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빨 헌터가 탑 공략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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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8.1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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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6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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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멸망한 세계

DUMMY

[등반자, 백지훈. 탑의 11층에 입장합니다.]

[칭호, ‘현자의 의지를 이어받은 자’에 의해, ‘현자의 의지’, 백예나가 소환됩니다.]


점차 밝은 빛이 사라짐에 따라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러한 우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숲이었다.

흡사 1층의 테마와 유사한 분위기.


그러나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 백우현 헌터님. 오랜만입니다.”


나와 예나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유세라 헌터님.”


나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그렇게 그녀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예나가 내 뒤로 숨었다.


나는 그런 예나의 어깨를 잡곤 앞으로 끌고 나와 유세라 헌터에게 소개했다.


“이 아이가 지난번에 제가 말했던, 저희와 함께 탑을 공략할 아이입니다. 자, 인사해야지.”

“.. 백예나라고 합니다..”


녀석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엄마 어쩌구하면서 장난친 녀석과 같은 녀석인지 의문이 들 정도.


‘아직 낯설만 하지.’


생각해 보면, 예나 입장에서는 나 이외에 처음으로 지구의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러니 저렇게 낯을 가릴 수 밖에.


“아.. 안녕..?”


예나의 인사를 받은 유세라가 쪼그려 앉아 예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윽고 그녀의 손이 예나의 머리로 향하다가, 이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허공을 허우적거린다.


“저.. 옷 예쁘다. 백우현 헌터님이랑 커플이니..?”

“아.. 네.. 감사합니다..”


흡사 만져보고 싶은데, 만지면 도망갈까 봐 어쩔 줄 못하는 듯한 느낌.

예나 쪽은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유세라는 예나가 마음에 든 듯했다.


‘.. 뭐지?’


“예나.. 라고 했지..? 예쁜 이름이네..”

“감.. 감사해요오..”


한쪽에서는 부끄러움을 타며 어쩔 줄 몰라 하고, 또 한 쪽에서는 가까워지고 싶은데 어쩔 줄 몰라 한다.

도대체 이 어색한 공기를 어떻게 할 거냔 말이다!


이럴 땐 양쪽 다 친분이 있는 내가 나서줘야 한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예나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강한 아이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머리도 똑똑해서, 곧잘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아, 네. 딱히 걱정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여기까지 올라온 게 그 증거니까요.”


다행히 예나에 대한 편견은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제 시대가 변했다.

탑에서의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나이도, 그 무엇도 아닌 클리어한 계층이 증명하니까.


적어도, 여기에 있는 우리는 서로에게 보호의 대상이 아니었다.

동반자.

함께 이 층을 공략하고, 다음 층도 함께 공략할 동료.


그에 따라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곳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딱히 교류하거나 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저희의 목표는 버티는 거니까요.”


내 시선을 눈치챈 유세라가 말했다.

이는 나 역시 사전에 협회로부터 전해 받은 정보를 통해 알고 있던 내용.

11층의 임무는, 제한 시간 동안 버티는 것이었다.


다만 계속해서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우리를 알아보는 듯했다.

정확히는 우리가 아닌 유세라를.


한국 헌터 협회의 미래라고 평가받는 그녀이니만큼, 아무래도 그녀에 대한 정보 역시 다른 나라 헌터들에게 많이 풀린 탓일 테다.


“뭔가.. 달라졌어요.”


그리고 내 옆에 있던 예나가 입을 열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길래 아직도 부끄럼 타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예나의 눈은 착실히 이곳의 전경을 담고 있었으니.


“뭐가?”

“11층이요. 제가 알고 있는 11층은 이렇지 않았어요.”


아, 그랬지.

예나의 아버지인 현자 역시 탑을 오르던 등반자.

그의 기억을 전부 물려받은 예나이니 만큼, 11층에 대한 기억도 있을 터.


“아냐, 똑같아. 내가 받은 정보와 다른 게 딱히 없는걸?”


예나의 말에 반응한 건 유세라였다.

약간의 미소와 함께 사근사근하게 그렇게 말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항상 무표정이기에,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런데 녀석은, 또 유세라를 피해 내 뒤로 숨는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 걸 거야.”


나는 그런 예나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현자가 탑을 공략한 건 이미 오래 전 일.

탑도 그 시간 동안 분명 변화한 것이겠지.


그리고 그때였다.

탑의 메시지가 들려온 것은.


[11층을 공략할 등반자의 정원이 모두 채워졌습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헌터까지 전부 입장한 모양.


[각 등반자에게 11층의 임무가 주어집니다.]



[11층 임무 – 멸망한 세계의 피난민]


임무 설명 : 해당 층은 머나먼 과거, 탑 등반에 실패하여 멸망해 버린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좌절 속에도 언제나 희망은 존재하는 법. 여러분들은 과연 이 세계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클리어 조건 : 피난민들의 도주. (1000/1000)

실패 조건 : 피난민들의 전원 사망, 혹은 등반자 전원 사망

제한 시간 : 1시간


“임무 떴습니다.”


