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도적놈들은 따로 있었구만
초옥의 전주인과 관련된 이야기는 앞으로 지내면서 더 듣기로 하고 검존과의 이야기를 마쳤다. 큰 소요 끝에 시작하게 된 녹림과의 협력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급했으니까.
접객당에 가니 위무진과 제갈상현이 유치한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지들 영역에서 이미 땅덩어리 크게 가진 놈들이 귀신같이 냄새만 맡아서 남의 산채 세운 땅을 홀라당 처먹었냐?"
"마땅히 우리 집안이 자리잡은 동네 산자락이니까 돈 번 김에 사둔거지, 뭔 또 냄새를 맡고 처먹었다는거냐? 산적두목놈 아니랄까봐 늙어서도 상스러운 거 봐라."
손자뻘인 내가 나서서 저 실랑이를 끝내야 했다. 늙으면 도로 애가 된다더니, 진짜 어른인 검존을 뵙고나서 이들을 대하려니 한숨만 나온다.
이미 그들을 중재할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르신들 모두 그만하시고, 앞으로의 일들을 빠르게 처리해야 합니다. 무림맹이든 사황련이든 계속해서 가만히 보고 있진 않을테니까요."
"아니 그래도 따질 건 따져야지. 공 가주가 말해보시게. 저 산적두목놈이 마땅히 땅주인인 우리한테 내야 할 사용료를 안내겠다잖나. 우리도 매년 관에 꼬박꼬박 세를 내야하는데 말이야."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시면 되죠."
"토지세는 우리 세가가 납부하고, 저놈들은 공짜로 통행료를 벌게하라는 소리인가?"
"대신 제갈세가의 인장을 받은 상단은 통행료를 무료로 하면 되잖습니까? 상단에 깃발 파십쇼. 토지세 내고 남을만큼 받으면 되죠. 덩달아 호북에 영향력도 올리고 말이죠."
"이보게, 그렇게 되면 저놈들이 개나 소나 전부 깃발꽂고 다닐텐데, 호북에서 나오는 놈들 전부 공짜로 통과시키면 우리 녹림애들은 인건비도 안 나와. 대 녹림의 장부들에게 정파놈들을 위한 무료봉사나 하라는 소리인가?"
"호북에 들어오는 상인한테 통행료 받잖습니까? 호북에서 밖으로 나가는 상단보다 호북으로 들어오는 타지역 상단이 훨씬 많다는 거 다 아는 얘기구요."
"호북은 그렇다 치세, 사천은 오가는 상단 숫자가 중원에서 가장 많을걸세. 통행가능한 산채만 일곱 채야. 그 노른자땅을 똑같이 무료로 다 보내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나갈 때만 무료로 보내주십쇼. 당가가 그 많은 상단들에 전부 자기네들 이름을 내어줄 리도 없지만 말이죠. 들어올 때는 돈 벌어서 올테니 기분좋게 낼 겁니다.
그리고 들어오는 타지역 상단만 해도 중원 최대잖습니까? 우리 공가가 죽어라 고무바퀴 만들어서 파는 동안, 녹림은 앉아서 사람 숫자만 세고 돈버는데 욕심 좀 그만 내십쇼."
사천 얘기에 당가주가 껴든다.
"그러면 우리 사천사람들은 당가가 제갈세가보다 힘이 없어서 녹림이 반만 양보한 걸로 알지 않겠는가?"
"아미파, 청성파 세력권은 짤 없이 다 내야 하는데요? 이후로 사천 사람들이 누구를 최고로 보게될 거 같습니까?"
"결론적으로 통행세로는 얼마가 적당한 것 같은가? 내 생각에 짐마차당 은자 하나는 받아야 할 거 같은데?"
"통과하는 사람당 철전 서른 냥이면 될 듯 합니다."
"누구는 땅파서 장사하는가? 산채마다 식구들이 몇인데?"
"땅파서 벌 거 맞잖습니까? 그리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객잔, 주점, 마굿간 이런 것도 차릴 거라구요. 거기서 시세보다 더 받으시면 됩니다."
"이럴거면 그냥 원래대로 상단들 패죽이고 털어먹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짐마차 하나당 은자 하나 받게되면 상단들은 마차 하나당 최대로 꾹꾹 담아서 물자를 싣고 마차 숫자도 줄이겠죠. 한달에 두번 나갈 상행, 한번 나가겠고요? 마차가 무거워지는 만큼 오고가는 시간도 길어지니 통행료 받을 일이 줄어들겠죠.
그런데 사람 당 철전 서른 냥을 받으면, 네 사람 당 은자 한냥하고도 철전 스무냥입니다. 지금도 세어보면 마차 하나당 사람 넷은 들어갈 겁니다.
평상 시 마주치던 상단들이 마차 하나당 표사와 쟁자수, 상인들까지 몇이나 붙어있던가요? 마차보다 부족해보입니까?
물론 녹림의 길이 더 빠르고 안전하다는 게 확실해지면, 통행료를 줄이려고 표사나 쟁자수도 점점 줄어들긴 할 겁니다.
그러면 결국 상인들의 식사와 안전은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어차피 이미 통행료를 지불한 마당에, 건량 씹으면서 노숙하느니 녹림의 객잔에서 먹고 자고 다음날 출발하게 될 겁니다.
