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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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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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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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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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약장수, 딴따라!

DUMMY

정우는 칠순잔치 다음날부터 수만리 가수이자 명물(名物)이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없게 되었다. 어찌나 확실하게 눈 도장을 찍었는지 다음날 아침 장씨네 할머니가 정우 집에 오셨다.


“총각, 잔치 때 쓰고 남은 고기도 많고 서울 애들도 아직 떠나지 않아서 시끌벅적하니 우리 집에 가서 같이 아침 해요.”


“괜찮아요, 할머니! 어제도 종일 얻어먹었는데요.”


“그러지 말고 우리 집으로 가요. 어제는 혼잡해서 제대로 인사를 못했다고 우리 애들이 데리고 오라고 했어.”



정우는 마지못해 할머니 뒤를 따라 나섰다. 적막에 싸인 듯 조용했던 시골 집, 아직도 사람들이 많았다.


“어서 오세요, 정우씨. 절반은 남자, 절반은 여자라더니 오늘은 멋진 남성이시네요?”


미친 듯이 놀았던 어제 일이 약간은 민망하다는 듯 큰아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제는 치맛단에 봉투를 찔러 주기도 했었다. 식솔이 어찌나 많은지 일부는 떠났다고 했지만 아직도 많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주 손녀 이름까지 아리송할 지경이라고 했다.


“어제는 노래도 잘 하시고, 사회도 잘 봐줘서 칠순 맞으신 저희 아버님을 크게 기쁘게 해 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큰 아들 답게 자식들을 대신해서 장남이 감사 인사를 넘치도록 했다.


“아저씨! 나미 '빙글빙글' 노래 한 번 더 해요.”


손녀인지 발랄하고 풋풋한 긴 머리 여자애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말을 걸어왔다. 그러자 할머니가 어른한테 버릇 없이 군다고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 이 아저씨 노래도 잘하고 키도 크고, 딱 내 스타일이란 말이에요.”


“스타일? 스타일이 누구여?”


“호호호, 아저씨! 저는 공부를 못해서 대학도 못 가고 빈둥빈둥 재수하는데, 노래 잘하고 끼 많은 사람들 만나면 한 수 배우고 싶어서 꺼뻑 한단 말이에요. 아저씨 애인 있어요?”


손녀는 당돌하게도 자신 스타일 이라며 애인 있느냐고 물어왔다.


“이 녀석이 버릇 없이? 어른들이 얘기하는데 끼어들고 그래.”


“아빠! 저도 우리 나이로 스물 한 살, 만으론 스무 살! 이제 성년(成年)이거든요?"


“그래도 저리 안 가고.”


아빠가 두 눈을 크게 뜨고 손짓을 했다.


“아빠! 저도 이 아저씨랑 얘기하고 싶은데, 왜 그래요? 아빠가 도둑질만 아니라면 뭐라도 한 가지 잘해야 밥 먹고 산다고 했잖아요?”


“맞아요, 맞는 얘기예요. 그냥 두세요. 요즘 젊은 학생들, 노래하고 춤추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나 저나 형씨는 ... ”


부인인 듯 나란히 앉은 아주머니가 남편이 익숙지 않아서 부르는 ‘형씨’란 표현이 거슬린다는 듯 옆구리를 쿡쿡 찔러 댔다. 이 아주머니도 어제는 펑퍼짐한 궁둥이와 치맛단을 신 나게 흔들어 대며 두어 차례나 열창을 했었다.


“정우씨라고 했죠? 지난번엔 세 명이나 되는 젊은 사람을 따귀 때리며 혼냈다고 하던데, 싸움도 잘 하시나 봐요?”


“아저씨! 우리 할머니 닭 값도 받아 주시고 진짜로 싸움도 잘해요?”


긴 머리 손녀가 다시 나섰다.


“맞아요. 학생처럼 공부는 못하지만 운동은 합기도 유도 태권도 세 가지 단수가 두 자리 숫자예요.”


“와, 아저씨 끝내 줘요. 잘 생겼고, 노래랑 춤도 죽여줬는데, 운동도 그렇게 잘한단 말 이에요?”


“대신, 학교 다닐 때 공부는 꼴등이었다니까요.”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정우와 맞상대 하는 재수생이 참으로 당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 애들은 누구에게나 눈치도 안 보고 사이다처럼 시원한 말을 했다.


