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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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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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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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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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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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잡념(雜念)

DUMMY

이 세상 단 한 사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엄마'는 어떤 의미일까?


여섯 살 때부터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정우 편을 들어주고 엄마와도 같이 자신을 챙기고 지켜 주셨던 이모님이 감방에 투옥되었다.


대신 정우는 1억도 없으면서 팔뚝이 잘리지 않고 온전하게 지킬 수가 있었다.


비온 뒤, 땅이 더 단단해진 것처럼 깡패들한테 납치되어 공포의 순간을 넘긴 ‘용순이'는 더 한층 정우를 따르며 의지했다. 절간에서 키우는 강아지처럼 졸졸졸 따라다니며 세상 오만 것들에 관심을 보였다.


교실에서 ‘짝꿍’이 됐다는 눈썹이 진한 남자애를 얘기하고, 운 방사에선 왜 맛있는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지, 도연스님은 저렇게 예쁜데 왜 머리를 빡빡 깎고 스님이 됐는지 귓속말로 오만 세상사를 물어 올 때는 귀찮기까지 했다.


“스님이니까, 머리를 빡빡 깎지.”


“그건 나도 아는데, 왜? 왜, 스님은 머리를 빡빡 깎아야 하냐고.”


사춘기 ‘용순이' 궁금증이나 호기심은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처럼 하루 종일 끝이 없었다.


“혹시, 시골은 미용실이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닐까?”


“에이~ 삼촌, 순 엉터리야. 읍내 가면 있잖아. 어쩌면 돈이 없어서 그러는지 몰라. 나중에 물어 봐야지.”


그러나 솔직히 스님이 왜 감방 재소자처럼 머리를 빡빡 깎는지 정우도 몰랐다. 혹시나 ‘용순이' 생각처럼 청빈해서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


오누이처럼 ‘용순이'와 둘이서 얘기를 하다 보면 끝 판은 여지없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큰소리로 웃었다. 정우는 자신과 비슷한 '용순이' 가 좋았다.


“정우삼촌 싸움 짱이에요. 한꺼번에 세 명씩 때려서 눕히고. 지난번 기와집에서도 끝까지 싸웠다면 어쩌면 삼촌이 이겼을지 몰라.”


“오호, 우리 용순이한테 칭찬 들으니 기분 좋은데? 그러나 싸움은 이겨도 지는 것이고, 맞아도 자존심 상해서 싫고, 안 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야. 너도 중학교에 가면 싸움을 안하고 상대방 이기는 법 배우게 될 거고.”


“정우삼촌, 삼촌은 우리 선생님보다 멋져요. 나, 정우삼촌한테 시집갈래요.”


“뭐? 하하하. 5학년이 벌써 시집간다고? 친구들이 놀릴텐데?”


“아니이, 나중에 커서 어른 되면 말이야.”


“글쎄다. 삼촌이 그 때는 늙은 아저씨가 될텐데, 그래도 괜찮다고?”


“아무튼 정우삼촌은 멋지단 말이에요. 아줌마도 삼촌 불쌍하다고 했고.”


아줌마란 아마도 며칠 전 잠시 함께 있었던 이모님을 말하는 듯 했다. 아내이면서도 가정 폭력을 수도 없이 당했던 이모님을 생각하면 정우 역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불쌍한 사람 조합이었다.


“그래, 언제 우리 둘이서만 아무도 몰래 엄마아빠 얘기 실컷 하자. 누가 더 불쌍한지?”


“알겠어요. 삼촌!!!”


‘용순이' 한테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깡패 새끼들한테 일방적으로 당한 일이라 트라우마 같은 것이 생겨서 무섭다고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게 되면 어쩌나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나 불우했던 가정 환경 탓인지 ‘용순이' 는 어렸을 적 ‘구석이' 만큼이나 강한 애였다. 너무나 속이 상하거나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은 아무도 몰래 절간 뒤에 숨어서 소리를 삼키며 울었다.


여섯 살 ‘구석이'도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은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이럴 때면 이모님은 자신이 엄마라며 안아 주기도 했었다. 불우한 가정 환경은 때론 시련을 이겨내는 양분이 되기도 했다.


***


감방에 간 이모님이 걱정되었다. 여러 차례 경험했지만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고 경찰 교도관 지시에 따라 몸을 수색한다는 이유로 속옷까지 벗어야만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때는 자존감이 땅에 떨어져 죽고 싶을 만큼 참담했었다.


