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을 내리다
그 상황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찔린 당사자인 국왕조차 자신을 찌른 기사단장의 얼굴을 보고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왕의 이름연호로 시끄럽던 연회장은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갑작스레 조용해졌다.
누구보다 국왕의 안위를 신경 써야 할 왕국기사단 단장이 그 왕의 가슴에 칼을 꼽았다.
친구가 친구를 죽인 꼴이다.
연회에 참석한 관리들과 상급 모험자들은 충격 받아 바로 반응하지 못하고 멍을 때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왕에 대한 분노에 차있던 시이나조차.
지오돌프 국왕은 배신감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기사단장을 보았다.
“네... 네가 왜...?”
“네 놈은 썩었다. 썩은 잡초를 제거해야 나라는 앞으로 나아간다.”
기사단장은 단검을 더 깊숙이 찔러 넣었다.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던 국왕이 스무 번 칼질을 당할 동안 모두 감히 나설 생각을 못했다.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것이다.
국왕이 계단식 단상에서 굴러 떨어진다.
잘난 듯 쓰고 있던 그의 왕관이 떨어져, 그 자신의 피 웅덩이로 굴러갔다.
“뭘 하고 있어...! 저 놈을 죽이ㅡ”
그게 유언이었다.
지오돌프 국왕은 기사단장의 손에 사망했다.
그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근위대들이 달려와 근위대장을 둘러쌌다.
체포하려는 게 목적인 것 같지만 근위대 정도 잡졸들에 기사단장이나 되시는 분이 원래라면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지.
하지만 기사단장은 순순하게 단검을 집어던지고 양손을 들었다.
저항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근위대가 신속하게 그의 손을 묶고 무릎 꿇렸다.
바로 죽이지는 못한다. 대역죄인이니 공개처형하게 되겠지.
“이, 이게 무슨? 왕이 죽은 거야?”
시이나가 물어본다.
“그 정도는 보면 당연하지 않나.”
나는 탐지마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왕성을 바삐 뛰어다니는 걸 관찰했다.
국왕 암살 소식은 생각보다 빠르게 퍼졌다. 사안이 보통 사안인 만큼 왕성에는 있으나 연회엔 참가하지 않은 자들에게 충격은 컸다.
왕국기사단을 제외한 성 안의 모든 병력들이 연회장으로 쏠리고 있다.
실질적으로 남은 건 왕성 경비병 몇 명.
이럴 때일수록 평정을 유지해야 하건만 국왕이 단장 죽었다는 소식에 패닉한 모양이다.
남겨 둬야할 수비 병력조차 연회장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다.
“류셀, 너 혹시... 앗,”
시이나는 금의 장미 중 하나가 우리 테이블에 다가오는 걸 보고 말을 아꼈다. 금의 장미의 리더라는 놈이다.
“네, 네 네가 그랬지? 너에 대한 건 아리아에게 들었어!”
이 놈, 한통 시끄러운 와중에서도 큰 목소리를 냈다.
“증거는 있나?”
“네 언행이 증거다! 근위대는 뭐해! 여기 용의자가 있다!”
정작 근위대는 왕의 시체를 지키는데 바빴다. 사람들이 믿기지 않아 몰려든 것을 겨우 막아내고 있다.
“용의자는 기사단장이지 않나.”
“그... 그건 그렇지만!”
“조나단, 진정하시게.”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았던 중년 남자가 부드럽게 검사를 진정시켰다. 상급 모험자끼리의 다툼으로 본 모양이었다.
“스튜어트님! 하지만 이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다!”
“물증이 있다면 조나단의 얘기를 듣겠지만 전부 심증 아닌가? 자자, 일단 진정하고 자리로 돌아가게. 괜히 소란을 피우면 좋지 않아.”
리더가 님 자를 붙이는 걸 보아 꽤 높으신 관리인 것 같았다.
“소개는 일단 생략해두겠네, 소년. 모험자 생활은 이제 시작한 신참이라고 했지?”
내가 돌이라도 씹은 얼굴로 올려다보자 관리가 조금 당황했다.
“하, 하지만 그래도 상급 모험자들이 여기 모였으니 우리는 안전하겠지?”
나는 만면의 웃음을 지었다.
“물론이지. 끝까지 안전하다고 믿고 있어라.”
“끝까지... 그게 무슨 뜻인가?”
“이거 이거 봐! 딱 봐도 이 놈이 진범이잖아!”
