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화. 대결 구도 만들기
[1906년 5월 20일 YMCA 건물 앞]
이제 석화단과의 경기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고, 석화단은 적응을 위해 이틀 뒤에 한양에 도착한다고 한다.
아니꼽지만, 우리의 홈에서 경기가 열린다는 유리한 조건을 받았기 때문에 수락한 제안이라, 어쨌든 우리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혜림씨, 이기웅이 이끄는 석화단이라는 곳에서 우리와 시합을 위해 한양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네, 어제 길례태씨께서 보낸 전보를 받아서 내용은 대충 알고 있어요. 제가 준비해야 할 일이 있을까요?”
“네··· 혜림씨께는 죄송스럽지만, 저들이 한양에 원정 경기를 뛰러 오는 대신 우리에게 숙소와, 식사, 훈련장 등을 제공할 것을 요구해왔습니다. 그것도 적응을 위해서 열흘 정도를 머물러야겠다고 하더군요.”
“열흘 정도요? 음··· 좀 오래 묵기는 하네요. 혹시 계약서 같은 거 쓰셨나요?”
“넵, 여기 있습니다.”
「석화단은 6월 2일에 있을 황성 YMCA 야구단과의 승부를 한양 동대문 구장에서 하기로 약속한다.
이에 황성 YMCA 야구단은 원정을 오는 석화단 선수들에게 숙소와 식사, 훈련할 장소를 제공하기로 한다.
그리고 황성 YMCA 야구단의 김산과 현정훈은 경기 출전을 금하고, 우한진 선수는 시합 당일, 6회 이후에만 경기 출전이 가능하다.
석화단이 이길 경우, 황성 YMCA 야구단은 석화단 산하로 들어오고, 황성 YMCA 야구단이 이결 경우, 석화단은 황성 YMCA 야구단에게 어떠한 형태로든지 간섭을 금지한다.」
“이거 계약서가 좀 아쉽게 작성됐네요. 우리의 홈에서 경기가 펼쳐진다는 점은 큰 강점이지만, 그 외에는 우리에게 힘들게 작용 될 조건들이네요.”
“저도 매우 아쉬웠지만, 개성에서 경기하기에는 장소도 마땅치 않고, 우리 측의 적응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관중들의 반응이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원정이다 보니, 호응이 있더라도 한양에서처럼 우리 선수들에게 힘이 될 정도일지는 의문이죠. 그러므로 큰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한양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김산과 현정훈 선수는 출전시킬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경기 내적으로 불리한 조건은 한진 선수의 제한된 출전뿐이죠.”
“그렇군요. 어쩔 수가 없는 게 맞았던 것 같네요. 그렇다면 석화단 선수들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고민을 해볼게요.”
“네, 항상 감사합니다, 혜림씨.”
불평등 조약에 가까운 계약서였음에도, 혜림은 이를 잘 이해해주었다. 덕분에 석화단 자체의 문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고, 이제 다른 것들을 신경 쓰면 된다.
일단 나는 집을 나와 바로 옆의 대한매일신보로 갔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사장님이나 총무님 계실까요?”
“네! 오늘도 총무님 저쪽에 계십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오늘도 배설은 출장 중인 것 같고, 양기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 누가 왔나 했더니, 영준 선수 아니오? 이거 오랜만이구려. 요즘에 많이 바쁘셨나보오? 안 그래도 소식은 듣고 있었소. 한양부터 개성, 평양까지 야구 교육을 하고 다니셨다면서요?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그에 맞춰서 우리도 야구단의 교육 소식에 대한 광고를 냈습니다. 광교 효과가 좀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역시 소식이 빠르게 들어오는 신문사였다. 게다가 바쁜 와중이라 내가 따로 부탁을 못 했는데도 알아서 광고 수정까지 해주다니, 서비스가 확실한 대한매일신보였다.
“광고까지 수정해주시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우리 야구단의 다른 소식도 들은 게 있으십니까?”
“다른 소식 말이오? 아, 혹시 개성에 갔던 YMCA 단원이 그곳에서 폭행을 당하고 왔다던 소문이 돌던데, 그것 말이오?”
혹시 몰라서 철저히 함구하려던 소식인데 이것까지 알고 있다니, 생각 이상의 정보력인 것 같다.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양기탁씨와 대한매일신보를 믿고 말씀드리는 정보입니다. 개성에 파견을 갔던 우리 단원 둘이 개성의 석화단이라는 조직에게 단체로 폭행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YMCA의 전 단원이었던 이기웅이라는 자가 있는데, 나갈 때 좋지 못하게 헤어져서 원한을 품고 있던 자입니다.
