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프랑스
한편 프랑스에서는 극우 민족주의가 거세지고 있었다. 일부 프랑스인들은 독일이 소련과 싸우는 이 시기가 잃어버린 영토를 다시 찾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스는 이러한 프랑스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고 있었다.
'절대로 양면전선만은 형성하면 안된다..'
프랑스 입장에서도 현재 독일군이 모스크바 전투를 앞두고 있는 지금이 알자스 로렌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것 이었다. 한스는 자신의 원수봉을 꽉 쥔 채로 서유럽의 지도를 바라보았다.
'모스크바가 함락되면 다음 차례는 프랑스 네 놈들이다!!'
이 시각 모스크바, 소련군은 점점 다가오는 독일군을 향한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모스크바는 밤만 되면 독일 루프트바페가 폭격을 했고, 수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다.
적십자 표시가 그려진 구급 배낭을 들고 다니는 젊은 소련군 간호사들은 단 한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이 간호사들은 포격에 무너진 건물 속에서 구조된 부상자들을 부축하며 계속해서 사람들을 치료했다. 치료소에서는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소련군 간호사들은 절단 수술을 마치고, 앞치마에 피가 묻은 채로 터덜터덜 치료소 밖으로 나와서 집단에 기대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간호사들은 옷을 매일 빨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이면 앞치마는 늘 피에 물들었다.
현재 독일군은 모스크바를 포위하기 위해 양쪽에서 포위망을 펼치고 있었다. 모스크바를 방어하기 위하여 소련은 많은 병력을 동원했고, 이들은 모두 모스크바로 행군하고 있었다. 여자 간호병들 또한 구급 배낭을 들고는 이들과 같이 행군을 했다. 여자 간호병들의 발싸개에는 피가 베어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한편, 유능한 소련군 전차장 표도르는 파벨, 글리에르와 함께 자신의 T-34를 정비하고 있었다. 파벨이 희망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극동군이 온다는 소문이 사실일까요?"
글리에르가 외쳤다.
"지금 모스크바가 위급한 상황이니 당연히 올걸세!"
"오면 좋겠지만 여태까지 소문은 대다수 틀렸잖아!"
표도르가 말했다.
"드미트리 이 녀석은 어디갔냐?"
글리에르가 외쳤다.
"그 녀석 맨날 치료소 쪽에서 간호사와 시시덕거리고 있습니다!"
파벨이 말했다.
"드미트리 그 녀석도 참! 어차피 한 달 안에 죽을텐데 이 와중에 여자나 낚고 있으니...악!!"
표도르가 파벨의 머리를 때렸다.
"우린 안 죽는다!"
표도르의 말에 파벨과 글리에르는 입을 다물었다. 소대에는 계속 신병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굳이 친해지지 않았다. 어차피 친해져봤자 동료가 불타죽는 꼴을 보게 되면 더 괴로워질 것 이었다.
파벨이 표도르의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그래도 폭우 쏟아지면 파시스트 놈들 진격이 늦어지지 않을까요?"
글리에르는 머리 속으로 독일군이 현재 어디까지 왔을지를 계산했다.
'앞으로 한 달이라도 더 살 수 있을까?'
한편, 정치 장교 안토노프는 일본의 선제 공격으로 인하여 극동군이 모스크바로 올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럴수가!!!"
안토노프는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집무실을 왔다갔다했다. 안토노프는 자신의 지도 케이스에서 지도를 꺼냈다. 최근 몇 달간 수 많은 소련군이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독일군이 전면전으로 거대한 포위망을 만들며 소련군을 분쇄시키는 것은 그야말로 공포나 다름없었다.
'나는 정치 장교니까 포로로 잡히면 더한 고초를 겪을거다!!'
그 때 정치 장교 블라슈크가 노크를 하고 들어와서 보고서를 제출했다. 안토노프는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블라슈크가 제출한 보고서를 읽었다. 블라슈크는 안토노프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안토노프가 입을 열었다.
"극동군은 오지 않을걸세."
'!!!'
안토노프가 말을 이었다.
