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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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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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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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DUMMY

“우리 동네도 저런 믿음직한 청년들이 살면서 든든하게 지켜줘야 하는데, 죽을 날 받아 놓은 늙은이들만 살아서 동네가 휑해요.”


“할머니, 집도 없는데 어디서 살면서 지켜줘요?”


정우는 별다른 생각 없이 할머니 얘기에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처럼 불자가 많이 오는 날은 객방을 비워주느라 잠자리가 마땅찮았다.


‘동가숙(宿)’, ‘서가식(食)’, 어둠이 내리는 저녁이 됐는데도 일정한 잠자리가 없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고 서글퍼지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원망할 대상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순간이면 어떻게 해야만 다른 사람들처럼 안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 지금껏 살아온 나날을 곱씹으며 후회하기도 했다.


“없긴 왜 없어? 살려고만 하면 여기저기 빈 집 천지인데. 뚝딱 손 봐서 살면 그만이지.”


“그래 정우야, 보살님 말대로 아랫마을에 집 한 칸 마련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겠구나.”


사형스님 역시 할머니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순간 정우는 마음이 크게 동(動)했다.


“할머니, 동네 쓸 만 한 집 있어요?”


“암만. 옛날엔 칠십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이십 호 이상 빈집이라 맘에 드는 것으로 골라 손 봐서 살면 된다고.”


정우는 운 방사처럼 아랫마을에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의탁할 수 있는 자그만 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 사람의 운명은 묘한 곳에서 묘하게 이어지고 풀려나갔다.


지난 봄에는 여섯 살 때, 탁발스님에게 받았던 ‘운방사’가 적힌 쪽지를 들고 스물여덟 전과자 된 몸으로 절간을 찾아 들었다. 그러다가 백중 날 다시 아랫마을 사는 할머니와 ‘우리 동네를 지켜 달라.’는 인연이 이어졌다.


***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복잡한 세상! 인간이 살아가는 길은 수백, 수만 갈래지만 어쩌면 오래전부터 하나님 부처님이 정해 놓은 길인지도 몰랐다. 정우는 백중잔치가 끝난 다음날부터 빈집을 보러 다녔다.


돌과 흙으로 담장을 쌓은 집! 이 집은 얼마나 오래 전 주인을 잃었는지 대문도 마당도 잡풀이 무성했다. 대문 한 쪽엔 매도 문의를 위한, 부동산 업자들이 두고 간 명함이 비를 맞아서 구겨지고 지저분했다.


뒤편 대나무 밭이 있는 이 집은 마루도, 헛간도,장독대도 대 종손 대가족이 살았던 집처럼 기둥이나 서까래가 대궐 같이 큰 집이었다. 아무리 대궐처럼 큰 집이라도 주인이 살지 않는 집은 초라하고 지저분했다.


무슨 사연인지 지금은 대가족은 모두 떠나고 박쥐와 거미 같은 날벌레만 남아서 주인 노릇을 했다. 수십년 전 농경사회 때는 이렇게 큰 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하루라도 바람 잘 날이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이런 집은 혼자서 살기에는 너무나 크고 화려했다.


다음 집 마당을 들어서자 중앙은 부엌이고 양쪽으로 방이었다. 주인이 소를 키웠는지 한쪽 외양간 비슷한 헛간도 보였다. 대문 우측에는 상당히 오래 된 오갈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오갈피나무는 새봄 식자재이며 한약제로 쓰이기도 했다.


한쪽 가지가 썩어 수 많은 불개미 떼가 줄지어 양식을 나르고 있었다. 허벅지 만큼 굵은 목대가 자라온 세월을 짐작케 했다. 마당 가운데 수도꼭지를 돌려보자 누런 녹물이 나왔다. 녹물이긴 했으나 지금까지 수돗물이 나온다는 것은 비운지가 오래되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마루도 없이 방과 토방만 있는 집, 미처 때지 못한 장작이 어지럽게 헛간에 쌓여있었다. 규모는 작았지만 지붕이 나지막한 것이 비교적 깨끗해서 손 볼 것이 별로 없는 집이었다.


