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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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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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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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DUMMY

사형스님의 염불은 10여분쯤 이어지다가 이슬만 날리는 보슬비처럼 잦아들었다.

나무끼리 부딪치는 목탁 소리 여운이 귓가에 남았다. 이 소리를 들으면 묘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감사합니다. 사형스님! 손 볼 것 없는 아담한 집이라서 부담 없이 골랐어요.”


“정우야, 인간은 누구나 ‘번뇌’를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때로는 현실에 대한 욕망으로, 때로는 타인에 대한 미움으로 갈등을 겪기도 하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그런 부질없는 것들을 마음속으로 용서받기 위해서 부처님께 ‘백팔 배’나 ‘천배’를 올린다.”


“예, 사형스님! 새겨 듣겠습니다.”


“지난번 연주 암에 갔을 때, 척박하고 협소한 시설에서 기거하시는 주지스님 봤지?”


“대웅전은커녕 절 방이 키 큰 사람은 눕지도 못할 정도로 좁았잖아요.”


“한 주전자 물로 하루를 살아가시는 청빈함은 어떻고? 어디서 사느냐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할 뿐이지.”


“예, 이제 집도 생겼으니 저도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바르게 살아야죠. 저녁이면 잠자리 걱정 안 해도 되고.”


인간에게 가족이 함께 기거할 수 있는 집이란 잠자리 이상의 안식과 편안함을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공간이었다.


그런 탓에 오래 전 시골에서 도회지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들은 집 장만을 성공한 사람들 기준으로 자리매김했다. 자가(自家)를 소유해야만 성공한 사람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그래, 눈치나 번뇌 같은 것은 자신을 무장 시키듯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음속 양심을 감추는 일이기도 하지.”


“맞아요. 아무런 잘못도 안 했는데, 제가 전과자인 걸 누가 알아보고 무슨 말을 할까봐서 지레 주눅드는 자격지심 같은 것이 있기는 해요.”


“쓸데없는 소리! 이 집은 제법 큰 헛간이 있구나? 저기 헛간을 대웅전이라 생각하고 부처님 상이나 공간을 만들어 보거라.”


사형스님은 장작 더미가 어지럽게 널린 헛간을 가리켰다.


“헛간을 대웅전이라 생각하고 부처님 상이나 공간을 만들어보라고요?”


“부처님은 절간이나 대웅전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둘 수 있지. 앞으론 운방사를 오가는 길이면 산에서 크고 작은 나무 토막을 주워와 서로 맞대고 기대서 세워 보거라.”


“나무 토막을 기대고 세워요? 흐흐, 무슨 의미인데요?”


“이 세상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맞대고 기대서 산다. 정우 너, 학교 다닐 때 일기 써 봤지?”


“예, 일기는 써 봤지만...”


“일기는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하는 시간이다. 긴 얘기는 할 수 없고, 손끝 여문 네가 한 달쯤 하다 보면 깨달아지는 것들이 있을 거야. 연주암에 갔을 때 자연히 느낀 것처럼 말이다.”


“나무 토막으로 부처님 상을 만들면서 직접 느끼고 배워보라는 뜻이죠?”


***


정우는 다음날부터 운방사를 오가는 길이면 산에서 크고 작은 나무 토막을 자르거나 주워왔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처럼 굵고 가는 것, 길고 짧은 것, 허리가 휜 구불구불한 것도 있었다.


껍질이 투박한 것은 심이 부러지지 않도록 찬찬히 연필을 깎듯 낫으로 껍질을 깨끗하게 벗겼다. 얇은 부분을 벗길 때는 약한 부분이 부러지기도 했다. 쓰임새에 따라 아까운 살을 베어내기도 했다.


낫으로 공들여 껍질을 벗기고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 무엇에도 방해 받지 않는, 순전히 나만의 시간이었다. 빨래를 한 듯 마음이 단순하고 깨끗해짐을 느꼈다. 대신 손바닥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맨손으로 해야만 거친 껍질을 고르게 벗겨 낼 수가 있었다.


고운 작업엔 장갑은 방해가 되었다. 맨손의 정교함은 세상에서 최고였다. 껍질을 벗긴 나무를 매끈하고 곱게 하기 위해 페이퍼로 문질렀다. 신기하게도 손이 가는 횟수에 따라 나무 토막의 곱기와 생김새가 달라졌다.


