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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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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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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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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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DUMMY

365일 1년이, 무덥고 지루한 여름철만 있는 것처럼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감나무, 대추나무, 사방에서 울어 대는 매미 소리도 시끄러웠다. 그러나 처서가 지나서 일까 아침저녁으론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대웅전에선 스님들이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 외는 낮은 음이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불경 소리를 들으면 묘하게도 소낙비 내리는 소리처럼 마음이 차분해진다. 거칠게 살아 온 지난날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운방사에서 새벽 예불이나 불경을 안 하는 사람은 자신과 ‘용순이' 주방스님 뿐이었다. 출소 후, 운방사에 왔을 때만 해도 드문드문 새벽예불을 갔었다. 목탁도 없고 불경을 몰라 우두커니 약간은 창피했었다. 착하게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형스님이 한자리서 진득하게 중이 될 운명은 아닌 것 같다고 했고, 새벽 시간 꽃 잠을 쫓으며 부스스 일어나는 일도 고통스러워 얼마 후 포기하고 말았다.


스님들은 잠자기도 깨어 있기도 어중간한 초저녁 아홉 시 취침, 다음날 새벽 세시면 일어나 촛불을 켜고 새벽예불을 올렸다. 회사원이라면 출근하는 셈이었다. 누군가 무겁게 치는 징소리가 골짜기서 무겁게 메아리가 되었다.



“주방스님, 저랑 용순이가 강아지 이름 지어주기로 했어요.”


“강아지 이름 있잖아. 벅구!!!”


주방스님은 생각도 말끝도 짧았다. 상대방 마음 같은 건 조금도 생각지 않고 세상을 자신 편한 대로만 생각했다.


“하하하, 바보도 아니고 ‘벅구’가 뭐예요. '벅구'가? ‘달마’ 라고 지었는데 근사하죠?”


“'벅구'나 '달마'나 그것이 그것이네.”


주방스님은 뭐라도 오래 생각하지 않는 솔직한 분이셨다.


정우는 이름표를 강아지 목줄에 채워 주었다. 그리곤 읍내서 사온 기계톱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


엔진을 돌리는 휘발유엔 10대1 비율로 오일을 섞어야 한다고 주인 아저씨는 몇 차례나 당부했었다. 아마도 오토바이와 비슷한 기계장치인데, 따로 오일을 붓지 않아서 혼합류를 넣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10:1 비율로 휘발유와 오일을 엔진에 채웠다.


손잡이가 달린 기다란 줄을 힘껏 당기자 운방사 골짜기가 전쟁이 난 듯 큰 소리를 내며 기계톱이 돌았다. 파란색 연기와 역한 휘발유 냄새도 났다. 청아한 풍경 소리와 나지막한 불경 소리가 도망갈 만큼 요란했다.


그러나 겨울철 땔감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 고통쯤은 감내해야만 했다. 몇 개 나무를 자르다 말고 너무나 시끄러워 텃밭 무를 뽑아와 구멍과 비슷한 모양으로 깎아서 연기 통을 막았다. 그러자 소리가 절반으로 줄었다. 지혜는 살아가는 동안 자동으로 터득 하게 되는 것이었다.


‘쓱쓱, 싹싹’ 손으로 자르는 자루 톱이 모종삽이라면 요란한 소리를 내는 기계톱은 포크레인 바가지와도 같은 것이었다. 모종삽과 포그레인 차이였다. 나무에 닿는 순간 두부처럼 쉽게 잘려 나갔다. 반면 능률이 나는 기계톱은 능률만큼이나 위험하기도 했다.


자루 톱은 사고가 나더라도 살을 베이는 정도지만 기계톱은 손가락이나 팔뚝을 자를 수도 있었다.


순간 당장 1억을 가져 오든지 이 자리에 한쪽 팔뚝을 두고 가라고 다그쳤던 오야붕 험상궂은 얼굴이 떠올랐다. 감방에서 절망하고 있을 이모님도 생각났다.


위험한 기계를 다루며 잡념은 금물이었다. 큰 사고로 이어 질 수 있었다. 그래선지 절간 이런 위험한 기계는 없었다. 스님들은 숫자만 많고 등치만 어른이었지 초등학생 '용순이' 만큼이나 약하고 겁이 많았다.


