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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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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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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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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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이모님!!!

DUMMY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었다. 본능적으로 엄마 젖을 빠는 아기 때부터 보국스님은 운방사가 세상 전부라고 했다.


“그럼, 상관도 없는 ‘연주암’ 주지스님을 왜 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


“글쎄요. 주지스님도 자세한 건 얘기 안 하고 그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지만, 철이 들고 부터는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거라 막연하게 짐작만 하지요.”


“거참, 이상한 일이네요.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부모님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될텐데.”


“이치로만 따진다면 백 번 합당한 말이지만, 집안 손이 귀해서 부처님한테 백일 기도 후 얻은 귀한 생명이 있는가 하면, 누구도 몰래 감춰야 될 출생부터 버림받은 탄생도 얼마든지 있지요. 아무 짝에 쓸모없는 길거리 잡초처럼.”


“그럼, 보국스님과 저는 길거리 잡초 같은 존재란 말인가요?”


“정우처사야 내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축복 받지 못하는 부처님 종복이나 하라는 팔자를 익히 잘 알고 있답니다. 그래서 과거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고.”


“연주암 주지스님은 말씀을 안 해주셔서 그렇지, 어쩌면 자세한 내막을 잘 알고 계시겠네요.”


“아마도 그러시겠지요. 어디 그 뿐입니까? 본인에게 말 못하는 아픔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아야 하는 번뇌도 큰 고통이겠지요.”


“미루어 짐작이 돼요.”


“목도 축일 겸 음료나 마시면 될 일을 괜한 얘기를 길게 했나 봅니다. 귀 청소나 하세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앞서 가는 보국스님의 발걸음이 어느 때 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외로움을 넘어 자신보다 더 적막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절간에서 동자승을 하거나 ‘용순이'처럼 학교를 다니는 애들은 이런저런 말 못할 사연이 많았다. 생부(生父)나 생모(生母)가 자식을 책임질 능력조차 안 되는, 부처님 손길이 거둬야만 되는 안타까운 경우였다.


자신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스님이었다는 보국스님 말씀이 무겁게 뇌리에 박혔다. 자신은 아무리 경전을 공부한다고 해도 보국스님과 비교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순간 자신 만큼이나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깊은 밤,


잠을 청하려고 뒤척이는데 문틈 사이로 스르륵, 스르륵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시골에서만 들을 수 있는 한적한 여유였다.


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살아있다는 소리였다. 지나가버린 일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어느덧 아침저녁으로는 찬 서리가 내려 여름 내내 푸르렀던 잎은 하루가 다르게 자주 빛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지나간 날을 곰곰 생각해 보니 자신 인생도 파란만장했다. 그럼에도 가장 의지가 됐던 사람은 여섯 살 때부터 엄마라고 믿고 한집에서 살았던 이모님이었다.


이모님은 입학할 나이 학교에 보내 주셨고, 운동화와 교복을 사 주셨고, 학비와 용돈을 꼬박꼬박 주셨다. 배 아파 낳지는 않았지만 틀림없는 엄마였다.


여섯 살 적, 길거리서 만난 이모님은 얼굴이 하얗고 손가락이 길고 예뻤었다. 튀밥기계를 돌리던 ‘구석이' 에게 꼬마가 제법이라고 칭찬을 해주셨다.


애가 없었던 이모님은 ‘구석’이를 친자식처럼 대했다. 오야붕한테 두들겨 맞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어디론가 도망 할 때도 구석이 손을 꽉 붙잡고 도망쳤었다.


그런 탓에 처음 만난 사람들은 엄마와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요즘은 이모님이 정우처럼 감방생활을 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죄 목으로 교도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내일은 이모님 면회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용순이'가 납치된 일로 사고가 일어났었다. 정우를 온전하게 지키려다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오야붕을 흉기로 찌르고 감방에 가는 신세가 되었다. 면회를 할 때면 창 살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 봐야만 하는 이모님은 한사코 오지 말라고 사양했었다.


그러나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마음이 있었다. 속마음은 신이 아닌 이상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몰랐다. 엄마와 같은 이모님은 겉으로는 자신의 죄는 자신이 달게 받겠다고 고집했었다.


