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세계의 초월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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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DUMMY

야영지의 밤이 깊어 가도 잠을 쉽게 이루는 사람은 없었다.

뱀의 습격은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상대적으로 멀쩡한 탈레스가 길게 경계를 맡기로 했는데, 대신 초번이었다.

타닥거리는 모닥불 앞에서 노닥거리는 사이, 결계인가 뭔가 설치를 마치고 온 제논이 옆에 앉았다.

떠들다 늦게 잘 모양인지.


“린벡까진 그리 멀지 않았네. 하지만 거기에 도착해도 위험은 똑같을 걸세. 도심에서 싸우는 거라 인명피해를 경시한다면 모를까, 외려 싸움도 어려울 테고.”


제논은 탈레스가 듣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혼자 주절거렸다.

그냥 봐도 고민이 많아 보였다.

실질적으로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건 그였으니 뭐.


“거기에 문헌상으로나 접해본 존재와 싸운다는 부담감도 커. 과연 몇이나 제대로 싸울지. 도망 안 가면 다행이야.”


제논은 정서불안 마냥, 손을 계속 까닥거렸다.

탈레스는 이야기는 괜찮은데, 한국인 정서상 달달 떠는 다리와 쉬지 않는 손가락이 꼴 보기 싫었다.


“아니, 뭐 뒤지면 뒤지는 거지. 어떻게 합니까.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차피 방법도 없다면서요. 그냥 생산적인 이야기나 합시다.”


탈레스의 말에 제논은 고개를 끄덕였고, 모략의 배후자 탐색 및 전력 강화로 주제를 옮기려 했다.

탈레스는 기다렸다는 듯, 전력 강화를 핑계로 그레이의 클로 칼을 꺼내며 이야기를 꺼냈고.


“혹시 이 칼에 대해 아시오? 이거 마법 칼 같은데 봐줄 수 있소?”


제논은 칼을 받으며 물건을 살폈다.

푸른 빛으로 검을 투과시키기도 하고, 이것저것 베어보기도 하고.

탈레스는 잔뜩 기대한 눈으로 기다렸고.

지금까진 번 금화부터 시작해서 나름 챙겨뒀던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 만큼 이거라도 값어치 있길 바랐다.

혹여나 그 채찍 검을 쓸 수 있으면 더 좋고.


“흠. 그냥 평범한 칼 같은데. 특이하게 만들었는걸. 손에 쥐는 게 아니라 주먹에 끼우고 사용하는 칼이라니.”


탈레스는 절반은 실망을, 절반은 의문에 담긴 표정으로 제논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 영감이 아무것도 모른단 생각과, 혹은 이 칼이 아니라 그레이가 진짜였기에 그런 기술을 썼단 생각.


탈레스는 그레이 이야기를 풀었고, 제논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함마 시절 조사할 때, 이미 다 알아봤다고.


“거리에 쓰러진 부랑자를 구해주고 검투사로 썼다더군. 그자는 자기가 기사 출신이란 것만 알고 아무것도 기억 못 한다고 했어.”


조사 목표가 탈레스였던 만큼, 세심하게 알아본 건 아닌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새로운 정보를 획득할 순 있었다.

그레이가 기억을 잃은 영감이었단 것, 그리고 대전료는 그의 주인이 모두 가져갔다는 것.

마지막으로 거리의 부랑아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는 것.


“로우힐에서 무슨 묘기를 보여주고 돈을 받았다더군. 그걸로 고아들을 먹이고 정작 본인은 자주 굶었던 모양이야.”


제논의 말에 탈레스는 얼이 빠졌다.

말도 없는 자였고, 알려진 정보가 저게 다라나.


“자네 조사를 한 거지, 그자를 한 게 아니었네. 그래서 중간에 멈췄다고 보고받았네만, 궁금하면 훗날 거기 부랑아들과 브로디란 자를 조사해 보게.”

“바지 사장이 있긴 했지만, 실질적 주인은 그자인 것 같더군. 자네와 싸움을 붙인 것도 딘이란 자의 전력 중 하나인 오함마를 조사할 겸 이뤄진 것이라 했어.”


말을 마친 제논은 그레이의 검을 돌려주었다.

아주 낡아 빠진 검을.


돌아간다고 해도 똑같이 머리를 터뜨릴 것이다.

채찍 칼에 갈려 날카로워진 팔목 보호대를 목으로 던지고 약간의 틈을 이용해 공격할 것이다.

상황을 알 건, 모르건 변함은 없다.


다만 찝찝한 건 견딜 수 없다.

기억을 잃은, 병약한 노인을, 그것도 선한 사람을 저런 식으로 부리다가 저렇게 끝내다니.

