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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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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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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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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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운명

DUMMY

인간이 숨 쉬며 살아가는 곳 어디라도 돈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무소유’나 청빈(淸貧)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절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출가 시 맺은 약정은 주지스님과만 나눈 비밀이었으나, 금전이 오갔던 일은 오래 되지 않아서 사찰 내 모든 스님들이 알음알음 알게 된다고 했다.


큰 돈을 내고 출가한 스님은 다른 스님에 비해서 목소리가 크다는 것은 동서고금 상식이었다. 사람들 사는 곳은 절간이나 세속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보국스님은 애초 큰 돈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그러나 오래 전 열반(涅槃)에 드신 성철스님의 수좌오계(잠 많이 자지 말라, 말하지 말라, 과식하지 말라, 문자 보지 말라, 돌아다니지 말라.)에 따르더라도 태반이 빼고 줄이는 몸가짐을 단순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성품이었다. 사찰(寺刹)은 대개 접근성이 어려운 산속에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찰에 오지 못하는 중생을 탁발을 통하여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부처님의 좋은 말씀을 전해드리는 셈이었다.


깊은 산속 절간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있게 깨우쳤다 하더라도 몸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혼자만의 반쪽 공부인 셈이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황소처럼 일만 하는 농부가 닷새 장터를 찾는 여유처럼, 절간을 나와 많은 중생(衆生)들과 희로애락을 공유한다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하는 일인지도 몰랐다.


두 가지 이유 중 어떤 것일지 단언할 순 없었으나, 보국스님은 다른 스님들과 달리 정기적으로 탁발을 다녔다.


***


“보국스님! 오늘은 어디로 가시게요?”


“오늘은 시골 마을이 아닌 읍내로 가 보십시다.”


‘읍내’란’ 얘기에 체육관 딸린 기와집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감방에서 고생하고 있는 이모님이 생각났다. 처음 며칠은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상심이 컸으나, 감당하기 힘든 큰일도 날이 지날수록 체념하며 받아들이게 되었다.


요즘은 시골도 농사를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시도 농촌도 아닌 어중간한 읍내 크고 작은 빌라와 십 여 층 높이 아파트가 보였다. 길거리 군대 군대 늘어선 상점도 보국스님에겐 탁발 대상이었다.


“스님! 아파트 평 수가 큰 부자 동네로 가야만 시주를 많이 받는 거 아니에요?”


“모르는 소리! 돈 많은 부자라고 시주 많이 하는 거 아니에요. 시주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지요.”


“맞아요. 먹고 사는 것은 대를 물려 걱정 안 해도 되는 부자라도 옆에만 가면 찬바람 쌩쌩 부는 사람들 있잖아요.”


읍내로 이어진 크고 작은 가게가 다닥다닥 있었다. 삼시세끼 먹고사는 삶의 현장인 셈이었다.


이곳은 도로 주변이라 지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보국스님은 멀리서 봐도 탁발스님임을 어깨 너머 늘어진 배낭을 보고 단박에 알 수가 있었다. 손 뜨개질 가게가 빼꼼이 문을 열고 있었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오방네안위~"


보국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낮은 목소리로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2~3분 됐을까? 짧은 이 시간이 30분은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나오는 사람조차 없어서 막 돌아서려는 데 30대 남짓 아주머니가 안에서 나왔다.


얼굴이 푸석한 것이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이번엔 보국스님이 주문을 외웠다. 표주박에 쌀과 5천 원 권 한 장을 시주 했다. 첫 집부터 시주를 넉넉하게 받았으니 기분 좋은 일이었다.


시주를 받는 짧은 시간, 보국스님은 주인 아주머니를 스캔하듯 살폈다.


“보살님!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마음이란 ‘고놈’은 묘한 것이라서 생각을 안 해야지 하고 다짐하면 생각이 더 나기도 하지만, 마음이란 놈은 팔자를 만들기도 한답니다.”


시주를 받은 보국스님은 아주머니한테 무슨 뜻에선지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답례 인사를 했다.


“새겨 듣겠습니다.”


아주머니는 어느 정도 수긍한다는 듯 다소곳이 대답을 했다.


