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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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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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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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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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원석(原石), 정우

DUMMY

이 세상, 직업은 수천 수 만 가지였다.


그러나 얼마 전 ‘스님’은 직업이 아니라고 했던 보국스님 말이 떠올랐다. ‘깡패’를 반듯한 직업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없을 것 같았다.


“아직 반듯한 직업을 가져 본 일은 없습니다.”


회장님은 약간 의외라는 듯 아줌마를 큰 소리로 불렀다.


“아줌마, 강 과장 들어오라고 하세요.”


잠시 후 귀경길 말 한마디 없이 운전만 했던 기사 아저씨가 들어왔다.


“강 과장, 이 사람한테 사냥 갈 때 타고 다니는 지프 꺼내 줘요.”


무슨 이유에선지 처음엔 뜨악하게 반응했던 회장님 마음이 바뀐 듯 했다.


“네에??? 회장님! 알겠습니다.”


강 과장이란 운전기사는 몹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대답은 짧고 간결했다.


이날 밤, 정우는 회장님이 빌려주신 지프를 타고 운방사에 왔다. 자정이 다 된 시간 시끄러운 엔진소리 헤드라이트 불빛에 진즉 잠자리에 들었던 사형스님이 천천히 걸어 나오셨다.


아직은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이름이 애매한 강아지도 나와서 꼬리 치며 반겼다. 강아지는 반가운 표시를 꼬리로 했다. 반기는 친근함이 강할수록 꼬리를 흔들어 대는 회전도 빨라졌다.


“사형스님! 이거 받아 왔습니다.”


회장님한테 받은 봉투를 전해 드렸다.


“내일이나 올 줄 알았는데, 일찍 내려 왔구나.”


“내일은 ‘용순’이 학교 데려다 주고 고추, 오이모종 심으라고 하셨잖아요?”


“하하하, 그놈 제법이로구나. 약속을 허투루 듣지 않고. 그런데 이 차는 누구 차인데 타고 왔느냐?”


정우는 사형스님한테 서울 다녀온 얘기를 소상하게 했다.


“허! 배짱 한번 두둑하구나. 그래서 내일은 나와 약속한대로 ‘용순’이 학교에 데려다 주고 고추 모종 심어야 한다고 차를 빌려서 타고 가겠다 우겼단 말이냐?”


“그럼, 어떡해요. 버스도 없는 한 밤중 내려와야만 하는데. 마라톤으로 뛰어 올 수도 없고.”


사형스님은 몇 차례나 ‘알 수 없는 놈’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


다음날 아침 ‘용순이' 는 신나는 날이었다.


“용순아, 오늘은 아저씨가 학교에 태워다 줄 테니까 책가방 갖고 나와라.”


'용순이' 는 학교 가는 길이면 구불구불한 산길, 논두렁 길을 한 시간이나 걸어서 가야만 했는데, 오늘은 뛸 듯이 기뻐했다. 간혹은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했지만 하굣길 끌고 올라오는 것이 힘들다고 걸어서 다니곤 했다.


그럼에도 날마다 부부 싸움만 하는 엄마 아빠보단 스님들과 함께 생활하는 절간이 훨씬 좋다고 했다. 쌈박질 하는 부모님도 보지 않고, 꾸중도 안 듣고, 마음대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이곳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다른 애들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것이었지만 ‘용순이' 한테는 감사한 일이 되었다. 정우는 어렸을 적 자신과 비교해보기도 했다.


“용순아! 아저씨도 엄마 아빠가 어디에 사는지, 누군지도 몰라. 그렇지만 이렇게 혼자서 어른이 된 거야. 혼자서도 뭐든 잘할 수 있지?”


'용순이'처럼 초등학생이거나 여섯 살배기 정우한테 엄마 아빠란 어떤 의미일까? 정우는 까딱 잘못했다간 굶어 죽을 수도 있었다.


부모란 커다란 화분 속 수북하게 담긴 질 좋은 흙처럼 새싹이 바르게 자라는데 양분이 돼야만 했다. 그러나 정우와 ‘용순이'는 부모님이 누구인지 모르거나, 부부 싸움만 하는, 양분은커녕 오히려 해만 끼치는 사람들 이었다.


“진짜로 아저씨도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컸단 말이에요?”


“응. 아저씨도 여섯 살 때부터 혼자서 컸는데, 튀밥아저씨 따라다니면서 기계 돌리고 동네 사람들한테 튀밥자루 배달하고 그랬지.”


