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화. 대한매일신보와 인터뷰
자신을 배설이라고 불러 달라는 이 외국인 어니스트 베델, 대한매일신보의 사장이자 기자로 재직했던 인물로 이상하리만치 망조가 드리워졌던 대한제국을 감싸고 돌았던 외국인 중 하나였다.
길례태나 헐버트 같은 인물들처럼 조선에 헌신했던 외국인들은 대부분 선교사 활동을 하면서 조선에 오래 거주하다 보니 정이 들었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만, 배설의 경우 조선에 관심을 가진 때가 러일전쟁이었다.
물론 그때부터 일본의 만행은 외국인이 봐도 치가 떨릴 정도로 악랄했으나, 때는 바야흐로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일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약한 나라에 침탈 행위를 저지르는 나라는 널리고 널렸었다.
그런 나라들의 국민은 자국의 그러한 침탈 행위 덕분에 이익을 보고 있었으므로, 국익을 위해 일본의 침탈 행위 역시 눈감아주기 바쁘던 시기였다.
이렇듯 때는 야만의 시대였음에도, 배설은 잘 알지도 못하던 조선이라는 나라를 대변해주고 있던 것이다.
어쨌든 그런 호감 외국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나로서는 전혀 없었다.
“배설 씨라고 하셨죠? 참 이곳에서 만나는 외국인 분들은 어떻게 다들 한글을 이렇게 잘 구사하시는지 깜짝 놀라게 되네요.”
배설은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NONONONO. 전 부끄럽지만, 한글 잘 못 합니다. 여기 통역해줄 사람도 함께 다니고 있습니다.”
확실히 길례태나 손탁에 비해서는 억양에서 어설픔이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대화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엄살이 심하네?
“하하, 겸손하시네요. 저도 영어를 조금은 할 줄 알고, 혜림 씨 아시죠? 혜림 씨도 영어를 잘하시니, 괜찮을 것 같습니다.”
“Okay, Okay. 그럼 인터뷰 진행하겠습니다. 저희 통역가보다는 혜림 씨가 편하시겠죠?”
“네. 혜림 씨 그럼 통역 필요할 때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이죠! 그럼 진행하실까요?”
그렇게 나는 배설과의 인터뷰라는 역사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확실히 배설은 한글보다는 영어가 더 익숙한 것 같다. 그렇게 혜림의 입을 통해 인터뷰가 시작됐다.
“우선, 야구를 시작한 계기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네요.”
그야, 망할 놈의 야구의 신이라는 양반이 내건 조건 때문이지···만, 그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
“저와 한진은 고향에서 야구와 비슷한 놀이를 하던 중, 그곳에서 만난 외국인의 말을 듣고 한양으로 올라와서 야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얘기들이 많아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고요.”
배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질문을 했다.
“다음은 일본 팀과의 경기는 어떤 계기로 성사되었냐고 묻네요.”
그야··· 고종 황제가 시켜서··· 라고 말하면 당연히 안 되겠지?
“아시다시피 우리 대한제국은 일제의 침탈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희는 그런 일제에 맞설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야구라는 스포츠로 맞서기로 했고, 때마침 일본군 팀인 성남 구락부와 붙게 된 것입니다.”
경기가 벌어진 전말에 대해 아는 혜림은 잠시 웃음을 참고는 배설에게 그대로 내 말을 전했고, 배설은 감탄하며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어떠한 자세로 이번 경기에 임했냐고 묻네요.”
여기서 지면, 고종에게 단단히 찍혀서 어떻게 될지 눈에 훤해서 진짜 죽을 힘을 다한 거지. 하지만 이 또한 그대로 말하면 안 되겠지?
“지면 죽는다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야구라는 게 비록 공놀이에 불과할지 몰라도, 이 경기를 보고 있는 관중들에게는 경기 결과가 곧 일본에게 지냐 이기냐로 느껴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배설은 고개를 격하게 흔들면서 질문을 이어갔다.
“우리보다 야구를 40년 이상 빠르게 받아들인 일본 팀에게 야구를 받아 들인지 5년도 채 되지 않은 우리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기적 같은데요. 어떻게 이런 성과를 냈는지 궁금하다고 하네요.”