유세라가 아공간에서 검을 꺼내며 준비했다.

나 역시 목검을 꺼내 드는 것으로 준비를 마쳤고

예나는 어딘가 초조한 눈으로 숲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들려오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

그 비명 소리를 시작으로


끼엑- 께륵-


괴물들의 소리가 들려왔고


“옵니다.”


숲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괴물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고블린부터 시작해서 오우거, 이계의 존재들까지.

전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보았던 괴물들과 히든 보스들이었다.


“앞으로 나서지 마십시오. 저희의 목표는 그저 버티는 겁니다.”


우리의 임무는 1시간 동안 저 괴물들의 공세로부터 버티며 피난민들의 도주를 돕는 것.


그러나


“아.. 안 돼요! 사람들이 죽어요..!”


(950/1000)


(872/1000)


(701/1000)


예나의 외침처럼 수많은 피난민들이 괴물들의 손에서 죽어가고 있는 가운데, 그 누구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움직일 생각 조자 하지 않았다.


“1명.”

“네?”

“1명만 살리면 돼.”


이번 임무의 실패 조건은 피난민들의 전원 사망.

그 말의 뜻은 곧, 단 한 사람만 살리는 것으로 1시간을 버티면 클리어할 수 있다는 뜻.


“.. 대부님!”


예나는 자신의 외침이 유세라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애타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물기 가득한 눈동자.

솔직히 말하면, 예나의 그러한 태도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냉철하고 똑똑한 예나라면, 분명 유세라의 말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곳은 이미 멸망한 세계.

이미 이 세계는 진즉에 멸망했고, 저 사람들은 그저 탑이 재현한 허상에 불과했다.


예나 역시 그것을 모르지 않을 터.

그런데, 너는 왜 이리 슬퍼 보이는지 모르겠다.


“예나야.”

“.. 네!”

“뭐 알고 있는 거 있지?”


내 말을 들은 예나가 흠짓했다.


역시나.

예나는 내게 숨기는 것이 있다.


“.. 지금은 알려드릴 수 없어요. 확실한 것도 아니고.”


녀석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장소, 그러나 달라진 테마.

나는 녀석이 무엇을 추측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좋아. 확인하러 가자.”


그리하여 나는 예나에게 말했다.

자식에게 궁금한 게 생기면, 그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니까.


“백우현 헌터님.”


내 말을 들은 유세라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냥 잠시 확인만 하러 가는 것뿐입니다.”


나는 품 안에 있던 ‘어느 현자의 시계태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여차하면, 이걸 써서 공략하기 직전으로 시간을 돌리면 된다.

그러나 그 사실을 유세라가 알 리가 없으니, 저렇게 반응하는 건 당연한 일.


“유세라 헌터님은 따라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죄송하네요, 기껏 같이 공략하자고 해 놓고 이렇게 돼서.”


나 역시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긴 했지만, 일단은 그녀에게 사과를 건네야 했다.

내 말을 들은 유세라는 잠시 고민하더니


“아뇨,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백우현 헌터님 말씀처럼, 저희는 팀이니까요.”


의외였다.

선뜻 우리의 말을 그대로 따라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


“빨리요, 빨리!”


저쪽에서는 예나가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나는 유세라에게 그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고, 우리는 그대로 예나가 있는 쪽으로 달렸다.



* * *



콰과과과과과과광-


그 다음부터는 예나쇼였다.

수많은 괴물들이 우리의 앞길을 막아섰으나, 예나는 그저 가볍게 손을 휘젓는 것으로 그것들을 전부 날려버렸으니.


주변에 사람도 없으니, 힘을 아낄 필요도 없었다.


‘나도 질 수 없지.’


[칭호, ‘잡종들의 왕’이 발동됩니다!]


예나가 놓친 괴물들이 내게 달려들었으나, 내 칭호에 의해 굳어버린 그것들의 목을 날린다.


“와아..”


옆에서 함께 괴물을 베던 유세라가 나와 예나를 보며 감탄했다.

하기야, 나와 예나의 실력은 이미 11층의 수준이 아니었다.


“예나야! 천천히!”


그것을 증명하듯, 마나를 실은 예나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져만 갔고, 나와 유세라는 그런 예나를 따라가기에도 벅찼다.


“하다못해 표식이라도 남겨!”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예나는 내 말을 들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멈추라거나, 천천히 가라는 말은 포기.

나는 예나와 더 멀어지기 전에 그리 외친 것이다.


콰과과과과과광-


내 말을 들은 것인지, 예나는 더욱 힘차게 마법을 시전했다.

