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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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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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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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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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DUMMY

높은 빌딩이 많은 서울은 사방이 훤하게 트인 시골과 달리 답답했다. 그럼에도 서로가 지켜야만 되는 거미줄 같은 촘촘한 것들은 얼기설기 많았다.


함께 일하자는 회장님 제안은 거절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기왕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자신을 믿고 빌려준 지프 역시 한시바삐 돌려 드리는 것이 도리였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벗어나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밟자, 지프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야생마처럼 달려 나갔다. 기분이 하늘을 나는 듯 했다. 희한하게도 어딘가로 달려가는 스피드는 신나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참고 죽이고 살았던 기분이 살아난 듯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저녁이 다 돼서야 북한산 자락, 회장님 집에 도착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서 새 날을 맞고 하루를 마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곳에 북한산처럼 뛰어난 경관(景觀)이 있다는 것은 축복 받은 사람들이었다. 자연의 가치를 몇 곱절 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프가 집 앞에 정차하자 강 과장이 급하게 나왔다. 그리곤 회장님을 모시는 아랫사람답게 경찰이 범법자 차량을 살피듯 꼼꼼하게 살폈다. 자동차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하룻사이 자동차 상태가 이상이 있을까 봐서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살폈다. 정우도 뒤쫓아 다니며 상황을 설명했다.


“시골이라서 바퀴에 흙 묻은 것 말고는 달라진 건 없어요.”


지나침에 약간은 짜증이 났다. 강 과장은 미안하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제는 하루가 꼬박 지나도록 말 한마디 없이 로보트처럼 굳은 얼굴이었는데 이렇게 따뜻한 미소가 있는 사람이었다니 의외였다.


가장(家長)은 직장에서 까다로운 상사를 모시느라 두 얼굴로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 역은 싫은 것도 참아내야 하는 그런 자리였다.


“정우씨라고 했지요?”


차에서 회장님과 나눈 얘기를 용케도 기억하고 있었다.


“네, 맞아요. 이정우예요.”


“아직 나이가 젊으신 것 같은데 대단한 것 같아요? 배짱도 두둑한 것 같고.”


“예?”


정우는 단박에 강 과장이 건넨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희 회장님, 아무한테나 자동차 빌려 주지 않거든요. 여기 근무한지 10년 지났지만 처음이에요. 정우씨가 먼저 주차장에 넥타이처럼 차가 많다고 빌려 달라고 했다던데.”


“네, 맞아요. 그러긴 했어요.”


지난번엔 강 과장이란 분과 단 한마디 나누지 못했었다. 그런데 몇 마디 나누다 보니 갑자기 친근감이 들었다.


“어제 서울 출발하기 전, 다음날 ‘용순이' 학교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 했거든요.”


강 과장은 자신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은 무슨 일 하는 분이세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죠. 무슨 일을 하는지는 회장님한테 직접 들으세요.”


궁금증 해소를 위한 물음에 역시 동문서답이었다.


딱히 뭐라고 꼬집을 순 없었지만, 이 집은 비밀스런 것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오야붕같이 부부이면서도 딸처럼 나이 차 나는 사모님도 그렇고, 주변 경관은 좋은 것에 비하여 따뜻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회장님 집은 시내버스가 다니는 큰길에서도 경사진 평창동 길을 한참이나 올라가야만 했다. 옆집 앞집도 회사 건물을 보는 듯 마당이 큰 저택이었다.


서민은 서민끼리 돈 많은 부자는 부자끼리 모여서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서민이 산다면 편리함보다는 불편이 클 것 같기도 했다.


“강과장님, 정원이 시골 텃밭처럼 넓어요. 한적한 곳에 고추 모종 몇 개 심어도 되지요?”


“고추모종이요?”


“운방사에서 심다가 남겨온 것인데, 잘 클지 모르겠네요.”


운방사에서 서너 포기 모종을 남겨와 정원 한쪽에 심어주었다. 이곳을 다녀간 기념이라고 생각했다. 강과장은 별 희한한 사람도 다 있다는 듯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


아직은 이른 저녁시간임에도 회장님 내외는 집에 있었다.


