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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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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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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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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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별의별 사람들

DUMMY

할머니는 보국스님의 신통함에 혀를 내둘렀다.


“맞아요, 스님! 몸이 허약해서 평생을 병치레만 하던 딸이 얼마 전 둘째를 낳다가 갓난애만 두고 하늘나라 갔어요. 그 어린 것은 어떻게 살라고.”


“이 아이 엄마가 죽었단 말이에요?”


정우는 불행했던 자신의 유년시절을 보는 듯 깜짝 놀랐다.


“큼메, 발만 동동 구르며 하늘을 원망했지만 별수 있나요?”


보국스님 역시 신이 아닌 이상 하늘나라에 간 죽은 딸을 살려내는 재주도, 수심으로 가득 찬 할머니 가정 불행을 막아낼 방법도 알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불행을 타계(他系)할 구세주라도 만난 듯 매달렸다.


“스님! 여기서 이러지 말고 누추하지만 제 집으로 가십시다.”


그제서야 할머니 등에 업힌 꼬마는 무슨 이유에선지 스스로 울음을 그쳤다. 스님 말씀이 맞은 셈이었다.


보국스님과 정우는 마지못해 뒤를 따라 할머니 집으로 갔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쓰러질 듯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대문, 마루 밑 토방 두어 켤레 신발이 제 멋대로 뒹굴었다.


담장 밑 장독대, 십 여 개 항아리도 깨진 항아리와 온전한 것들이 섞여서 여기저기 볼썽사납게 굴렀다.


“보살님!”


당산나무 그늘에선 할머니였는데, 이 집 대문을 들어와선지 보국스님의 할머니 부르는 호칭이 ‘보살님’으로 바뀌었다.


“인명은 재천, 목숨이 길고 짧은 건 다 부처님 뜻인데 낳아준 부모라도 힘없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응애 하고 어미 뱃속을 나올 때, 길고 짧은 명(命)은 기왕에 정해지는 것을.”


“큼메 말입니다. 시장 하실텐데, 이거라도 들어 보세요.”


할머니는 감자와 삶은 옥수수를 내왔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하지’ 철로 감자와 옥수수는 제철 먹거리였다.


“보살님, 대문이 저렇게 누워서 틈이 생기면 지나가던 잡귀신이 만만하게 알고 기웃거려요. 튼튼하게 고쳐서 반듯하게 세우세요.”


“누가 찾아 올 사람도 없고 훔쳐갈 것도 없고 해서 그냥 뒀는데...”


할머니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장독대 깨진 항아리는 잘게 부숴 땅속 깊은 곳에 묻고 성한 항아리는 깨끗하게 닦아 줄을 서듯 보기 좋게 햇빛이 드는 방향으로 평지보다 약간 높게 하시고요. 신발 위치는 방이나 마루 방향으로 코를 향하게 하여 누군가 집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도록 반듯하게 놔야 합니다. 그래야만 보기도 좋고 잡귀신이 범접(犯接)을 못해요.”


“어이쿠 스님!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정우도 보국스님이 하신 말씀을 새겨보니 상식에 가까운 누구나 지킬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것들을 알려주는 스님에게 할머니는 매달렸다.


“스님, 어린 손주 놈 앞날도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한 말씀 내려주세요.”


“보살님, 이거 받으세요. 제가 30년 이상 머무는 절간입니다. 초파일이나 칠월 백중 초하루나 보름 날 주변, 아무 때라도 상관없으니 부처님께 한번 다녀가세요.”


보국스님은 여섯 살 정우(구석이)한테 운방사가 적힌 쪽지를 줬던 것처럼 할머니한테도 명함을 내밀었다.


***


돈과 쌀을 넉넉하게 시주 받고 나오는 길! 정우는 스님이 처방한 일들이 궁금했다.


“스님! 할머니한테 세 가지를 처방했는데, 산수나 과학 문제처럼 그렇게 해야만 나쁜 액을 물리치는 논리적 근거라도 있나요?”


“허허, 내일 먹어야 될 밥 거리가 걱정돼 이곳저곳 탁발 다니는 땡 중이 그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냥 보기 좋은 것은 누구라도 먹기 좋은 것이지요.”


