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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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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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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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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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칠순잔치

DUMMY

일요일 아침나절,


칠순잔치를 한다는 이웃 장씨 어르신 집에 갔다. 야외 결혼식장처럼 넓은 마당에는 둥그런 채할을 치고 어르신 가족과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고희연(古稀宴)’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칠순잔치는 칠십 이 되는 해 생일날 하는 잔치였다.


수명이 짧았던 시절은 장수(長壽)를 축하한다는 의미였는데, 평균 수명이 늘어난 요즘은 장수보다는 부모님의 노고를 감사드리는 잔치이기도 했다.


정우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자리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장씨 어르신은 슬하에 아들, 딸을 두 자리 숫자만큼 두었다고 했다. 연년생으로 쉬지 않고 낳았어도 꼬박 10년 낳았으니 다산(多産)왕인 셈이었다.


기르다가 둘은 불의의 사고로 죽었지만 아직도 팔 남매! 모두가 결혼 며느리, 사위를 봤으니 열여섯! 손주, 손녀까지 합치면 대형 버스 한 차쯤 되는 대 가족이라고 했다. 허긴 옛날은 한 집 부엌에서 스무 명 대 가족이 궁둥이를 맞대고 살았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장씨 어르신한테 사람 찍어내는 기계라는 별명을 지어줬다고 했다. 부부 금실이 어찌나 좋은지? 장씨 부부는 초저녁부터 불이 꺼지고, 토끼나 돼지 같은 가축이 새끼를 낳듯 연년생 애들을 순풍 순풍 낳았다고 했다.


두 자식은 사고로 부모 가슴에 대못을 치고 천국을 갔다고 했다. 불쌍하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부모보다 천국을 먼저 가는 일은 씻을 수 없는 큰 불효라고 했다. 반면 모두가 시집, 장가 들고 나니까 절대로 많은 것 같지가 않아서 이럴 줄 알았다면 열다섯 쯤 뒀을 것이라고 후회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식솔이 번성한 집안 답게 아들, 딸, 손주, 손녀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소란스러움이나 들뜬 마음이 잔칫날 분위기였다. 자식들이 많은 집안 부모는 자식끼리라도 시샘을 부추기듯 흉 허물을 각각의 자식들에게 따로 털어 놓았다. 삼가해야 될, 어른 답지 못한 언사였다.


‘배려심이 부족하다’고 둘째 놈을 장남한테 흉 보고, ‘자신만 안다’ 며 막내 놈을 둘째한테 흉 봤다. 그런 탓에 자식들은 존재감이나 자신의 가오를 위하여 효도를 시샘 하듯 했다.


***


칠순잔치는 흑돼지를 잡고 삭힌 홍어에 술을 마시며 마당에서 뛰고 노는 음주가무였다. 돼지고기도, 삭힌 홍어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노인들이 추는 노래와 춤은 모두가 비슷비슷했다.


산골짜기가 울리도록 마당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하고 올림 머리 한복 차림 삼류 가수도 두 사람이나 불렀다. 돈으로 해야만 하는 것들은 하나도 부족함 없이 보였다.


그러나 청소년인 손주, 손녀, 늙지도 젊지도 않은 엄마,아빠, 칠순, 팔순 된 동네 어르신들이 처음 만나서 한 마음으로 흥겹게 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장르가 다르고 흔들어 대는 춤 선이 달랐다. 빠르기도 달랐다. 젊은 사람들은 디스코나 트로트를 선호했으나 정작 오늘 주인공인 할아버지와 나이든 동네 사람들은 고무줄처럼 늘어지는 타령을 좋아했다.


행사를 전문으로 다니는 한복 차림 가수는 자신이 즐겨서 부르는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흥겨워야 될 칠순잔치 분위기는 살아나지 않았다. 10대부터 80대까지 세대가 다른 탓인지 따로 국밥처럼 모두가 따로따로였다.


