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는 깡촌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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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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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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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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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삐용삐용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적막한 시골길을 때렸다.


“일단 고속도로 올라가기 전에 병원 수배 먼저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구급대원이 그렇게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목적지를 빨리 정해야 길을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한 시가 급한 상황.


나는 머릿속으로 목적지로 삼아야 할 병원들의 리스트를 생각했다.


‘이 정도면 무조건 이차병원급... 아니 이차병원 중에서도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을 거야... NS(신경외과) 있는 곳 중에 ICU(중환자실) 있고 머리 열 수 있는 곳이 어디지...?’


중환자실, 뇌수술.

두 가지 조건으로만 필터를 걸어 봐도 후보군이 확 좁혀졌다.


해운대 박병원... 양산 경남대병원... 정도인가?

둘 다 여기서 한 시간 정도는 걸리는 거리의 병원들이었다.

하지만 더 가까이에 있는 다른 병원들은 생각나지 않았다.


외상성 뇌출혈은 무조건 두개골을 열어서 뇌를 노출시켜서 수술하는 craniotomy(개두술)이 필요한 병이다.

뇌를 노출시킨다는 이야기만 들어봐도 힘들고 어려운 수술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수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 수술.

그렇기 때문에 병원 경영진 입장에서는 굳이 이런 환자를 유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수의 몇몇 병원을 제외하고는 개두술을 할 시설도, 의료진도 갖추어놓지 않는다.


오래된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의 문제.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하게 되니 머리가 띵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구급대원에게 말했다.


“일단 해운대 박병원이나 양산 경남대병원 정도는 가야 할 것 같은데, 해운대 박병원이 더 가깝죠?”

“예, 박병원은 40분 정도고 경남대병원은 한 시간 정도려나요...”

“박병원부터 전화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구급대원이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전화기에는 전화번호가 이미 찍혀 있었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루루


몇 번의 송신음이 들리더니.


“네, 해운대 박병원 응급실입니다.”


응급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환자 상태를 자세히 설명했다.


“...네, 네, head trauma(두부 외상) 환자인데 left pupil dilatation(좌측 동공 산대) 있어서 hemorrhage(출혈) 의심되는 상황이고요...”


그렇게 얼마간의 설명 후.

돌아오는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아, 예... 수술은 되는데 ICU(중환자실) 자리가 없다고요? 예, 알겠습니다.”


나는 절망감에 휩싸인 채 통화를 종료했다.


이제 남은 가능성은 한 군데.

이곳마저 안 되면 더 윗 지방으로 올라가야 한다.

당연히 수술 시간이 지연될수록 생존율이 내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


“하...”


나는 한숨을 쉬며 구급대원에게 전화기를 넘겨주며 말했다.


“양산 경남대병원 번호 좀 찍어주세요. 그리고 우선은 양산 경남대병원으로 가주세요.”


양산 경남대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곳.

일반적인 응급실인 지역응급의료센터와 다르게 다른 곳에서 처리하지 못한 중환자나 특수한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를 받아줄 가능성이 조금은 더 높았다.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진 채로 전화기를 넘겨받았다.

곧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루루


몇 번의 송신음이 울렸다.


“양산 경남대병원 응급실입니다.”


응급실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까의 전화통화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응급실 간호사는 잠깐 환자 상태를 듣더니 곧바로 대답했다.


“네, 수술 가능하답니다. 오시는 데 얼마나 걸리죠?”


‘하아... 됐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시간 정도 걸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간호사는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제 경남대병원 응급실에서는 응급의학과 의사들과 응급실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환자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졌다.

나는 마음 속으로 조용히 그들을 응원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구급대원에게 말했다.


“양산 경남대병원에서 수술 가능하답니다.”

“예, 그럼 이대로 쭉 갈게요.”


구급대원이 대답했다.


그 순간.


띠리리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순간 놀랬다.


‘설마 갑자기 수용 안 된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구급대원이 들고 있는 휴대전화를 쳐다봤다.

까만 화면이었다.


‘내 건가...’


나는 가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하윤이었다.


“깡태, 일 끝났어?”

“어... 아직 안 끝났는데...”


나는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엥? 웬일로 늦게 끝난대. 밥이나 같이 먹자 하려고 했는데...”


하윤이가 아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휴대전화 화면에 표시된 시계를 봤다.

오후 6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경남대병원 가서 응급실까지 밀어 넣고 나오면 아마 8시 쯤 되려나... 다시 보건지소로 돌아가면 최소 9시는 될 텐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윤이에게 대답했다.


“어... 바빠서 저녁은 같이 못 먹을 거 같은데... 혼자 먹을래...?”


그러자 하윤이가 심각한 목소리로 물어봤다.


“응? 너 목소리가 왜 그래? 지금 어디야? 보건소 아니지?”

“어...?”


나는 순간 당황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보건소에 위급한 환자가 와서... 지금 119 불러서 양산 경남대병원으로 가고 있어.”

“뭐어어? 양사안?”


하윤이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양산까지 가서 언제 오는데?”

“한... 9시? 10시? 정확히는 몰라.”

“올 때는 어떻게 오고?”

“어... 택시?”


택시 말고 방법이 없기도 하고.


119 구급차는 응급환자 이외에는 수송이 불가능하다.

응급실까지 같이 갔던 의사라고 돌아갈 때 태우고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택시비 어떻게 내지?’


나는 가운 주머니를 뒤져봤다.

카드도 돈도 아무것도 없었다.