“진짜로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런 얘기를 했단 말이에요?”


“그럼요. 장독대에 깨진 날카로운 장독이 섞여있으면 보기 싫고 손발이 베일까 위험하잖아요. 대문도 비스듬하게 누워있으면 주인이 살지 않는 빈집인 줄 알고 지나가던 사람이 누구라도 쉽게 들어 올 수 있고? 그런 다음 우습게 알고 물건을 훔치거나 주인을 해칠 수도 있고.”


“듣고 보니 이치가 합당하긴 합니다만.”


“팩트가 같은 내용이나 얘기라도 이웃이나 가까운 사람이 하면 웃음거리인데, 용한 무당이나 법력이 높은 고승이 찾아와서 한마디 하면 받아들이는 사람들 마음이 달라져요.”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같이 한평생 직업 없는 스님들도 굶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하하하, 스님은 직업이 아니라고요? 너무 낮춰서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요. 길 가는 사람한테 길을 막고 물어 보세요. 스님을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지? 보살펴야 될 식솔도 없고.”


정우는 스님은 직업이 아니라는 보국스님 말씀이 맞는 것도 같고 틀린 것도 같아서 아리송했다.


“산수나 과학도 그렇고, 어차피 세상은 모든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마음속에 있답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야만 공처럼 둥글게 사는 길이랍니다.”


정우는 보국스님이 자신과는 다른 법력이 높은 스님 같기도 때로는 길거리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땡중! 평범한 필부(匹夫)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오후 다섯 시가 지났지만 일년 중 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 무렵이라선지 아직은 바깥이 대낮처럼 환했다. 그러나 운방사 주변에서는 탁발은 안하고 걷기만 했다.


이른 아침나절부터 종일 걷다시피 했으니 잘 사는 것을 걷는 것으로 친다면 오늘 하루는 백 점이었다.


‘음머ㅡ’


노을 진 주변 마을 황소가 커다란 울음을 냈다. 황소도 하루가 다 갔음을 아는 듯 했다.


이제는 몸도 마음도 파 김치가 되었다. 보국스님을 쫓아다니며 마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모습을 보았다. 기다란 빨랫줄 있는 정갈 한 집, 대문이 기울고 장독대가 깨진 집도 보았다.


“스님! 오늘은 인생 공부 많이 했습니다. 별의별 사람들도 봤고요.”


“그러게요. 탁발 다니는 것이 삶의 생생한 현장을 보는 것처럼 나름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때로는 박터져라 싸우는 부부 싸움을 말리기도 하고.”


“그러기도 하겠어요. 온 동네를 다니며 집집마다 사는 모습을 보게 되잖아요?”


“맞아요. 정우처사처럼 젊었을 때와 달리 요즘은 하루 종일 걷고 나면 발바닥과 종아리가 당겨서 이젠 탁발은 그만해야지 했다가도 바다에 그물을 쳐 놓은 어부처럼 일주일만 쉬면 궁금증이 생긴답니다.”


오늘 하루 백리는 걸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리나케 마을을 지나서 운방사로 가는 산길을 오르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일까?


“스님! 누가 어디서 싸우는 소리 같아요?”


그러나 조용한 절간에서 싸움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혹시나 해서 발걸음을 바쁘게 재촉했다.


운방사, 지갑이 가벼운 길 손이 쉬어가는 객방! 요즘은 정우가 이 방에서 짐을 풀고 있었다. 헌데, 무슨 일인지? 객방 주변 우락부락한 남자들이 식식거렸다.


상 소리를 해 대며 식식거렸다. 높음 음 육두문자 욕설도 참지 않고 뱉었다. 막무가내로 지르는 행패소리였다. 쓰레기통이나 가재 도구를 제 멋대로 발로 차기도 했다.


오래전 오야붕 졸개들이 무리 지어 재개발 구역을 다니며 빨리 나가라고 설쳐 대는 개망나니 짓과 같았다.


식단을 맡고 있는 자그마한 주방스님, 사형스님, 시자(侍者)스님, 솜털이 뽀송한 비구니까지 절간 스님 모두가 겁에 질려서 쩔쩔매고 있었다.