딘이랑 브로디란 새끼랑은 공통점은 많아 보였다.


‘틈나면 가봐야겠어. 마법 검의 정체도 궁금하지만, 브로디 이 새끼도 열받네. 시발, 딘이랑 똑같은 새끼잖아.’


탈레스의 궁금증인 그레이와 그의 유품인 클로 검에 관한 이야기를 마친 제논은 잠시간 고민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중요한 이야기라는 듯.


“탈레스, 지금까지 참 고맙네. 앞으로도 아마 더 빚지게 될 것 같아 덧붙일 이야기가 좀 있네.”


제논은 분위기를 가라앉히더니, 우선 칼에 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칼, 아니 그의 스승이란 에우제너에 관한 이야기에 가까웠지만.


“에우제너, 모건경은 촉망받는 기사였네. 꿈이 꺾이기 전까진.”


흔한 이야기였다.

세상을 바꾸고 멋진 영웅이 되고 싶었던 아이가 흔해 빠진 어른이 되어가는.

에우제너는 자신이 참가했던 모든 대회에서 우승, 재빠른 성장세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한미한 가문 출신이란 특징으로 출세를 못 한 인물이었다.

그래도 실력이 좋아서 데려가려는 귀족이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뭔가 하고 싶었던 게 있던 모양이야. 그냥 출세만을 원한 건 같진 않았어. 꿈을 위해 병력을 동원할 권한을 원했던 거지.”


제논에 의하면 그는 남부 외딴 지역에 작은 귀족 가문 아이였다고.

그런데 그가 있던 곳은 리자드맨이라 불리는 지능 높은 무리의 공격을 자주 받는 곳이었다나.

결국 작은 마을은 파괴되고 도망쳐 온 곳이 칼디아 왕국의 중심부였고.

이곳에서 기사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수련을 한 모양이었다.


잃어버린 고향을 찾기 위해?

복수를 위해?

혹은 앞으로 일어날 피해를 막기 위해?

어떤 걸 원했었는진 모르지만, 그는 힘을 갈망했다.


“하지만 귀족이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이익도 안 나는, 아주 먼 작은 마을 하나 구원하자고 병력을 동원할 리 없잖나.”

“헛된 꿈을 꾸었던 자였지.”


제논은 잠시 물을 들이킨 후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전하를 만난 것 같더군. 전하 역시 어느 날 껍데기만 남기고 돌아가신 어머니, 졸지에 홀로 남아 수시로 겪는 암살 위험.”

“거기에 귀족들의 정치와 치정 싸움에 휘말려 죽는 하층민들도 꽤 많이 보셨지.”


어쩌다 만난 건진 모르겠지만, 둘이 죽이 잘 맞았던 것 같았다.

노인이 될 때까지, 나이가 차도 결혼도 안 하고 정착은 아예 생각도 안 하던 방랑 기사 에우제너.

실력만은 진짜라 명성을 떨치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던 기사.


“꽤 유명한 사건일세.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꼬마 숙녀에게 충성을 맹세한 기사 이야기는.”

“왕자들이 불을 켜고 더욱더 견제가 들어간 이유 중 하나지. 심지어 전하의 오라버니, 4왕자 아만타스 조차도 질투했었다네.”


탈레스도 물을 한 잔 들이켰다.

평소라면 이런 이야기 잘 안 들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불침번이라 심심하기도 했고.

듣다 보면 시간도 잘 가서 꽤 좋았다.


제논은 뒤이어 말하길 돈과 병력은 없지만, 뜻을 세운 전하와 에우제너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모집했다고 했다.

정상적인 임금을 줄 수가 없으니.


“그게 거리의 고아를 모아 가르치기 시작한 계기였을 걸세.”


칼은 거리에 널리고 널린 고아 중 하나였다.

그냥 굶어서 혹은 추위에 죽었을 아이 혹은 딘처럼 되었을 아이, 하지만 에우제너를 만나 인생이 바뀐 아이.


“그게 칼이라네. 그는 자식 없는 에우제너의 셋째 양자가 되었어. 참고로 첫째와 둘째는 모두 죽었네.”

“전하가 위험한 상황이 꽤 많았었거든.”


가끔 이올린은 이상할 정도로 경계 태세를 보이곤 했는데, 어린 시절 트라우마와 연관이 있어 보였다.

보아하니 친모가 죽고, 아버지도 쓰러지고, 결정적으로 1왕자가 사라지면서 일이 시작된 모양이니까.


아무래도 샤르데나 왕국의 힘, 그리고 왕이 멀쩡할 적 맺어놓은 아틀란티카와 혼약 때문이 아닐까.

실질적인 지원은 4왕자가 받는데.


