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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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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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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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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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DUMMY

'용순이' 엄마가 속세를 떠나 산사(山寺)에서 자식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맹자 어머니 같은 분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오갈 데조차 없었지만 ‘용순’이 엄마는 일주일도 버티지 못했다고 했다.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되면 딸을 데리러 오겠다고 절간을 떠났다고 했다. 그리곤 1년이면 몇 차례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며 겨우 딸 학비를 보낸다고 했다. ‘용순이'에게도 그러한 아픈 가정사가 있었다.


김두한 같은 의리 있는 깡패가 되기 위해서 제 발로 찾아왔다는 인호, 그리고 절간 계집아이 용순이, 비슷한 사람은 비슷한 사람끼리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선지 정우 주변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불우한 사람들이 꼬이는 것 같았다.


“그럼 무늬만 스님 하라고요?”


“뭐, 굳이 따지자면 그런 셈이지.”


“가짜 땡중이네요? 저도 뭐, 아직은 갈 곳도 해야 할 일도 없긴 하지만.”


“정우 너, 지난번 부처님께 큰절은 몇 번이나 올리고 이름은 몇 번이나 썼느냐?”


“15,255번 했는데 왜 그러시죠?”


정우는 단 한순간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것을 어떻게 15,255배, 정확하다고 확신 할 수 있느냐?”


“당연히 확신 할 수 있지요.”


정우는 절방에서 백지에 쓴 자신 이름 뭉치를 가져왔다.


“자, 보세요. 사형 스님! 제가 이름을 세다가 말고 몇 차례나 까먹어서 이름 위에 숫자를 적었거든요. 여기 15,255번이요.”


사형 스님은 대견하다는 듯 정우한테 어깨를 툭툭 쳐 줬다.


“제법이로구나. 바로 그거야. 하나를 일러주면 둘을 깨우치는 마음! 우리 절간도 마을을 향해서 내려가다 보면 오른 쪽 온 종일 햇볕이 드는 너마지기 땅도 있고, 아랫마을은 빈집도 많다. 어디서 사느냐 보다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정우는 사형스님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너는 어차피 물과 불을 동시에 갖고 태어난 놈이라 부처님 손길도 필요할 듯 하고.”


“그럼, 저한테 승복 입은 농사꾼이 되라고요?”


“어차피 하고 안 하고는 네 맘이다. 아무렴 내가 네 몸속 까지 바꿀 수야 있겠느냐? 내일은 할 일 없다면 ‘용순’이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 고추 모종과 오이 모종을 사 와서 네 맘대로 심어 보거라.”


“고추 모종을 심어 보라고요?”


“그럼 이놈아, 절간에서 삼시세끼 밥값은 해야지. 아니라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짐 해 오던지.”


***


사형 스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깊은 산 중 절간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번쩍번쩍한 승용차가 마당을 미끄러지듯 굴러 들어왔다. 그리곤 운전기사가 재빠르게 내려서 뒷문을 열어 주었다.


지팡이 차림 남자가 먼저 내리고 뒤따라서 젊은 여성도 내렸다. 지팡이는 걸음걸이가 시원찮아 의지가 필요한 사람들이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허리가 대나무처럼 꼿꼿한 남자는 아직 겉으론 지팡이가 필요 없어 보이는 몸이었다.


뒤 따라 내린 여성은 아내인 듯, 딸인 듯 겉으로는 나이 차가 상당해 보였다.


“나무관세음보살!”


정우와 얘기를 나누던 사형 스님이 합장을 하며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회장님! 보살님도요.”


순간 정우는 여러 가지 것이 아리송했다. 뭐지? 부처님을 찾아오는 불자는 신분이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남자는 '처사님' 여자는 '보살님' 이라고 했는데, 한쪽은 회장님이고 한쪽은 보살님이라니?


“두루 건강하시지요, 회장님? 하시는 사업도 잘 되시고.”


다시 사형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다.


“예, 그럭저럭.”


주객이 전도된 듯 회장이란 사람의 대답은 성의 없고 짧았다.