경찰 교도관은 제복 차림인데, 속옷 하나 남기지 않고 발가벗는 것은 자존감을 송두리째 빼앗는 느낌이었다. 이 순간 자신은 기어 다니는 벌레 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이런 수모를 겪고 있을 이모님이 걱정 되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만 할 뿐 빈털터리 전과자인 자신이 이모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루 종일 수백 번 생각을 해서일까? 지난밤엔 이모님 꿈을 꾸었다. 예쁜 이모님이 헤지고 더러운 거지 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검고 머리는 산발한 모습이었다. 딱 거지 꼴이었다.


꼬마 애들이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따라다니며 작년에 왔던 ‘각설이’라고 놀려 댔다. 이모님은 부당함을 견디면서도 말 한마디 없이 참아냈다. 나쁜 애들이 꾹꾹 찌르면 아프다고 몸을 천천히 다른 곳으로 피하기도 했다.


잠에서 깬 정우는 꿈이라는 사실에 머리가 아파왔다. 이런 꿈을 꾸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어쩌면 이모님이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머리가 아파왔다. 방문을 열고 밖을 나오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젠 저녁이나 새벽 바람은 서늘했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한다고 주문을 수 없이 걸었다. 꿈은 반대라고 했던 사람들 얘기를 떠올렸다.


***


오늘도 하루는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하루였다. 단지 유쾌하지 않은 꿈을 꾼 탓에 초점이 흐린 현미경처럼 머리가 무거웠다. 얼마 동안 공들인

탓에 헛간 제법 그럴듯하게 세워진 부처님 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침나절 운방사에 올라갔다. 어느 때라도, 무슨 말이라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주방스님이 있어서 허기진 배를 채울 수가 있었다. 누룽지도, 컵라면도 골라가며 먹을 수가 있었다.


까마귀 떼가 무리 지어 어디론가 날아가며 '꺄악꺄악' 희한한 소리를 냈다. 무더운 삼복더위도 이젠 끝자락이었다. 멀리서 간간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맘 쓰는 일이라도 있느냐?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구나.”


이것저것 살피며 경내를 돌던 사형스님이 말을 걸어왔다. 스님은 언제나 같은 옷, 같은 표정, 같은 말투였다.


“아니에요, 사형스님. 그냥 지난밤 꿈이 뒤숭숭 해서요.”


“용순이를 무사하게 데려 왔음 그만이지, 무슨 뒤숭숭한 꿈을 꿔. 할 일 없음 산에 가서 땔감이나 해오거라.”


사형스님에게 정우가 하는 고민 같은 것은 얘깃거리도 아니었다. 고민을 한다고 해결 되지도 않는 백해무익한 것을 왜 하느냐고 일방적이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사형스님 말씀이 이치에 맞는 듯 했다. 이 세상 안 되는 것을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절간에서 쓰는 지게를 지고 뒷산에 올라갔다.


고민이 많은 날은 죽어라 몸을 혹사 시키면 고민에서 탈피할 수가 있었다. 부처님 상을 만들만한 그럴듯한 막대기도 몇 개나 주웠다.


지난 장마철 세찬 비바람을 견뎌내지 못하고 잎도 가지도 말라 죽은 나무가 비스듬히 누워있었다. 생과 사는 세상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며칠씩 내리던 장마 비에 뿌리가 약한 나무가 옆으로 쓰러졌다. 비스듬하게 누워 주변에서 멀쩡하게 크는 다른 나무까지 피해를 주었다. 이런 것들은 잘라줘야만 했다.


생명체 있는 것들은 종류를 따지지 않고 죽어가는 모습이 초라했다. 허벅지만큼 굵고 오래된 나무는 죽어가는 시간 역시 몇 년씩 걸리기도 했다. 땅에서 물을 빨아 올려야만 하는 나무는 가장 꼭대기부터 천천히 죽어갔다.


빼곡하게 들어찬 나무도 가지치기나 솎아내기를 해줘야만 햇볕이나 통풍이 돼서 나무가 잘 자랐다. 세 평 감방 세 사람만 생활하는 것과 칠 팔 명이 생활하는 쾌적함의 차이 같은 것이었다.


***


경사지고 위험한 산에서 커다란 나무를 톱으로 잘라 운방사까지 옮기는 작업은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 공부하는 스님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부자 스님이나 도연스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운방사 겨울철 땔감이나 살림은, 다람쥐가 밤이나 도토리를 주워서 겨울철 식량을 준비하듯 스님들이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절간에서 사용하는 톱과 낫은 생전 숫돌에 갈지 않아 날이 넘어 두 배로 힘들었다. 나무는 죽어서 마른 나무보다 잎이 무성하게 자란 것이 물러서 톱질 하기 쉬웠다.