탈레스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주지 않고 제논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칼이 저렇게 행동하는 걸세. 린벡에서 합류할 기사단 역시 대부분 에우제너가 키운 고아들일세.”

“칼을 보아 알겠지만, 에우제너의 제자란 이름을 단 아이들은 복수에 미쳐 날뛸 걸세. 고로 자네가 전하를 잘 지켜야 하네.”

“우리의 적은 고대의 비밀을 다루는 현명한 자들일세. 전략에 무지한 이들이 아니란 이야기지.”


제논은 양동 작전을 매우 겁냈다.

정면에서 공격해서 시선을 끌고 뒤로 이올린을 납치하려 하는 것.

아무래도 칼과 그 친구들은 복수에 미쳐 에우제너를 죽인 적이라 추측되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 테니까.


“나 같이 우둔한 자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전략을 나보다 뛰어난 적이 생각하지 않을 리 없네.”


제논의 결론은 간단했다.

이올린 팀에서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전사는 탈레스가 유일하니, 쉽게 전장에 뛰어들지 말고 상황을 유동적으로 판단하라고.

제일 중요한 건 이올린의 안전이라고.


“전하를 잃는 순간 우리는 모든 명분과 의의를 잃는 걸세. 자네의 보상도 날아가는 거지. 잊지 말게.”


이렇게 말을 마친 제논은 잠시간 고민하더니 말을 몇 마디 덧붙였다.

이왕 이야기한 김에 자기 이야기도 풀 생각인지.


“자네는 마법에 호기심이 많았지. 난 마법사지만, 전통적으로 배운 사람은 아닐세.”

“현재 마법은 싸움에 치우쳐져 이론을 멸시하는 추세가 굉장히 강하네. 안타까운 일이지.”


이어진 제논의 말은 제법 신기했다.

마나는 사기라고.

보이지 않는 기운이 세상의 모든 걸 바꾼다고.


내부에서 외부로의 방출, 혹은 내부와 외부의 융합.

사용 방식에 따른 직업의 차이.

기사, 마법사, 드루이드 등.


“속성은 대개 다 타고 난다네. 그거에 맞춰 배우기도 하고.”

“그러나 난 그 모든 방식을 다할 수 있지.”


탈레스는 그저 자기 자랑을 하려고 이러나 싶어 눈을 흘겼다.

제논은 쳐다도 안 보고 말을 이어갔고.


“난 제국 출신일세. 몰락한 가문이 관료를 만들기 위해 대학에 넣어준.”


본래는 수학, 조직학, 인력 관리 및 정책, 그리고 법에 관해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관료가 될 뻔한 그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있었다고.


“마나였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지. 나는 ‘나’라는 존재를 잊어버렸었네.”


그는 처음 마나란 걸 인식하게 된 날을 이야기했다.

꿈을 꾸었다고.

꿈인 걸 아는데, 거기서 맘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 깨어날 수 없었다고.


“그때 가설 하나가 생각났지. 아와 비아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세상, 마나는 거기서 탄생한다는 이론일세.”


탈레스가 이해하기엔 조금 어려웠지만, 요약하면 이랬다.

세상과 나는 연결된 존재다.

이 세상은 분명 내가 없이도 상관 없이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란 존재 없이는 세상도 없다.

내가 죽는 것이니.

나는 세상에 파생된 존재이지만, 유일한 세상이기도 하다고.


“그걸 깨닫는 순간, 난 내가 마법사가 되었단 사실을 알 수 있었네.”

“그저 꿈에서 깨어났을 뿐인데, 세상과 나는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존재란 사실을 깨달았을 뿐인데, 그렇게 되었던 거지.”


신기한 이야기였다.

세상과 나는 별개지만, 내가 유일한 세상임을 깨달았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떠올린 순간 현실에서 마법사가 되었다니.


“몸이 마비되어 본 적 있는가? 실제로 내 몸에 무언가 닿아도 그 상황이면 전혀 느끼지 못하지.”

“하지만 실제론 닿아있네. 내가 보고 느끼고 듣는 게 진짜 현실이라 확신하나?”

“나는 그저 세상을 꿈꾸고 그리는 존재라네. 실제로 그런 게 아니라.”


제논은 탈레스가 알아먹지 못할 이야기를 꽤 늘어놓았다.

결론만 말하자면, 마나나 마법에 대한 이론은 많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지금 세상은 태어날 때 몸에 가진 마나 순도를 측정하고 정해진 이론으로 마법사를 만든다.

그러나 마법이란 건, 마나란 건 우리가 아는 게 다가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순간 마법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겉으로 보이는 것, 화려한 마법보다 이런 걸 고찰하는 게 더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고.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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