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계의 초월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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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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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DUMMY

칼과 탈레스가 알맹이도 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제논이 주고 갔던 구체가 빨간색으로 색이 바뀌었다.


“전원, 전투태세. 미리 약속한 자리를 지켜라. 탈레스, 자넨 전하 옆을 지키게.”


칼은 크게 소리치며 정문 앞에 섰다.

모두 긴장한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제논이 날아왔다.


“전하. 습격입니다. 저들은 서로 적이었습니다. 미라클교로 추정되는 놈들은 저희가 아니라 아틀란티카 함대를 노렸습니다.”


허겁지겁 달려온 제논이 외쳤다.

놀람과 안도가 뒤섞인 한숨이 곳곳에서 내뱉어지며 모두 제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제논은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상황을 설명했고.


“함대를 묶어놓고 육지에서 대기 중이던 아틀란티카 군대를 바다에서 나타난 괴수들이 덮친 모양입니다.”

“문헌에서나 접할 거대한 두족류와 도구를 쓸 줄 아는 인간 형태의 괴수들이 바다에서 튀어나와 급습했습니다.”


제논에 의하면 지금도 한창 전투 중이라는 모양이다.

그가 하늘을 날아 주변을 살필 때, 괴이한 소리를 들었고, 그 근원지가 아틀란티카 함대의 주둔지였다고.

그래서 멀리서 관찰하니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추정컨대 급습이 이루어진 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바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라 아틀란티카 측이 많이 당황한 걸로 보입니다.”

“전하, 우선은 미라클교의 거대 괴수를 막아야 합니다. 그냥 두었을 때, 2차 피해가 얼마나 클지 추정도 되지 않습니다.”


제논은 이올린을 보며 건의했고, 그녀는 바로 승낙했다.

탈레스가 이들과 다니며 느낀 건데, 이들은 권력 다툼보다 미라클교에 원한이 좀 더 깊은 것 같았다.

이이제이라고 둘이 싸우고 뒈지도록 놔두고 그냥 막타만 치는 게 좀 더 좋지 않냐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도 굳이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제논이 자기보다 훨씬 똑똑한 거 같으니까.


“혹시 저희 위치를 안다면, 따로 기습 부대를 편성했을 수 있으니, 여기는 계획한 그대로 지키고, 저와 탈레스만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논은 어차피 여기랑 아틀란티카 주둔지와는 거리가 꽤 되고, 그리고 만약에라도, 혹시나 따로 납치할 인원을 보냈을 가능성이 있으니, 지원군은 소규모로 가자고 했다.

나름 합당해 보였다.

대충 들어보니 거리가 행군으로는 한참이나 걸리는 것 같고, 미라클교로 추정되는 이들이 의식을 치렀던 거리는 그것보다 가까우니까.


칼은 자신이 원정에 참여하길 원했지만, 제논은 기어이 탈레스를 고집했다.

조금 의아했지만, 이유는 단순했다.


“탈레스가 훨씬 튼튼하네. 여차하면 사람 자체를 포탄으로 쓸 수도 있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본인의 동의도 구하지 않았으면서, 상황 보고 안 되면 증폭 마법으로 강화해서 탈레스 자체를 포탄으로 날려버리겠다나.


“아니, 이 영감탱이가. 난 죽을 마음이 없다니까.”


탈레스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제논은 이올린의 동의를 받아 빠르게 출발했다.

둥실하고 떠오르는 몸의 느낌은 이상했다.

마치 중력이 사라진 양, 하늘을 날았다.

다만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제논에 붙들려 날아가는 행세라고 할까.


“으아아아아. 이상해. 천천히 가. 토할 것 같아.”


둘은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질주했다.

제논은 정면으로, 탈레스는 붙들려서 웩웩거리며.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어린 시절 내리막길에서 질주했던 자전거보다도 더, 놀이공원에서 탔던 롤러코스터보다도 더.

그 덕분인지, 전투가 끝나지 않았을 때 둘은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 칼디아 왕국의 제 7왕녀, 이올린 프리기아님이 친히 보내신 근위대가 도착했노라. 악한 이들은 달게 벌을 받아라!”


무슨 십자군이나 쓸 법한 말을 제논이 크게 외치며 알 수 없는 마법을 갈겼다.

새하얀 구체였는데, 날아간 곳은 희한하게 생긴 바다 괴물이 모인 곳이었다.


새파란 피부에, 인간형의 몸, 그리고 기나긴 창과 검 등 무기를 든 갈퀴 달린 괴물.

얼굴은 개구리를 기본으로, 지느러미 같은 게 귀에 달려있었고 몸통만 인간형이었다.

나머지, 팔다리 등엔 전부 비늘이 달려있었다.


쾅 -


새하얀 구체가 폭발하며 일대에 모여있던 사람 크기의 괴상한 생물이 모두 날아갔다.

