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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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내기
작품등록일 :
2016.03.1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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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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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1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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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6

DUMMY

앞으로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던 그녀가 온 것은,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시간감각을 잊은 지 오래였던 그였으나, 그는 사실상 다음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번에도 금을 가지고 왔다. 그 흐린 불빛과 함께였다.

그녀는 철창 앞에 앉더니, 그를 보지도 않고 연주하기 시작했다.

공랑은 금을 연주하는 천화를 처음 보았다. 소리만 들었을 때도 괜찮았지만, 그 모습은 정말, 분하게도, 아름다웠다.

그는 명문가의 자제로서 유명한 기방을 몇 번 가본 적이 있었다. 어른들과 함께였지만 창기들의 모습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 곳에서 금을 연주하는 여자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천화의 미색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금 솜씨는 최고가 아니었으나, 어딘가 슬픈 듯, 부족한 듯 애타게 연주하는 금은 그 미색과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는 울화통이 치밀었다.

“거기.”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천화는 못 들은 척 계속 연주했다.

“그거 내 놓아 보시오.”

천화가 연주를 멈추었다.

“이 금 말이냐.”

“내 놓으라면 놓으시오.”

“당돌하구나. 난 어제부로 네게 신경 끄기로 생각하던 참이었다. 내가 들어가면 또 무슨 짓을 저지를 테냐.”그녀가 응수하자 그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금을 더럽게 못 만져서 그렇소.”

“뭐?”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뭐, 뭐라고 하였느냐.”

“들은 말 그대로요. 더럽게 못 만지외다.”

“또 하찮은 말로 내 신경을 긁으려 하는구나.”

“나도 들어줄 연주는 소저의 연주뿐이라 놔두었는데, 이제 못 참겠소. 그 금, 이리 내 놓으시오.”

“문을 열지 않으면 줄 방법이 없다.”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 눈에 띄게 당황한 것 같았다. 그는 그런, 평소와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이 이상하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열면 될 것 아니오. 내가 소저에게 무슨 짓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라는 뜻이었다. 당연히 천화도 알고 있을 게 뻔했는데도, 그녀는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네가 이보다 금을 더 잘 탈 수 있겠느냐?”

대놓고 의심하는 것 같았다.

“일단 주고 생각하면 될 것 아니오.”

“믿지 못하겠다. 옳다. 너는 내 금을 망가뜨릴 생각이다. 그렇지 않느냐?”

순간 그는 그것도 썩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어지기 전에 주기나 하소.”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마음을 정한 듯 했다.

“알았다. 정말 아무 짓도 하면 안 된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날 맡았던 짙은 향과 함께 천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녀의 금을 거의 빼앗듯이 가져왔다.

좋은 금이었다. 일곱 개의 줄. 명인의 솜씨가 분명한 금이 손질도 잘 되어있었다. 그는 줄을 퉁기고, 잃었던 감각을 되새겨보았다.

마지막으로 금을 탄 것이 고향에서였다.

그는 연주를 시작했다.

일현, 이현, 삼현. 첫인사를 하듯 숨을 고르고 줄을 매만졌다. 그리고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곡과 함께, 그녀가 자주 연주했던 곡까지 곯리듯 연주했다. 그녀가 자주 실수하는 부분은 강조하듯 강하게 탔다. 여자의 머리카락을 만지듯 부드럽게, 때론 옷고름을 풀어헤치듯 어지럽게. 그러면서도 차분하게. 감정을 담아서, 그녀를 원망하는 마음과 벗어나고 싶은 마음. 그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담아 금을 탔다.

마지막으로 연주를 끝냈을 때 그는 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자신의 연주에 취해 잃었던 정신을 다잡고 보니 천화는 입을 헤 벌리고는 아직도 그의 연주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할 때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잘.......하는구나.”

그녀가 간신히 꺼낸 듯한 한마디였다. 그가 불만족스럽게 대꾸했다.

