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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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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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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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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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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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설원

DUMMY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화창하던 하늘에선 난데없이 눈이 내리고 있고, 어딜 봐도 얼음이 가득하다. 도저히 같은 섬에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경치지만 우리는 단지 걷기만 했을 뿐, 섬에서 벗어난 적은 없다.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쌓인 눈. 오는 길을 잘못 들어 스키 리조트에 온 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로 경치의 분위기도, 온도도 일변해있었다.


“정말이군. 상급전이가 막혀있어.”


전이마법의 영창을 시도하다 실패한 내가 실소했다. 펑펑 쏟아지는 눈 덕에 카니앗은 벌써 머리에 쌓인 눈을 털어냈지만, 내 어깨에 쌓이려던 눈은 미끄러져 땅에 떨어졌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스키잔의 경우 눈이 한줄기 바람을 타고 그녀의 몸을 피하는 형태로 비껴갔고, 가브리엘은 아예 눈이 몸에 닿기 전에 증발해버리고 있었다.


“그냥 눈이 내릴 뿐인 장소에 그렇게까지 공을 들일 필요는 없어. 그만큼 중요한 게 이곳에 잠들어있다는 것이군.”

“음... 그렇게 표현하자면 대충 맞겠네요.”


류아가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으며 수긍하는 말이 들렸다. 비슷한 입장인 카니앗도 겉옷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내가 제작에 공을 들인 군복을 입었으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마왕군 말단들에게 배급되는 군복까지 마법을 부여해주진 못했지만 적어도 간부급은 신경을 써주었으니까.


착용자의 체온을 적정 온도로 유지시켜주는 마법이 제대로 걸려있으니 카니앗은 추운 기색 하나 보이지 않았다.


류아는 잠시 뒤에서 보온 마법 말고도 몇 가지 방어 마법을 자신의 신체에 걸었다. 그렇게까지 장로에게 믿음을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거겠지. 어느 정도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두고 싶긴 했지만 사실 더 이상 류아의 안내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길을 헤맬 이는 없겠지.


멀리까지 뻗은 설원에 홀로 서있는 건 얼음으로 지어진 거대한 신전이었으니까. 앞에 서있으면 사람이 개미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위압감을 주는 규모의 구조물이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중세 시대의 성을 섞어놓은 것 같은 이런 큰 건물이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다.


“엘프가 대대손손 세계수 위그드라실을 보관하고 있는 게 저곳이겠지. 맞나?”


답을 바라는 것처럼 류아를 쳐다보자 설명 대신 해명 비슷한 것이 나왔다.


“신성한 장소라는 건 알지만 저도 이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어요. 원래라면 접근하는 것도 금지된 구역이라...”

“그럼 이 곳에 신전이 지어진 것도 오래 전의 일이라는 게 되겠군.”

“학교 역사책 첫 장에 나올 정도니까요. 엘프의 선조가 대전에서 살아남아 섬에 왔을 때는 이미 설원 지대가 있었어요. 저 신전을 지은 경위에 대한 기록도 거의 남아있지 않으니... 안이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마왕님께서 찾고자 하시는 건 분명 이 안에 있다는 건 확실해요.”

“그럼 망설일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저 신전은 잊혀진 지 오래인 고대의 마법으로 지은 걸 거예요. 저 문도 지금 사람들은 모르는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을 텐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류아의 말대로 신전의 문은 닫혀있었다. 일단 느끼기에는 봉인 마법과 흡사한 것이 문에 작용하고 있었다.


“가브리엘. 저 얼음을 전부 녹일 수는 있겠나?”

“그건 무리다, 주인.”


문득 생각난 방법을 물을 관장하는 천사에게 물어보았지만 수확은 없었다.


“저건 물을 얼려서 만든 얼음이 아니다. 얼음의 흉내를 내는 마법이니 그 방법은 불가능하다.”

“하긴 그러겠지...”


장애물을 돌파한다는 점에서는 섬의 방위마법을 해제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마력 공급의 원천을 강타한다는 작전은 무리였다.


신전 밖에서 강대한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저 건물 안의 어딘가에 마력 공급원이 있다는 소리다. 지금은 그게 위그드라실일 가능성이 있는 이상 더욱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아예 막아버리려고 만든 게 아닌지 의심 갈 정도로 불친절한 모양새였다. 애초에 밖에서 열 수는 있는 구조인지도 불확실했다. 문에는 아무런 손잡이가 없었던 것이다. 통상적인 사고로는 난감한 상황임에 틀림없었다.


그래, ‘통상’적인 사고로는 말이다.


사실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속으로는 이미 해답을 내린지 오래였다.


저 문을 여는 방법을 가지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봤자 의미 없는 일이다. 왜냐고? 중요한 건 활로를 연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잠겨 있는 나무상자의 자물쇠를 딸 수 없다면 상자 겉을 살짝 부숴버리기만 하면 된다. 옛날 옛적의 엘프들이 남겨둔 봉인마법은 어디까지나 ‘문’에만 작용하고 있었으니 문 주위를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나라면 신전의 크기를 더 작게 하고 봉인마법의 적용 범위를 건물 전체로 했었겠지.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이 만연할 시기에 지어진 건물이니 어쩌면 이런 오류가 있는 게 당연했다.


“가브리엘.”


내가 직접 뚫는 방법도 있지만 그래서야 신전 안의 내용물이 상할까 걱정되었다. 애용하는 어둠 속성 파괴 마법인 버스트는 기본적으로 사정거리가 꽤 기니까 말이다. 게다가 신성한 곳을 처참히 부수고도 욕을 제일 덜 먹을 것 같은 게 천사기도 했고.