소림사 무술 영화를 보면 이런 깡패 새끼들은 머리에 바둑 알 여덟 개, 혹은 여섯 개 그려진 스님들이 발차기 돌려차기로 제압하던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


“처사님! 처사님! 말로 하세요.”


가재 도구를 발길질하고 부수는 깡패 새끼들을 향해서 겁 없는 체구가 작은 주방스님이 처사님이라고 부르며 달래보지만 기세가 등등한 이놈들이 쩔쩔매는 스님들 사정을 들어 줄리 만무했다.


‘용순’이도 한쪽에서 고양이 앞 쥐처럼 웅크린 채 있었다. 정우가 발걸음 빠르게 나섰다.


“지금 신성한 절간에서 뭐 하는 겁니까??”


‘절간’은 주로 민가에서 떨어진 깊은 산 중에 있었다. 화재 시 고층 건물은 소방 장비가 부족하듯 민가에서 떨어진 산 중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보안이나 치안이 취약했다.


또한 스님들은 숫자만 많았지 심성(心性)은 다른 사람들과 다투는 일은 극도로 싫어했다. 보국스님 역시 탁발할 때 재수 없다는 모욕에 가까운 얘기를 듣고도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는 듯 몸을 피해버렸다.


이곳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청아한 풍경소리만 들려오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놈들은 이 점을 알고 찾아와서 제멋대로 행패를 부리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말로 하지. 왜 스님들이 계시는 신성한 절간에 와서 행패를,”


“신성한 스님들 좋아하네? 남의 마누라 빼돌리는 땡 중 소굴에서.”


우락부락 생긴 놈이 정우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땡 중' 이라는 호칭은 자신을 낮추느라 스님 스스로가 간혹 쓰기는 했지만 상대방한테서 듣는다는 것은 멸시하는, 자존심이 상하는 말투였다. 스님을 비하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땡 중 소굴이라는 의미 역시 부정적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누라를 빼돌렸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 여자를 찾으러 작심을 하고 찾아 온 듯 했다.


“아니라니까요. 자신 신세를 한탄하며 ‘용순'일 맡기러 몇 해 전 이곳을 다녀가긴 했지만, 요즘은 일체 소식이 없다고요.”


주방스님은 이놈들 얘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극구 부정했다.


그러나 이놈들은 막무가내였다. 스님들은 웅성웅성 많았지만 주로 말대꾸는 주방스님 혼자서 했다.


‘용순’이가 보통 애들과 다르게 열 살이 돼서야 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이 대충 짐작되었다. 그렇다면 딸을 보살피고 학교 보내준 일에 감사는 못할망정 자신 마누라를 빼돌렸다고 절간을 찾아와 땡 중 소굴이라고 행패 부리는 것은 세상을 양아치처럼 사는 깡패 새끼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오래전 기와집에서 자신들이 했던 짓을 보는 듯 했다.


“오래 전에 다녀가서 지금은 연락이 안 된다고 하잖소.”


정우가 앞으로 나서며 행패 부리는 놈을 상대하느라 자신도 언성을 높였다.


“이 새끼가 어디 겁 대가리 없이 나서고 지랄이야. 좆도 모르는 제 삼자 새끼가?”


“좆은 남자들 ‘소중이’라는 거! 아는데요?”


육두문자를 들은 정우도 기분이 상해서 약간은 비아냥 조로 대꾸했다.


“이 새끼가 죽을라고 환장했나?”


이 쯤 되니 도무지 대화로 해결할 상황은 아니었다. 더구나 땅거미가 내리는 시간, 세 놈이나 찾아와서 가재 도구를 부수며 행패를 부린다는 것은 ‘법보다는 주먹을 앞세우는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우 역시 한 때는 깡패 집단 행동 대장 격이었다. 직업이라고 하기엔 남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유도 합기도 태권도 실력이 두 자리 숫자가 넘었다.


창피해서 죽을 때까지 얘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바닥에서 한 때는 ‘차돌’이란 별명으로 몸 쓰는 것이 얼마나 날렵했던지 백두급 두세 놈 제압은 식은 죽 먹기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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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9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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