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화. 쌓여가는 라이벌리
[1906년 5월 22일 YMCA 건물 앞]
『석화단의 한양 방문을 환영합니다. -한성 YMCA 야구단 일동-』
우리는 YMCA 건물 앞에 석화단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널찍하게 게시해놨다. 석화단이 뭐가 이쁘다고 이렇게까지 하느냐?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석화단의 비위 맞춰주기다. 한양까지 왔으니, 이들이 함부로 깽판을 친다거나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들이니, 이런 거 하나하나도 디테일을 챙기는 것이 좋겠지.
그리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효과이다. 대한매일신보를 통해서 우리는 석화단과의 시합에 대해 어느 정도 광고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신문만으로는 홍보가 부족하다. 개화기에 맞춰 나름대로 신문까지 구독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어디까지나 그 이전에 비해서지 여전히 신문을 읽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설령 신문을 읽는다고 해도, 석화단과 인터뷰한 기사까지 세세하게 읽은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 그래서 석화단이 뭔데?라는 반응이 지배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건물에 현수막을 걸어 놓음으로써 석화단의 이름 석 자를 홍보해준 것이다. 석화단이 누군지 사람들이 알아야지 우리와의 시합에 다들 주목을 할 테니 말이다.
석화단이 묵을 숙소는 혜림이 준비해놓았다. 여기에서 은근한 꼼수가 발휘되었는데, 시설은 좋은 곳으로 잡되 시합이 열리는 동대문과 최대한 먼 곳에 있는 서대문 쪽에 숙소를 잡아놓은 것이다.
엄청 유의미한 효과를 부를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직접 다녀본 결과, 서대문 숙소 쪽에서 동대문 야구장까지는 삼십 여분을 더 걷게 되는데, 집에서 걸어갈 때와는 피로도가 꽤 차이가 난다.
이러한 피로도가 열흘 동안 누적된다면 안 그래도 원정을 왔기 때문에 피로도가 쌓여 있을 텐데, 이와 중첩이 되어 석화단의 컨디션을 갉아먹게 될 것이다.
숙소 자체는 외국인들도 종종 머무를 정도로 시설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에 야구장까지 먼 거리라는 수상함을 감지하지 못하고, 숙소의 시설에 현혹될 것이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석화단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먼지구름이 풀풀 날리면서 먼길을 걸어온 것이 티가 나는 한 무리가 오고 있었다.
“흐흐흐··· 참 그리운 곳에 왔군, 못 본 새에 이것저것 많이도 가져다 놨군그래. 어쨌든 반갑소이다. 우리 석화단이 친히 한양까지 왔소이다.”
그 무리의 제일 앞에 자리하고 있던 기웅이 말에서 내려 이곳에 대한 감상평을 거만하게 늘어놓고는 인사를 청해왔다.
“오우, 기웅군, 그리고 석화단 여러분 반갑습니다. 시합을 위해 저 멀리 개성에서까지 찾아와줘서 고맙습니다. 저희 황성 YMCA 야구단 일동은 여러분과의 시합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석화단도 그대들과의 시합을 고대하고 있었소. 하루빨리 시합에서 그대들을 누르고, 다시 이 한양에 명예롭게 들어오는 일을 말이오. 뭐, 인사치레는 됐고, 숙소나 좀 안내해주시오. 보다시피 우리가 많이 피곤해서 말이오.”
“오우, 그러고 말고요. 안 그래도 여독을 풀고, 충분히 만족할만한 숙소를 준비해놓았으니, 혜림양의 안내에 따라 찾아가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동대문 야구장을 훈련장으로 사용하면 되는데, 위치는 알고 있죠? 그곳에서 햇볕이 약한 오전 시간대에 훈련하면 될 것입니다. 오후에는 우리 훈련 시간이니 시간에 맞춰서 자리를 비워주면 됩니다.
그 외에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우리에게 말해주면 되고, 시합 관련해서 외부 일정도 있을 텐데, 그에 대해서는 우리가 따로 안내해주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편하게 쉬길 바랍니다.”
길례태의 옆에 있던 혜림이
“기웅씨, 오랜만이네요. 제 고용인들이 숙소까지 안내해줄 겁니다.”
“크흠, 뭐 고맙소.”
둘은 조금 불편한 사이인지, 짤막하게 인사만을 건네고는 서로 무시하듯이 지나갔다.
석화단은 곧 혜림의 고용인을 따라 그들의 숙소로 향했다.
그들을 보낸 우리는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훈련을 이어 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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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5월 23일 동대문 야구장]
석화단은 전날에 거하게 술판을 벌였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런지 기껏 훈련하라고 잘 정비해놓은 훈련장은 사용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소식을 접한 한진은 런닝을 하고 있던 단원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훈련장으로 끌고 갔다.
-흐아···
-으악···!
오늘도 진짜 죽을 맛이었던 한진표 지옥 훈련이었다. 근데 우리가 그렇게 피땀을 흘릴 때, 저 멀리서 덩치들이 느릿느릿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역시나 석화단이었다. 어제 마신 술이 아직도 날아가지 않았는지, 우리 가까이에 오자 그들에게서 술 냄새가 풀풀 풍기기까지 했다.