시세보다 비싸더라도 표사와 쟁자수들 고용비보다 훨씬 저렴하고, 사람이 적어지니 이동도 빨라지겠죠. 유통이 활발해지고 통행 횟수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대폭 늘어날 겁니다.
그 때쯤 되면 사람들은 상행을 가려면 당연히 통행료 내고 녹림의 산도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걸요? 배가 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자야 하듯이, 상행을 나가려면 녹림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이죠.
상행나가서 피곤하면 녹림객잔을 이용하고, 생각보다 돈을 많이 벌어서 마누라 몰래 녹림기루나 주루에서 술 한잔 걸칠 날도 오겠죠. 술을 한병만 마십니까? 시세보다 철전 두냥씩 더 받아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수록 이문이 커질 겁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비싸다 생각해도, 익숙해지면 당연한 값이라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그게 나라가 세금걷는 방식이구요. 이래도 그깟 통행료를 억지로 은자로 받는 게 맞다고 보십니까?"
"자네 말처럼 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참말로 순진하십니다. 이러니까 녹림이 산채를 칠십 이채나 갖고도 그렇게 밖에 못 벌어먹는 거 아닙니까? 저기 사천을 예로 들어보죠. 아시다시피 사천은 중원 최대 곡창지역입니다. 나라가 정한 세율은 평작 때 삼 할, 흉년 때 일 할입니다. 사천당가가 그 땅 얻어서 소작농들에게 얼마 걷는 줄 아십니까? 고작 사 할 걷습니다. 세율이 삼 할인데 말이죠. 겉보기로는 당가는 일할의 이득만 취하는 겁니다.
소작농들은 그런 당가를 칭송하면서 사 할을 고스란히 냅니다. 그런데 당가가 실제로 관에는 얼마를 낼 거 같습니까? 일 할 오푼 냅니다. 소출을 대폭 줄이는 거죠. 그런데 소작농들은 자기들 농사짓는 땅이나 알지, 남이 소작붙인 땅에서 곡식이 얼마나 나는지 잘 모릅니다. 직접 농사짓는 사람들도 모르는데, 관인들이라고 별 수 있나요.
그리고 사천에 농지가 좀 큽니까? 소작농들 다 쪼개서, 결국에는 당가가 총 얼마 버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관에서는 토지대장 십 년에 한 번씩 수정합니다. 그 것도 그냥 형식적이죠. 그동안 농업 기술은 발전하고, 알게 모르게 경작지는 계속 늘어나는데 말이죠.
그렇게 당가가 세금 다 내준다고 믿는 소작농들은 자신들이 육 할이나 가져가니까 당가가 부처님 같을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당가가 따로 무상으로 노동을 요구해도, 은혜를 갚겠다면서 나섭니다. 이 노동력, 품삯으로 환산하면 소출의 일 할은 무조건 넘습니다. 그럼에도 뭣 모르는 당가의 소작농들은 당가를 평생 은인으로 여기면서 살죠. 반점에서 가볍게 소면 한 그릇 먹더라도 당가 깃발 꽂힌 데로 가는 게 그들입니다.
제갈세가는 어떤 줄 아십니까? 목화 경작하는 땅만큼 논을 내어줍니다. 호북성 조세가 이 할인데, 제갈세가는그 이 할만 받고 내어주는 겁니다. 어차피 땅없는 소작농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농사지을 거 조금만 더 고생하면 세금을 제외한 논의 소출 다 가져가는 거니까, 고마운 마음으로 목화밭 농사를 짓습니다.
근데, 같은 평 수 농사지어도 나오는 소출을 시세 맞춰서 돈으로 환산하면 목화밭이 벼 논보다 두 배는 돈이 됩니다. 그리고 소작농들은 쌀 다 줬으니까, 고된 길쌈까지 공짜로 다 해줍니다. 심지어 이번에 같이 개발한 방적기랑 직조기 덕분에 양민들의 칭송은 더 강해졌죠.
제갈세가는 그렇게 꽁으로 얻은 면포를 북경까지 올라가 비싸게 팔고 있고요. 양민들은 오대세가 중에서 이 사업, 저 사업 안끼는 곳이 없는 남궁세가가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줄 아는데요. 까보면 여기 당가나 제갈세가 반도 안될 겁니다.
그런데 아무도 몰라요. 왜냐구요? 겉으로 드러나는 숫자가 작거든요.
심지어 당가랑 제갈세가도 우리처럼 도로를 다 정비했는데, 녹림처럼 통행료 받는 것이 아니라, 공짜로 길 깔아주고 생색만 냅니다. 이제 왜인지 짐작이 가십니까?
그 길 편하게 이용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갈수록 돈은 당가랑 제갈세가가 벌게 되어 있거든요. 호북이랑 사천에 주점이나 다루, 객잔 절반은 그들 거니까요.
이래도 소탐대실(小貪大失)하면서, 눈 앞의 은자만 보실 겁니까? 우리 아직 첫 삽을 뜨기는커녕, 설계도 못했는데요?"
제갈상현과 당명천은 부끄러운 것은 아는지, 얼굴이 빨개진 채로 당황한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그...그걸 자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가?"
"당가만의 비밀이건만, 소가주가 머물던 때에 알려주기라도 했는가?"
"두 분께서 정상에 처음 오신 날, 취하셔서 서로가 잘났다면서 꺼낸 얘기입니다."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하던 위무진이 한 마디를 꺼냈다.
"도적놈들은 따로 있었구만. 한수 배웠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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