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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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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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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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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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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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운방사 백중

DUMMY

음력 칠월 십오일은 백중(百中)이었다. 백중은 ‘만혼일’ 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풍습에 따라서 ‘노총각’과 ‘머슴’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했다.


주방스님은 신자들이 몰려 올 것이 기다려진다며 벌써부터 신바람 났다. 기쁨이나 작은 못 마땅함에도 그때그때 얼굴로 말하는 솔직한 스님이셨다.


백중은 농가에서 ‘호미 씻기’라는 전통 놀이를 했다고 했다. 지역에 따라 그 해 가장 농사가 잘된 집 머슴을 뽑아서 얼굴에 검정 칠하고 삿갓을 씌워 우습게 꾸민 다음 황소에 태워서 다음 해 풍년을 기원하며 집집마다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러면 집 주인은 술과 고기로 답례를 한다며, 주방스님은 자신이 실제 경험한 것처럼 아는 척을 했다.


절간 칠월 백중은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다음으로 큰 명절이었다. 가을 운동회 날 수백, 수천 개 만국기가 파란 하늘 운동장 국기봉에 매달은 것처럼 운방사로 이어진 진입로에 주황색, 노란색 전등을 달았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는 자신 맘에 드는 한 군데 교회를 선택 나가는 반면, 부처님을 믿는 불교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찰 이곳저곳을 번갈아 다녀야만 큰 복을 누린다고 믿었다.


하나님이나 부처님 같은 신을 믿는다는 것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었다.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 열성 신도, 부정도 긍정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 아직껏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경험하지 않는 사후 세계를 믿느냐며 부정하는 사람!


그러나 기독교 신자가 아님에도 한 해를 마감하는 연말 크리스마스 때면, 사람들 마음이 들뜨고 바빠지는 것처럼 백중 무렵이면 평소보다 몇 곱절 많은 사람이나 신자들이 사찰을 찾아와 시주 돈을 올리며 만수무강을 빈다고 했다.


주방스님은 '메뚜기도 한 철이고, 백중은 1년 치 먹을 것 절반이 들어온다.' 며 발걸음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자신이 운 방사 주인처럼 들떠있었다.


정우 역시 운방사 일꾼처럼 주지스님이 틈틈이 불러 대는 약방 감초였다. 라일락 향기가 흩날리던 지난 봄 이곳에 왔다가 무더운 여름철을 꼬박 보냈으니 이젠 십 여 명 어느 스님과도 친근하게 낯을 익혔다.


***


스님들은 모래에서 싹 트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한가롭고 게을렀다. 그러나 정우가 몸담았던 깡패 집단처럼 비열하거나 난폭하지는 않았다. 숨 넘어가는 순간에도 부처님 말씀이나 고리타분한 순리만 찾았다. 열정(熱情)이 보통 이하인 사람들이었다. 옆 사람이 죽어가도 발걸음을 빠르게 하지 않았다.


“정우처사님, 초파일 ‘등’은 뒷방 창고에 있어요.”


주방스님이 말했다.


주방스님 역시 식사 시간이 끝나면 쉬는 시간 없이 절간 잡일을 했다.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이라 발정 난 수캐처럼 이곳저곳 쏘다니며 무엇이라도 아는 척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절간에 온지 몇 해 되다보니 지금은 때때로 주지스님 노릇을 대신한다고 했다. ‘성격이 팔자를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주방스님은 오래전 노처녀 때 지인 중매로 땅 끝 마을 어촌으로 시집 갔다고 했다.


그러나 산간벽지 시골에서만 지낸 탓에 자전거 짐칸만 타도 어지럼증에 멀미가 심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억센 남편을 따라 자그만 어선을 타고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조업하는 것은 고사하고 멀미가 어찌나 심했던지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그물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황급히 돌아오는 바람에 그물을 잃어버려 환갑이 지나서도 물질하는 시어머니는 ‘집안 말아 먹을 년!’ 이라고 마귀할멈이 됐다고 했다.


이후부터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호미질도 못하는데 어떻게 농사일을 하겠느냐’ 며 며느리를 미운 강아지 나무라듯 함부로 했다고 했다.


마주 앉아 식사도 못하게 하는 바람에 시중 들며 겨우 누룽지나 먹었다고 했다. 결국 오래되지 않아서 서방이 아닌 시어머니한테 소박을 맞고 친정집으로 쫓겨 왔다고 했다.