그 사이 탈레스는 시원하게 토했고.


“우웨에에에엑.”


제논은 인정사정없이 탈레스에게 준비하라고 하더니 거대한 문어를 가리켰다.

붉은 피부에, 기나긴 빨판 다리, 진짜 문어랑 똑같이 생긴 놈이었다.

다만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아틀란티카의 거대 함선들이 작게 보일 정도였다.


‘키야. 아파트 단지보다 더 큰 거 같네.’


탈레스가 놀란 얼굴로 침을 삼키는 사이, 제논은 무언가 주문을 외웠다.

탈레스의 피부는 딱딱한 돌로 변했고, 그리고 등 뒤에선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곧장 룬마법을 쓰고 눈깔을 쑤셔버리게. 저놈을 내쫓는 게 급선무네. 저놈 때문에 아틀란티카 병사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고 있어.”


제논의 냉정한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탈레스의 몸이 쏘아졌다.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인간 포탄.

탈레스는 드디어 이 뜻을 이해했다.


“시발! 개같은 영감탱이!”


빛무리를 뿌리며 미사일이 하나 날아갔다.

거대 문어는 자기 몸에 달린 여러 다리를 이용해 함선을 부수고 육지에 상륙한 병사들을 도륙 내고 있었다.

벌어질 일도 모른 채.


콰 – 아 – 아 – 앙


거대한 폭음이 일었다.

거대하고 붉은, 아마도 문어? 가 움찔거렸다.


“개시발. 미리 말하고 시키던지.”


탈레스는 마구 욕을 내뱉으며 그레이의 클로 검을 들고 뛰었다.

몸이 미끌미끌했지만, 피부가 돌이 된 양 뭔 가루 같은 게 떨어져서 밟고 올라가기 그리 어렵진 않았다.

눈알과 거리가 그리 멀지도 않았고.


“개 징그럽네. 뒤져, 시발.”


자기 몸 전체보다도 더 큰 문어의 눈알을 힘차게 쑤셨다.


끼이이이이엑 -


뒤늦게 괴상한 울음소리가 퍼졌다.

칼날은 곧 튕겨 나왔고.


“뭐야. 눈알도 단단하냐, 너.”


눈에 튕겨서 나온 칼과 달리 충격이 상당했는지, 문어는 급하게 몸을 바다 쪽으로 뺐다.

도망가는 것이다.

탈레스는 미끌미끌한 몸에서 아래로 떨어졌고.


“이런. 마법을 바꿔주겠네.”


제논은 탈레스가 날아가는 걸 보며 말했다.

그리고 탈레스가 돌덩이처럼 바뀐 몸으론 바다에 떠오를 수 없단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몸이 가벼워졌다.


“푸아학. 커헉. 뒤질 뻔했네.”


바다로 떨어진 탈레스가 빠르게 육지로 헤엄쳤다.

무거워진 몸 때문에 가라앉기만 하던, 공포에 질린 그 마음 그대로 마구 손을 저어 달렸다.


“아틀란티카 사람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저 거대 괴수는 물러났소. 겁먹지 말고 싸우시오. 나머지는 잔챙이뿐이오!”


제논의 외침이 크게 울려 퍼져 나갔고, 그 사이 탈레스는 육지에 도달했다.

그러는 동안 바다 밑에서 헤엄치는 저 못생긴 애들에게 계속 찔린 탓에 몸엔 상처가 가득했다.

그 찢긴 곳에 소금물이 들어가 더 따갑기도 했고.


“시발. 육지다. 다시 붙어, 시발놈들아.”


일방적으로 얻어맞던 탈레스가 공세로 전환했다.

바다에서 풀쩍 뛰어나오던 놈들의 멱살을 잡고 머리통을 갈기고, 또 박살 내고.

창대 그대로 잡아 날려버리고.

목을 잡은 다음 뽑아버리고.


탈레스 주위엔 푸른 시체가 가득했다.

육지에선 아예 싸움이 되지 않았다.

끝내 푸른 괴인들은 등을 보이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시체는 겹겹이 쌓이고 아틀란티카 군인들도 본격적으로 반격해 오기 시작했으니까.


“전진! 마법사들은 치유와 물의 감옥을 시전해라! 어차피 우리 마법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보병을 보조하라!”

“함대를 사수 해야 한다! 보트를 타고 배로 달려라, 전함을 잃어선 안 된다!”


아틀란티카의 지휘관들이 정신을 차리고 명령을 내렸고, 여기저기 각개격파 당하고 썰리던 이들이 재집결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거대 괴수로 인한 충격이 가시니, 적이 만만해 보인 모양이었다.


“탈레스, 자넨 이리 오게. 우린 아틀란티카 총사령관을 만나러 간다.”