“안녕하세요? 회장님께서 주신 것 주지스님한테 잘 전해드렸습니다. 덕분에 조카도 새로 생기고, 지프차 감사했습니다.”


정우는 학교 가는 길 지프를 태워주자, 신이나 친구들에게 '우리 삼촌' 이라고 자랑했던 ‘용순이'를 떠올렸다.


“그래 함께 일하자는 제안은 생각해 봤는가? 다음에 대답하겠다고 했으니 답은 들어 봐야지.”


정우는 한동안 침묵했다.


“죄송하지만 회장님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거절?”


“예. 제가 얼마 전에 출소한 ‘전과자’거든요.”


“전과자? 이 사람 배짱도 좋고, 감추는 것 없이 솔직해서 좋구만. 허나 전과자라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갈 길이 없다거나 공수표라는 주지스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야 좀 이해가 되는군.”


“말씀 드리자면 복잡하지만 꽤나 큰 아픔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운방사에서 고추 모종 심고 오는 길인데, 앞으론 시골에서 착한 마음으로 살아 보려고요.”


“허허, 나 싫다고 하는 사람 나도 관심 없네만. 자넨 첫 만남부터 묘하게도 사람을 당기는 재주가 있단 말이야.”


“인연이 된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요. 제가 회장님 댁 정원에 고추 모종 서너 개 심어 놨는데, 여기서도 농사가 잘 되면 서울 사는 거 용기 내 보겠습니다.”


“우리 집 정원에 고추 모종을 심었단 말인가?”


“예, 강과장한테 허락 받아서 마당 한켠에 심었습니다."


마주 보고 앉아서 찻잔을 기울이던 사모님도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기회를 주신 거 감사하게 생각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정우는 자신 맘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느덧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땅거미가 내리는 시간이었다.


“그래, 오늘은 어떻게 내려갈텐가?”


“오늘은 아무 상관없습니다. 가다가 못 가면 이슬만 피할 수 있는 터미널에서 새우잠 자고 가도 되고.”


“터미널에서 자고 가? 그러지 말고, 내가 강 과장한테 얘기할 테니까 태워다 달라고 하게나.”


“아닙니다. 내일은 약속이 없으니까, 회장님이나 과장님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저처럼 감방 생활 오래한 사람들은 철창 밖 세상 자체 만으로도 천국이거든요.”


약속이 없는 정우는 차를 빌려 달라고 했던 어제와는 딴판 이었다. 회장님 내외와 차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 회장님은 어제처럼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건 주지스님께 전해 주지 않아도 되네. 자네 말대로 얼마 전까지 징역을 살았다면 주머니 사정도 넉넉지 않을텐데.”


용돈을 받게 되면 예의로라도 사양하련만 정우는 사양치 않고 넙죽 받았다.


“예, 맞습니다. 용돈이 부족하던 참인데 재벌 회장님께서 주신 것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이 마음도 오래 간직하고요.”


정우는 회장님이 강 과장을 시켜서 태워다 주겠다고 했지만 이번엔 정중히 사양했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 회장님이 처음과는 달리 하루 사이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구례 섬진강 주변 운 방사!


그곳을 가자면 하루 두 차례 있는 시외버스를 타야만 했다. 손 씻고 난 물을 버리듯 버려야만 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이 많았다. 행선지를 좁혀가며 몇 차례씩 바꿔 타야만 했다.


오늘 밤, 꼭 내려가야만 한다면 택시를 대절 하면 간단했다. 그러나 마땅하게 하는 일도 없이 세월을 낚는 처지에서 몇 십 만원 택시 대절은 미친 짓이었다. 이럴 때는 마음을 느긋하게 갖는 것이 최선이었다.


세 평 3년 감방 생활!

어찌나 시간과 세월이 더디게 갔던지 칫솔 모가 닳기를 기다렸다. 하루면 30분씩 하는 운동 시간, 운동화 뒤꿈치가 닳기를 학수고대했다. 칫솔 모와 운동화가 헤지면 지옥 같던 3년 세월이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방에서 경험한 것들은 지옥에 다녀온 것처럼 너무나 끔찍해서 하루라도 빨리 잊고 싶었다. 반면, 끔찍하고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들도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편안하게 차례를 기다리는 느긋한 마음을 배웠다.