절간 사람들은 모두가 사연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뿔뿔이 떨어져 사는 ‘용순이' 엄마,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남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몰라서 그렇지 긴 세월 함께 하다 보면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인생은 느슨한 고무줄과도 같아서 어느 한쪽에서 지나치게 당기면 뚝 끊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


절간 잡다한 살림이 들어 있는 창고, 수백 개 전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동그라미 모양 차곡차곡 쌓인 전깃줄도 혼자서 들기엔 무거웠다. 그러나 정우는 절간에서 가장 힘센 일꾼이었다.


도연스님, 부자스님과 함께 수레에 자재를 싣고 다니며 진입로 양쪽에 전등을 달았다. 용순이 역시 정우가 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따라 다니며 사사건건 아는 척을 했다. 두 사람은 운 방사에서 최고로 사이좋은 삼촌과 조카 사이였다.


“두 분 스님은 지리산 ‘연주암’에 가 보셨어요?”


부모님이 재벌이라는 부자스님은 아직 안 가봤는지 대답을 못했다. 그러나 자그만 두상과 속눈썹이 예쁜 도연스님은 두 차례나 가 봤다고 했다.


“저도 어제 사형스님 따라서 연주암에 갔는데 어찌나 고생하며 여러 가지 것을 경험했는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겸손해졌어요.”


“맞아요, 정우처사님. 거긴 겨울철에 가면 추워서 거의 죽음이에요. 저는 두 번 모두 겨울철에 갔는데 춥다는 기억밖에 없어요.”


“먹을 것도 변변치 않은데, 칠순 된 주지스님이 혼자서 생활하는 것도 그렇고 하루 한 주전자 물로 불편 없이 생활한다는 것이 해외토픽감이잖아요.”


“하루 종일 한 주전자 물로 생활한다고요?”


신기하다는 듯 부자스님도 가까이로 오며 끼어들었다.


“예,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실감나지 않겠지만 수백 미터 아래 약수터에서 받아 온 한 주전자 물로 하루를 불편 없이 생활한다더라고요.”


“그럼, 도연스님은 100년 됐다는 ‘백사’ 얘기 들어 보셨어요? 저는 어제 실제로 봤는데.”


이 때 도연스님이 깜짝 놀라서 손가락으로 입을 막았다.


“정우처사님, 연주암 백사 얘기는 함부로 하면 절대로 안돼요. 주지스님이 연주암 다섯 번 갔다 온 스님한테만 얘기 해준다고 했단 말이에요. 근데, 정우처사님 진짜로 백사 봤어요?”


“진짜라니까? 하얀 비늘에 황금색 무늬가 얼마나 멋지든지 인간이라면 임금님이 곤룡포 입은 것처럼 단 한순간 무섭거나 징그러운 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정우처사님 대단하네요? 백사까지 만나고?”


“근데, 왜 백사 얘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부자스님 역시 전혀 모르는 일을 새롭게 알았다는 듯 얼굴까지 상기되어 관심을 보였다.


“저도 백사가 겨울 잠 자는 추울 때만 두 차례 갔다 와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소문이 나 여러 사람들이 알게 되면 혹시 잡으려고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닐까 생각해요.”


“그럴지도 모르죠. 백사라면 100년 된 산삼처럼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고 하잖아요.”


정우는 도연스님, 부자스님과 전등을 달다 말고 갑론을박 했으나 백사는 자신이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정우처사님은 부자스님보다 ‘운방사’ 일을 더 많이 아는 것 같아요.”


도연스님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스님도 아니면서 절간에 있다 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되네요. 이렇게 백중 전에는 진입로 양쪽 오색 등 밝힌다는 것도 알게 되고.”


백중 이 삼일 전이라선지 운 방사를 찾는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씩 많아지기 시작했다. 대웅전 마당 보살님, 처사님 일행이 타고 온 승용차가 그득 했다.


***


대학에 진학할 고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어느 신자는 식자재를 잔뜩 사왔다. 먹을 것이 부족한 절간은 삼시세끼 먹는 것을 최고로 생각했다. 자식 앞길이 고속도로처럼 트이고 잘되는 일이라면 아까울 것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얼마 전 보국스님을 따라서 탁발 나갔을 때 보채고 우는 손주를 들쳐 업고 땅이 내려앉도록 한숨을 쉬었던 할머니도 보였다. 딸로 보이는 여성 불자와 떼쓰며 울어대던 손주 녀석을 데리고 보국스님을 찾아왔다.