이럴 때 누군가는 망가져야만 여러 사람들에게 흥을 선사할 수가 있었다. 정우는 자신이 나가서 축하 노래도 부르고 어르신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과 얼굴을 익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형스님, 보국스님, 도연스님, 무슨 일이라도 나서기를 좋아하는 주방스님까지 절간이 지척인지라 운방사 스님들도 초대를 받아서 따로 상을 받았다. 스님은 육식을 안 한다는 점을 감안, 정성이 두 배쯤 들어간 커다란 교자상 이었다.


이런 자리 약방의 감초 같은 ‘용순이'와 '달마'도 빠질 리 없었다. 여기서도 식당 스님은 모르는 것 없이 나서며 아는 척을 했다. 모양만 스님이지 ‘파계승’ 같은 모습이었다.


멀리서 봐도 이마가 번쩍번쩍 빛이 나고, 숫자가 많은 운방사 스님들도 축하를 위해서는 뭔 가는 미션을 해야만 될 분위기였다. 그러나 칠순잔치에 목탁을 두드리며 늘어진 불경을 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잔칫집에서 밥값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만 할까? 정우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눈 도장을 확실하게 찍어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먹고 사는 ‘밥그릇’이 채워지면 다음으론 취미 생활이나 놀이 문화를 찾았다. 질 높은 삶을 추구 했다.


까마득한 인생! 누구든지 칠순이 됐다는 것은 지금껏 해온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대단할 것 같지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었다. 서글픈 일이었다.


칠순은 인생 끝자락을 생각하는 지점이었다. 깊이 생각하면 늙고 고장 난 육신(肉身)말고는 진정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칠순잔치인 만큼 화끈하게 분위기를 띄워야 여흥이 대장간 불꽃처럼 살아날텐데, 이도 저도 아니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시골 사람들은 유쾌함, 즐거움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가무(歌舞)에 서툴렀다. 평생 죽도록 일만 하면서 살아온 탓이었다.


노래와 춤은 유희(遊戲)를 즐기는 유전자가 살아있어야만 목청이 트이고 흥겨운 노랫가락에 손발이 따라서 반응했다.


달려갈 준비가 됐거나 달려가는 기차만이 기적 소리를 낼 수가 있었다. 몸속에 알콜이 들어가야만 기계에 기름칠 하듯 목소리가 트이고 관절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가락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러나 젊은 애들이 흔들어 대는 춤과 어른들이 온몸으로 추는 춤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다. 노래와 춤은 여러 사람이 함께 해야만 유쾌함이 배가 되었다.


***


“사형스님! 이 집은 자식들이 시루 콩나물처럼 많은데, 모두가 얌전을 빼느라 신나는 축하송 하나 부르는 사람이 없네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신나게 논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냐? 타고 나야만 할 수 있는 것이야. 가락을 잘 하는 것도, 유쾌함을 나누는 것도, 빼어난 재주라고.”


“제가, 나가서 좀 놀아보려고요.”


“어머? 정우처사님, 노래 잘 하시나 봐요?”


도연스님이 화들짝 놀라며 반겼다.


“사람만 많지 칠순잔칫집 분위기가 소란스런 닷새장 분위긴데, 저라도 나가서 밥값을 해야죠.”


“삼촌, 나랑 같이 나가서 노래해요.”


***


정우는 어렸을 적 엄마가 보고 싶고 생각날 때면 담장 밑에서 코를 훌쩍이며 울었다. 꼬질꼬질한 손으로 뺨에 흐르는 눈물을 수없이 닦아냈다.


한나절을 울어도 누구 하나 울지 말라고 달래주는 사람은 없었다. 울다가 혼자서 지쳤다. 오랫동안 훌쩍이고 나면 눈물도, 슬픔도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보고 싶은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외로움은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 될 몫이었다. 배고픔을 채우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대신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울고 나면 그리움을 얼마쯤 지울 수가 있었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이 어디론가 흘러갔다. 구름도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움과 외로움은 몸속에서 다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이번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도 모르는 노래를 하루 종일 불렀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리듬도 가사도 잘 모르면서 동네 누나, 형들이 하는 것을 보고 해가 서산에 기울 때까지 입을 들썩였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야 행복해지는 것처럼 입을 쉬지 않고 놀려 댔다.