그야 원시적인 야구와는 비교가 안 되는 현대의 선진 야구에서도 최정점에 올라 있던 한진 덕분이지. 이 역시 그대로 말하면 뒤집어지게 될만한 내용이니 지어내야겠지?
“비록 야구를 접하게 된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신 길례태 감독님께 우수한 지도를 받을 수 있었기에 기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뿐만이 아니라, 성남 구락부의 전력에 대한 분석 역시 날카롭게 해주신 점 역시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한진이 다하고 내가 거들은 수준이었지만, 나와 한진을 굳이 표면에 내세울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저번처럼 혹시 모를 자객들의 표적이나 되겠지.
옆에서 듣고 있던 길례태도 대충 내 저의를 눈치챘는지, 따로 태클을 걸지 않고,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었다.
배설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는, 길례태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길례태는 그런 배설을 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배설은 마무리를 짓자고 하였다.
“그럼 마지막으로 앞으로 황성 YMCA 야구단이 이루고 싶은 일이나 포부 같은 것을 말해달라고 하네요.”
나와 한진은 현대로 돌아가고 싶으니, YMCA가 우승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지.
“오늘의 승리는 그저 시작에 불과합니다. 저희의 목표는 조선 팔도를 넘어서, 세계 제일의 팀이 되어 대한제국의 자랑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러니 저희를 지켜봐 주시고, 많이 격려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 얘기도 해야지. 오늘 경기를 받아들인 건 반강제적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쇼케이스 현장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 그리고 이곳 동대문 훈련원 터에 황성 YMCA 야구단의 홈경기장을 건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늘의 경험이 마음에 들었던 관중분들은 야구장 건립 이후에는 더더욱 만족스러운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배설은 박수를 치며 일어났다.
“WOW. 오늘 인터뷰 너무 완벽했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야구장이라니 너무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와 별개로 배설에게 한 가지 더 전달할 것이 있었다.
“혜림 씨, 이것을 배설 씨에게 전달해 주세요.”
혜림은 나에게서 건네받은 물건을 보더니 질문을 했다.
“영준 씨, 이건 뭘 기록해놓은 건가요?”
그렇다 내가 배설에게 전하려는 것은 야구 기록지였다.
“네, 그건 오늘 선수들의 경기 기록을 적어놓은 경기 결과 기록지입니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입니다.
경기를 못 챙겨본 사람이라도, 여기 기록표에 나와 있는 결과만 보면 경기의 판도를 예상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경기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겠죠.”
나만 하더라도 어렸을 때 하도 할 게 없어서 신문을 펼쳐보다가, 야구 기록표를 보면서 이게 뭔가 하고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물론 나의 관심은 일시적이었지만, 가지고 놀만 한 것이 별로 없는 이곳 사람에게는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배설은 종이를 받더니 나에게 물어왔다.
“이런 기록표 같은 게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올 수 있을까요?”
그걸 말이라고··· 가지고 놀 만한 게 넘쳐 나는 현대에도 그깟 숫자 모아 놓은 게 뭐라고, 거기에 환장해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처음에야 이게 뭔가 싶더라도 나중에는 그 가치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일단 한번 신문에 실어 주십시오. 앞으로도 YMCA의 경기가 끝나는 날마다 기록표를 보내드릴 테니, 그때마다 꼭 신문에 실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가보면 왜 이런 제안을 했는지 아실 겁니다.”
배설은 확신에 찬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록표를 받아 들고 경기장을 떠나갔다.
드디어 외부인이 다 빠져나간 경기장. 경기가 끝나고도 정신없었던 이곳이 드디어 고요해졌다.
여전히 익숙한 느낌은 아니지만, 저번에 느꼈던 공허함에 비해서는 조금은 견뎌 볼만 해졌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여운을 느끼고 있던 찰나, 갑자기 전에 들었던 음성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띠링.
일본 팀 상대로 첫 승리 완료. 스카우터 레벨 상승.
스카우터 레벨 상승! 그 해금 조건을 몰라서 어떻게 해야 올릴 수 있는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레벨이 올라가는 것이구나!
아직 해야 할 일도 많았기에 모든 팀원을 살펴볼 엄두는 안 났고, 대표로 한진을 살펴보기로 했다. 스카우터 on!