"이게 알려지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테니 입은 다물고 있게."
블라슈크는 터덜터덜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지금 모스크바에는 폭격으로 아작난 건물들이 많았다.
'시가전에는 우리가 유리할 것 이다...'
폭격으로 인하여 수 많은 잔해더미가 생겼고, 그 잔해 밑에는 대전차포 등을 엄폐할 수 있을 것 이었다. 이미 대로변에도 T-34의 포탑을 이용하여 만든 토치카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차량이 오고 갈 수 있는 통로 또한 곳곳에 있었다. 블라슈크는 마호르카 담배를 꺼내어 피웠다. 그 때, 자신이 그토록 그리던 류드밀라를 발견했다.
"류드밀라?"
류드밀라는 얼마 전에 모스크바의 문화재를 실어나르는 열차를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것 이었다. 류드밀라는 자랑스럽게 블라슈크에게 경례를 했다. 언제나 무뚝뚝하던 류드밀라가 오늘은 왠일인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좋은 일이라도 있나?"
"파블리첸코 동지가 우리 부대에 온다고 들었습니다!"
류드밀라와 이름이 같은 류드밀라 파블리첸코, 전설적인 저격수가 같은 부대에 들어오게 된 것 이었다. 류드밀라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저격수로서 제 실력이 많이 부족했는데 그렇게 뛰어난 동지가 들어왔으니 저도 독일군 전차장들을 사살할 수 있겠죠?"
블라슈크는 아직 나이가 어린 류드밀라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평소에는 말이 없었던 류드밀라는 파블리첸코한테 저격술을 배울 생각에 계속 재잘거렸다.
"파블리첸코 동지야말로 국가가 위급한 때에 여자도 인민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 또한 인민을 위하여"
블라슈크가 류드밀라의 말을 막았다.
"가서 쉬게."
블라슈크는 동료들에게로 걸어가는 류드밀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크세니야, 나타샤, 안나, 빅토리아가 류드밀라를 반겼다. 안나가 말했다.
"조만간 극동군이 온다고 들었어!"
빅토리아가 말했다.
"극동군만 오면 우리도 반격할 수 있겠지?"
크세니야와 나타샤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이들의 고향은 이미 독일군에게 점령된 상황이었다. 나타샤가 말했다.
"극동군 오는데 얼마나 걸릴까? 빨리 좀 왔으면 좋겠어!"
블라슈크는 이들의 대화를 듣고는 말 없이 터벅터벅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류드밀라와 동료들은 자신들이 머무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 작은 방에는 침대가 하나 밖에 없었지만 8명이 같이 지내야 했다. 류드밀라와 동료들은 번갈아가며 침대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비좁은 침대에서 소련 여군들은 더럽고 사이즈도 안 맞는 큰 군복을 입고는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다. 휴식 시간은 짧았기 때문에 최대한 편한 자세로 눕고 푹 쉬어야 했다.
그 때, 안나가 무언가를 들고 들어와서 자랑했다.
"짠!! 이거 봐라!!"
"이게 뭐야?"
안나는 예쁜 향수를 들고 있었다. 안나가 최근에 사귀기 시작한 남자친구가 폐허가 된 상점에서 구해온 것 이었다. 여군들은 다들 향수를 뿌리고 그 향기를 맡아보았다.
"너무 좋다!!"
"쟈스민 향기 같아!"
류드밀라는 방에 걸린 커튼을 바라보았다. 밤마다 독일군 항공기들이 폭격을 했기 때문에 모든 창문마다 커튼을 달아두는 것은 필수였다. 하지만 이 커튼을 조금만 자르면 속옷을 만들어 입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건 괜찮았지만 군용으로 만들어진 남자 속옷을 입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물론 많은 남자 군인들은 속옷조차 입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뒤, 크세니야는 하모니카로 어린 시절에 듣던 민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련 여군들은 얼마 뒤 모스크바를 방어하는데 성공하고,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젖었다.