이토록 겁 많고 약한 스님들이 경전을 보는 것 만으로 중생을 구하겠다는 것이 때로는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스님들을 이끌고 승병장으로 국난극복에 앞장선 사명대사 업적을 보면 의지가 중요하지 닥치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에라, 모르겠다.'


생각을 멈췄다.


잘려나간, 잎이 무성한 나무가 아래쪽으로 쓰러졌다. 이런 비탈 진 곳에서 큰 나무를 자르는 경우는 그루터기 아래쪽을 몇 차례 자른 다음 반대쪽에서 잘라야만 밑둥이 찢어지지 않고 반듯하게 잘려나갔다.


커다란 나무가 쓰러질 때는 높은 담장이 무너질 때처럼 요란한 소리가 났다. 순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쓰러진 나무는 사방으로 뻗은 가지 때문에 거대한 몸을 반쯤은 허공에 들고 있었다.


잡아주지 않아도 될 만큼 고정되어 있었다. 아래서부터 기다란 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잘라냈다. 굵은 나무는 식당 난로에 들어갈 만한 길이로 잘랐다. 자른 토막은 경사진 아래쪽을 향해서 던졌다. 내리막길,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전거가 구르는 것처럼 토막은 운방사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장난처럼 쉬운 일이었다.


여섯 살 적, 튀밥기계 삼촌을 따라서 이곳저곳 마을을 돌아다닐 때도 관솔이나 공이진 장작을 딱 이만큼 길이로 잘랐다. 손잡이를 돌리면 풍로 팔랑개비가 세차게 돌며 쉬-쉬-쉬 주황색 불꽃이 일어났었다.


***


학교에서 파한 ‘용순이'가 목줄이 채워진 ‘달마’와 함께 뛰어 왔다. 목줄은 처음 보았다.


“삼촌! 달마 목줄 너무나 예뻐요. 와, 나무 많다. 삼촌 혼자서 이렇게 많이 했어요?”


“당연하지. 용순아, 이 톱만 있다면 이제 나무 하는 일은 껌이라니까?”


다시 줄을 당기자 기계톱이 살아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자랑이라도 하듯 허벅지 굵기 통나무에 갖다 대자 가위로 종이를 자르듯 쉽게 잘려 나갔다. 순식간 이었다.


“와, 삼촌 신기해요.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어요.”


“안돼. 이 톱은 무겁고 엄청 위험하다. 힘센 어른들만 사용하는 톱이라고.”


“그래도 한번 해 보고 싶단 말이에요.”


정우는 순간 망설였다.


“이리 가까이 와봐, 삼촌 앞으로. 내가 톱을 잡을 테니까, 너는 여기 스위치를 누르는 거야.”


“알겠어요, 삼촌.”


정우가 든든하게 톱을 잡고 ‘용순이'가 스위치를 누르자 큰 나무가 무처럼 힘없이 잘려나갔다.


“와, 신 난다. 삼촌 재밌어요. 이거 자연 시간에 배운 수수깡 놀이 같아요.”


정우는 늦은 시간까지 토막 낸 장작을 경사진 비탈길로 던지거나 굴려서 운방사 나무 창고에 차곡차곡 쌓았다.


며칠 전 ‘용순이'와 둘이서 했던 땔감보다 수십 배 많았다. 한 트럭쯤 되었다. 해질녘 경내를 느긋하게 비 질 하던 주지스님이 보고 깜짝 놀랐다.


“정우 너, 지난번 이젠 땔감은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치더니 빈말이 아니었구나? 근데, 요란한 소리 나는 그 톱은 어디서 가져 온 거냐?”


“읍내서 샀어요.”


“가격이 수월치 않을텐데, 돈이 어디서 나서 샀단 말이냐.”


“지난번에 미쳐 말씀 드리지 못했는데, 서울 회장님 집에 두 번째 갔을 때 큰 용돈을 받았거든요.”


“회장님한테 용돈을 받았단 말이냐?”


“예. 회장님이 주지스님께는 얘기할 필요 없다고 하시며 봉투를 주셨는데, 백만 원 수표였어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사업을 하는 회장님이 큰 돈을 주셨을 때는 틀림없이 무슨 이유가 있었을텐데. 그 얘기 만으로는 도통 알 수가 없구나.”


“첫날은 주차장에 세워진 차를 타고 가겠다고 졸랐고, 두 번째 날은 그냥 시외버스 타고 가겠다고 했는데도 봉투를 주셨어요.”