‘그럭저럭’이란 말은 세상에서 가장 애매한 말로서 윗사람이나 어려운 사람에겐 되도록 사용해서는 안 되는 단어였다.


“저 사람은 누구지요?”


스님 뒤에 선 정우를 가리키는 듯했다.


“예, 공수표처럼 아직은 액수나 갈 길을 정하지 못해서 제 발로 찾아 든 물건입니다.”


상당수 사람들은 상대방을 평가할 때 1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익숙치 않은 분위기, 서로가 눈길을 마주할 순 없었지만 회장님이란 사람이 자신을 살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우가 죄를 짓고 3년 옥살이를 한 후,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서 왔다고는 하지만 자신한테 ‘물건’이라거나 갈 길을 정하지 못한 '공수표'란 사형스님 표현은 자신을 너무나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쩍 지팡이 회장님과 눈길이 마주쳤다. 깨진 사금파리에서 섬광이 나듯 긴장하는 맘이 들었다. 성도 이름자도 모르는 승용차 탄 회장님!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기와집 오야붕에게 느꼈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가까이서 보자 꼿꼿한 허리가 더 반듯하게 보였다.


***


이상한 일이었다. 오야붕은 상대방을 대면하는 첫 순간 누구와도 눈싸움에서 이긴다고 했었다. 강렬한 눈빛이 뭔 가를 사냥하려는 딱 그 눈빛이었다. 승용차 뒷문을 열어준 운전기사가 무엇인가를 식당으로 분주하게 날랐다.


아마도 절간에 오는 길, 식자재를 사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용차를 타고 오는 '불자'들은 미역이나 다시마, 참치 같은 반쯤은 조리 된 식자재를 절간 삼시세끼를 감안 사오기도 했다.


회장님 일행 두 사람은 대웅전에 들어가 큰절을 몇 번이나 했는지 삼 분도 되기 전 밖을 나왔다. 그리곤 사형 스님과 나란히 접견실에 들어가 차담을 나누었다.


파마가 싫어서 머리를 깎고 무늬만 스님이라는 주방 스님이 쟁반에 차를 날랐다.


“누굽니까? 기사 딸린 승용차를 타고 온 걸로 보아 돈깨나 있는 부자로 보이는데?”


정우는 감방에 가기 전 거친 사회생활 탓에 ‘범털’과 ‘개털’을 단박에 구별해 내는 눈을 가졌다. 지난밤 ‘용순’이 아빠 일이 있고 난 후 절간 사람들 누구와도 한결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편하게 말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글쎄말이에요. 1년이면 몇 차례씩 다녀가는데, 자세한 말은 안 하니까 누군지 모르지만 손은 커요. 나한테도 ‘용순’이한 테도 학비 하라고 용돈도 주시고.”


정우는 돈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제 멋대로 사는 것을 수 없이 봤던 지라, 궁금증이 일었다. 돈이란 거짓과 위선을 감추는 ‘마술’ 같은 것이기도 했다.


***


교도소 생활 3년! 감방 안에서는 정우처럼 힘깨나 쓰는 깡패가 ‘방장’이라서 가장 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겉모습이었다. 방장 위에 영치금이 수 천 만원씩 된다는 ‘범털’이 있었다. 주로 경제범이었다.


무더운 여름철 한 사람이 세 평 공간을 모두 써도 비좁은 감방, 십여 명 재소자 단체 생활은 그야말로 생지옥이었다. 겨울철에 비해서 두 배쯤 곤욕이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바람을 일으키는 선풍기 한 대가 고작이었다. 바람 방향은 감방장이나 범털 차지였다. 머리부터 흐른 땀이 얼굴 가슴 아랫도리로 흘러 내렸다. 세수를 하고 닦지 않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감방장이 덥다고 언성을 높이면 가장 아래 막내는 무더운 날씨가 자신 잘못도 아닌데 설설 기어야만 했다. 불쾌지수가 높아서 까딱했다간 서로 육박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성 모델이 나온 주간지를 펴서 부채질로 바람을 일으켰다. 작두시암 펌프질을 하듯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해야만 했다. 땀은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러나 이렇게 무시무시한 감방장보다 더 힘 센 놈은 영치금 많은 범털이었다. 돈은 무서운 깡패도 제압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운동 시간이면 스치듯 만나는, 멸치처럼 마른 2사동 2114 경제범은 영치금이 수 천 만원이나 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범털 중 왕인 셈이었다. 얼마나 성격이 괴팍한지 족제비처럼 하관이 빠진 못생긴 얼굴이었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꼬였다. 떡고물을 바라고 모여든 추잡한 인간들이었다.