그러나 감방 안에 있으면 두 가지 마음이 들었다. 어느 순간은 죗값을 달게 받아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야만 출소 후라도 떳떳할 것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서너 평 감방에서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인생이 이런 곳에서 끝날 것 같다는 절망감이었다.


탈옥이라도 해서 이곳을 탈출하고 싶었다. 설사 그곳이 지옥이라도 일단은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탈옥은 불가능하고 죄만 키우는 일이었다. 이럴 때는 가까운 사람의 면회가 무척 기다려졌다.


이모님은 정우가 감방생활을 할 때 월요일과 금요일, 주 2회씩 면회를 왔었다. 영치금과 사식을 넣고 관심 없는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었다.


그런 덕분에 이모님이 면회를 다녀가는 날은 하루가 반나절인 듯 빨리 지나갔다. 면회를 마치고 감방으로 돌아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볍고 창살 너머 파란 하늘이 보이기도 했었다.


자신은 오야붕과 함께 사는 부부이면서도 '이젠 착하게 살아라.'고 잔소리를 했었다.


***


이른 아침이라 썰렁한 접견실, 지인이나 가족을 접견 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모두가 감방에서 생활하는 죄인 만큼이나 수척한 모습이었다.


아기를 등에 업은 산모도 있었다. 09:00까지 빠른 접수는 접견 시간 5분을 ‘추가로 제공한다’는 문구가 기둥에 붙었다. 정상적인 면회 시간은 8분인데, 이른 아침 시간대 접수는 5분을 추가로 제공하겠다는 의미였다.


하루면 누구나 몇 차례씩 정류장서 버스를 기다리며 버리는 토막 시간 5분! 별것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5분은 바깥세상의 50분보다 귀하고 소중했다.


담장 하나 사이로 교도소 안과 밖이었다. 담장 위, 총으로 무장한 근무자가 보초를 서는 네모난 망루가 보였다. 맨손으로 잡기만 해도 피가 날 것 같은 날카로운 터널 철조망도 보였다. 기다란 높은 담장이 크고 무섭게 느껴졌다.


도대체 죄(罪)가 어떤 것이기에 인간은 법이란 명목으로 자신들과 똑같은 상대방을 수갑 채우고 포승줄로 굴비 엮듯 엮어서 단죄(斷罪)한다는 것인지? 이것은 과연 공명정대한 것인지?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기다란 쪽지에 '8025호 송유나' 라는 이모님 이름을 적어 접수 창구에 주었다. 이곳은 수감 번호로 통하는 곳이라 이름이 따로 필요 없는 곳이었다.


“8025, 살인미수요?”


신청서를 받는 교도관이 확인하겠다는 듯 이모님 죄 목을 되물었다. 고름 찬 상처가 아픈 것처럼 듣기 싫고 부담스런 소리였다.


“정당방위지 살인 미수 아닌데요. 아들 같은 조카를 지키려고 했던 일이고.”


이 순간 교도관 한 사람한테라도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살인미수’ 라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욱하고 화가 났다.


접견 신청을 마치고 기다란 통로를 따라 들어갔다. 이곳은 사방이 철창으로 된 접견 감방인 셈이었다. 먹먹한 마음으로 앞 사람 면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아직은 물 한 모금 넘기지 않은 빈 속인데도 체한 듯 가슴이 답답했다. 긴 부저가 울리며 앞 사람 면회가 끝났다. 8025호 6번 방이라는 마이크 소리에 6번 방으로 들어갔다.


6개월 전, 자신도 이런 곳에서 똑같은 경험을 했음에도 둔탁하게 들리는 육중한 철창 때문인지 기분이 처참하고 참담했다. 이곳은 꿈속에서라도 와서는 안 되는 장소였다.


마음과 신체를 밧줄로 옥죄는 지옥 같은 곳이었다. 한 평쯤 되는 공간, 가로 세로 이어진 쇠창살 너머도 비슷한 크기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얼만큼 기다렸을까? 짧은 시간임에도 기찻길처럼 길게 느껴졌다.


***


화장끼 없는 창백한 이모님이 들어왔다. 아무렇게나 구겨진 푸른색 수의를 입은 이모님을 마주하는 것 만으로도 눈가 이슬이 고였다.


“이모!!!!!”