<이름: 우한진>
소속: 황성 YMCA 야구단, 나이: 26세
키 : 187cm, 몸무게: 97kg 좌투좌타
[타자]
정확도: 79 (89), 힘: 78 (89), 선구안: 78 (86), 주루: 68 (75)
수비: 76 (89), 번트: 65 (85), 정신력: 95 (99)
1루적성: 76 (88), 외야적성: 73 (85)
포구: 85 (89), 송구: 67 (95), 어깨: 68 (99), 반응속도: 88 (89)
[투수] 비활성화
[코치] 타자: 73 (86), 투수: 78 (89), 수비: 77 (88)
오호~ 그동안 두루뭉술하게 알파벳으로 표기되어 있던 것들이, 조금 더 구체적인 숫자로 표기되도록 싹 바뀌었다.
이걸 보고 나니, 조금 전에 한진만 보자던 마음은 어디 가고 다른 선수들까지 전부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단 고종이 보낸 금일봉부터 살펴봐야지!
고종이 준 봉투를 열어보니 와, 입이 쩍 벌어졌다. 봉투에 들어있는 돈은 무려 100원, 현대 화폐로 환산하면 대략 500만원 상당의 현찰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꽤 묵직한 봉투를 받아들었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오늘 이걸 다 쓸 수 있을까?
근데 또, 여기 모여있는 사람을 생각하면 못 쓸 것도 없을 것 같기는 했다. 오늘 모인 인원은 경기를 뛴 9명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길례태와 제이손을 포함하여, 그들을 도와 여러 곳에서 경기 진행을 맡은 다른 YMCA 소속 인원들만 10명이 넘는다.
또한 오늘도 경기장을 찾아주었고, 앞으로 함께 일하게 될 예정인 혜월과 기방 동료들, 그리고 꼽사리 낀 한민수 등등까지 하면 30명이 넘어가는 인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넉넉한 금액임은 틀림없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뒤풀이 장소는 따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잠깐 스턴을 먹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그때 혜림이 다가왔다.
“그럼 경기장도 다 정리된 것 같은데 폐하께서 하신 말씀도 있고, 우리 뒤풀이를 하러 가볼까요?”
캬, 역시 혜림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혜림은 뒤풀이 장소까지 미리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네! 아, 그럼 오늘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이 금전은 혜림 씨께 드리면 되겠네요.”
나는 혜림에게 봉투를 덥썩 내밀었는데, 혜림은 그 봉투를 받더니, 돈을 조금 빼내어 나에게 돌려주었다. 아니, 이건 횡령 아니야?
“혜···혜림 씨, 이걸 왜 저한테 주세요? 우리 선수단이 다 같이 써야 할 돈 아닙니까?”
혜림은 주변을 잠깐 살피더니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서 얘기했다.
“쉿, 어차피 얼마가 들었는지 아무도 모를뿐더러, 이 정도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 금액이에요. 영준 씨가 허투루 돈을 쓰실 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그 누구보다 고생하셨으니 받으실 자격이 있으세요. 자, 어서 받으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혜림은 내 품속에 돈을 쑤셔 넣었다. 어허, 이러면 안 되는데 참···. 그래도 꽁돈을 마다할 수는 없지.
혜림의 말대로 내가 고생을 꽤 한 것도 틀린 말이 아니고, 앞으로 고생길도 훤하게 열려있으니, 미리 깽값이라도 받은 셈으로 쳐서 죄책감을 덜어야겠다.
그러고 난 뒤, 혜림은 아직 경기장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어디론가로 향했다.
“자! 오늘 경기 이곳저곳에서 힘 써주신 여러분들을 위해 뒤풀이를 하려고 합니다. 황제 폐하께서 하사해주신 돈으로 진행되오니, 한 분도 빠지지 마시고 꼭 참석하시고 저를 잘 따라와 주세요!”
그렇게 우리는 혜림의 인솔에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근데 어째 가는 길이 좀 많이 익숙하다?
내 이런 예감은 정확히 맞아 들어갔다. 우리가 걸어서 도착한 곳은 평소에도 많이 이용하고 있는 YMCA 건물이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