교도관이나 기세등등한 감방장이라도 이 사람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했다.


***


한 시간쯤 지났을까? 회장님과 사형 스님 일행이 차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부처님을 만나러 사찰에 왔으면 대웅전에서 오래 머물러야 하는데, 부처님은 잠깐 만나고 사형 스님을 만났다. 주방 스님처럼 귀찮고 나쁜 일을 감추기 위하여 무늬만 불교 신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여성은 식당 칸에 와서 자신이 가져온 식자재 조리법을 설명하느라 아는 척을 했다. ‘용순’이와 주방스님이 심심하지 않게 말 상대가 되어주었다.


회장님 일행이 운방사에 머문 시간은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정우야, 회장님 따라가서 주신 것 받아 오거라.”


보국스님이나 정우가 사형 스님이라고 부르는 스님은 환갑 나이가 훨씬 지난, 운방사 주지스님이었다.


주지스님은 실제 절간 주인으로서, 대웅전 성금함이나 재력가, 불자들에게 여러 가지 명목 시주를 받아서 살림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곳, 금전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더구나 운방사 스님들은 십여 명이 넘는 대가족이었다.


절간에서 삼시세끼 얻어먹고 있으면서 사형 스님 얘기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순수하게 부처님을 만나러 절간에 온 처사님이나 보살님은 오랜 시간 이 곳에 머무르며 채식으로 된 공양도 하고 대웅전에서 ‘천배’나 ‘백팔 배’를 올리는데, 회장님 일행은 곧바로 돌아가겠다고 채비를 했다.


회장님 일행을 따라서 어디를 가는지도 몰랐다. 사형스님과 합장을 나누고 돌아갈 때 승용차 조수석에 탔다. 바퀴가 구르자 쿠션 좋은 승차감이 등짝을 타고 머리로 왔다.


옛날 감방에 가기 전 기와집 시절은, 형님들과 각진 그랜저를 타고 다니며 휘파람을 불었다. 승용차와 오토바이도 그렇고 세게 달리는 스피드는 뭐라도 좋았다.


100KM 쯤 죽어라고 달리다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ABS 센스가 작동되며 네 바퀴가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차체가 떨렸다. 엔진은 달리려고 하고 브레이크는 세우려고 하고, 두 가지 기계장치가 전쟁을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자동차를 세우는 브레이크가 있어야만 엔진은 더 빨리 더 세게 달릴 수가 있었다. 만약 브레이크가 없다면 자동차는 겨우 우마차가 끄는 수레와 비슷한 기능밖에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자넨, 이름이 뭔가?”


건네는 첫 마디가 자신 아랫사람을 대하듯 ‘자네’라고 하대를 했다.


“이정우 인데요.”


처음으로 자신 이름을 남에게 말했다. 종전 이름 구석이 보다는 훨씬 있어 보이고 맘에 들었다.


“나이는 몇 이고?”


“스물여덟이요.”


정우도 약간은 빈정이 상해서 단답으로 했다.


“자네 같은 젊은 사람이 절간에 머무는 것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주지스님한테 몇 가지 물어봤으나 정확한 말씀은 안 하시던데. 절에 머물러야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정우는 회장님 일행을 운방사에서 처음 만났다. 오히려 사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꼭 말해야 됩니까? 왜 그러시죠?”


“자넬 처음 봤는데 눈빛이 살아 있어서 나하고 일했으면 해서 말이야. '공수표'라고 하던데, 어차피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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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화 정우와 사형스님은 부자(父子)? 24.09.08 341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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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5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8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60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9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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