오래 전, 이모님은 눈썹은 검고 손가락은 길고 예뻤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겨우 8분 면회를 허용하면서도 면회 수칙 실천을 이유로 한쪽 책상 볼펜을 손가락에 돌리는 교도관이 접견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귀에 거슬리는 얘기를 하면 초등학생 일기 쓰듯 뭔가를 메모했다.


“바쁠 텐데, 월요일부터 뭐 하러 왔어?”


이모님 얼굴은 초췌했다.


“이모, 머리 짧게 깎았네?”


서로가 서로의 얘기를 못 들은 것처럼 동문서답이었다.


“이모, 지난주에는 보국스님 따라서 민가로 탁발을 다녔고, 수만리 장씨 어르신 칠순 잔칫집에 가서 한바탕 놀아줬지.”


“그래, 우리 정우가 노래 하나는 끝내 주지. 그래서 그런가, 잘생긴 얼굴이 편안해 보이는구나.”


“이모! 걱정하지 마. 이모 잘못 아니라고 경찰서에서 조사도 받았고. 변호사 만나서 오야붕과 함께 살면서 빨랫감처럼 한 달이면 몇 차례씩 두들겨 팼다고 사실대로 탄원서 썼으니까.”


“우리 정우가 최고네. 그런데 정우야, 이모가 그날은 눈이 뒤집어져 큰 잘못을 한 거야. 죄를 달게 받고 나가야 그 사람한테 조금이라도 떳떳하지.”


“그런 사람은 인간 쓰레기 말 종이라고!”


지금은 병원에 누워만 있는 이모님 남편을 인간 쓰레기 말종이라고 정우는 폄하했다.


“정우야, 그 사람 얘기 말고 우리 얘기하자.”


“알았어요. 이모! 영치금은 많이 있어?”


정우는 영치금 접수할 형편도 안 되면서 걱정을 했다. 영치금은 감방 안에서 또 하나의 권력이다시피 했다.


“아직은 여유 있는데, 떨어지면 너한테 얘기할 테니까 집에 가서 통장 챙겨 은행에서 찾아오면 돼.”


이모님은 오야붕한테 폭행을 당할 때면 몇 벌 옷을 챙겨서 도망갔던 할머니 집을 찾아가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농사도 짓지 않는 노인이라서 생활비를 챙겨드려야 한다며 통장이 감춰진 곳을 일러 주기도 했다.


할머니 집에 가서는 뒤주 속 서류 가방을 챙기라고 했다.


“알겠어, 이모! 감방 분위기는 괜찮아? ‘감방장’은 착하고?”


착한 사람이라면 교도소에 올 리도, 감방장이 될 리도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내가 누구한테 지고 사는 성격도 아니고, 너도 알다시피 내가 지은 죄 목 자체가 시시한 잡범은 겁 먹고 도망간다.”


“하하하. 허긴, 이모도 오야붕한테 당하고 살아서 그렇지. 한 성깔 하지.”


실제로 이모님은 오야붕인 남편을 믿은 탓인지 화가 나면 졸개들한테 고약한 성깔을 부리기도 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 수십 억 해 먹은 경제범 우리 방에 있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접견 와서 영치물도 잔뜩 넣고 분위기 괜찮다.”


“이모! 정말 다행이야. 건빵 하나 가지고 싸우는 개털만 있다면 감방 분위기 살벌하고 곱징역 사는데. 혹시 이모 감방 체질은 아니지?”


“아니긴? 이모 감방 체질인 것 같다. 이렇게 살이 찌는 것이.”


“그게 움직이지 않고 마음 고생하니까 스트레스 살이지. 운동 시간 죽어라고 뛰어 다니라고. 그래야만 그 몸매 유지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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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주지스님! 계세요? NEW 7시간 전 90 6 12쪽
38 38화 도연스님과 연주 암 가는 길 24.09.17 144 7 12쪽
37 37화 VIP 룸 24.09.16 180 9 12쪽
36 36화 변호인 24.09.15 208 8 12쪽
35 35화 막 내린 오야붕 +2 24.09.14 221 10 12쪽
» 34화 이모님!!! 24.09.13 252 10 12쪽
33 33화 운명 24.09.12 269 11 12쪽
32 32화 약장수, 딴따라! 24.09.11 270 7 12쪽
31 31화 이정우 입니다! +2 24.09.10 303 11 12쪽
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47 10 12쪽
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41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2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6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8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90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60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5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9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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