순간부터 단골손님이 되었다. 주지스님을 세상 살아가는 등대나 등불 같은 존재라고 믿었다.


가족 사주 목록까지도 꿰차고 절간에서 관리해주는 큰 손님인 셈이었다. 대웅전 법당에 사주를 반듯하게 기재한 목록이 수없이 매달렸다.


큰 불자는 주지스님을 만나 돈을 바치거나,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는 좋은 일에 써 달라고 땅 문서를 가지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은 1년이면 몇 차례 드문 일이라 고정적인 수입은 아니었다.


그런 탓에 절간 살림은 언제나 빠듯했다. 펑펑 쓰고 싶어도 넉넉하지 않으니 청빈(淸貧)할 수밖에 없었다. 청빈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믿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따라서 스님들이 먹고 싸는 작물 농사는 기본이었다. 절간 주변, 황무지를 개간한 땅에 오만가지 농작물을 심었다. 콩을 심고, 옥수수를 심고, 참깨 들깨를 심었다.


***


오늘은 파마가 싫어서 머리 깎고 스님이 됐다는 주방스님, 학교에 가지 않은 ‘용순이' 와 셋이서 깻잎을 땄다. 허리춤까지 자란 밭에서 깻잎을 한장씩 뜯어 다른 손에 차곡차곡 모았다.


줄기 아랫것은 이글이글한 햇볕에 벌써 약이 들었다. 윗단 것을 따야만 부드러웠다.

파란색 깻잎은 풋풋한 새내기 솜털처럼 하얀 솜털이 피었다.


스물여덟 팔팔한 나이!

절간 들깨 밭에서 주방스님 ‘용순이'와 한 장 한 장, 깻잎이나 딴다는 것이 한편으론 한숨이 지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함께 일하자는 재벌집 회장님 제안을 거절했다는 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깻잎은 여름부터 늦은 가을까지 아침저녁으로 먹는 주요 식자재였다. 잎에서 상큼하고 고소한 맛이 돌았다. 깨 맛이었다. 이 세상 살아있는 것들은 특유의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쌈으로 먹고, 국도 끓이고, 전분을 흘러내리지 않게 발라 기름에 튀기면 바삭한 맛이 온몸으로 퍼졌다. 겹겹이 가지런히 모아 조선간장에 절여서 겨우내 밑반찬으로 먹기도 했다.


채식인 나물류만 먹어야 하는 절간 살림은 독성이 있어서 못 먹는 것만 아니라면 웬 만한 것들은 모두 사계절 먹는 식자재였다.


한 달 전쯤 ‘용순이'를 학교에 태워다 주고 오던 길, 모종을 사와서 심었던 고추와 오이가 튼실하게 자랐다.


“용순아! 요기 이것은 삼촌이 심은 거 알지? 너도 내년엔 삼촌처럼 심어 봐?”


주방스님이 며칠 전에 대충 심었다는 것보다 두 배쯤 크고 튼실하게 자랐다. 윗단은 하얀 꽃이 피고 아랫단은 주렁주렁 고추가 열렸다.


오이도 서너 발쯤 줄기를 뻗었다. 기다란 줄기에 가시가 돋혔다. 대나무나 칡넝쿨 마디처럼 중간 중간 잎이 나다가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아기 손가락만 한 오이가 달렸다.


말도 행동도 사내처럼 투박한 주방스님이 오이는 담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며 줄기를 아무렇게나 걷고 아래 솔가지를 채웠다. 사람 손을 타서 시들시들하던 줄기는 다음날 금방 생기를 찾았다. 오이도 며칠 후 한 뼘이나 자랐다. 자그만 꿀벌이 윙윙 소리를 내며 주변을 날아다녔다.


생명체는 인간에게 관심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귀신처럼 알아챘다. 건성건성 대충 심은 것과 달리, 햇볕이 잘 드는 땅을 깊숙하게 판 후 돌을 골라내고 밑거름을 충분하게 해준 보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물을 처음으로 키워보는 정우는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주렁주렁 고추가 열리고 오이가 크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나 절간 생활은 단조롭고 무료했다. 오늘이라도 당장 ‘파계승’처럼 산을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만 빼고는 교도소 담장 안에서 생활하는 재소자나 마찬가지였다. 순전히 정신세계 차이였다.


***


숲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 대웅전 추녀 끝 풍경 소리! 흔한 자동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쥐 죽은 듯 고요한 절간, 심심해서 경내를 한 바퀴 돌아봤지만 겨우 파란색 하늘만 보였다.


이런 날이면 글방에서 공부하던 게으른 스님들도 무료함을 달래려고 밭으로 마실을 나왔다. 자신이 직접 밭을 가는 농사일은 싫어했지만 구경하는 것은 좋아했다.


뭐라도 성장하고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서 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사형스님과 두상이 예쁜 도연스님, 다른 스님들도 나란히 마실을 나왔다.



“주지스님! 여기 좀 와서 보세요? 정우처사가 심은 고추와 오이가 최고예요.”


파마 하기 귀찮아 머리 자르고 무늬만 스님이 됐다는 주방 스님은 어느 누구 하고도 거침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주지스님이라도 전혀 다르지 않았다.


최고라는 말에 스님들 이목이 정우가 심었다는 고추와 오이 넝쿨에 쏠렸다.


“그러게요. 이렇게 차이 나는 것은 종자가 다른 거 아니에요? 아니면 손오공이 요술을 부리듯 감쪽같은 재주라도 있는 건가요?"