부처님을 섬기고 믿는 마음이나 행동은 개인마다 천차만별(千差萬別)이었다. 바라고 원하는 일도 수백, 수천 가지였다. 중생(衆生)의 이런 고민을 모두 들어 줘야만 하는 부처님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신자는 부부가 나란히 와서 대웅전에 들어가 겨우 ‘삼배’만 하고 나왔다. 그리곤 민원을 호소하듯 주지스님을 찾았다. 미주알고주알 기존에 살던 집을 팔고 새 집을 장만해야만 하는데 어느 쪽으로 이사해야 좋겠느냐고 매달렸다.


하나님이나 부처님을 잘 먹고 잘사는 도구로 이용했다. 다른 사람 손해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 이득 만을 이루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어떤 나이 지긋한 보살님은 이마에 땀이 배도록 부처님께 ‘백팔 배’를 올렸다. 그러다가 혼신의 에너지를 소진한 탓일까? 스르르 제 풀에 고꾸라지기도 했다. 간혹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럴 때면 사형스님은 편하게 누워서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대웅전에서는 큰절을 하거나 누워만 있어도 부처님을 향한 마음은 같다고 불전(佛典)을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어느 신자는 자신만 알 수 있는 작은 소리로 바라는 바를 중얼 중얼 독백 했다.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 고스란히 정성으로 묻어 났다.


뚱뚱한 아주머니는 ‘삼배’도 ‘백팔 배’도 아니었다. 정우가 꼬박 삼일 동안 만 오천배가 넘는 큰절을 했던 것처럼 몇 시간째 사생결단 하듯 큰절을 올리고 있었다.


뚱뚱한 몸이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 냈다. 어떤 말 못할 사연인지 알 수 없었으나 부처님께 고해야 될 꽤나 심각한 사연이 있는 듯 느껴졌다.


가장 마지막엔 몸도 마음도 단정한 도연스님이 대웅전 한쪽 마루에 자그만 책상을 놓고 앉아서 보살이나 처사님이 말하는 가족 이름과 사주를 한지에 또박또박 적었다.


그리고는 대웅전 천정 기다란 줄에 수직으로 달았다. 운동회 날 하늘을 수놓은 만국기처럼 장관이었다.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남보다 더 건강하고 잘살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고하는 마지막 의식이었다.


***


절간은 1년 중 부처님오신 날과 백중이 가장 바쁜 대목이었다.


정월 대보름이나, 매월 보름, 새 달이 시작되는 초하룻날도 평소보다 많은 신자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애기 설'이라는 백중과 부처님 오신 날과는 비교 할 수 없었다. 눈에 익은 아랫마을 사람들도 보였다. 택시나 승용차를 타지 않고 삼삼오오 걸어오는 것을 보면 동네 사람임을 알 수가 있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어서 오세요.”


“저기 저 총각은 지난번 우리 동네서 불한당 같은 나쁜 놈들을 내쫓아 준 젊은인데, 절 사람인가 봐요?”


정우를 보고 할머니가 아는 척을 했다.


“나쁜 사람들을 내 쫓아줘요?”


대웅전 경내서 신자를 배웅하던 사형스님이 할머니 말에 반문했다.


“암만이요. 타지 나쁜 놈들이 와서 병아리 데리고 다니는 어미 닭을 돌로 쳐 죽이고 행패를 부렸는데, 저 총각이 쫓아냈어요. 닭 값도 제대로 쳐서 받아 주고.”


“정우야, 그런 일이 있었느냐?”


“반은 맞고 반은 틀린데, 그런 비슷한 일이 있기는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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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주지스님! 계세요? NEW 7시간 전 90 6 12쪽
38 38화 도연스님과 연주 암 가는 길 24.09.17 144 7 12쪽
37 37화 VIP 룸 24.09.16 179 9 12쪽
36 36화 변호인 24.09.15 208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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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운명 24.09.12 269 11 12쪽
32 32화 약장수, 딴따라! 24.09.11 268 7 12쪽
31 31화 이정우 입니다! +2 24.09.10 302 11 12쪽
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47 10 12쪽
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41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2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5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8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9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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