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고 귀농합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멍때림
작품등록일 :
2024.08.13 12:26
최근연재일 :
2024.09.09 22:32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2,798
추천수 :
122
글자수 :
90,380

작성
24.08.19 22:58
조회
188
추천
8
글자
9쪽

귀농결심

DUMMY

헤어지자는 말이 나온 순간.

그녀는 얼어붙었다.

솔직히 당황했을 것이 당연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다니.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게 분명했다.


“······ 자기, 그게 무슨······.”

말도 채 잇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

나는 그저 말없이 앉아 있었다.


“······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갑자기 왜 그래.”

실시간으로 감정이 뒤바뀌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tv의 채널이 바뀌듯.

분노, 슬픔, 우을 등등.


“말 좀 해봐. 왜 헤어지자는 건데. 설마 지금 브라이덜 샤워 때문에 그래?”

말을 쏟아내던 그녀는 이내 혼자 결론을 지었다.

순식간에 태도가 바뀌었다. 팔짱을 끼고서 날 응시했다.


“그깟 브라이덜 샤워 안 하면 될 거 아니야. 브라이덜 샤워가 뭐라고 헤어지자는 거야.”


아아.

이 순간 남아있던 일말의 감정의 찌꺼기들마져 사라졌다.


이야기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본인만의 세상에서 질문과 대답을 하고서 결론을 지어버리는.

그 삶은 분명 나를 옥죄어갔을 것이다.


“······ 일단은 시간을 좀 갖자.”

“무슨 시간을 갖자는 거야. 우리 결혼할 거 아니였어?”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내가 말 꺼낸 적 없어. 소율아.”

“······.”


그녀는 뭐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던 것 같았다.

분명 그동안의 내 모습과는 달랐기에 반응하지 못했기에.

대부분 당신의 뜻대로 행했다. 아니, 모든 것을.


수동적인 연애.

그녀가 바라는 곳을 갔고, 그녀가 바라는 음식을 먹으며, 그녀의 주도하에 연애를 했다.

실에 달린 마리오네트처럼.

그 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직장이었기에 숨쉴 구멍조차 없었다.


“더 이야기할 건 없을 거 같다. 먼저 들어갈께.”

평소라면 그녀를 바려다주고서 집에 갔을테지만, 오늘은 먼저 자리를 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렇게 나는 그녀를 내버려두고, 카페를 나섰다.


* * *


김소율은 어쩔 줄 몰랐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의 김동현의 모습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김동현은 언제나 예스맨이었다.

언제나 받아주는 사람이 바로 김동현이었다.

물론, 가끔 이견을 제시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연인 사이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헤어지자고 했다.


언제나 곁에 있어줄 것만 같았던 그가.


헤어지자고 말했다.


입술이 부르르 떨려왔다.

이 떨림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애써 무시했다.

목이 말랐다.


눈 앞에 보이는 커피가 오늘따라 시커멓게 느껴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항상 샷을 연하게

이 커피 주문도 그가 해줬던 것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줬는데


아 몰라.


보기도 싫었다.

덥썩.

소율은 그대로 들이켰다. 맥주를 마시는 거 마냥.

"누가 헤어지자면, 못 헤어질 줄 알고."

처음에는 당당한 목소리였지만, 점차 말 끝이 흐려졌다.


‘잠깐만, 진짜 헤어지면 어떻게 하지.’

말을 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았다는 뜻.

동현과의 추억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현실이 눈 앞에 다가왔다. 김동현과는 같은 팀.

단순하게 대면하는 사무직이었다면, 무시로 일관했다면 상관없을 일이었다.

그러나 헌터는 달랐다.

헌터는 팀워크가 중요한 만큼, 계속해서 얼굴을 마주할테고, 그러면 팀원들이 이 상황을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몰래 사내연애 중이었는데, 그 둘이 깨졌다?

그럼 당연히 좋은 말은 나올 수가 없었다.

헌터 길드라고 해서 일반 회사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게이트를 돌기 위해서 이동하는 시간 동안, 혹은 길드 내의 훈련장이든, 사람들은 색안경 어린 시선을 볼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뒷담화를 하거나.


“흐흠.”


감성적이든, 이성적이든 헤어질 수는 없었다.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팔짱을 끼고 고심하던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휴대폰 속 한 사람의 번호를 찾았다.


엄마아들.


동생인 김재현의 번호였다.


‘일단은 바로 말하지는 말자.’


동현과 소율 사이의 편을 굳이 들자면, 동현의 편을 들게 뻔했으니.


결심과 동시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음이 울렸다.

두두두.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전화를 끊은 것이었다.

“이게, 진짜!”

다시 한번.


끊었다.

문자가 왔다.


‘왜?’

덜렁 한 글자라니.

평소라면 대판했겠지만, 지금은 숙여야 했다.

‘잠깐 통화될까.’

“왜”


아 진짜. 참자 참아.

평소라면 쏘아댔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좀 급해서 그래.’

전화가 왔다.

“왜?”

용건만 간단히. 라는 귀찮음이 철철 느껴지는 목소리.



휴.

참자, 참아.


“너 혹시 동현씨랑 만나서 무슨 이야기 했어?”


“무슨 얘기? 너 혹시 형님이랑 싸웠냐?”


목소리가 달라졌다.


“싸웠으면 무조건 네 탓. 당장 싹싹 빌어.”


이게 지 누나 편 들어주지는 못할망정.

일단은 참는다.


