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한 깡패가 너무 유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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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천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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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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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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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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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단감, 매실나무

DUMMY

감방과도 같은 이런 적막한 곳에서 ‘용순이'와 달마가 없다면 무척 적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라곤 ‘용순이'와 달마 뿐이었다.


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미래를 위한 주춧돌을 놓은 일도 아니라서 자신 모습에 쓴 웃음이 지어졌다. 산에서 땔감을 하는 일은 사형스님과 정우 둘이서만 필요를 느끼는 보잘것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한나절 자른 땔감을 지게에 지고 내려왔다. 경사진 곳에서는 등에 멘 지게 발목이 걸려서 위험하기도 했다. 이동 수단인 지게는 양쪽 어깨와 상체 고르게 힘을 줘야만 넘어지지 않고 산을 내려 올 수가 있었다.



“둘이서 반나절 동안 장작을 겨우 그만큼 했느냐?”


사형스님은 정우와 ‘용순'이가 해온 땔감이 흡족하지 않다는 듯 수고 했다는 칭찬보다는 꾸중도 칭찬도 아닌 어중간한 말을 했다. 정우 자신이 봐도 많은 양은 아니었다.


“예, 사형스님. 톱질이 생각보다 힘들어요. 그렇지만 저한테 생각이 있으니까 운방사 올 겨울 땔감은 걱정하지 마세요.”


“정우 네놈이 괜시리 큰 소리를 치는구나?”


스님은 믿음이 안 가는 헛소리라는 듯 냉소를 지었다.


“정말이라니까요.”


인간은 누구나 지나간 세월에서 경험이나 지혜를 얻었다. 그런 탓에 공짜 나이는 없다는 말이 있고, 세상은 지식보다는 지혜로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 말도 있었다.


이모님을 엄마처럼 여기며 20여 년을 살았던 기와집! 심지어 서너 평 감방에서조차 동료들과 별 사탕이나 건빵으로 바둑 알을 만들어서 심심할 때면 오목을 두었던 일이 생각났다. 인간은 누구나 꽤나 창의적인 동물이었다.


긴긴 3년 감방살이, 시궁창 물로 세수 하듯 참담했던 순간이 너무나 많아서 가위로 잘라내 버리고 싶은 세월이었다.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빈 물통처럼 한 방울 물도 남기지 않고 거꾸로 쏟아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생각이 더 났다. 빙글빙글 도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단 하나 지워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


기와집 옆은 기름 냄새나는 오토바이 가게, 그 옆은 기계톱 가게였다. 두어 뼘 날이 달린 기계톱이 줄을 당기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어찌나 큰지 오토바이 손잡이를 돌릴 때 나는 요란한 소리였다.


톱날과 연결된 체인이 빙글빙글 돌았다. 허벅지 굵기 통나무가 톱날에 스치기만 해도 칼로 두부 모 자르듯 쉽게 잘려 나갔다.


땔감을 준비하는 일은 기계톱이 있어야만 헛간 가득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계톱이 몇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대신 했다.


그러면 사형스님께 칭찬도 듣고 ‘용순이'한테도 삼촌은 톱질을 못한다는 놀림을 안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나절 자전거 짐칸 ‘용순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읍내로 갔다. 짐칸 ‘용순이'는 더 빨리 달리라고 장난삼아 채찍질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강제로 기와집에 끌려갔던 일은 잊어버린 듯 했다. 역시 강한 애였다.


고갯길을 넘어 가는 길은 숨이 차고 호흡이 가빴다. 그러다가 내리막길에서는 페달을 밟지 않아도 혼자서 아래쪽을 향하여 바퀴가 세차게 굴러갔다. 자전거에 실은 몸이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인생도 오르막을 올라갈 때는 숨이 차고 힘들지만 내리막을 지나는 순간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굴러가는 쉬어 가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간 생활은 이도 저도 아닌, 그런 시간이었다.


노인들만 사는 수만리, 스님들만 사는 절간을 왔다 갔다 하다가 읍내 나오면 눈도 코도 호강을 했다. 시골사람이 도시 나온 기분이었다. 길거리 분주하게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 만으로도 활력이 넘쳐 났다. 가게도 건물도 많았다.


운방사 목탁소리, 고즈넉한 풍경소리, 온종일 지나도 말 걸어줄 사람 하나 없는 시골 집에서 푸른 산과 하늘만 쳐다 보았는데 오늘은 눈호강을 했다.


오만가지 희한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소 똥, 닭 똥 냄새 나는 농촌 마을과 달리 읍내는 도시 냄새였다. 호미와 낫을 모르는 얼치기 시골 사람도 있었다. 벌렁벌렁 오랜만에 코가 최고로 기능을 했다. 오일 냄새나는 오토바이 가게를 지나 얼마쯤 갔을까?