그러면 보고 싶은 엄마 생각이 유쾌한 멜로디가 되었다. 이런 아픔 탓일까? 정우는 리듬을 타는 재주가 비범했다. 피겨 선수가 코너링을 잘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리듬에 멋들어지게 태우는 재주를 타고났다.


학교 다닐 때 특활 시간이면 ‘가수 왕’이라고 불려나가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특활 시간은 노래를 잘하는 정우 시간이었다. ‘와! 죽인다.’ 친구들은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쳐 주기도 했다.


이런 순간이면 외롭지 않고 뿌듯함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슬픔 대신 기쁨이었다. 친구들은 졸업하면 ‘가수’를 해도 되겠다고 응원과 펌프질을 해줬다.


엄마,아빠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렇지 ‘끼’가 출중한 부모님을 닮았는지도 몰랐다.


사방팔방을 떠도는 장돌뱅이나 방울을 미친 듯이 흔들어 대며 귀신을 쫓는 ‘무당 끼’를 받았는지도 몰랐다.


***


웃음은 홀쭉이나 뚱뚱이처럼 시각적인 것이 절반이었다.


“할머니, 숯 어디 있어요?”


“화로 피우는 숯 말이야?”


“네에, 함잡이가 얼굴에 바르는 숯검댕 말이에요.”


정우는 옷을 벗고 월남치마와 할머니 저고리를 빌려서 입었다. 사이즈가 작아서 몸통이 절반만 들어갔다. 털이 수북하게 난 팔과 다리가 모지리 닮은 각설이 모습이 되었다.


굵은 새끼로 허리를 몇 차례 동여매고 얼굴엔 숯검댕을, 머리는 밴드처럼 대나무와 솔 잎으로 장식했다. 사람들 마음을 무장 해제 시켜야만 마음의 허리띠를 풀었다. 긴장을 풀어야만 음주가무를 마음껏 즐길 수가 있었다.


허리가 대나무처럼 곧은 20대 청년, 정우모습이 실로 가관이었다. 이쯤은 돼야 마당에 모인 수십 명 사람들을 웃음 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골 마을, 정신 나간 젊은 사람이 잔칫집에 나타났다. 사람들 웃음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것일수록 좋았다.


모지리 각설이 모습으로 분장을 마친 정우가 몸 개그를 하면서 마당으로 나와 삼류 가수들이 노는 마이크 앞에 섰다. 존재 자체 만으로 폭소 할 일이었다. 젊다는 것도 한 몫 했다. 안 웃길 것 같은 사람이 웃겨야 두 배로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희한한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했다.


“거기, 거기, 기생아줌마! 가수 이름 모르니까 기생 아줌마라고 해도 돼지?”


반말에 가수를 기생이라니? 한꺼번에 동네 사람들 조명을 받았다.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마이크 소리를 잠깐 그쳐야만 했다. 숨을 참았다.


초청 가수에게 마이크를 빌려 배꼽 인사 한 뒤 천천히 ‘잠깐만~ 잠깐만~’ 주현미 노래 반주에 목소리를 태웠다. '잠깐만~ 잠깐만~' 목소리가 사람들 시선을 회오리바람처럼 한 곳으로 몰았다. 정우한테로 쏠렸다.


“저는 별 나라에서 지난밤 수만리로 이사 온 이정우입니다. 우리 엄니가 저를 낳을 때 보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남자 반쪽, 여자 반쪽, 저를 낳았어요.”


‘남자 반쪽’ ‘여자 반쪽’이라는 첫 멘트에 사람들은 웃음 보따리가 터졌다.


“아저씨! 미친 사람 아니에요?”


도시에 사는 중학생쯤 되는 말썽쟁이 손주로 보였다. 망가지는 정우 모습을 보고 미친 사람 아니냐고 당돌하게 물었다. 정우는 오늘 망가지기로 작심했다.


“칠순잔치에 오는 사람들은 반쯤은 미쳐야 하는겨.”


다시 웃음이 터지며 시선이 정우에게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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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41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2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6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3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8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90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60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5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9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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