그자가 개성으로 거점을 옮기고는 석화단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마침 개성에 교육차 갔던 단원들에게 상해를 입힌 것입니다. 덕분에 우리 단원들은 한 달여간은 외부활동이 불가해졌죠.”
양기탁은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호, 그게 사실이었군요. 혹시 몰라서 함구하고 있던 일인데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이기웅군이 그렇게 되었군요.”
“기웅을 알고 계셨던 겁니까?”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고, 그냥 한양 바닥에서 이것저것 주워듣다 보면 웬만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이죠.
아마 제 기억으로는 기웅이라는 자는 자신을 은근히 왕족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자로, 상당히 거만하다고 들었소.
아무튼 평소에 그런 행실을 하고 다닌 자라면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군요. 실제로 그의 집안이 꽤 부유한 편이기도 하니, 개성으로 가서 자신의 세력을 형성했다고 해도 말이 되는 것 같고 말이오.”
사람들 하는 생각이 다 비슷비슷하구나. 기웅의 평판은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최악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잘 알고 계신다면 얘기가 빠르겠군요. 사실 우리 야구단과 석화단 간에 야구시합이 한양에서 열흘 뒤에 벌어질 예정입니다.”
“오, 야구시합 말이오? 무슨 연유로 벌어진 시합이오? 앞선 사건을 생각하면, 두 팀의 경기는 단순한 친선 시합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오. 혹시 이긴 팀에게 돌아올 무언가라도 있는 것이오?”
역시 언론인이다 보니, 이런 일의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을 줄 아는 것 같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기면, 저쪽에서는 조선 땅 어디에서도 YMCA에게 해코지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석화단이 이긴다면, YMCA가 석화단 소속으로 들어간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더니, 양기탁은 의문을 표하였다.
“외람되지만, 그건 너무 불공평한 내기로 보이는데, 이게 맞는 건가 싶소만. 한 팀은 그저 해코지를 멈추는 것뿐이고, 한 팀은 다른 팀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니, 혹시 이런 내기가 된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겠소?”
“네, 이 외에도 우리는 습격으로 두 선수가 출전을 못하고, 우리팀 최고의 선수인 우한진 선수가 6회부터 출전할 수 있다는 불리한 조건이 걸려있는 등, 우리에게 굉장히 불리한 계약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조건 이긴다는 확신이 있다면 이 모든 조건은 무의미해지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우리에게 웃어주는 경기가 한양에서 벌어진 덕분에 승리를 거의 확신할 수 있습니다.”
양기탁은 의문이 풀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나에게 물어왔다.
“그렇다면, 저에게 온 이유는 한 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이번에는 YMCA와 석화단의 시합이 있다는 것을 광고로 내보내면 되겠습니까?”
“네, 하지만 이번에는 광고뿐만이 아니라 특별 기사도 하나 실어주셨으면 합니다.”
“특별기사 말입니까? 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은, 아니 오히려 우리 입장은 환영입니다만, 어떤 기사가 써지기를 원하십니까? YMCA의 특별기사를 원하십니까?”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바로 우리 YMCA 야구단과 석화단이 호적수라는 것을 부각할 기사가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보셨을지 모르겠는데, 미국의 야구단은 자주 붙거나, 연고지 간의 감정 등에 의해 감정이 좋지 않은 팀끼리 붙었을 때, 더욱 뜨거운 열기를 만들어 내고는 합니다.
제가 노리는 것 또한 이와 같은 효과입니다. 우리 YMCA와 석화단 간의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서 특별기사를 연재해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을 쭉 듣던 양기탁은 연신 손뼉을 쳤다.
“그거 좋은 생각이오! 기사를 읽은 이들이 입소문을 낸다면. 궁금해 죽겠는 사람들로 그날도 분명히 YMCA의 관중석은 꽉 찬 집이 될 것이고 말이오. 좋소! 내 한면을 통째로 할애해서라도 특별기사를 내드리겠소.”
됐다! 사실상 내 조력자 포지션에 가까워지고 있는 양기탁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특별 대우를 해주는 것은 그럴만한 기획이라 그럴 것이다.
“아, 한 가지 부탁드릴 점이 있다면, 너무 우리 쪽에 치우친 기사를 싣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 그래도 광고까지 걸려있는 우리 팀을 찬양하는 기사라도 싣는다면 역효과가 날 것입니다.”
“오호, 일부러 과소평가 되게 만들겠다는 거요? 이것도 참 괜찮은 생각 같소. 그렇다면 석화단은 최대한 긍정적인 얘기 위주로 말입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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