조건이 더 좋은 집은 없을까? 이후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러 곳 빈집을 돌아 다녔다. 넓은 강가에서 맘에 드는 조약돌을 고르듯 주인이 살지 않는 빈집을 마음대로 다니며 구경할 수가 있었다. 할머니 얘기대로 크고 작은 빈집이 수 없이 많았다.


대문과 마당이 남향집, 동남향집도 있었다. 이런 집에서 산다면 어떤 사람들과 무슨 얘기를 나누며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여섯 살 튀밥기계 삼촌과 살았던 송이버섯 닮은 초가집이 생각나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바다를 종이배 타고 가야하는 것처럼 산다는 것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 동네를 든든하게 지켜달라는 할머니 얘기가 희망이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이글이글한 더위에 땀이 비 오듯 했다. 삼복더위! 제철을 만난 매미가 종일 시끄럽게 울었다. ‘매양매양’ 여러 마리가 어찌나 시끄럽게 우는지 듣기 싫은 소음이 되었다.


***


불쾌지수가 하늘을 찌르는 삼복, 오늘도 오야붕 졸개들이 찾아와 운방사 입구를 지키며 지나는 행인들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놈들은 정우가 이곳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절대로 얌전하게 물러날 놈들은 아니었다.


일주일이면 같은 시간 두 세 차례씩 찾아와서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정우를 데려가겠다는 속셈이었다.


양아치 깡패조직은 옳고 그른 것은 따지지 않고 오로지 ‘오야붕’ 한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는 조직이었다. 조직원 개인의 생각은 아무리 합당하고 절박해도 의미 없는 것이었다.


말로는 구성원을 한 식구라고 하며, 조직이 번성해야 딸린 식구들도 배부르게 잘살 수 있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말로만 읊어대는 공염불이었다.


며칠 전에는 학교 갔다 오는 ‘용순이'까지 겁주며 정우에 대한 것들을 꼬치꼬치 물었다고 했다. 어른답지 못한 추잡한 양아치 짓이었다.


정우를 각별하게 따랐던 인호가 어린애한테는 그러지 말라고 말리자, 옆에 있던 이마 에 흉터 난 아저씨가 인호아저씨 뺨까지 때리며 고함을 질렀다고 ‘용순이'가 말했다.


앓던 이처럼, 이 문제를 해결 해야만 했다. 요리조리 피한다고 해결 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오야붕 소굴을 찾아간다는 것은 지옥 같은 3년 감방생활을 엿 바꿔 먹는 일이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식구를 배신했다는 벌로 한쪽 팔이 잘려나갈지도 모르는 끔찍한 벌칙을 감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모님이 있으니 최소한 그 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오야붕 소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감방 가기 전 생활을 그대로 해야만 될 가능성도 있었다.


보국스님 말처럼 반듯한 직업도 아니면서 밥그릇 바꾸는 것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처럼 힘들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연장이나 폭력을 쓰는 암흑세계, 한번 발을 담근 후 혼자서 바로 선다는 것은 하늘 별 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껏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나 양아치 짓이 발목을 잡았다. 심지어 오야붕 조직에 있으면서 함께 저질렀던 불법까지도 가깝게 지내는 경찰조직에 은근슬쩍 제보했다.


의리라곤 발꿈치 때만큼도 없는 양아치 새끼들 이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것을 감안, 송충이는 솔 잎을 먹어야 한다는 옛 속담이 있는지도 몰랐다.


***


열 살에 입학한 ‘용순이'는 5학년이었지만 몸집은 중학생만큼 컸다. 정우와 삼촌, 조카사이로 친하게 지내는 요즘은 방과 무렵이면 자전거를 타고 데리러 갔다. 교문 가까이서 정우가 탄 자전거가 보이면 ‘용순이'는 알아채고 반갑게 뛰어 왔다.


“용순아, 삼촌이랑 동네로 빈집 구경 갈래?”


“삼촌, 이사 가게요?”


“아니야. 이사 가는 건 아니지만 삼촌은 스님도 아니면서 언제까지나 운방사에 있을 수는 없잖아.”


“알겠어요, 삼촌. 이 동네라면 괜찮겠어요.”