도망치는 푸른 괴수들을 보며, 제논이 외쳤고 둘은 합류해서 날아가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해안가에 시체가 그득한 곳에 두려움에 떠는, 제법 잘생긴 청년에게 당도했고.


“다시 뵙겠소. 나는 칼디아 왕국의 제 7왕녀, 이올린 프리기아 전하의 외교관 겸 재무관을 담당하는 제논 키티아라고 하오.”


제논은 말을 마치며 탈레스를 툭툭 쳤다.

네 차례란 듯.


“어...난 탈레스라고 해. 안녕...?”


탈레스의 말에 제논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몸을 잡고 뒤로 당겼다.


“이쪽은 프리기아 전하의 근위 기사 탈레스 아르케라고 하오. 아르케경이라 부르면 되오.”

“에?”


제논이 하는 말에 탈레스는 얼이 빠졌다.

졸지에 아르케란 성이 생겼다.

근위 기사란 자리랑.

전투 중이라 정신이 없는 참을 공략하려는 건지, 제논은 아직도 진형이 엉망인 아틀란티카 군을 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본래 무단 침입한 그대들을 용서치 않는 게 당연하나, 관대한 전하께서 미라클교는 공통의 적이니 도와주라 하셨소.”

“거대 괴수를 물리친 값은 따로 요청하지 않겠으나, 전에 말했던 바와 같이 린벡 주민을 돌려줘야 하오.”

“또 하나 무단 침입에 관하여 설명하고 사죄와 배상을 하고 마을 파괴 역시 마찬가지요.”

“내 마법과 아르케경의 무용을 보면 알겠지만, 그대들의 많은 병사보다 우리가 더 강력하오.”


제논은 말 그대로 협박을 이어갔다.

본래대로라면 제 괴수와 함께 너희를 다 죽이는 게 맞지만, 인정상 그 정도는 하지 않겠다고.

다만 아틀란티카의 잘못이 크니 그대로 넘어갈 순 없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그러면서 주위에 있던 말을 탈취하고, 고급 지휘관으로 보이는 여럿을 묶어 마차 위로 올렸다.


“탈레스, 그대로 끌고 가게. 약속을 어길 시 이들을 처단해야 하니까.”

“어? 어어???”


탈레스는 어벙한 얼굴로 일단 하라는 거 그대로 했다.

아무리 적들이 도망간다지만 전투 중인데, 지금 뭘 하는 건지 몰라서.

그렇게 이들 둘은 혼란을 틈타 아틀란티카 함대의 총사령관, 이올린의 약혼자를 비롯한 고급 지휘관 몇을 납치해 돌아갔다.

막아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당황한 얼굴로 도망갈 뿐.


제논의 어마어마한 마법인지, 저 덩치 큰 기사의 엄청난 무용 때문인진 알 수 없다.

하나 확실한 건 이들은 거대 괴수와 푸른 괴인들에 뒤질 뻔했고, 갑자기 나타난 이들 둘이 간단하게 물리쳤다.


제논이란 자는 마법으로 화려하게 주변을 박살 냈고, 탈레스란 자는 거대 괴수를 쫓아내는 것도 모자라 주변에 상대하기 어려운 괴인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간신히 재정비하는 중인, 수만 많은 아틀란티카 군대가 급박한 상황변화에 잘 대처할 리가 만무했다.


“탈레스 혹여나 추적해 오는 이가 있으면 일차 경고로 창을 날리고, 그래도 오면 진짜로 맞추게.”

“에?”


제논의 말에 탈레스는 또 얼빠진 대답을 했다.

물론 제논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마차를 몰았다.

무슨 주문인지 바람이 일며 더 빠르게 달렸고, 마차 안은 탈레스와 납치한 이들로 차 있었다.


“우리 도와주러...온 거 아녔나? 뭐지?”


탈레스가 긁적이며 제논이 시킨 대로 무기를 전부 회수해 자기 옆에 놓았다.

그리고 그냥 가만히 앉았고.


잡힌 놈들은 제논의 신기한 포박술로 묶여 있었는데, 입도 막혀 있어 말도 하지 못했다.


“읍읍읍!”

“읍읍!”


지네 들끼리 뭐라 외치는 걸 탈레스는 긁적이며 들었다.


“저기, 나한테 뭐라 그러는 거 같은데, 난 잘 몰라.”

“있다가 저 망할 영감탱이랑 이야기해. 지금 나도 존나게 얼탱이 없으니까.”


탈레스는 읍읍거리는 이들을 향해 말했다.

잘 알아들었는지 확신 못 하겠지만, 귀가 있으니 잘 알겠지, 하며.

그래도 꿈틀거리며 눈을 못되게 뜨고 달려드는 놈은 꿀밤을 한 방 먹여주었다.


시끄럽던 놈들이 단숨에 조용해졌다.

눈깔만 굴릴 뿐, 소음은 더 이상 없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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