“진짜로? 거짓말 아니죠? 아저씨가 처음은 약간 그랬는데, 아빠와 싸운 것도 그렇고,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다행이다. 밉지 않고 점점 좋아진다니?”


“아저씨! 우리랑 여기서 계속 살아요?”


“글쎄다. 벌써 학교 다 왔다. 올 때는 혼자서 오는 거 알지?”


등굣길 ‘용순이'가 지프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교문을 들어가던 친구들이 부러운 듯 가까이로 몰려왔다 그리곤 정우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했다.


“우리 삼촌이야.”


정우는 순간 자신이 진짜 ‘용순이' 삼촌이 돼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운방사로 돌아가는 길, 읍내 장터에서 고추와 오이 모종을 샀다.


모종은 여섯 살 애기를 다루듯 조심해야만 했다. 이렇게 약하고 작은 모종이 목대가 튼실한 큰 작물로 자라서 열매가 열린다는 것이 신기했다. 여섯 살배기가 어른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모종이 쓰러지지 않게 박스에 담아 빈 공간은 신문지로 채웠다. 생명체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순간이 가장 어려웠다.


운방사 텃밭, 바람이 솔솔 부는 햇볕이 잘 드는 곳을 골랐다. 나무가 많은 산속 작물 농사는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물’도 ‘바람’도 ‘햇볕’도 감방 '범털' 과 '개털'처럼 장소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다. 자본주의 빈부격차 같은 것이었다.


정우는 징역 살던 시절 모범수였다. 평소엔 목공 반에서 나무 만지는 목공 일을 했다.그러다 단체로 사역(使役)을 나가 흙에서 잡석을 골라내는 일도 했다. 자갈과 흙을 분리, 자갈은 버리고 고운 흙은 자루에 담았다.


흙에서 잡석을 골라내는 일은 큰 돌을 골라낸 후, 작은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위에 삽으로 부었다. 그런 후 두 사람이 수평 지게 들고 앞뒤로 흔들면 자갈은 남고 흙은 아래로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고운 흙이 물결치는 파도 모양 그림을 그렸다.


허리가 아프고 싫증이 나서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켰다. 그러다가 파도모양 흙을 쥐면 포근한 느낌이 손바닥에서 몸으로 올라왔다. 흙은 그런 것이었다. 손에 닿는 느낌이 고운 입자 하얀 밀가루를 만지는 것처럼 기분을 좋아지게 했다. 장난치고 싶은 개구쟁이 마음이 되었다.


정우는 감방에서처럼 작은 돌멩이를 모두 골라냈다. 그리곤 가까운 산에서 썩은 나뭇잎을 삼태기에 담아 왔다. 밑거름은 뾰쪽한 침엽수 보다는 잎이 널찍한 참나무, 도토리나무 썩은 잎이 좋았다.


멀찍이서 이 모습을 보시던 사형스님이 가까이로 왔다.


“그래 ‘용순이'는 학교에 데려다 줬느냐?”


“예, 용순이 오늘 기분 짱이었어요. 지프에서 내리는 거 보고 친구들이 누구냐고 물으니까 ‘우리 삼촌’이라고 거짓말 하던데요?”


“당연히 삼촌이지. 앞으론 정우 네가 삼촌 하면 되겠구나?”


“그러게요. 그 순간은 제가 진짜로 삼촌 해도 좋겠단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그래. 인생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한참 때인 네가 자비 하신 부처님 뜻을 어찌 알겠느냐마는, 세상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단순하게 사는 것이 최고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억지로 하게 되면 나중엔 아쉬움이 남는다.”


정우는 모종을 심는 농사일에 빠져서 사형스님 얘기는 건성이었다.


“네에. 흙 만지며 자갈을 골라내니까 시골 사람처럼 기분이 좋아져요.”


“그래, 썩은 낙엽을 산에서 퍼오는 것이나 작은 돌멩이까지 골라내는 모양이 천상 농부처럼 제법이로구나.”


“그럼요. 감방에 있을 때 모범수라서 돌멩이 고르는 사역도 많이 해 봤고, 가석방 받아서 출소하겠다고 목공소에선 소문난 목수쟁이였어요.”


“목수 일도 해 봤단 말이냐?”


“예, 제가 목수 일을 얼마나 잘 하는데요. 바깥 목공소처럼 오만 공구가 없어서 만들고 싶은 걸 다 만들지는 못했지만, ‘화영교도소’에선 제가 1등 목수였어요.”


“1등 목수란 말이냐?”