‘용순이'는 정우를 따라다니며 조잘조잘 아는 척을 했다. 큰 기와집이 기다란 마루가 있어서 좋겠다고 훈수를 두기도 했다.


'수만리'는 마을 가운데 기다란 농수로가 지나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백중 무렵 한철 장사를 잘 했는지 사형스님은 부처님 닮은 얼굴로 경내를 산책했다. 부드럽고 인자하신 모습이었다.


“정우야, 아랫마을 내려가 빈집은 찾아봤느냐?”


“예, 빈집 많아요. 큰집이랑 작은 집도 있고. 거미줄과 잡풀이 많아서 그렇지.”


“이 놈아,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니 당연히 거미나 잡풀은 많겠지. 만약 거미줄이나 잡풀이 없다면 어디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살 수 없다는 사형스님 말씀에 얼마 전 다녀온 ‘연주암’이 생각났다. 연주암은 경사진 암반에 얼기설기 지은 집으로 세차게 바람만 불어도 마른 낙엽처럼 날아갈 것만 같았었다.


한 주전자 물로 꼬박 하루를 살아간다는 주지스님이 생각났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루 삼시세끼를 먹는데 스님은 자연과 아침이슬을 먹는다고 했다.


정우는 며칠 전에 봐 두었던 오갈피나무가 있는 집에서 살기로 했다. 다행히 이 집은 운방사에서 말씀 나눴던 할머니 지인이 주인이라 말만 잘 하면 그냥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운방사에서 이곳까지 자전거를 타면 10분 거리였다. 다시 ‘용순이' 학교까지는 15분 거리였다. ‘용순’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이사 갈 집을 새 단장 하느라 날마다 이곳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비를 흠뻑 맞은 사람처럼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그러던 중 진짜로 소나기가 내리는 날은 땀과 빗물에 생쥐 꼴이 되었다. 여름철 잡풀은 문방구 앞 장난감 두더지처럼 단 한순간 쉬지 않고 올라왔다.


주인이 살지 않고 비워 두었던 빈집 담장 밑이나 장독대 텃밭은 잡풀이나 쓰레기가 무성했다. 사람이라면 깡통 찬 거지 꼴이었다.


다행히 감방생활 중 배운 목공 일이나 사역을 다니며 경험했던 건축일이 큰 도움이 되었다. 노숙자가 단정하게 머리를 자르고 대중탕에서 말끔히 목욕을 한 듯 일주일 만에 아담하고 깨끗한 집이 되었다.


아슬아슬 벼랑끝에 있는 '연주암'보다는 백배 쯤 안전하고 살기 좋은 집이었다.


***


마당 수도를 열어 둔 지 반나절 만에 깨끗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새로 장판지를 깔고 도배도 말끔하게 했다. 이웃 할머니가 오셔서 오래 비워둔 집은 아궁이에 한나절 불을 넣고 마당에 독초와 쑥불을 놔 연기가 온 집안을 구석구석 돌게 해야 한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철 한나절 불을 넣는 다는 것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서 이유를 묻자, 그래야만 빈집에서 지금껏 주인 행세를 하고 살았던 오만 것들이 독초가 타는 냄새와 연기를 맡고 삼십육계 도망을 한다고 했다. 집안을 소독하는 셈이었다.


먼지하나 없이 깨끗한 방, 팔베개를 하고 눕자 아늑함이 느껴졌다. 시골 마을 조그만 방이었지만 세상천지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내 공간이었다.


이곳이라면 이젠 눈치를 봐가며 허겁지겁 옷을 바꿔 입지 않아도 되겠다는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새 단장이 끝난 다음 다음날,


사형스님이 ‘용순이'를 앞장 세우고 내려오셨다. 첫 번째 맞는 외부 손님이었다.


“하루 종일 볕이 드는 남향이라 밝아서 좋구나. 뒤 쪽은 바람을 막아 주는 나지막한 산, 앞 쪽도 막힘없이 시원하게 보이고.....”


사형스님은 나지막이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소리꾼이 창을 하며 장구를 치듯 중간 중간 목탁을 쳤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오방네..."


염불내용이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입주 후 좋은 일을 축원하는 불교의식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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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39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0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4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1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09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09 11 11쪽
»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09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5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2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3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6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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