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계의 초월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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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DUMMY

버니란 아이는 앞니 두 개가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이게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인 것 같았다.

손 두 개가 없는 이 아이는 그리 맛있지도 않은 말린 음식에 얼굴을 파묻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기선 상납금을 못 채우면 발가락이나 손가락을 자르고, 소매치기하다 잡히면 경비 아저씨들이 손을 잘라요.”

“할아버지가 있을 땐 상납금도 안 내고, 먹을 것도 구해주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오질 않으셨어요. 원래는 낮엔 묘기로 돈 벌고, 밤이면 저희한테 오셨었는데.”

“어른들은 거짓말을 잘해요. 할아버지는 엄청 강해서 여기 깡패 아저씨들이 한가득 있어도 겁냈는데, 싸우다 죽었을 리 없어요.”


버니가 트림하며 말했다.

오랜만의 식사에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탈레스는 괜히 또 찔려서 머리를 긁적였고.


“아저씨는 왜 할아버지를 찾아요? 할아버지는 친구 같은 거 없다 그랬는데.”


버니는 맑은 눈으로 탈레스에게 물었다.

그는 할 말이 없어 그저 머리만 긁적였고.


그리고 부러운 눈으로 식사를 마친 버니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보였다.

대부분 장애가 있는 여아였고 조그만 남자아이도 몇 명 있는 수준이었다.


“할아버지가 안 오면서 언니, 오빠들이 돈 벌러 갔는데, 돌아오지 않았어요.”

“남았던 오빠, 언니들도 경비 아저씨랑 깡패 아저씨들이 갑자기 끌고 갔어요. 이유는 몰라요.”


버니는 묻지 않은 것도 계속 이야기 해주었다.

뭘 먹어서 신이 난 건지, 쉴 새 없이 떠들었다.


탈레스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그래봐야 그리 많지도 않았다.

열명 조금 넘는 수준이었으니까.

원래는 많았다는데 그레이가 오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또는 강제로 끌려간 모양이었다.

아니면 죽어서 버려졌거나.


‘그레이가 억제기였네. 그레이가 죽으니까 좀 큰 여자애들은 창녀로 만들고 남자애들은 어디 노예로 판 거야.’

‘조금 쓸만한 남자애는 소매치기나 조직원 시켰을 테고, 경비병이 끌고 간 건 징집이겠지.’


탈레스는 성문과 성벽 위에 쓰러져 있던, 별 무기도 없던 꾀죄죄한 남자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이곳 통치자들의 이기심도 다시 떠올랐고.

아마 사병들을 방어에 투입했으면 훨씬 나았을 거다.

무기라도 좀 주던지.

하지만 도시 방위보다 타 가문과의 경쟁이 더 중요한 놈들이 할 리가 없겠지.


탈레스는 아이들과 함께 모략과 외교, 그리고 암투가 즐비하게 펼쳐지던 로우힐의 의사당 안으로 갔다.

마음에 안 드는 표정으로 회의장 문을 걷어찼고.

무슨 논의를 나누던 귀족들은 일제히 탈레스를 보았고.


“어이. 열명 정도 기거할 수 있는 주택이랑 먹을 거 준비해. 목욕도.”

“미리 말해두는데, 내가 루시드 방어전 끝나고 돌아왔을 때, 아이들 상태가 안 좋으면 각오해야 할 거야.”


탈레스는 일부러 오만방자하게 굴었다.

딘에게 배운 것 중 하나인데, 사람에 따라 세게 나가야 잘 먹히는 놈들이 있다.

로우힐은 범죄가 만연한 곳이라 그런지 그게 더 심했고.

강자에겐 굽히고 약자에겐 한없이 횡포를 부린다.

좋은 건 아녔지만, 상대에 따라 할 필요도 있었다.


지금도 좋은 무기를 가지고 싸울 태세가 다 된 놈이 암흑가와 귀족 가문에 차고 넘치는데, 리자드맨이 성벽 때려 부술 땐 맨몸에 무기 같지도 않은 거 가진 놈들이 성문을 지키고 있었다.

형편 좋을 땐 대장이고, 나쁠 땐 나 몰라라.


존중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힘도 없고, 나약하고, 지킬 의지조차 없는 놈들이니.


로우힐 귀족들의 동의를 얻은 탈레스는 주거 공간이 준비되는 동안 아이를 모아 치유했다.

회복 룬을 휘갈겨 쓰며 아이들을 치료했는데,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었다.


일단 잔 상처나 속병은 거의 다 치유되었다.

그런데 뼈 자체가 생기는 건 잘되지 않았다.


‘뼈가 있는 거만 되나. 이걸 어째야 하나.’


탈레스는 버니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해답은 제논에게 묻기로 했다.

여기도 의수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탈레스는 버니를 달래며 나중에 회복할 방법을 찾아주겠다 약속했다.