“스님! 얼굴만 보고도 금방 고민이나 근심을 짐작할 수 있어요?”


“그럼요. 가게나 집, 살아가는 환경을 보면 금방 알 수가 있지요. 이곳은 개업을 축하하는 깨끗한 리본 달린 ‘동양란’이 있는 걸로 보아 문 연지 얼마 안 되는 가게인데, 돈 욕심을 낸다면 저렇게 단아한 여성이 주점이나 노래방 같은 좀 더 활동적인 장사를 할 텐데 뜨개질이라니.”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되네요. 맞아요. 뜨개질은 취미 생활이지 돈 버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찬찬히 얘기를 들어보니 그렇지요? 돈도 쌀도 시주 하는 착한 마음으로 미루어 저런 아주머니는 남편이나 가족 같은, 틀림없이 가까운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쳐서 위로가 필요한 사람일 겁니다.”


“보국스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표정도 그렇고 말수가 적은 것이, 돌이켜보니 고민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


다음은 백반이나 된장찌개, 비빔밥을 파는 자그만 한정식 식당이었다. 가게서 나온 아줌마 몸에 바쁜 몸 놀림이 묻어 났다. 커다란 통에 담긴 물로 가게 앞을 청소하다가 염불을 외는 스님한테까지 물이 튀었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스님! 우리는 교회도 안 나가고 부처님도 안 믿어요. 다른 집이나 가 보세요.”


건네는 첫 마디가 두 마디를 건너기조차 민망할 만큼 박절했다.


"나무관세음보살!..."


보국스님은 외던 염불을 중단하고 옷 자락에 묻은 물방울을 떨어냈다. 그리곤 다시 튈까 봐서 미련 없이 다른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했다.


“스님! 저 아주머니는 어때요?”


“저 분은 사주를 몰라 정확한 운명은 모르겠지만 부지런한 소와 같은 관상으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만약 저런 관상이 아까 봤던 조신한 여성처럼 뜨개질 가게를 한다면 금방 망하거나 병이 나겠지요.”


“그럼, 보국스님 말대로라면 스님도 탁발을 다니시거나 스님을 해야만 하는 운명인 거예요?”


“그러게요. 아마도 그러겠지요.”


탁발이나 스님은 자신 얘기라선지 긴 말은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스님! 사형스님이 저한테 딴따라 한번 해보라고 하던데 성공할 수 있는지? 한번 봐 주세요.”


“그것을 정확하게 알면 내가 부처님이지, 이렇게 부처님 제자로 탁발을 다닌답니까? 허허허.”


“아니, 아까는 수예점 하시는 조신한 아줌마도 식당 하는 아주머니도 고민 있는 상이니 황소 운명이니 하면서 말씀 하셨잖아요?”


“글쎄요. 산에 가면 수많은 여러 종류 나무가 사는 것처럼 척 보면 알 수 있는 것을 말하라면, 정우처사는 누구에게나 기쁨을 줄 상입니다. 좋은 에너지인 셈이지요.”


“좋은 에너지요?”


“진한 눈썹과 큰 귀가 눈 아래 위치로 봐서 재물 운도 있어 보이고요.”


“그럼 딴따라 해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보는 첫눈에 그렇다는 것이지, 사는 것은 수만갈래 거미줄처럼 원체 변수가 많은 것이라서.”


“그렇게 애매한 말씀 마시고 속 시원하게 말씀 해 주세요.”


“그런 걸 알면 내가 탁발승이 아니고 부처라니까요. 두 운명 중, 초년 운은 감방에서 액땜을 했으니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겁니다.”


보국스님 말씀은 코끼리 다리 만지듯 애매한 것 투성이었다.


***


승강기조차 없는 5층 빌라에 왔다. 주변은 노는 공터가 많았다. 그런 탓인지 멀리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각층마다 현관문이 마주보고 있었다. 이런 곳은 중간에서 염불을 하면 두 집을 방문하는 효과였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빌라라선지 빈집이 많았다. 3층 할머니한테서 겨우 천 원짜리 두 장을 시주 받았다. 할머니에겐 이천 원도 큰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 말씀은 젊은 사람들보다는 할머니나 연세 지긋한 사람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간혹 만나게 되는 젊은 사람은 시주도 안 하면서 이방인이라도 되는 듯 거리감을 두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지만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말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한기가 느껴지는 사람, 무슨 불만이 저렇게도 많은지 ‘불독’ 닮은 짜증 난 얼굴, 부처님 웃는 얼굴 닮은 할머니한테서는 여유를 보았다.