“당연하죠. 그 뿐인 줄 아세요? 1년 한 차례씩 가족의 날 행사 때, 제가 마이크 잡고 노래하고 떠들면 사람들이 모두 쓰러졌다고요.”


“하하하. 재주라는 것이 노력도 중요하지만 타고 나야만 하는 것인데, 네놈은 끼가 많은가 보구나. 나무 만지는 일도 너의 운세와 비추어 괜찮을 것 같다.”


“저 보고 톱밥이나 먹는 목수가 되라고요?”


감방 시절, 정우는 일과 시간이면 목공소에서 나오는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썼다. 눈썹에도 콧구멍에도 늦가을 내리는 서릿발처럼 톱밥이 묻었다.


그러나 나무를 자르고 대패질로 그림을 완성하듯 가구를 만드는 순간은 그 어떤 것도 끼어 들 수 없는, 혼자만의 최고의 시간이었다.


“옹기나 도예가도 그렇고, 흙을 좋아해서 만지는 사람이 어디 농부만 있겠느냐?”


사형스님은 정우가, 이해가 부족하다는 듯 계속 해서 모종 얘기를 했다.


“자고로 생명을 가진 작물은 우리 인간하고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무더운 여름철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추운 겨울철은 찬바람을 가려 추위를 막아 주고.”


정우는 흙이나 모종 얘기는 별로 관심 없다는 듯 딴전을 피웠다.


“사형스님! 서울 갔을 때 회장님이 ‘같이 일하자’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어요?”


“이놈아, 그거야 네가 정하면 되는 일이지 내 생각이 뭐가 중요해. 내 의견은 소나무 곁가지만도 못한데.”


“무슨 일을 시킬지 모르지만 원채 부자라서 약간은 호기심이 당겨서 그래요.”


“호기심이 없다는 건 젊은이라고 할 수 없겠지. 그러나 국가에서 내린 벌까지 받은 마당에 직업은 네 스스로가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겠구나.”


“맞아요, 제 일은 제가 결정 해야지요. 괜한 말씀을 드렸네요.”


***


운방사를 찾아오게 된 인연은 보국스님과 시작했다. 그러나 정우는 어느덧 사형스님과 더 긴밀한 관계가 되었다. 이것저것 허락을 받아서 해야 되는 일들도 한 가지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추, 오이 모종을 심는 것도 절간 일이었다.


괭이나 삽으로 오랫동안 다져진 땅이 숨을 쉴 수 있도록 깊숙하게 팠다. 덩어리진 흙을 호미로 잘게 부수며 잡초를 골라냈다.


유익한 작물은 공을 들여 키워야만 했으나 아무 짝에 필요 없는 잡초는 어느 곳이라도 뿌리를 내렸다. 인간도 유능한 사람, 덜 유능한 사람이 있듯이 생명체는 같은 이치였다. 가장 밑에는 밑거름이 되라고 썩은 나뭇잎을 채웠다.


지난 해 떨어진 나뭇잎은 전년에 떨어진 나뭇잎을 누르고, 전년에 떨어진 나뭇잎은 전전년도에 떨어진 나뭇잎을 눌러 겹겹이 쌓인 나뭇잎은 시커멓게 죽었다. 보잘것 없는 썩은 모습으로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이 세상 생명체 가진 것들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생(生)과 사(死)를 번갈아 가면서 반복했다.


밑거름 위는 부드러운 흙으로 채웠다. 그래야만 애기처럼 연한 모종이 자갈돌 없는 고운 세상에서 자신 마음대로 뿌리를 사방으로 뻗을 수가 있었다.


정우가 애기 다루듯 모종 심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형스님이 말했다.


“제법이로구나. 정우 네놈은 좋은 원석처럼 여러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에너지가 많은 놈이야. 이제부터 어떻게 다듬느냐가 중요하겠지만.”


“흐흐, 제가 좋은 원석이라고요?”


“이놈아, 좋은 원석이 별거냐? 젊어서 좋은 에너지가 넘치면 원석이지.”



모종 심는 작업을 마친 정우는 오후 지프를 운전, 서울을 향해서 출발했다. 약간은 호기심이 가는 회장님과 일하게 된다면 서울에서 살아야 될 것이라고 훗날을 그려보기도 했다.


서울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만큼 크고 넓은 세상이었다. 그런 탓에 정우처럼 ‘전과자’라고 낙인 찍힌 사람들에겐 불리한 곳이기도 했다.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매 순간마다 자신을 밝혀야만 하는 번거로움이나 불이익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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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46 10 12쪽
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39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0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4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1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09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09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09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5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2 17 12쪽
»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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