‘망했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하윤이가 내게 말했다.


“태우러 가줄까?”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래주면 고맙지.”

“오케이 도착하면 전화할게.”


하윤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후... 다행이다...’


나는 모든 일들이 잘 풀려가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할머니 상태만 괜찮으면 다 해결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할머니를 쳐다봤다.

그리고 팔을 잡으며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으...”


할머니는 팔을 움찔하면서 약한 신음소리를 내었다.


‘하... semicoma(반혼수 상태) 됐네...’


순간 불안감이 덮쳐왔다.

나는 다리를 달달 떨었다.


아무리 큰 병원에서 수련을 받아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CT가 없으니 환자 머릿속에 피가 나는지 어떤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유리병에 담긴 그 흔한 약 하나가 없으니 환자가 의식이 없어져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력했다.


‘수술 잘 받으셔야 할 텐데...’


그저 그런 생각만 반복했다.


그러던 중 문득 위화감이 느껴졌다.

아까부터 구급차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나는 운전석 쪽을 바라봤다.


“에휴...”


운전석에 앉아있는 구급대원은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앞유리를 바라보니 실제로 구급차는 정지해 있었다.


출퇴근 시간대라 그런지 구급차 앞은 차로 가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차는 모세의 기적이라도 보여주는 듯 양 옆으로 차를 비켜 대어놓았다.

딱 한 대만 빼고.


구급대원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아아, 지금 응급환자 후송중이니 양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방송이 끝났지만 구급차 앞에 있던 차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빠아아아앙


구급차가 경적을 울렸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내가 구급대원에게 질문했다.


“앞에 차 한 대가 안 비켜주네요.”

“예? 구급차량은 무조건 비켜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법은 그렇죠.”


구급대원은 체념한 듯 대답했다.


“근데 뭐 차가 막혀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옆으로 이동할 공간이 없었다 이렇게 둘러대면 뭐라고 하겠어요...”


구급대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구급차를 막고 있는 차를 자세히 봤다.

아무리 봐도 비킬 공간이 없어서 그대로 있는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나는 잠깐 고민하고는


“쓰읍...”


구급차 뒷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어, 뭐하시게요?”


구급대원이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래졌다.


“부탁해보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나는 길을 막고 있는 차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똑똑


창문을 내리는 운전자.

험상궂게 생긴 남자였다.


“저, 죄송한데 지금 응급환자 때문에 좀 급해서요. 잠깐만... 잠깐만 차 좀 옆으로 비켜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무리 그래도 흰 가운 입은 사람이 위급하니까 길 좀 비켜달라고 하면 비켜주겠지...’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내 기대는 한 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진짜 급하면 밀고 가든가.”


순간 당황했다.

이렇게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환자가 살려면 어떻게든 이 앞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나는 어떻게든 설득해보려고 했다.


“아니 밀면 서로 다치잖아요... 저희 진짜 급하거든요? 잠깐만 비켜주세요. 예?”

“그니까 진짜 급하면 밀고 가보라고.”


남자는 완고했다.


“아니 환자 진짜 급하거든요? 안 비키면 진짜 환자 죽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내가 죽인 거다 그 소리냐?”


순간 욱했다.


“예? 아니... 씨발 지금 무슨 소리를...”


욕이 섞여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이 자극이 된 걸까.


운전자는 “뭐? 씨발?”이라고 되물으며 차 안에서 생수병 뚜껑을 열어 물을 뿌렸다.


촤악


물을 뒤집어썼다.


순간 앞이 노래졌다.


남자가 큰소리로 무어라 지껄였다.

하지만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


“후...”


하늘을 바라본 채 심호흡을 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급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그 자리에 멈춰만 있었다.

앞은 자동차로 가득 차 길이 막혀 있었다.

그리고 환자는 구급차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환자에게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

유일하게 희망을 걸었던 것이 한시라도 빨리 대학병원으로 후송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희망도 지금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이렇게 가면 환자는 아마 죽을 것이다.


스트레스가 한계치까지 왔다.

다 부셔버리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벅터벅 구급차를 향해 걸어갔다.


자동차 뒷범퍼가 눈에 들어왔다.

빤히 쳐다봤다.


순간 구급차 운전석에 있는 구급대원이 손사래를 쳤다.


“어어...? 선생님 하지마요...!”




나는 그대로 자동차 뒷범퍼를 발로 찼다.


“씨발!”


구급대원이 이마를 감싸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고야...”


나 속이 풀리지 않아 계속 발로 찼다.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씨발!”


쾅 쾅 쾅 쾅 쾅


그렇게 자동차를 발로 차고 있으니 운전자가 문을 열고 나와서는


“야이 개새끼야 뭐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내 멱살을 잡았다.

나는 그대로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빠아아아아아앙



경적소리가 들리더니 화물차 한 대가 그대로 길을 막고 있던 자동차를 들이박아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나와 남자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화물차를 바라봤다.


화물차 운전석에서 창문이 내려갔다.


“의사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화물차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손을 들어 인사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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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담배 끊으세요 (1) +1 24.08.30 1,242 37 12쪽
5 오랜만이야 (2) +1 24.08.29 1,253 37 12쪽
4 오랜만이야 (1) +3 24.08.28 1,338 37 12쪽
3 보건지소 +2 24.08.27 1,381 37 12쪽
2 의무기록 +2 24.08.26 1,428 40 13쪽
1 귀향 +4 24.08.26 1,650 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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