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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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작품등록일 :
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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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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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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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서울 나들이

DUMMY

회장님은 사형스님이 언급했던 '공수표'란 말을 그대로 옮겼다.


그렇지만, 정우 얘기를 자신 맘대로 재단했던 사형스님이 왜 절반만 얘기하고 나머지 절반은 안 했을까?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늘은 사형스님 심부름만 정확하게 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왠지 지팡이 회장님한테선 이모님을 마른 북어 패듯 폭행하던 오야붕에 대한 느낌을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가야 할 길을 잃은 상황, 삶의 길잡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호기심은 있었으나 오늘은 긴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러세요, 아저씨! 회장님과 함께 일하면 절간에서 장작이나 패야 하는 허드렛일과는 비교도 안 되죠. 출세할 수 있는 서울에서 살 수도 있고.”


뒷좌석 회장님과 나란히 앉은 여성이 가만히 있지 않고 끼어들었다. 절간 일을 허드렛일이라고 폄하하는 것이 아마도 두 사람은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알처럼 인간이 많은 서울은 전과자에겐 면도날처럼 위험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출세나 성공기회는 많다고 할 수가 있었다.


계속해서 거절할 수는 없었다.


“갑자기 받은 제안이라서. 이 자리서 즉답을 드릴 순 없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근데, 무슨 일인데요?”


“가서 보면 알겠지만 뭐, 어려운 일은 아니야.”


회장님은 정우가 해야만 하는 업무가 무슨 일이라고 콕 집어 대답을 안 했다. 무슨 일인데 함께 하자는 것일까? 약간은 궁금증이 들기도 했다. 기사 아저씨는 모든 사실을 훤히 알고 있을 텐데도 한마디 끼어 들지 않고 입을 꾹 다문 채 운전만 하고 있었다.


‘호기심’은 때론 상대가 힘이 센 부담스런 경우라면, 약간은 긴장이 되거나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회장님은 오야붕과는 다른, 곁을 내 주는 인자한 사람일까? 서로가 솔직하게 털어놓고 대화를 안해선지, 차내 분위기가 조금은 서먹하기도 했다.


***


꽤나 지루하게 달려서 늦은 오후 서울에 도착했다. 출발할 때는 쿠션 좋은 승차감이었는데, 똑같은 자세로 오래 타다 보니 승차감은 지루함으로 바뀌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도 이런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서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번잡한 도시였다. 주변에서 바퀴를 나란히 하고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역시 달랐다.


체육관 달린 기와집에서 빚쟁이들이 서울로 도망가거나 생사(生死)를 함께하자고 혈서까지 쓰고 한 식구가 되었던 조직이 변심, 잠수 타면 끝까지 쫓아서 작업을 나오기도 했었다.


시냇가 수많은 자갈 중 맘에 드는 조약돌을 찾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서울에서 빚쟁이나 식구를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오야붕이 얼굴에 내천자를 그리며 '당장 찾아 와라'고 내리는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날카로움이 심장에 꽂혔다.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런 바람에 서울 출장이나 작업은 타지에서 사냥개가 후각을 동원 냄새를 맡듯 미아리, 천호동, 영등포 구석구석을 사냥개처럼 쏘다녔다. 발바닥이 아프도록 하루 종일 휩쓸고 다녔다. 끼니 때를 넘겨 허기 질 때도 많았었다.


서울 출발 전 ‘내일은 ‘용순’이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고추나 오이 모종을 사와서 햇볕이 좋은 곳에 심어봐라’ 고 했던 사형스님 말씀이 생각났다. 그러나 어쩌면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내 들어와서도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 시커먼 바윗돌에 싸인 북한산 자락이 가깝게 보였다. 불광동, 평창동과 이어진 북한산은 집채만 한 둥그런 바위가 많았다.


승용차가 한적한 경사진 길을 오르더니 육중한 대문 앞에 정차 했다. 주차장 셔터가 자동으로 올라갔다. 슬쩍 들여다보자 부잣집 주차장 답게 크고 작은 자동차가 많았다.


차에서 내린 회장님 일행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북한산이 마당과 이어진 듯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서울이 반쯤은 내려다 보이는 수백, 수천 평 저택이었다. 체육관 딸린 기와집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정원에서 작업복 차림으로 일하던 아저씨가 가까이 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행동 만으로 인사할 뿐 구사하는 언어는 없었다. 순간 집이 커서 그런지 아늑함 보다는 을씨년스럽단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잔디 마당을 지나 현관에 들어서자 도우미 아줌마가 가까이 와서 인사를 했다. 마당에서 일하는 아저씨와 같이 고개 숙여 몸으로만 했다. 이번에도 아무런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정우 역시 회장님을 따라 들어가며 답례로 목례만 했다.


***


“여기, 차 세 잔 주세요.”


“네.”


그제 사 간단하긴 했지만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내는 첫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다.


운전기사, 정원사, 도우미까지 회장님을 가까이서 돕는 사람이 셋이나 됐지만 처음으로 들어보는 음성이었다. 그것도 주인이 시키는 일에 대한 대답으로, 짧은 음성이었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은 주고받는 말수가 적으면 인간미가 떨어지고 더러는 상대방 뜻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서 오해 할 수 있다. 딱 그런 분위기였다.


거대한 저택 답게 실내는 거창했다. 정우는 태어나서 이런 집 구경은 처음이었다. 마치 커다란 배에 혼자서 탄 듯 거대한 소파, 원래 소파란 사람들이 안락하게 앉아 쉬거나 담소를 나누는 곳인데 거실을 지키는 사치품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 평 규모 감방에서 7~8명이 생활했는데, 교도소 전체 수백 명 재소자가 함께 생활해도 될 만한 거대한 공간이었다. 보는 것 만으로도 주눅이 들었다.