“아니, 동현씨가 이상해서.”

“이상할 게 뭐 있어. 당연히 너가 뭘 했겠지. 됐고 끊는다.”


말을 다 듣지도 않고서 말을 끊어버렸다.


“아니, 이게 진짜!”


그런 그녀의 모습을 카페 사람들은 몰래 바라봤다.

드라마 보는 것마냥.


* * *



카페에서 나와서 나는 그대로 집으로 가지 않았다.

이제는 전 여친이 된 김소율 때문에 휴일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대로 집 근처의 공원으로 향했다.

여름 날씨라 사람들은 짧은 옷차림에, 친구, 연인, 가족들과 걸어갔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은 혼자가 되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걸 생각했는데.

지금은 혼자라는 순간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아니지. 결혼생활유경험자.

그게 맞았다.


‘그보다 방금 그 상황은 뭐지?’


또다른 각성?

각성이 불현 듯 발생하는 일이기는 하다.

밥을 먹을 때도, 샤워할 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심지어는 자고 있을 때 각성할 수도 있다.


각성의 증상으로는 감각의 확장.


극한의 순간, 운동 선수가 아드레날린을 분출하는 순간.

그것과 비슷하게 감각의 확장이 이뤄진다.


그러나 방금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조조차 없이 일어난 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만약 전투 중이었다면?


‘······ 문제지.’

그것도 크나큰 문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전투 상황 속에서.

방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나 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위험하겠지.’



훗.

쓴 웃음이 올라왔다. 밴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보였다.


‘······설마 벌써 은퇴를 해야할 줄이야.’


그때였다.



띠리리.


전화가 왔다.

휴대폰 속 이름은 그녀의 동생, 김재현이었다.


“형님! 혹시 김소율이랑 싸우셨나요?”

“음, 싸운 건 아니고.”

“당연히 그렇겠죠. 다 김소율이 문제죠!”



김소율과 김재현의 관계는 좋지 않다.

아니, 김재현은 가족들 모두를 싫어했다. 혐오한다는 게 맞았다.


그런 김재현이 김소율과 사귄다는 사실을 말해줬을 때, 진심으로 다해 말렸었는데.

나는 그냥 웃어넘겼지.


미래의 광경 속에서도 김재현은 언제나 내편이었다.

물론, 끓는 물 속의 개구리마냥 죽어갔지만.


“형님, 그나저나 갑자기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소율이가 연락했지?”


내 물음에 재현은 입을 닫았다.


“괜찮아. 말해도 돼.”


재현이 입을 열었다.


“그게······. 네, 맞아요. 형님. 김소율이 형님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잠시 생각을 했다.

있는 그대로를 말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넘길지.


어차피 알게 될 일이었다.

티격태격하는 사이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생각하는 사이가 바로, 김소율, 김재현 남매였으니.


“헤어지기로 했어.”


“어······. 에?”


재현은 얼타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 형님이 헤어지자고 하신거죠?”


“······ 그렇지.”


“잘 하셨어요. 어차피 형님은 김소율한테 과분한 남자였어요. 성격하며, 생활습관하며 형님이 아니였으면. 진즉에 헤어지고도 남았을 거에요······.”



말을 하다가 머뭇거리던 재현이 말했다.


“형님,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당연히 물어봐도 되지.”


“길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길드.

소율과 나는 같이 길드에 같은 팀 소속의 헌터였다.

그런만큼 재현의 걱정이 이해는 되었다.


어떻게 할까나.


다시는 오지 않을 그 미래의 광경.

그 미래 속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가정은 내가 꿈꾸던 가정은 아니었고, 그저 일에 치여, 가정일에 치이는 그런 삶이었다.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문득, 부모님의 유산이 떠올랐다.

은퇴를 하시면, 시골에 지어놓은 전원주택.

그리고 뒤편의 산과 앞에 있는 밭.


그렇다면?


“그만두고 귀농할 생각이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결혼하지 않고 귀농합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꼬여드는 사람들 24.09.09 48 2 7쪽
22 삼촌 24.09.08 55 2 9쪽
21 노출된 루미에라, 그리고 뒤늦게 깨달은 파급력 24.09.07 65 3 9쪽
20 해피엔딩 24.09.06 76 4 9쪽
19 토마토를 찾는 사람들 24.09.05 72 5 9쪽
18 새어나간 토마토 24.09.04 74 4 9쪽
17 토마토 효과 24.09.03 87 4 10쪽
16 토마토 구매 희망자 24.09.02 84 4 9쪽
15 토마토 거꾸로 해도 토마토 24.09.01 89 6 9쪽
14 토마토 묘목 24.08.31 97 4 10쪽
13 읍내행 24.08.30 106 7 9쪽
12 귀농이지만, 농사에서 해방? 24.08.29 110 6 9쪽
11 이장님 +1 24.08.28 117 4 10쪽
10 기절 24.08.27 122 6 9쪽
9 엘리사를 위하여 24.08.25 141 5 11쪽
8 함께 귀농! 24.08.24 150 4 10쪽
7 나 혼자 귀농? 24.08.23 158 6 9쪽
6 귀농 시작! +2 24.08.22 168 6 8쪽
5 은퇴 (2) 24.08.21 170 6 9쪽
4 은퇴 24.08.20 179 9 9쪽
» 귀농결심 24.08.19 189 8 9쪽
2 1화 결혼 전. 24.08.18 221 8 10쪽
1 프롤로그 24.08.13 221 9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