서두르지 않은 느긋한 마음은 노숙자, 거지 마음이 최고였다. 지킬 것이나 욕심이 없다는 것은 설사 전쟁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홀가분했다.


주머니 속 회장님이 주신 봉투가 생각났다. 단 한순간 기대하지 않았던 뜬금없는 횡재였다. 슬며시 꺼내서 보자 백만 원 수표였다. 액수에 깜짝 놀랐다. 택시 대절을 열 번도 할 만한 돈이었다. 큰 집에 사는 회장님 답게 통 크게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 지프를 타고 가라고 했을 때도 재벌 회장님이라서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대가 없이 생긴 돈이라고 함부로 쓸 수 없었다. 감방에선 영치금을 최대한 아껴서 쓰는 법을 배웠다.


예상대로 구례 가는 시외버스는 없었다. 일개미처럼 움직이던 버스가 족족 들어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정우처럼 들어오는 사람은 없고 나가는 사람들만 있었다.


대합실 수백 평 널따란 공간, 수십 개 의자만 바둑 돌 같았다. 기다란 의자도 있었다. 여유 있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다. 최소한 오늘 밤은 대합실 주인이 자신이었다.


운방사에 빨리 돌아 가야만 될 이유나 아무런 이익도 없는 상황,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이라 어디라도 등을 기댄 채 잘 수가 있었다. 비좁은 감방보다는 몇 곱절 맘에 들었다. 빨리 가야 한다는 조급증 때문에 자존감을 버린 채 다른 사람에게 불필요한 부탁을 할 필요는 없었다.


***


새우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이 돼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몇 번씩 버스를 바꿔 타느라 점심 무렵 운방사에 도착했다. 다른 때와 달리 ‘용순이' 가 강아지와 뛰어 나오며 격하게 반응했다.


“삼촌! 왜 이제 왔어? 어젯밤엔 잠 안자고 늦게까지 기다렸단 말이야.”


자신을 기다렸다니 기분 좋은 일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진짜로 기다린 듯 했다. 어제는 ‘용순이'를 지프로 학교에 태워다 주고 ‘삼촌’이란 호칭도 덤으로 얻었다.


운 방사에서 함께 지내던 중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었다.


“친구들이 정우삼촌 우리 선생님처럼 멋있다고 차 태워 달라고 했단 말이야.”


그러나 지프는 어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앞으로는 회장님 지프를 탈 일은 없을 것이라 ‘용순이' 한테는 미안했다.


“그래, 마음은 정했느냐?”


사형스님이 물어왔다.


“예, 함께 일하자는 회장님 제안 거절했어요. 근사한 차도 많고 재벌이라서 무슨 일을 할까 호기심이 들긴 했지만, 이젠 누가 시키는 일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착하게 살아 보려고요.”


“회장님이 싫은 일을 시킨다고 하더냐?”


“아니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 서울처럼 큰 도시 생활이란 것이 전과자들에겐 녹녹치 않게 생각 돼서요.”


“그럼 이젠 절간에 있기로 작정했느냐?”


“딱히 언제까지 머물러야지 생각은 안 해봤지만, 이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서요. 공짜 밥도 맘대로 얻어먹을 수 있고.”


“이런 고연놈! 저 아래 너 마지기 밭농사도 해야 되고, 이제 겨울 되면 동네길 눈도 치워야 하고, 난로나 아궁이 장작도 해야 하고.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그 일을 저 혼자서 다 해야 한다고요?”


“그럼, 이놈아. 절간에 살려면 그 정도 밥값은 해야지. 아니면 목탁 두드리며 보국스님 따라서 탁발을 나가든지.”


“저도 밥값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공짜 밥 걱정은 마세요.”


“허허, 고연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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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주지스님! 계세요? NEW 7시간 전 89 6 12쪽
38 38화 도연스님과 연주 암 가는 길 24.09.17 14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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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33화 운명 24.09.12 268 11 12쪽
32 32화 약장수, 딴따라! 24.09.11 268 7 12쪽
31 31화 이정우 입니다! +2 24.09.10 301 11 12쪽
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46 10 12쪽
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40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0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5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09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09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5 14 11쪽
»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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