도연스님이 미소 진 얼굴로 물었다.


“신통한 일이야. 자고로 땅에서 자라는 작물은 인간이 알 수 없는 신비한 기운이 있어서 ‘종자’와 ‘밭’이 좋다는 두 가지 이유 만으로는 이렇게 실하지 않은데. 네가 작물을 길러내는 좋은 기운이라도 있는가 보구나?”


“그러고 보니 정우처사님은 못하는 일이 없나 봐요? 지난번 힘센 ‘용순이' 아빠 일행 세 사람이 왔을 때도 부처님께 ‘백 팔배’를 시켜서 감동 먹었는데.”


도연스님이 정우한테 기분 좋은 얘기를 했다.


얼굴이 유난히 큰, 30대로 보이는 스님은 형편이 넉넉한 재벌 스님이라고 했다. 그런 덕분에 절간에서 쓰는 이름 역시 ‘부자스님’ 이라고 불렀다.


이 스님은 60대인 부모님이 사업체를 3개나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한창 나이 무슨 말 못할 사연으로 출가(出家)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 대로라면, 살아갈 운명(運命)이나 길고 짧은 명(命)까지도 응애 하고 태어날 때 정해진다고 했다.


하늘이 낸 부자는 부자대로, 스님으로 살아갈 운명은 운명대로, 이것을 거부하며 벗어나겠다고 발버둥 쳐봐야 소용 없다고 했다. 단지 큰 강 줄기는 바꿀 수 없지만 겨우 주변에 흘러드는 샛강은 미미하게 변화 시킬 수 있다고 했다.


부자 스님처럼 형편이 좋은 사람들은 스님이 되려고 출가하면서 자신의 몸을 의탁할 절간에 몇 천, 혹은 몇 억씩 거금을 시주 한다고 했다. 주지스님이 절간 살림 하는데 필요한 종자돈이라고 식당 스님이 귀뜸 했다.


시주를 많이 낸 스님은 1년이 지나도 보국스님처럼 탁발을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한다는 핑계로 세상과 단절된 산사(山寺)에서 삼시세끼 공양을 축 내며 게으르고 편안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 길이 과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는 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


절간 생활은 따분했다. 어느 날은 자전거 짐칸 ‘용순이'를 태우고 학교에 갔다. 요즘 시골은 학교도 운동장도 조용했다. 페달을 힘들게 밟는 정우 허리를 매미처럼 붙잡은 ‘용순이'는 창피한지 교문 멀찍이서 내려 달라고 했다.


아마도, 얼마 전 지프를 운전했던 삼촌보다 자전거 타는 삼촌은 오렌지와 귤처럼 친구들에게 인기가 덜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순이'를 내려주고 다시 운방사로 오는 길,

긴긴 하루 중 내가 해야하는 일은 고작 이런 것 뿐일까?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자 온통 파란색이었다.


찻길, 마을길, 논두렁길 죽어라 페달을 밟자 지평선 넓은 세상이 눈으로 가슴으로 들어왔다. 건너편 산 골짜기서 시원한 바람도 불어왔다.


팔팔한 스물여덟 나이!

날마다 무위도식하며 이런 보잘것 없는 모습으로 산다는 것이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때로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기와집에서 식구들이 몰려 다니며 하루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 때리고 부수는 ‘스펙타클’한 재미도 없었다.


세 평 감방생활 보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감방에서는 누군가 전입을 가거나 출소 후 신입(新入)을 받는 날이면 무슨 죄, 어떤 놈이 들어올까, 호기심이 생겨 낮 모른 신입을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똥 묻은 놈이 겨 묻은 놈 나무라듯 자신 역시 죄인 신분임을 망각하고 새로 들어 온 신입의 잘못 살아온 인생을 미주알고주알 파헤치는 일은 재미난 무협지를 단숨에 읽는 것처럼 신나는 일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난 후, 감방 내 숫자를 확인하는 점호까지 마쳤다. 이때부터 아홉 시 취침 시간까지 무료했다.


재판을 목전에 둔 1079 동수씨는 판사님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쓰고, 1254 곽동렬 형님은 화장실 앞에 엎드려 중학생 딸에게 공부 잘하라는 편지를 썼다. 순간 정우는 감수성 예민한 중학생 딸이 교도소 사서함으로 배달된 아빠편지를 받고 무슨 생각을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여러 가지 잡념이 거미줄처럼 그치지 않았다.

기와집 생활, 튀밥기계 삼촌,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 했던 몸집이 작아서 앞줄에 앉은 친구 선태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자신과 달리 잘 풀렸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학생 때는 오히려 라면을 사주고 이모님이 넉넉하게 준 용돈을 나눠주기도 했었다.


그 때 교도관의 철창문 여닫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리더니 고무신 차림 관물을 옆구리에 찬 신입(新入)이 들어왔다. 이곳은 영화배우 알랭들롱이나 마늘 조각처럼 잘생긴

미남이라도 빛을 잃은 공간이었다.


정우보단 나이가 많은 아저씨는 똥 씹은 얼굴이었다. 착하게 산 사람일수록 참담함은 더했다. ‘감방 장’이 신고식을 받으라는 뜻으로 몇 차례 턱을 올렸다 내렸다.


“아저씨! 우리 방에 왜, 허락도 없이 왔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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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09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09 13 12쪽
»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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