-어이, 이 사람들아. 이거 약속이 잘못된 거 아닌가? 분명 지금은 우리가 훈련장을 사용할 오전 시간대인데?
-어쭈, 뭘 노려보나?
-훠이훠이~ 우리가 연습해야 할 시간이니 가보시게.
그들은 우리에게 시비조로 말을 걸면서, 신경을 건드렸다.
그 말을 듣고 있던 한진은 석화단에게 다가가더니 묵직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는 비어있는 훈련장을 안 쓸 수가 없어서 쓴 것뿐이요. 그대들에게 별거 아닐 수 있는 훈련장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게 잡고 싶은 기회의 장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시오.
하지만 그대들 말대로 어쨌든 약속된 시간은 맞으니, 오늘 우리는 여기서 훈련을 마치겠소. 단, 내일부터 이런 일이 있다면, 우린 그대로 훈련에 임할 테니, 열심히 훈련들 하시오.”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 제일 키와 덩치가 커서 위압감이 넘치는 한진이 던진 한마디였기에, 석화단 녀석들도 그대로 얼어붙고는 시비를 멈추게 되었다.
이로써 시합날까지 훈련장 문제로 시비가 붙을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마침 점심때쯤이라 우리는 식사를 하고는 다시 본부로 복귀했다.
“훈련은 잘하고 오셨습니까? 아까 보아하니, 석화단이 우리가 훈련장에 향했다는 소식을 접한 즉시 훈련장으로 향한 걸 보았습니다. 혹시 그자들이 함정을 팠던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말입니다.”
“네, 오자마자 그대로 훈련장 이용 시간 가지고 시비 거는 것을 보니 술을 마신 것도 마신 것이지만, 의도한 것 같더군요.
다행히도 한진이 따끔한 한마디로 이 문제에 대해 확실하게 정리했기 때문에 더는 훈련장 가지고는 우리에게 뭐라고 하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이군요. 그건 그렇고 마침 잘 오셨습니다. 대한매일신보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우리와 석화단의 시합에 대해 취재를 하려는 것 같은데, 혹시 영준씨가 요청하신 겁니까?”
“네, 맞습니다. 저번에 있었던 성남구락부와의 시합은 외세와의 대결 구도였기 때문에 보증된 흥행수표였지만, 이번 경기는 국내팀, 그것도 한양이 아닌 외지에서 온 상대기 때문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 미지수죠.
그러므로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우리와 석화단의 대결 구도를 형성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생각해봤습니다. 오늘은 아마 길례태씨와 인터뷰를 진행할 것입니다.”
“역시 그렇게 된 일이군요. 대결 구도와 시합의 흥행은 확실히 생각해볼 관계군요. 인터뷰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을까요?”
“대한매일신보 측에서 우리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실이 될만한 질문은 던지지 않을 겁니다. 그냥 물 흐르듯이 솔직하게 질문에 대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길례태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YMCA 건물을 나서면서, 간만에 취재를 나온 배설과 눈인사를 한번 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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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5월 29일 YMCA 건물 안]
어느덧 석화단이 이곳에 온 지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저번에 한진과 한번 충돌이 있었던 이후에는 생각보다 조용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술판을 벌인 첫날 이후에는 그들이 술을 마신다는 제보도 없고 말이다.
대한매일신보의 인터뷰에도 나름 성실하게 대답했다는 것 같다. 기웅 같은 경우는 오히려 신이 나서 묻지도 않은 것을 나서서 떠벌리기 바빴던 것 같았다고 기탁이 전해줄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와 석화단의 시합 준비는 차근차근 쌓여갔다. 그 와중에 잠깐의 해프닝도 있었는데, 고종의 귀에도 이 사실이 들어간 것이다. 덕분에 나는 바쁜 와중에 고종의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끌려가게 되었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더냐. 대한매일신보 기사를 읽었는데, 이번에 YMCA와 시합하는 석화단에서 인터뷰를 나온 자가 기웅이라던데, 기웅이라면 왕실 식구가 아니더냐.
YMCA에서 나갔다고는 들었는데, 웬 시정잡배들과 어울리고 있는 것이냐. 그것도 그놈들과 손을 잡고 너희와 시합까지 벌이고 말이다.”
“예, 폐하. 일이 그렇게 되었사옵니다. 저 역시 그가 이 정도로 삐뚤어 진지는 조금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기웅을 불러서 얘기라도 해보겠다.”
“폐하, 외람된 말이옵니다만, 기웅군과의 일은 이미 돌이키기 힘듭니다. 폐하의 명으로 잠시 그 불을 진압할 수는 있겠지만, 그 불씨는 살아있을 것입니다.
이번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기웅군의 마음속에 응어리져있는 감정을 시합을 통해 확실하게 쳐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뒤탈이 없을 것입니다.”
“크흠, 그런가? 그렇다면 이번 사안은 일단 잘 알겠네. 그렇다면 시합 준비에 한창일 테니, 거기에 더 박차를 가해주게나. 한창 바쁜 시기일 테니, 야구장 얘기는 이번 시합이 끝나는 대로 하기로 하자꾸나.”
혹시 몰라 하고 있던 고종의 참견도 이렇게 성공적으로 넘기게 되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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