그 덕에 길이 뻥 뚫렸고, 우리는 그것을 흔적으로 예나의 뒤를 쫓았다.


“예나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죠?”

“그건..”


함께 달리던 유세라가 옆에서 물었다.

사실 나 역시 예나가 저러는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으나, 선뜻 그것을 그녀에게 말하긴 어려웠다.


대신, 내가 반문하기로 한다.


“지금까지 이 너머로 간 사람이 있습니까?”

“.. 적어도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역시나.

우리의 임무는 그저 버티는 것뿐인데, 어느 미친놈이 임무를 개무시하고 숲을 주파하겠는가.


‘.. 많다.’


숲 안으로 깊숙이 들어감에 따라, 계속해서 늘어나는 괴물의 숫자.

여기까지 오면서 간간이 보이던 피난민의 모습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또 얼마나 달렸을까.

예나가 뚫은 길을 달리면 달릴수록, 기이하게도 이곳의 풍경이 점점 익숙 해져갔다.


“여긴..”


1층.

한참을 달려 도착한 이곳의 풍경은, 분명 1층의 그곳과 똑같았으니.


“.. 여길 기억하십니까?”

“물론입니다. 협회에서 수련의 일환이라며 반복 공략을 시켜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멸망한 세계와 1층.


“그런데.. 왜 여기에 1층이 있는 걸까요..?”


유세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내게 물었으나,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렇게 예나가 뚫어 놓은 길을 따라 걷는다.

우리가 걷는 길 역시,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2층과 3층의 숲을 지나

4층부터 7층까지의 언덕을 오른다.


그렇게 오른 언덕 끝에 있는 것은, 7층을 공략한 뒤에 볼 수 있었던 거대한 탑이었다.

괴물들은 바로 이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울려 퍼지는 알림음.


[공지 : 11층 임무 – 피난민들의 도주가 완료되었습니다.]

[생존한 피난민 : 14명]

[축하합드립니다. 해당 계층에 대한 클리어 보상이 등반자 여러분들에게 주어집니다.]


“아..”


해당 알림을 들은 유세라가 탄식했다.

아무래도 이번 공략이 전부 끝났다고 생각하는 모양.


그러나 아직, 우리의 공략은 끝나지 않았다.


“이쪽으로.”


나는 그대로 알림음을 무시하고, 유세라를 이끌고 탑을 우회하여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곳의 히든이 있었던 그 장소로.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곳에는 내가 히든을 찾으러 왔던 작은 오두막이 하나 있었고

그 앞에는 내가 히든 보스로 잡았던 ‘일그러진 사랑’이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또한


“.. 예나야.”


그 앞에서 예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나가 태어나기 전, 그녀의 부모님이 살았던 장소.

그러나, 이곳은 이미 멸망한 세계.


그랬다.

예나의 고향이었던 이 세계는, 멸망을 맞이한 것이었다.


[축하드립니다! 11층에 대한 히든이 클리어 되었습니다!]

[클리어 대상은 백예나입니다!]

[칭호, ‘현자의 의지를 이어받은 자’에 의해, 해당 업적이 등반자, 백우현에게 돌아갑니다!]


히든 클리어에 대한 축하 알림이 이어지고 있는 그 속에서

한 소녀의 흐느낌만이 작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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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보고 싶었던 것 24.09.02 43 1 14쪽
21 멸망한 세계의 구원자 24.09.01 44 2 16쪽
20 종말 아닌 구원 +1 24.08.31 59 3 13쪽
19 구원의 형태 24.08.30 80 2 14쪽
18 외로운 이에 대한 위로 24.08.29 95 3 14쪽
17 날먹도 실력 +1 24.08.28 104 4 12쪽
16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24.08.27 110 4 13쪽
» 멸망한 세계 24.08.26 110 4 13쪽
14 24.08.25 120 4 12쪽
13 현자가 바랐던 세상 24.08.24 125 3 15쪽
12 세상을 바꾸는 망상 24.08.23 137 5 12쪽
11 밝고 아름다운 사람 24.08.22 149 5 13쪽
10 딸이 생겼습니다. 24.08.21 167 6 13쪽
9 영원한 세계의 현자와 사랑 24.08.20 157 6 14쪽
8 한국 헌터 협회 소속 헌터 24.08.19 166 6 13쪽
7 한국 헌터 협회 +1 24.08.18 175 6 11쪽
6 어느 현자의 일기장 24.08.17 181 6 13쪽
5 잡종들의 왕 24.08.16 186 6 12쪽
4 히든 공략 24.08.15 195 8 15쪽
3 특별한 상점에서 돈 쓰는 방법 24.08.14 207 8 15쪽
2 특별한 상점에서 돈 버는 법 +1 24.08.14 224 7 13쪽
1 특별한 상점이 생겼다 24.08.14 275 8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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