“이건 별것도 아니오.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금으로 경지를 이뤘다는 소리까지 들었소. 너무 오랜만이고 이런 형편이라 몇 등급은 낮은 소리였을 뿐이오.”그녀의 실력은 그보다 한참 아래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잘 알아들었는지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다시 목이 졸려 쓰러지려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그녀가 말했다.

“부럽구나.”

그는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꾸민 것이라면 모르는 일이나, 진심 같았다. 진심으로 탄복한 표정과 질투, 그 외의 여러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내게는 금을 타는 재주가 없다. 정말 오래 연습했는데도 이 정도다. 검의 신동으로 불린 나이지만, 그 재주만큼은 부럽기 짝이 없구나.”

“애당초 금은 소저의 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소.”

쏘는 어조였지만, 그것은 진실이었다. 그가 보기에 그렇게 강하고, 파괴적이고, 변덕스러운 사람이 금을 잘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금을 잘 타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가문 사람들 같은 부류였다.

“굳이 금을 잘 다룰 이유도 없지 않소? 내 보기엔 천성적으로 금을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이 주었던 금이다.”

그녀의 얼굴이 무척이나 슬퍼 보였다. 그는 그것조차 그녀가 꾸민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것으로는 최고의 소리를 내고 싶었다. 비록 남의 손이지만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좋구나.”

“다른 이의 연주는 마음에 들지 않소?”

“내가 이 금을 맡긴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그녀가 조용히 말하자 그는 당장에 거짓말, 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섣불리 말하지는 않았다.

“안심하고 맡길 사람이 없더구나.”

“내가 어제 했던 짓보다 더한 일을 하는 사람밖에 없소?”

그가 빈정거리자 그녀가 힘없이 웃었다.

“그것도 그렇지만.......정말 순수하게 이것을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타보라고 하면 두려움에 떨거나 괜스레 긴장하는 사람들 뿐.”

그는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악명을 듣고 무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 자초한 일 아니오.”

“손가락은 그토록 아름다운데 혓바닥은 잘라버리고 싶구나.”

“이 금을 그토록 오래 방치한 건 그쪽 혓바닥이오.”

“한 마디도 지지 않는구나.”

그녀가 다시 얼굴이 붉어져서 대꾸하자 그의 기분이 좋아졌다.

“많이 졌소. 다만 이 금으로 확실하게 이겼을 뿐이지.”

그녀가 일어서자 그는 더 험한 꼴을 당하는 것이 아닐지 잔뜩 긴장했다. 일어서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이제껏 주변을 밝히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받거라.”

그는 엉겁결에 손을 내밀었다. 묘한 돌이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데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이 불은 은향이라 한다. 반딧불의 불빛과 비슷한데 그리 밝지는 않지만 오래가고, 아름답지.”

“내게 주는 것이오?”

“좋은 연주를 들려준 데에 대한 보답이다.”

고마우면서도 황당했다.

“그럴 바엔 아예 등잔불을 주시오.”

“네 연주도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였느니라.”

어처구니가 없었다.

“허, 고작 등잔불에도 미치지 못하였소?”

“네게 은향을 주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친절을 베푸는 것인지 모르겠느냐? 나는 네게 어떠한 불빛도 주지 않기로 맹세했었다.”

“퍽이나 고맙소.”

그녀는 그가 불빛이 나오는 돌을 손에 들고 뚱한 눈으로 쳐다보자, 머뭇거리고는 철창을 열고, 나가, 닫았다.


작가의말

3월 15일 오전 12시 26분.


7편 열심히 수정중이에요. 30분 이내에 올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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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홍련 +2 16.03.25 598 12 8쪽
20 두 번째 장 +2 16.03.24 709 10 11쪽
19 천랑비급 +2 16.03.23 634 12 15쪽
18 열쇠 +2 16.03.22 602 13 14쪽
17 다시, 감금 +2 16.03.21 595 12 7쪽
16 다시 만났을 때 +2 16.03.21 621 10 9쪽
15 첫 만남 +2 16.03.20 600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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