부모가 없는 탓에 여섯 살 때부터 혼자서 살아야만 했던 정우에겐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차피 인생이란 것은 ‘독고다이’, 자신이 주인이고 자신 맘대로 살아야만 후회가 남지 않았다.


이날 정우는 부모님 칠순잔치를 빛내줬다는 이유로 자식들이 준비했다는 돈 봉투까지 받았다. 한사코 거절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자신의 음주가무가 돈 봉투를 받을 만큼 여러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저희 자식들은 숫자만 많았지 어떻게 놀 줄도 몰랐는데. 정우씨가 있어서 아버님 칠순잔치를 동네 어르신들이 부러워 할 만큼 잘한 것 같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도 잘 먹고 잘 놀았어요. 헌데, 돈 봉투까지 주시다니요.”


“아저씨! 나중에 아저씨 집에 놀러 가도 돼요?”


공부는 관심 없다는 발랄한 재수생은 정우에게 관심이 많다는 듯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아는 척을 했다.


허긴, 나이로만 따진다면 스물 하나, 스물여덟! 손녀와 정우는 이성 교제를 해도 될 만한 나이였다. 더구나 두 사람은 춤과 노래를 좋아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


오늘은 이른 아침 ‘운방사’에 왔다. 며칠 전 베어 말린 들깨를 털어내야만 하는 날이었다. 텃밭에서 배어낸 들깨를 넓은 포장을 깔고 그 위에 얇게 널어 말렸다. 햇볕이 좋은 날은 하루 두 세 차례쯤 겉과 속을 뒤집었다.


삼 사일 지나면 얼추 대통이나 줄기에 들었던 물기가 마르고, 다시 삼 사일 지나면 들깨 송이가 말라서 하나씩 하나씩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어른 손가락 굵기 물푸레나무를 내리쳐 깨 타작을 했다. 잘못된 세상을 후려치듯 힘껏 내리쳤다.


줄기가 아작 나도록 얼마쯤 두드렸을까? 줄기와 빈 송이는 골라내고 밑에 떨어진 들깨를 자루에 쓸어 담았다. 반년 농사가 얼추 한 자루쯤 되었다.


무늬만 스님인 주방스님이 자전거에 싣고 방앗간에 맡겨 달라고 부탁했다. 이 스님 얘기를 거절했다가는 삼시세끼 눈칫밥을 얻어먹어야만 했다.


짐칸 깨 자루를 싣고 방앗간에 가자, 들기름과 깻묵을 따로 분리해 주었다. 엊그제 칠순잔칫집에서 음주가무를 했던 것과는 극명하게 다른 하루였다.


경사진 곳, 자전거 페달을 밟느라 이마와 겨드랑이에 땀이 배었다. 이런 몸 쓰는 일을 하면 마음이 착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땀은 정직하다고 하는지 몰랐다.


잘못을 빌듯 하루 종일 정좌로 경전 공부하던 스님들도 지루한지 텃밭으로 마실을 나왔다. 절간 스님들 생활은 끝이 보이지 않는 뜨거운 사막을 걸어가는 것처럼 지루하고 고리타분한 것 연속이었다.


큰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숨조차 고르게 쉬어야만 하는 절간 생활!


과연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나 재미는 무엇일까? 내면의 세계를 짐작할 수 없었다. 겉으로는 삼시세끼 밥 먹고, 경전 공부하며, 어둠이 내리면 누워서 숙면하는 단조로운 생활이었다.


농작물 기르는 농사를 전혀 모르는 도시형 스님도 있었다. 깊은 바다 속으로 한 발짝씩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끝도 없이 죽을 때까지 해야만 하는 경전 공부가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켜는 스님도 있었다.


***


“정우야, 너는 볼 때마다 재주가 하나씩 늘어가는구나?”


사형스님이 며칠 전 치러진 장 씨 어르신 칠순 잔치를 말하는 듯 했다.


“춤이나 노래도 빼어나게 잘하고?”


“맞아요, 주지스님! 정우처사는 연예계로 진출해도 되겠어요. 잘 생겼고, 목소리도 좋고.”


“그러니까 우리 정우삼촌이 최고라고 했잖아요? 도연스님!”


옆에 있던 ‘용순이'가 정우 삼촌이 최고라며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과찬이세요. 노래는 도연스님도 잘 하시던데요? 요즘은 노래방이 골목마다 깔려서 노래 못하는 사람들 없어요.”


“어디 노래 뿐 인가요? 동네 사람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사회도 재미있게 잘 보고. 정우처사님은 갈수록 궁금한 것들이 많아지는 사람이라니까요.”