류드밀라와 친구들이 있는 방 옆 방에는 여군 통신병들이 있었다. 머리에 헤드셋을 장착한 여군이 주파수를 조절해보았다.
시이이 쉬이이 쉬이이이
"파시스트 놈들이 전파 방해하는건가?"
독일군이 소련군의 무선을 감청하거나 전파를 방해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소련군은 여전히 통신 보안이 좋지 않았던 것 이다. 통신병은 계속해서 주파수를 조절했다.
'됐다!!!'
그렇게 소련군은 모스크바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한편, 오토는 전차병들과 궁뎅이에서 짧은 휴식을 최대한 만끽하고 있었다. 어차피 좀 있으면 다시 전방으로 가서 엿 같은 전투를 시작해야 할 것 이다.
그런데 스테판 녀석이 자신의 소대원들과 맛 좋은 염소젖과 흑맥주를 가져오는 것을 목격했다.
"그거 어디서 구했냐?"
"옆 마을에서 구입했네!"
오토는 마티아스, 알프레트, 요하네스, 에밀을 데리고 가서 염소젖과 흑맥주를 구하기로 했다. 마을에 도착해보니 갈색 머리의 아가씨가 커다란 오크통에서 흑맥주를 제조하고 있었다. 오토는 군용 빵과 레이션을 주고 염소젖과 흑맥주를 구입했다. 갈색 머리의 귀여운 아가씨가 오토에게 살짝 눈웃음을 쳤다.
"고마워요."
열심히 맥주를 제조하던 아가씨의 가슴골이 꽤나 도드라졌다. 오토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마티아스에게 염소젖과 흑맥주를 가지고 궁뎅이로 돌아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오토가 어설픈 러시아어로 아가씨에게 말했다.
"정말 맛있는 맥주입니다!"
아가씨는 오토의 말에 생글거리며 말했다.
"과일 파이 안 드실래요?"
그렇게 오토는 아가씨의 집에 방문했다. 알렉산드라라는 이름의 이 러시아 아가씨는 오토를 위하여 과일 파이를 구워주었다. 달콤한 과일 파이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감사합니다!"
오토는 알렉산드라와 과일 파이를 먹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라가 말했다.
"남자들은 참 불쌍해요. 전쟁터에 나가야 하다니..."
오토는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가족분은 일을 하러 가셨나봅니다!"
"다들 전쟁터에 나갔어요."
잠시 뒤, 오토는 침대에서 알렉산드라와 키스를 하고 있었다.
쪽! 쪼옥!!
그렇게 오토는 알렉산드라와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토는 자신이 갖고 있던 값비싼 라이터를 알렉산드라에게 선물했다.
"기회가 되면 또 오겠소."
알렉산드라는 흥미로운 눈으로 오토가 준 라이터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오토는 신나서 궁뎅이로 돌아왔다. 그렇게 궁뎅이로 돌아왔을때 슐레프 중대장이 오토의 귀를 잡아당겼다. 3인 이하의 인원으로 허락없이 부대 밖으로 나가는 것은 금지였던 것 이다.
"아아악!!"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으면 네 놈의 불손한 행동을 모조리 상부에 보고하겠다!!"
참고로 슐레프 중대장은 오토에게 이 말을 최소한 수십번은 반복했지만 한 번도 상부에 보고한 적은 없었다. 슐레프 중대장이 계속해서 호통을 쳤다.
"이런 행동은 네 놈 혼자만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다!! 군기 교육대에 가고 싶나!!"
슐레프 중대장은 솔직한 심정 같아서는 오토가 형벌 부대에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 혼이 난 다음 오토는 얼룩무늬 텐트에 들어가서 에밀, 마티아스 옆에 눕고 눈을 붙였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제대로 여자를 안아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이다. 결국 오토는 군용 빵을 잔뜩 갖고는 다시 알렉산드라를 찾아갔고 또 다시 불타는 시간을 보냈다. 오토는 군용빵과 함께 2급 철십자 훈장을 알렉산드라에게 주었다.
"이걸로 나를 기억해주시오."
그렇게 이 날 오토의 사생아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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