“그럼, 그 돈으로 기계톱을 샀단 말이냐?”


“당연하죠. 어디 그 뿐 인줄 아세요. 어제 닷새 장 갔다가 단감나무, 매실나무도 사다가 심었어요.”


“오호, 무슨 일이라도 내 맘에 속속 들게 하니까 오늘은 네가 부처로구나.”


“부처요? 흐흐흐, 저기 '달마'가 웃겠어요.”


자신을 부처라니? 정우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다. 한해 겨울 땔감을 단 하루 만에 끝내고, 네놈은 속을 알 수가 없는 연구 대상이야.”


“주지스님! 새경 스무 섬은 줘야 하는 상 머슴을 들인 것 같아요. 눈 깜짝 할 사이 한 겨울 땔 나무를 이렇게나 많이 해 오다니.”


주방스님도 헛간 수북하게 쌓인 장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새경 스무 섬은 줘야 하는 ‘상머슴’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나중을 준비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사형스님이 겨울철 땔감을 하라고 적극적으로 시키지도 않았다. 그러나 게으르고 허약한 스님들만 있는 절간, 자신이 솔선수범 창고에 그득하게 땔감을 쌓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정우 네가 ‘벅구’ 이름도 새로 지어서 이름표 채워 줬다며?”


“예, 사형스님! 이제 '벅구'도 꽤 커서 강아지도 아니고. 간혹은 아랫마을 까지 내려가는데 '벅구' 란 이름은 바보처럼 좀 거시기 해서요. 사형스님도 제 이름 '정우'로 바꿔 주셨잖아요.”


“그래,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 속이야? 요즘 같다면 너는 절대로 교도소에 갈 사람은 아닌데 어쩌다가 짧지 않은 세월 그런 고생을 했는지.”


“사형스님!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잘못은 저지른 사람이 가장 잘 알아요. 그 동안 여러 가지 것을 생각해 보는 참회(懺悔)의 시간이었어요.”


***


이 때 도연스님이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두 분은 전생에 사이좋은 부자(父子)관계셨나 봐요? 볼 때마다 너무나 다정하게 무슨 말씀인가를 나누시는 것이 보기 좋아요.”


“하루 만에 겨울철 땔감을 저렇게 많이 했고 ‘벅구’도 '달마' 라는 새 이름을 지어 목줄을 채워줘서 칭찬하던 참입니다.”


도연스님도 복숭아 빛 얼굴이 되도록 화창하게 웃었다.


“호호, 달마대사는 고승 중 고승 스님 아닙니까?”


“누가 아니래요. 달마대사가 자신 이름을 강아지가 차용했다는 걸 안다면 호통 치겠지만, 맘에는 들지요?”


“예, 주지스님! '벅구' 보다는 '달마'가 열 배쯤 맘에 들어요. 우리 운방사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고.”


“하하, 분에 넘친 칭찬을 해줘서 감사합니다. 도연스님!”


“아니에요, 정우처사님! 땔감도 그렇고, 우리가 해야 될 일을 대신 해줘서 오히려 우리가 감사하죠. 정우처사님은 좋은 스님이 될 자질을 넘치도록 갖추신 분인데, 경전 공부할 생각은 없으신가 봐요?”


“예, 알게 모르게 너무나 큰 죄를 많이 지어서 때때로 회개하고 있답니다. 이런 저를 부처님이 받아 줄지도 의문이고요.”


“죄는 누구나 짓고 살아요. 그래서 마음의 짐을 벗으려고 부처님을 찾게 되고. 정우처사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데, 나중 시간 날 때 얘기 해 주세요.”


“하하하. 저도 젊고 예쁘신 도연스님이 무슨 사정으로 스님이 됐을까 궁금증이 많았는데, 언제 담소 나눠요.”


“옳아, 머리 검은 젊은 것들이라 부처님을 모신 절간에서 여러 가지 감정을 얘기하는구나. 그럴 바에야 겨울이 오기 전 사형스님 드실 양식 좀 가지고 둘이서 ‘연주 암’에 다녀 오거라.”


“예, 사형스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우는 도연스님을 볼 때마다 이렇게 젊은 여성이 무슨 연유로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게 됐을까, 궁금한 것이 많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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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도연스님과 연주 암 가는 길 24.09.17 14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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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46 10 12쪽
»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40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0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4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09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09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09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5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2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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