쓱쓱 싹싹-

쓱쓱 싹싹-


모래와 같은 톱밥이 나오며 보기 좋게 잘려 나갔다. 그러나 허벅지 굵기 나무를 절반 이상 자르고 난 다음이 문제였다. 잘려나간 나무는 무게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쓰러지며 육중한 무게가 톱날을 눌렀다. 살려고 하는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앞뒤로 밀고 당기며 톱날이 움직여야만 잘려 나가는데, 나무에 박혀 꼼짝을 안했다.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온 ‘용순이' 가 자신이 넘기겠다고 큰 소리 쳤지만 자신보다 훨씬 큰 나무를 아래로 쓰러뜨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산에서 나무를 자르는 것은 어른이라도 위험한 일이었다. 이럴 때는 땀을 뻘뻘 흘리며 빼낸 톱날을 그루터기 반대편에서 잘라 보기도 하지만 앞뒤로 몇 차례 움직이지 않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살아있는 나무를 자르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어렵게 성공한다 해도 가지와 잎이 무성한 통나무가 쓰러지며 무서운 소리를 냈다. 생명체가 죽어가는 소리였다.


인간은 밀도(密度)가 아무리 높다 해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골라서 인위적으로 솎아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오만가지 잡목이 경쟁하듯 자라는 산은 목재로 쓸만한 반듯한 나무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잡목을 골라서 가지치기나 솎아내기를 해주면 바람과 햇볕을 받고 정상적으로 잘 자랐다.


“어휴, 힘들다.”


어찌나 용을 쓰며 톱질을 했는지 팔이 아프고 숨이 가빠왔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용순이'도 이제는 지루하다는 표정이었다.


“삼촌, 톱질 못해요?”


“아니야. 톱질을 못하는 게 아니라 톱날이 나무에 박혔잖아?”


“그 말이 그 말이지. 헤헤헤.”


‘용순이' 가 재밌는지 크게 웃었다. 그리곤 웃다가 말고 저쪽으로 뛰어가는 산토끼를 봤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두 귀가 쫑긋한 것이 운방사에서 키우는 ‘벅구’를 닮았다고 뻥을 쳤다.


정우는 ‘용순이'가 새빨간 거짓말쟁이라고 놀려 댔다. ‘용순이'는 진짜로 회색 구름 닮은 산토끼를 봤다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하긴, 절간 뒷동산은 산토끼가 나오는 곳이기도 했다. 두 사람 중 누가 거짓말 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용순아, 우리 ‘벅구’ 이름 봐꿔줄까? 사람들이 '벅구' 라고 하니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미안하잖아?”


“그럼, 뭐라고 지어요?”


“예쁜 이름 생각해 봐야지. 아, 절간에서 크니까 ‘달마’라고 하면 어떨까?"


“달마?”


“그래, 달마! '벅구' 보다는 달마가 부르기도, 듣기도 좋잖아?”


“알겠어요. 삼촌! 이젠 '벅구' 한테 달마라고 해야겠어요. 달마야!”


'벅구'가 자신도 새로 지은 이름이 맘에 드는지 땅을 파고 개미를 잡다가 이쪽을 향해서 뛰어왔다. 달마는 정우와 ‘용순이'를 좋아했다.


거의 한나절 동안이나 나무를 잘랐으나 많이 자르지는 못했다. 아궁이나 난로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길이로 굵은 나무를 자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늘을 행해 있을 때는 톱날이 박혀서 힘들고, 어렵게 쓰러뜨린 후 짧게 토막 내는 일은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것이 힘들었다. 이 세상 누워서 떡을 먹듯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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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주지스님! 계세요? NEW 7시간 전 90 6 12쪽
38 38화 도연스님과 연주 암 가는 길 24.09.17 144 7 12쪽
37 37화 VIP 룸 24.09.16 180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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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막 내린 오야붕 +2 24.09.14 221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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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운명 24.09.12 269 11 12쪽
32 32화 약장수, 딴따라! 24.09.11 269 7 12쪽
31 31화 이정우 입니다! +2 24.09.10 303 11 12쪽
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47 10 12쪽
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41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2 12 12쪽
» 27화 잡념(雜念) 24.09.06 426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8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60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5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9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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