삼십 분을 주무른 나무와 한 시간을 주무른 나무 생김새와 곱기는 달랐다. 손끝에 느껴지는 고운 나무 느낌이 엄마 손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럽고 기분 좋았다. 부처님 상을 만드는 시간은 순수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운방사에 두 번가는 날은 두 개를 가져와서 벗겼다. 한 달이 지날 무렵 수십 개 나무 토막이 서로를 맞대고 세워지자 사형스님 말씀처럼 커다란 독수리 집 같은, 제법 그럴싸한 설치 조형물이 되어갔다.


짧거나 긴 것은 필요한 만큼만 남기고 잘라냈다. 손끝이 야무지다는 사형스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낫으로 나무 껍질을 공들여 벗기고 있는 이 시간은 그 어떤 것도 들어 올 수 없는 무아지경,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악하고 불량했던 마음이 하얀 눈처럼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전과자란 자격지심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부처님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므로 절간이나 대웅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형스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스님은 절간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부처님을 만나지만, 정우는 나무 토막을 어루만지며 부처님을 만나고 있었다.


옆집 할머니가 삶은 옥수수를 가져왔다.


“어이쿠 신통하기도 해라. 지난번 도움 받은 일이 너무나 감사해서 지나가는 말로 해 본 얘기인데.”


아마도 백중 무렵 운방사에 왔을 때 깡패 새끼들한테서 죽은 닭 값을 받아 준 일을 회상하며 우리 동네를 든든하게 지켜 달라고 했던 말을 의식한 듯 했다.


“아니에요, 할머니. 어차피 저는 스님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운방사에서 살 수 없었는데, 집 장만해서 좋아요. 덕분에 감사합니다.”


“그래, 젊은이랑 이웃이 되어서 좋구먼. 우리 집에도 놀러 와요.”


“네 할머니. 갈게요.”


“근데, 그것은 막대기로 뭘 만드는 거야?”


“네에.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부처님 만나는 시간이에요.”


“뭐야? 부처님을 만나?"


할머니는 어이없는 일이라는 듯 주름진 얼굴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금니가 없어서 일까, 탈 모양 합죽이 얼굴이 되었다.


***


스물여덟! 긴 세월 탓인지? 정우는 여러 가지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여섯 살 시절, 엄마와 같은 이모님을 길에서 만났고, 이모님 남편이 깡패 오야붕인 바람에 청소년, 그리고 성인이 돼서도 별다른 죄 의식 없이 양아치 짓을 했다.

짧지 않은 3년 세월 감방살이도 해 봤다. 그러다가 이제는 노인들만 사는 시골 마을에서 착하게 살겠다고 아담한 집을 골라 터를 잡았다.


“그냥 나무 토막을 깨끗하게 깎아서 세우면 그 시간은 부처님을 만나는 시간처럼 잡념을 지울 수가 있거든요.”


바르지 못한 몸과 마음을 닦아내야만 하는 처지를 할머니가 짐작할 리 없었다.


“집에서 부처님을 만난다니 당최 모르겠구먼? 혹시 박수무당은 아니지?”


“예? 하하하~”


뜻도 자세하게 모르는 박수무당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


“거, 있잖아? 일하기 싫은 젊은 사람들이 신병 들었다고 빈둥빈둥 놀면서 동네 사람들 이나 기웃기웃 하는 거?”


“하하하, 할머니! 저 박수무당 아니에요. 운방사 사형스님이 부처님은 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속에 있는 것이라고, 나무를 깎는 시간이 부처님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했어요.”


“옳지! 누구든지 오가며 성황당에 돌을 던져 돌 탑을 쌓는 것과 같은 일이구먼?”


“맞아요. 할머니, 내 말이 그 말이에요. ”


그 제사 정우도 무릎을 탁 쳤다. 나이 드신 할머니는 나무 토막을 곱게 잘라서 기대고 세우라는 사형스님 말씀을 단번에 이해했다. 이 세상 공짜 나이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요, 할머니. 저는 거기까진 생각 못했는데 할머니 말씀 듣고 보니 딱 맞는 말이네요.”