허기진 배에서 식욕을 당기는 고소한 냄새가 후각을 깨웠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벨트가 도는 방앗간이었다. 방앗간은 추억의 공간이었다.


청춘 남녀의 달콤한 첫사랑을 생각하면 동네 앞 물레방앗간, 가족이 만나는 잔칫날을 생각하면 떡방앗간이 생각났다. 정우는 물레방앗간이나 떡방앗간 추억은 없었다.


***


기계톱 가게에 들렸다. 지난번 서울 갔을 때 회장님이 용돈에 보태라고 주신 백만 원 수표를 쓰기로 했다. 버스터미널 앞 공터는 장날이라고 닷새 장이 섰다.


닷새 장은 이 지역 사람들 서로가 장사꾼이자 손님이었다. 직사광선에 얼굴이 검고 인상이 선해 보이는 농부가 감나무 묘목을 키워서 동그란 분을 만들어 나왔다.


장사가 초보운전이 듯 네모난 박스 조각에 단감나무라고 매직으로 쓴 삐뚤빼뚤한 글씨체가 발걸음을 잡았다. 이 역시 투박한 시골 사람들 ‘상술’이었다.


그러나 ‘밑지고 판다’는 장사치와 ‘시집가기 싫다’는 노처녀의 능청은 우리나라 3대 거짓말이므로 믿어주기로 했다.


이 정도 연령대 농부는 ‘아저씨’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어르신’이라고 불러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도 저도 아닌 ‘사장님’이라고 편하게 부르기로 했다.


“사장님! 이거, 단감나무 맞아요?”


“암만이요. 내년 이면 단감 열릴텐데, 거짓말 할 수 있나요. 싸게 드릴 테니까 튼실한 놈으로 들여가요. 젊은 양반.”


사장님이라고 했더니 실상을 안다면 전과자인 정우에게 ‘양반’이라는 호칭이 답례로 왔다.


전과자!!!

눈, 코, 입, 똑같은 인간임에도 감방에서 형을 산 전과자는 보통 사람들이 이방인을 대하듯 차별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전염력이 없는 문둥병 병균을 옮긴 것처럼 함께 지내면 자신도 언젠가 전과자가 될 것이라고 부담스럽게 생각했다. 교화(敎化)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예, 이 정도 크기면 좋겠는데 자전거를 타고 와서요.” 정우는 망설였다.


“사는 집이 어딘데요?”


“저기 수만리요.”


“그럼, 이따가 장 파하고 가는 길에 내려 줄게요. 어차피 그쪽으로 가야 하니까.”


“원래, 나무는 봄에 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모르는 소리, 어린 모종은 땅 심이 좋은 봄에 심어야 하지만 이 정도 목대는 꽁꽁 언 겨울만 아니라면 아무 때라도 상관없어요.”


“예에~ 근데 무겁게 왜 저렇게 분이 큰 거예요?”


“제 살이 많아야만 어디서나 고생을 덜하고 뿌리를 쉽게 내린다니까요? 분은 무거운 것만 빼면 크면 클수록 좋아요. 부모님이나 친구를 데리고 이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해요.”


“하하, 나무가 부모님이나 친구를 데리고 이사 가요? 말씀 재밌게 하시네요?”


맞는 말이었다. 본래부터 자라던 곳에서 고향 흙과 함께 옮기지 않고 무겁다는 이유로 나무만 옮겼다가는 십중팔구 죽었다. 십 만원에 단감나무 매실나무를 사기로 했다.


그러나 백만 원 수표는 돈이긴 했으나, 읍내선 사용할 수 없는 돈이었다. 사장님은 잔돈을 내줄 수가 없다고 난처해 했다.


십구 만원 한다는 기계톱 가게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인 아저씨는 팔아야겠다는 욕심에서 자신이 번개처럼 농협을 갔다 올 테니 가게를 대신 봐 달라고 초면인 정우에게 부탁했다. 이곳은 모두가 손님이고 주인이었다.


“아니에요. 제가 자전거 타고 빨리 갔다가 오는 것이 좋겠어요.”


농협에서 백만 원 수표를 바꿔오자, 여러 가지 것을 살 수가 있었다. 먹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준비하는 것들이었다.


***


문방구에 들려서 ‘달마’ 목줄에 채울 이름표를 샀다. 그리곤 매직으로 ‘달마’라고 썼다. 에너지가 하늘에 뻗쳐서 온 동네를 쓸고 다니는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달마’는 산속 절간에서만 자랐다.


사람이라면 정우나 ‘용순'이처럼 엄마,아빠, 형제가 없는 외로운 강아지였다. 동병상련이었다. 강아지한테 이름을 지어 목줄을 채워준다는 것은 스물여덟 한창 나이 정우에게 너무나도 하찮은 일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일은 명료한 것처럼, 절간에서 잡일로 소일 하는 정우에게 이름표를 만들어 채워주는 일은 나름 기분 좋은 일이기도 했다.