비슷한 연배 도연스님이 정우를 대하는 것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아끼는 사람을 대하듯 무척 따뜻해졌다. 이런 느낌이 싫지가 않았다.


“지나치게 겸손할 것 없다. 여러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은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큰 장점이다.”


“공부를 잘하는 장점이요?”


지지리도 공부를 못했던 정우는, 노래 잘하는 것을 공부 잘하는 장점에 견준다는 것에 적잖게 놀랐다.


“당연하지. 절간 스님들이야 부처님을 따라야 될 운명이라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만, 너는 ‘딴따라’ 기질도 있어 보이고. 그 방면으로 나가도 삼시세끼 해결하는 것은 문제 없지 싶구나.”


“약장수, 딴따라요?”


“이놈아, 왜 약장수 딴따라라고 작게만 생각해? '한국노래자랑' 같은 무대서 1등 하면 팔자가 달라지는 건데.”


'한국노래자랑' 말에 정우는 순간 번개를 맞은 듯 온몸 전율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와 춤을 빼어나게 잘 하면서도 학창 시절 외에는 끼를 감추고 살았었다. 사형스님 말씀처럼 단 한차례 '한국노래자랑' 같은 무대서 노래하겠다는 생각은 안 하고 살았다.


“맞아요, 정우처사님. '장미축제' 나 '한국노래자랑' 나가면 대상이거나 최소한 인기상은 따 논 당상일걸요.”


도연스님 역시 옆에서 좋은 생각이라며 추켜세웠다.


전국 방송을 탄다는 것은 자신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었다.


‘내가 '한국노래자랑' 에 나가서 노래를 한다고?’


생각 만으로도 희망의 수만 가지 것이 비눗방울 커지듯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과자란 핸디캡도 무겁게 다가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일요일 한낮, '한국노래자랑'을 지켜 봐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


수백, 수천 관중 앞 무대는 장 씨 어르신 칠순잔치와는 ‘급’이 달랐다.


구절 구절 리듬을 잘 타다가도 삐끗하면 여지없이 그만 하라는 땡 소리가 울렸다. 그러면 부끄럽다는 듯 출연자는 무대 뒤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한국노래자랑' 을 보는 것 만으로도 자신이 출연한 듯 긴장되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사형스님 닮은 땅땅한 사회자가 맘에 들었다. 시골 노인처럼 뭐라도 대화가 될 것 같은 노인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과 사느냐가 중요했다. 깡패 새끼들이 사는 기와집과 다르게 살생(殺生)을 금하느라 육식조차 안하고 경전만 공부하는 절간에서는 설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나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


오늘은 오랜만에 보국스님을 따라서 탁발을 나가기로 했다.


“절간이라는 것이 너무나 적막해서 못 견디면 어쩌나 했는데, 염려했던 것보다 잘 이겨내는 것 같아서 보기 좋구나.”


“네, 스님! 보국스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 ‘운방사’ 라고 적힌 쪽지를 들고 이곳을 찾아 올 때는 보국스님 한 분을 믿고 왔다.


그러나 지난 봄부터 절간에 머무르는 사이 이런저런 이유로 보국스님보단 사형스님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보국스님 역시 출가한 경력이 짧지 않고 불심은 깊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다른 스님들과 달리 민가(民家)로 빈번하게 탁발을 다녔다.


여섯 살 코흘리개, ‘구석이'를 만났던 그날도 보국스님은 민가에서 탁발을 하던 중이었다. 중생이 사는 민가로 탁발을 다니는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두 가지라고 했다.


스님들은 출가(出家) 전 자신이 기거할 사찰에 부처님께 올리는 명목으로 능력만큼 금전을 바친다고 했다. 기독교 장로가 교회 살림을 주관하면서 큰 액수 헌금을 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는 사찰에서도 출가 시 금전을 어느 정도 냈느냐에 따라 처우가 달라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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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도연스님과 연주 암 가는 길 24.09.17 14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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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막 내린 오야붕 +2 24.09.14 221 10 12쪽
34 34화 이모님!!! 24.09.13 251 10 12쪽
33 33화 운명 24.09.12 269 11 12쪽
» 32화 약장수, 딴따라! 24.09.11 269 7 12쪽
31 31화 이정우 입니다! +2 24.09.10 303 11 12쪽
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47 10 12쪽
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41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2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5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8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60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5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9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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