편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길을 물어 볼 수가 있었고, 목이 마르던 차 냉수를 청해 마실 수도 있었다. 은혜와 나중 갚아야 될 신세를 주고받았다. 거미줄 같은 인연을 맺었다.


보통 사람들은 하루면 수십, 수백 번 스치는 일이라고 의미 없이 지나쳤지만 불쾌함도 친절함도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다. 세상사 선(善)과 악(惡)을 층층이 쌓는 일이었다.


5층까지 올라갔다가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아파왔다. 이런 곳에서 건강이 시원치 않은 노인들이 수십 개 계단을 오르내리며 산다는 것은 두 배쯤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현실이었다.


“시설이 깨끗한 걸로 봐서 사람은 사는 것 같은데, 유난히 빈집이 많네요?”


“간혹은 염불 소리를 듣고 모른 척 문을 안 열어 주기도 하고 진짜로 부재 중인 집도 있고 그래요.”


작은 것 하나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삶의 현장이라고 했다.


***


“정우처사, 저기 마트서 음료나 한잔 하고 갑시다.”


편의점 파라솔은 널찍했지만 손님은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자동차만 심심찮게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따가운 햇살, 보통 사람들이라면 거품 나는 맥주나 시원한 막걸리를 마셔야 될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정우와 보국스님 두 사람은 음료수 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정우처사는 부모님 생각은 안 해요?”


몇 개월이 지나도록 단 한차례 물어 보지 않은 뜬금없는 얘기였다.


“이 세상, 부모님 생각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누군지도 모르고 찾을 수도 없으니 그냥 잊고 사는 거지요.”


정우는 기와집 이모님 밑에서 청소년이 된 바람에 부모님 생각은 별로 하지 않은 채 어른이 되었다.


“정우처사는 처지가 나하고 비슷한 것이 많아요.”


보국스님은 자신 어린 시절을 회상하듯 긴 한숨을 토했다. 지푸라기 같은 농작물을 잔뜩 실은 경운기가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앞을 지나갔다.


통통거리는 엔진 소리와 함께 시퍼런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경운기는 우마차와 트럭 중간으로 시골 노인들이 부담 없이 운전했다.


“나는 태어난 곳이 운방사예요. 너 댓살 쯤 됐을까? 튀밥기계 삼촌 따라다니던 정우처사보다 어린 나이였어요.”


“네에?????”


정우는 운 방사에서 태어났다는 보국스님 얘기에 깜짝 놀랐다.


“내 기억으론 절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지금은 연주암에 가 계시는 주지스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라다녔어요.”


“연주암, 주지스님을 아버지라고요?”


“불러 준 사람이 없었으니 속세서 쓰는 이름 같은 거는 의미도 없었지만, 학교를 다니며 알게 된 내 이름과 주지스님은 성씨가 다르더라고요.”


“그럼, 보국스님도 저처럼 부모님이 누군지 몰라요?”


“부모님이 누군지 모르는 건 고사하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절간’이었다니까요. 그러다 보니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도 없이 보고 배운 것이 도적질이라고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스님이 될 수 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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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주지스님! 계세요? NEW 7시간 전 89 6 12쪽
38 38화 도연스님과 연주 암 가는 길 24.09.17 144 7 12쪽
37 37화 VIP 룸 24.09.16 179 9 12쪽
36 36화 변호인 24.09.15 207 8 12쪽
35 35화 막 내린 오야붕 +2 24.09.14 218 10 12쪽
34 34화 이모님!!! 24.09.13 251 10 12쪽
» 33화 운명 24.09.12 269 11 12쪽
32 32화 약장수, 딴따라! 24.09.11 268 7 12쪽
31 31화 이정우 입니다! +2 24.09.10 301 11 12쪽
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46 10 12쪽
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40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0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5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09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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