“총각은 나이가 몇 이야? 하던 일은 뭐고?”


"예, 스물 여덟이고. 하는 일은 놈팽이라 이제부터 찾아야 해요.”


“그럼, 잘 되었구먼. 시골에서 농사일 하며 아주 눌러 살아도 되고.”


“하하하, 할머니 그럴게요.”


정우는 오늘 좋은 이웃이 생겼다.


땅거미가 내리는 늦은 시간까지 지치지도 않는지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 댔다. 고작해야 열흘만 산다는 매미는 오늘 하루가 저무는 것이 너무나 아쉬워 밤낮으로 저렇게 울어 대는지 몰랐다.


***


사형스님과 도연스님이 절간 승용차를 타고 정우 집에 급하게 내려오셨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발걸음을 가볍게 뛰지 않는 성품인데, 무슨 일인지 긴장한 모습이 역력 했다.


“정우야, 오늘 ‘용순이' 못 봤느냐? 혹시나 여기라도 있을까 해서 왔는데?”


“아니요. 오늘은 학교 갈 때도 올 때도 한 번도 못 봤는데요.”


“아직껏 이런 일은 단 한 차례도 없었는데, 그럼 이 녀석이 어디로 갔단 말이냐?”


“왜요? ‘용순이'가 없어졌어요?”


순간 정우는 ‘용순’이가 누구한테 납치 됐을지도 모른다는 나쁜 생각이 들었다.


“빨리 학교에 가 봐요.”


정우는 허락도 받지 않고 급한 마음에 두 스님을 타라고 하고 자신이 직접 승용차를 운전했다. 위험이 닥치면 몸을 피하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나오는 행동이었다.


오후 일곱 시가 지난 시각, 학교 운동장은 서서히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전교생이 오십 명이라는 넓은 운동장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이 썰렁했다. 운동장 한쪽에 차를 세우고 교실을 향해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자료실, 도서실, 교무실, 5학년 팻말이 달린 교실도 모두 텅텅 비어있었다. 초등학교 교실과 복도는 예나 지금이나 쪽마루였다. 기다란 쪽마루만 유난히 길게 보였다.


초등학생이 이 늦은 시간까지 혼자서 교실에 남아 있을 리는 없었다. 담임 선생님과 통화한 사형스님은 5교시 수업을 마치고 청소 후 두 시가 조금 지나서 집으로 갔다고 했다.


학교에선 집으로 갔고, 운방사에는 안 왔고. 도중에 어디로 갔다는 말인지?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정우는 일주일이면 두어 차례씩 자신을 찾아 와 운방사 진입로를 지키던 오야붕 깡패 새끼들이 생각났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을 졸이는 상황, 단정할 수 없는 일이라서 경솔하게 얘기를 꺼낼 수도 없었다.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학교 앞 문방구와 길거리를 샅샅이 살폈으나 헛수고였다.


누가 경찰에 신고를 했는지 경찰은 물론 온 동네가 '용순이' 를 찾느라 발칵 뒤집어졌다. 마을 회관 스피커에서도 열 네 살, 5학년 여자아이를 찾는다! 는 이장님 걸걸한 목소리가 여러 차례 흘러 나왔다.


여러사람들이 나서 찾았지만 ‘용순이' 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디론가 강제로 끌려갔을 것이라는 나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운방사에서 전화통을 지키는 일 외엔 달리 뾰쪽한 방법이 없었다.


오만가지 오락 시설이 있는 도회지와 달리 시골은 갈 곳이 별로 없었다. 사형스님은 이럴 때 일수록 침착하게 전화통을 지키자, 누구에겐가 연락이 올 거라고,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말씀만 하셨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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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화 막 내린 오야붕 +2 24.09.14 218 10 12쪽
34 34화 이모님!!! 24.09.13 251 10 12쪽
33 33화 운명 24.09.12 269 11 12쪽
32 32화 약장수, 딴따라! 24.09.11 268 7 12쪽
31 31화 이정우 입니다! +2 24.09.10 301 11 12쪽
30 30화 칠순잔치 +1 24.09.09 346 10 12쪽
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40 13 11쪽
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1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5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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