늦은 오후 감나무, 매실나무를 실은 트럭이 왔다. 장터에서 여러 개 나무가 한자리에 있을 때는 이렇게 큰 나무인지 몰랐다. 그러나 사장님이 마당에 내려준 단감나무, 매실나무는 목대가 손목 굵기 이상 최소 10년은 지난 나무였다. 여러 개가 있을 때와 한 개만 있을 때의 차이였다.


나무는 바람과 햇볕, 물이 생명이었다. 담장 너무 가까이 심으면 햇볕을 덜 받게 되고, 가지가 자라면서 담장이 방해가 될 것 같았다. 여유 있게 안으로 들여 구덩이를 파야겠다고 생각했다. 삽을 빌려와야만 했다. 살림을 제대로 하자면 오만가지 것들이 필요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단감나무 심으려고 삽 빌리러 왔어요.”


오늘은 할아버지도 마당에서 고추를 널어 말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고추를 왜 건조기에 안 하시고 마당에서 말려요?”


“이거야 우리가 먹을 것 조금인데, 기름 아깝게 건조기를 돌릴 수 있나? 그나저나 젊은 사람이 감나무를 심는다는 걸 보니까 제법인데, 올해 몇 인가?”


생선 가운데 토막처럼 거두절미 몇이냐고 물어보는 맥락으로 보아 나이를 묻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네, 스물 여덟이요.”


“기특하구먼. 젊은 사람들은 모두 시골이 싫다고 떠나는 마당에 지난번에도 청년이 우리 집 닭 값을 받아 줬다지?”


“예. 병아리는 잘 커요?”


정우는 자신을 찾아 온 깡패 새끼들이 저지른 일이라서 한편으론 죄송한 일이라서 길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내일 모레 우리 집 마당에서 우리 영감 칠순 잔치 할 건데, 그날 밥 먹으러 와요.”


“예, 할머니! 알겠어요. 칠순 축하드려요. 근데, 큰 식당 빌려서 안 하고 마당에서 잔치 하나 봐요?”


“암만. 아들, 딸, 손주 녀석들도 그렇고 모두가 다 아는 동네 사람들인데 비싼 헛돈을 쓸 수야 있나?”


칠순 잔치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자식이나 부모님이 서로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자식들이 졸업식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 인생에 감사장을 주는 날이기도 했다.


어르신은 옮겨 심는 나무는 거름을 넉넉하게 줘야 한다며 헛간에서 봉지가 뜯겨진 밑거름을 꺼내왔다.


빌려온 삽으로 무릎 깊이 구덩이를 파고 대문 앞엔 단감나무를, 장독대 옆엔 매실나무를 심었다. 종일 햇볕이 잘 드는 곳이었다.


거름을 뿌리 가까이 주면 강한 독성 때문에 시들 시들 앓는다고 했다. 그루터기 두어 뼘 주변에 고르게 주었다. 적은 비용으로 겨우 두 그루 나무를 심었는데 3년짜리 적금을 부은 듯 기분이 뿌듯했다.


정우는 아직껏 미래를 위한 단 한차례 적금 같은 것을 해 보지 못했다. 미래를 생각하는 여유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스물여덟! 이제 서야 돌 지난 아기가 첫걸음 하듯 한 발짝 앞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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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잡념(雜念) 24.09.06 425 11 12쪽
26 26화 인과응보(因果應報) 24.09.05 432 10 12쪽
25 25화 용순이 실종 +1 24.09.04 410 13 12쪽
24 24화 박수무당은 아니지? +2 24.09.03 410 11 11쪽
23 23화 동가 숙(宿), 서가 식(食) +1 24.09.02 466 17 12쪽
22 22화 운방사 백중 +1 24.09.01 527 15 12쪽
21 21화 지리산 백사 +2 24.08.31 545 19 12쪽
20 20화 지리산 연주암 +1 24.08.30 589 15 12쪽
19 19화 깡패 양아치 +2 24.08.29 610 13 12쪽
18 18화 스님과 재소자 +1 24.08.28 646 14 11쪽
17 17화 회장님 제안 거절 +1 24.08.27 653 17 12쪽
16 16화 원석(原石), 정우 +1 24.08.26 694 18 12쪽
15 15화 서울 나들이 +1 24.08.25 718 19 11쪽
14 14화 오야붕 닮은 회장님 +1 24.08.24 759 17 12쪽
13 13화 망나니 ‘용순’이 아빠 +2 24.08.23 794 20 12쪽
12 12화 별의별 사람들 +1 24.08.22 798 18 12쪽
11 11화 탁발(托鉢) +1 24.08.21 877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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