재개발 구역이나 서민들은 열 평도 안되는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사생결단 목숨을 거는 데, 똑같은 인간임에도 사는 게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놀랄 노자였다.


회장님을 따라서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몇 계단만 내려가면 되는데 실내 승강기를 탔다. 보는 것 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한 층 내려가 승강기에서 내리자 1층과 같은 크기 또 다른 공간이 나왔다.


전창 밖 북한산이 마당인 듯 가까이 바위와 어우러진 푸른 숲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이곳이 산이야? 집이야? 실로 장관이었다.


“와, 죽인다.”


아름다운 경치에 정신을 잃은 정우는 그만 가벼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거실 바닥엔 커다란 호랑이가 누워있었다. 혼비백산 깜짝 놀랐다.


“어이쿠 깜짝이야.”


살아있는 호랑이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누워있는 모습이 공포심을 들게 했다.

어찌나 큰지 황소처럼 큰 호랑이 가죽을 벗겨서 응접실 바닥에 깔아 놓았다. 살아 있을 때는 백수의 제왕 답게 지리산 같은 거대한 산에서 제왕(帝王)노릇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금이 저려왔다.


“와, 호랑이 크다. 이거 진짜예요?”


“당연하지. 어느 집이나 이렇게 크고 무서운 호랑이가 지키고 있어야만 주인이 건강하고 사업이 번성하는 법이라고.”


우리나라에는 한 마리 호랑이도 살지 않는 현실에서 말도 안 되는 괴변이었다.

지금껏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얘기였다. 회장님은 참으로 희한한 것을 믿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긴 이 분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지팡이를 무슨 이유에선지 귀찮게 들고만 다녔다.


멧돼지가 출몰한다는 깊은 산길을 오르며 급습에 대비, 몽둥이를 들고 가는 것과 같은 이치는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네! 이름이 정우라고 했지?”


정우라고 한번 얘기했는데, 회장님은 용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우는 아직도 개명한 이름이 입에 혀처럼 익숙치는 않았다.


“예, 이 정우입니다.”


“고향은 어딘가?”


정우는 부모님이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 모르는지라 가슴속에 들어있는 고향 구례 같은 지명은 없었다. 지금껏 고향을 물어 보는 사람도 없었다. 미처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성미 급한 회장님은 다음 말을 이어갔다.


“사실은 내가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한데, 주지스님은 자넬 갈 길이 정해지지 않은 공수표라고 하면서도 이후 한 마디도 안 해서.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말이야.”


“예에.”


오랫동안 뵙게 되면 차차 알게 되겠지요. 사형스님과 회장님의 관계도 잘 모르면서 자신이 불필요한 얘기로 오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회장님 역시, 무엇인가를 받아가라는 심부름은 핑계이고, 정우에 대하여 뭔 가를 파악하려고 데려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


얼마 후 절간에 함께 왔던 젊은 여성이 차와 하얀 봉투를 가지고 왔다.


“이거, 주지스님한테 전해 주면 되네.”


밀봉한 봉투이긴 했지만 얄팍한 느낌이 돈이라고 짐작되었다.


“사모님! 이 집은 대통령이 사는 집처럼 좋아요.”


정우는 약간은 과장했다. 젊은 여성에게도 처음으로 사모님이라고 부르며 곁을 내주었다.


“호호호, 대통령 사는 집 가 보셨어요?”


답례로 금방 부드러운 반응이 왔다. 쥐뿔도 없고 바닥이면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돈 많은 것 자체가 비난 받을 일도 아니었다.


“아니요. 가보진 않았지만 이 집처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잘 모르는 젊은 여성에게 사모님이란 호칭이 쉽게 나오진 않았다. 그러나 이런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은 ‘사모님’ 소릴 들을 만한 자격이 된다고 믿었다.


정우는, 돈 많은 부자들을 비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묘하게도 부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아무런 공감대도 없는 세 사람이 서먹서먹한 분위기에서 차를 마셨다. 저 멀리 북한산으로부터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자신과 함께 일하자는 회장님 제의에 승낙했더라면 최소한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을 텐데, 되도록 말수를 줄였었다. 갑(甲)과 을(乙)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흔한 일은 아니었다.


“자넨, 운방사에 돌아갈 땐 차 편은 어떻게 가나?”


“이 시간 터미널에 가봐야 버스는 없을 테고, 회장님 댁 차고에 자동차 많던데 한 대 빌려서 타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정우는 용기 내 자신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뭐야? 우리 집 차를 빌려서 타고 간다고? 내가 오늘 처음 만난 자네를 어떻게 믿고?”


“회장님도 처음 만난 저를 믿고 함께 일하자고 하셨잖아요?”


정우 역시 뒤지지 않았다.


회장님은 의외라는 듯 뜨악하게 반응했다. 허긴 날마다 바꿔 매는 넥타이처럼 주차장 자동차 숫자는 많아도 사람들은 자신이 타는 자동차 빌려주는 일을 극도로 꺼려했다.


“여기, 내 집에서 자고 내일 버스로 가면 안 되겠나?”


“그건 안 됩니다.”


정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형스님과 내일은 ‘용순’이 학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고추, 오이 모종 사다 심겠다고 약속했거든요.”


“허허, 그래도 그렇지. 단 한순간 망설이지 않고 남의 재산인 자동차를 자신 맘대로 타고 가겠다는 두둑한 배짱이 맘에 들기는 하네만. 요전에 자네 직업은 뭐였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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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화 단감, 매실나무 24.09.07 370 12 12쪽
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4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1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08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08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5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09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5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2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3 18 12쪽
»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6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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