“조나단, 일단 지금은...”
국왕의 죽음을 몸소 목격한 자들 중 이제 제대로 연회를 즐기는 자는 없다. 자리를 떠나 급히 누군가와 조용히 대화를 나누거나 아직도 꺅꺅대며 왕의 시체 근처에 몰려있다.
테이블에 그대로 앉아 있는 건 시이나, 이스, 그리고 나 뿐.
“국왕이 죽었으니 이제 안심이네요.”
이스는 홍차를 마시려다 이제 식어버린 홍차를 제때 갈아줄 메이드가 없다는 걸 깨닫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너희 둘... 어떻게 그렇게 안 놀랄 수 있는 거야? 이 나라의 왕이 암살 당한거야. 이건 보통 일이 아니라구!”
“넌 어디까지나 모순적이군, 시이나. 아까는 왕에 대한 불만이 많아 보인 것 같았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나?”
시이나가 반박하려하자 이스가 막았다.
“류셀과 저는 애초부터 왕국의 사람이 아니니까요. 류셀 씨가 이 정도로 동요하지 않는 것도 당연해요. 일단 슬슬 빠져나가죠.”
이스는 뒷문을 체크했지만 하나같이 병사들이 막고 있다.
“아무도 여기서 나가게 하지 마라! 현장이 보존될 때까지! 이곳 전원이 용의자다!
근위대 대장이 고래고래 외치는 중이었다.
“류셀, 강행 돌파할까요? 저는 딱히 상관없어요.”
테이블 밑에 백색 검을 숨긴 채 이스가 말했다.
“그것도 재미있어 보이는군. 하지만.”
그 말대로 잡졸처리 정도는 손쉬운 일이겠지.
암살이 성공한 이상 더 이상 연회장에 있을 필요는 없지만 중요한 자리에서 혼자만 병사를 죽이면서까지 도망쳤으니 용의자로 몰릴 가능성도 높았다.
물론 나는 둘 다 생각이 없었다. 이제 막 그림이 완성되려 하는 것이다. 그걸 도중에 방해해서는 미완성인 작품으로 끝나게 된다.
“류셀...?”
“류셀 씨?”
나는 휘갈겨 쓰던 종이를 대충 코트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로 도도하게, 아니 오만하게 왕의 시체를 둘러싼 인파를 향해 나아갔다.
“저 놈, 또 뭔가 하려 한다!”
조나단이 외쳤지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줄 놈은 그 동료들밖에 없다. 전투태세로 돌입한 것을 느꼈지만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인파를 헤치려 애쓸 필요는 없었다.
귀족들. 관리들. 모험자들은 내 눈을 보고 양 갈래로 나눠진 것이다.
“여기는 접근하시면 안 됩니다.”
근위대 중 하나가 나를 막아서려다 몸이 굳고 그대로 물러섰다. 왕의 시체를 지키던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무런 방해 없이 지오돌프 국왕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추하고 끔찍한 몰골이다. 죽을 때까지조차 편하게 가지 못했다는 건가.
그건 좋은 일이다.
나머지 연회장이 아직 혼란에 빠진 와중,
나는 검은 코트를 걸친 채 느긋하게 단 한 계단, 천천히 단상에 올라갔다.
내 부츠 소리에 대리석 계단이 울리는 것만이 이 연회장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소리다.
모두의 시선은 어느 샌가 내게 쏠려있었다.
이스는 대충 눈치 채고 테이블에 앉아있지만 시이나는 나를 걱정했는지 단상 밑에 서있었다.
“뭘 하려는 거야, 류셀?”
잠시 기다리라는 손동작을 취한 나는 증폭 마법으로 크기를 키운 내 목소리가 연회장 내부의 모두에게 잘 들리게끔 말했다.
“쓰러진 국왕을 대신해서 내가 할 말이 있다.”
모두가 얼어붙은 듯이 나를 보고 있다.
나에 대한 소문은 다 알고 있겠지.
드래곤을 처치했다고 칭송받는 소년이 단상 위에 서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 의도는 무엇인가.
입 밖에 나오지 않은 질문들이 연회장을 채웠다. 하지만 대놓고 떠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나는 관중이 제대로 예의를 차려준 것에 감사하며 말했다.
“한번만 말할 거니 잘 듣도록.”
모두 집중해서 나를 보고 있다. 그건 좋은 일이다.
“너희들, 서로 죽여라.”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