그렇게 얼마 간이 지난 후, 아이들이 기거할 곳이 마련되고 음식이 마련되는 걸 보며 탈레스는 떠날 채비를 했다.

브로디, 머피 연합군, 로우힐에서 차출된 병사들 모두 출발 준비를 완료했다고 하니.

가려던 탈레스에게 버니가 다가왔다.


“아저씨는 할아버지의 친구인가요? 할아버지가 못 오셔서 아저씨를 보내신 거죠? 우리가 걱정되니까, 그래서 아저씨 보고 가라 그런 거죠?”


버니가 청아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탈레스는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

뭐라 말하기가 어려워서.


“부끄럼쟁이네요. 그냥 이야기해도 되는데. 하긴 할아버지도 그랬어요.”

“혹시 아저씨는 할아버지의 가족인가요? 말이 없는 걸 보니까 맞는 것 같은데.”


버니는 대답 없는 탈레스를 향해 계속 물었고, 그는 소녀에게 답변 대신, 따스함이 담긴 포옹과 함께 쓰다듬어 주었다.

탈레스는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다시 몸을 일으켰고, 버니는 품에서 무언가 꺼냈다.


“할아버지가 소중하게 여기던 거에요. 매일 품에 안고, 대화까지 나누셨어요.”

“밤에 나갈 일이 생기면 저한테 맡겨놓으시곤 했는데, 마지막으로 나간 날에도 저보고 잠깐 가지고 있으랬어요.”


버니는 말을 마치며 특이하게 생긴, 휘장 같은 걸 건넸다.

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크기였는데, 빠개진 해골을 검이 관통하는 모양이었다.

칼 모양도 독특하게 앞이 갈라진 형태였고.


버니는 탈레스가 그레이의 가족 혹은 친구라 확신하고 그걸 건넸다.

할아버지에게 꼭 돌려주라며.


“매일매일 그걸 보면서 닦으셨어요. 할아버지가 진짜 좋아하는 거니까 꼭 돌려주세요.”


탈레스는 쫑알거리는 버니를 한 번 쓰다듬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출발 전에 브로디와 머피 연합군 범죄자들을 모아, 평화 협정에 강제 손도장, 손 없는 놈들은 손목이나 발로 찍게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탈레스는 로우힐의 군대를 이끌고 출발했다.

물론 선두는 아니었다.

애초에 여기서 루시드로 가려다가 길 잃어버려서 이올린 만난 것 아닌가.

또 자기가 앞장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 터였다.


탈레스는 길을 잘 안다는 길잡이 하나를 앞세워 출발했고, 이탈자가 없도록 중간중간 인원 점검을 했다.

뭐 그렇게 해도 출발한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범죄자들 몇몇이 도망쳤다.

다들 의욕이 없었고.


탈레스를 괴롭힌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제논이 로우힐로 가라고만 했지, 뒤에 뭘 할지 말해준 게 아니어서 이것도 마음대로 하는 거라.

이게 제일 현명한 행동이라 여기며 탈레스는 도착 전 적에 대해 추정해 보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로우힐에 있던 놈들보단 몇 배나 강할 가능성이 높았다.

리자드맨 대부분이 물가에서 더 센 것 같은데, 로우힐은 주변은 냇가 조금 있는 정도라면 루시드란 도시는 블루 리버란 강이 바로 옆이었니.

실제로 린벡 방어전에서도 근처에 냇가와 강 중간쯤 되는 물줄기가 있었으니까.


리자드맨 부족도 워낙 다양하고 크기부터 무기까지 제멋대로라 확신할 순 없지만, 아마도 로우힐 군대는 별 도움이 안 될 터였다.

지금도 뒤에서 도망치려고 머리 굴리는 놈이 태반이지 않은가.

아무리 사병과 탈레스가 눈을 뜨고 감시해도 징집병들과 범죄자들은 틈을 잘 노렸다.

탈레스는 추적에 체력을 빼지 않을 것을 명했고.


‘로우힐은 진짜 쓰레기야. 그 아이들도 저기서 자라면 똑같이 되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로우힐은 아이가 크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저기서 커봐야 창녀, 도둑, 강도 등의 질 나쁜 직업만 가질 가능성이 높다.

지금처럼 모두가 위기일 때 도망도 잘 갈 테고.

아, 튀는 건 오히려 잘하는 거려나.

모르겠다.


어쨌든 아무리 올바르게 크려고 해도 주변에 모두가 그러니까 쉽지 않을 터였다.

사람이 환경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

탈레스는 버니 같이 맑은 아이가 그렇게 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추가로 정신 올바르게 박혀서 거기 있어 봐야, 성문과 성벽 위에 너저분하게 쓰러져 있던 남자들처럼 될 것이다.