“문과 신전의 이음새를 파괴해라.”


고개를 숙여 주인의 명령에 존명을 밝힌 가브리엘의 날개가 활짝 펴졌다.


그 끝의 여러 지점들에 각각 모이는 것은 보는 이의 눈이 멀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환한 빛.


가브리엘이 날개를 살짝 펄럭이자 수십 개의 빛의 광선이 각각 퍼져나가 신전의 문 가장자리를 강타했다.


여러 폭발음이 겹쳐 들리고, 폭발의 여파로 흰 연기가 바람과 함께 몰아쳤다.


연기가 잠잠해지고 나자, 굳게 입구를 지키고 있던 문과 단단히 맞물리고 있던 벽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지탱할 곳을 잃은 문은 당연히 기우뚱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얼마나 무거운 문인지 쓰러진 것만으로도 땅이 크게 진동할 정도였다.


“그냥... 부쉈어? 유서 깊은 신전인데?”


류아는 엘프의 유산이 박살나는 걸 보더니 넋을 놓고 있었다. 귀중한 유물이 저렇게 되었다는 상실감보다는 마법이 깃든 얼음으로 이루어진 신전의 일부를 간단히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 직접 보고 나서도 믿기지 않는 것이겠지.


이것 또한 천사가 쓰는 원시마법의 힘의 일각에 불과했지만 나름 마법에 자신이 있는 하이엘프가 봐도 충격이긴 할 것이다. 저런 규격 외의 존재가 힘을 행사하는 걸 볼 기회는 보통은 없으니.


“류아 씨.”


쓰러진 문이 남긴 거대한 구멍을 바라보며 스키잔은 얼어붙기라도 한 것 같은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 안에 있다는 위그드라실에 대해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게 있나요?”


류아가 고개를 젓자 스키잔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여기까지 안내해준 건 고맙지만 이제 안내인은 필요 없을 같네요. 레야 장로에게 돌아가 보아도 좋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알아서 하죠.”


확실하게 거절하는 말이었지만 류아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저도 동행할 수는 없을까요?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학교에선 수석으로 졸업했으니 마법 쪽은... 아니, 마법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이대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인지 류아는 열심히 자기어필을 했다. 가브리엘이 행사한 힘을 보고 마법 부문에서의 자신의 가치를 낮출 정도로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녀석이었다.


“위그드라실에 대한 건 잘 몰라도 이건 저희 하이엘프의 조상이 지은 건물이니 제가 해석할 수 있는 고대룬이 있을 거예요. 학교에서 배울 필요는 없었지만 전부 외워는 놨으니까ㅡ”

“엘프가 사용하던 고대룬이라면 나도 알고 있어.”


카니앗은 류아의 말이 불편한 것처럼 바로 반박했다.


“아니면 장로에게서 우리를 감시하라는 명령이라도 받은 거야?”

“그... 그렇지 않아요!”


류아도 카니앗을 맞서 바라보는 표정이 좋지는 않았다. 하이엘프와 다크엘프 사이에 지워지지 않는 앙금이 남아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말싸움이 번지려는 찰나.


“마왕군에 들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마족이다, 카니앗. 동행하는 것 정도는 봐줘도 상관없겠지.”


내가 끼어들었다.


문도 날려버린 마당에 의미 없는 다툼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의도였지만 그게 류아에게는 다른 의미로 전달되었는지 얼굴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마왕님!”


스키잔과 카니앗은 탐탁지 않은 눈을 했지만 내가 결정을 내린 이상 반론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가브리엘이야 당연히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오랜 시간 관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 신전이었지만 안은 의외로 깔끔했다. 전부 얼음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만 제외하면 흠잡을 곳이 별로 없다.


어두컴컴한 실내를 보고 빛 마법을 써야 하나 생각했을 때였다.


마치 우리를 환영하는 듯 푸른 불꽃이 안쪽까지 차례차례 켜졌다.


“설마 이 안에 무언가가 있는 건가요...!”


카니앗은 경계태세를 갖추며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아니, 단지 불이 켜졌다고 해서 그건 아니다.”


나는 탐지마법으로 대략 무슨 일인지 파악하고 카니앗의 경계를 풀어주었다.


“접근하는 걸 파악하고 불을 밝혀주는 생활 마법 시스템이 아직 남아있을 뿐이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온기 대신 냉기만이 불꽃을 감돌고 있었다.


설원이 배경이라는 설정에 꽤나 충실하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경계하는 부하들과 다르게 시원스레 걸음을 이어갔다.


“너희들, 일단 내 뒤에 있어라.”


카니앗의 우려는 앞부분은 틀렸지만 결과만 보면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칼란츠ㅡ이 설원 지대를 휘감는 마법은 이상하게도 너무 한결같았다. 마치 이 전부가 어느 한 존재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고유스킬은 계속 발동해두고 있는 채다. 안에 무엇이 있든 나를 상처 입힐 수 있는 건 없는 것이다.


“설마 세계수를 통째로 얼려놓았다는 건 아니겠지.”


나는 추가적인 탐지 마법을 신전 내부로 쏘아 보내며 말하다, 고개를 돌려 류아를 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것이 마법에 걸려든 것이다.


“... 그렇게 된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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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8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79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6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7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6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4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24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16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5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42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68 2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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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40 3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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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45 38 8쪽
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39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47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78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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