쓸 만큼 쓰고 버리는 부품들처럼.


‘갑자기 왜 동정심이 생기지? 아, 그 버니란 애 때문인 것 같은데. 피하고 죽음엔 익숙해졌었는데, 그레이 과거는 괜히 팠나.’

‘앞으로도 계속 싸울 텐데, 이런 거에 휘둘리면 곤란한데.’


탈레스는 괜히 생기는 마음의 찝찝함을 지우며 진군했다.

한때 큰 나무와 잡풀이 가득하고, 거대한 맹수가 있던 숲길 곳곳이 부서지고 핏물이 가득했다.

거대 곰이건 뱀이건, 어떤 생물이건 평등하게 죽어서 리자드맨의 식사가 된 것 같았다.


뼈랑 먹다 남은 파리 꼬인 살점, 그리고 여기저기 찢긴 가죽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창대에 사냥한 동물을 꽂아 놓는 건 리자드맨 특징인지, 토끼나 조금 작은 곰 같은 게 창날에 세워져 있었다.

나아갈수록 병사들의 동요는 커졌다.

하긴 지들 도시가 함락되기 직전에도 징집병만 내보내고 집에 숨었던 놈들이니.


탈레스는 어둑어둑해졌을 때 캠프를 칠 것을 명했다.

그리고 불침번 순서를 정했고, 잠자기에 앞서 연설을 한 번 행했다.


“너희가 자신만 소중히 여기는 이기주의자들이란 걸 잘 안다.”

“이게 너희들에게 쓸모없는 일이라 생각될 것 역시 안다.”

“하지만 너희는, 나는 해야만 한다. 이건 너의 목숨뿐만 아니라 인간 모두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너희 모두를 살려서 보내주겠단 약속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앞장서고, 빠져나올 땐 가장 늦게 나오겠다.”

“나를 따라라. 하찮은 범죄자, 고작 까트니 코카니, 약쟁이에, 소매치기 같은 옹졸한 삶 대신 새로운 인생을 약속하마.”

“도망가면 시간 연장만 조금 될 뿐, 결국 모두가 죽는다. 도망쳐서 겁쟁이로 죽을 바에, 차라리 싸우다 뒤져라.”


탈레스는 크게 외치며 이 전투에서 참여하면 많은 돈과 큰 명성을 약속했다.

로우힐의 범죄자나 귀족의 개가 아닌, 전쟁의 영웅이 될 기회를, 누구 밑에 있지 않아도 먹고살 만큼 충분한 보상을.


‘이올린이 해 먹는 방식도 잘 배운 것 같네. 사실 돈 없어서 못 지킬 것 같긴 한데, 제논하고 의논해 봐야겠다.’


탈레스는 약속을 지킬 것을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앞장서려면 충분한 체력이 필요했다.

불침번은 탈영할 가능성이 적은 사병들 위주로 짰는데, 확신을 가질 순 없었다.

저들도 사람이니, 강대한 미지의 적과 싸움을 두고 자리를 지킬지는.


‘그래도 귀족들이 보낸 사병이니, 자기 주인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덜 하겠지.’


탈레스는 잠자리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일단 지금 루시드 방어전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적의 강한 정도도, 이미 함락되었을지, 아니면 잘 방어되고 있는지도.

로우힐의 정보망이라곤 없는 수준이었고, 제논은 연락할 길이 없으니.


만약 루시드란 도시가 성벽이 높고 튼튼하게 지어졌다면 방어가 그리 어렵진 않을 수도 있다.

성벽이 낮으면 어지간한 리자드맨은 다 뛰어넘을 거고, 린벡 방어전에 거대 도마뱀 같은 게 있다면 그냥 때려 부술 수도 있을 거다.

솔직히 로우힐 방어전에서 그런 놈 있었으면 허접한 성문 따위, 진작에 박살 냈을 테니.


아침이 되어 몸을 일으킨 탈레스는 남은 인원을 점검했다.

의외로 탈영병은 그리 많지 않았다.

탈레스는 연설의 효과인가 생각했지만, 사병 하나가 곧 생각을 정정해 주었다.


지금까지 도망친 놈들은 대다수 감옥에서 꺼낸 놈들이고 여기 놈들은 로우힐에 가족이 묶여 있으니 죽을 것 같아도 어쩔 수 없이 당신의 명에 순순히 따르는 거라고.

얼굴을 구긴 탈레스는 그들을 이끌고 숲길을 지났다.


그리고 뻥 뚫린 초원길을 이틀간 쉬지 않고 걸었다.

물론 중간중간 사냥과 채집도 해야 했다.

로우힐에서 가져온 식량은 너무나 모자라서.


그렇게 한참이나 걸려 도달한 곳에 드디어, 고대하던 푸르른 강이 보였다.

블루 리버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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