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YMCA 자체 청백전 (1)
오늘 경기는 우리 YMCA 야구단이 주축이 되고, 여기에 한양 내의 우리와 경기를 했었거나 인연이 있던 다른 야구팀과 연합하여 청백전 형식으로 치르는 경기였다.
이 경기를 위해 배재학당 학생들에 우리 단원들까지 합심하여 훈련이 끝난 후에 임시 관중석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그 덕분에 경기날 전에 간신히 대충이나마 사람들이 관람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을 공간을 만들어 냈다.
대신 아쉽게도 원래 학교 운동장으로 쓰던 곳이다 보니 동대문 구장에 비해서 좌석 수는 턱없이 모자라기는 했다. 그래도 관중석이 꽉 찬다면 이 정도만으로도 선수들의 사기가 고양되기에는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경기에 참여할 선수들을 모으는 것은 다들 제안을 하면 흔쾌히 수락하였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경기 수준을 보장할 만한 선수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을 뿐이지···.
우리의 수준을 그나마 따라올 수 있는 선수들은 배재학당이나 덕어학교 정도뿐이고, 나머지는 아직 한참 먼 수준이었다.
아무리 선수풀이 모자란다고 해도 명색이 올해의 마지막 경기인데 저질 경기로 관중들을 실망한 채로 보내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엄선하여 선수를 선별해야 했는데, 우리 YMCA 야구단에서 탈탈 끌어모아서 13명, 배재학당에서 2명 그리고 덕어학교에서 2명을 더해 총 17명이 모였다.
하지만 야구는 최소 9명씩 두 팀이 나와야 하는 법인데 나머지 한자리는? 일본팀과의 연계도 고민해봤지만, 일본인 선수와 섞어서 팀을 만든다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이건 패스.
우리와 협력관계로 돌아선 석화단 선수들과 연계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아직 그들은 한창 재활훈련을 하고 있을 때라, 아직도 경기를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괜찮다 싶은 후보군은 사정이 있어서 나오지를 못하고, 뽑을 수 있는 곳은 선수들의 실력이 어중간하기에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도중 길례태가 제안을 했다.
“정식경기가 아닌 이벤트전이니 저와 제이손 선교사도 경기를 뛰도록 하죠. 마침 주심을 볼 수 있는 셰필드 선교사도 있으니 걱정 없이 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길례태와 제이손은 철저히 서포트 역할만 해주는 거 아니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일단 그 둘부터 넣고 시작했지.
“암요! 너무 좋고 말고요! 두 분을 넣으면 딱 알맞게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선교사를 선수로 넣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길례태와 제이손처럼 YMCA의 선교사라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명분이 없다고 판단하여 그건 나중에 따로 편성해 보기로 하였다.
사실 이는 현대에 적용해도 똑같을 것이다. 프로야구 경기에서 외국인 선수가 5할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해 보면 관중들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한국 프로야구가 맞는 건가 싶을 것이다.
현대에도 그런 반응이 예상되는데 조선시대에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가뜩이나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조선을 대표한다는 야구 경기에 외국인들이 잔뜩이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기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하여 선수 구성은 우리 YMCA 야구단의 정규 선수 10인과 땜빵을 맡고 있던 송중연, 박근삼 2인, 덕어학교의 한민수와 성학수, 배재학당의 구현일과 김현장, 그리고 YMCA 소속 선교사 길례태와 제이손, 끝으로 혹시 모를 부상에 대비해 어느 팀이건 교체 선수로 들어갈 최일훈 등등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최대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한 결과 다음과 같은 라인업이 만들어졌다.
<황성 야구단 연합 청팀 라인업>
1번 타자 유격수 김영복
2번 타자 2루수 김만복
3번 타자 중견수 남상혁
4번 타자 포수 허영수
5번 타자 투수 김훈
6번 타자 좌익수 김현장
7번 타자 3루수 송중연
8번 타자 우익수 박근삼
9번 타자 1루수 제이손
<황성 야구단 연합 백팀 라인업>
1번 타자 유격수 이윤상
2번 타자 포수 한민수
3번 타자 1루수 우한진
4번 타자 중견수 김산
5번 타자 3루수 현정훈
6번 타자 우익수 채영준
7번 타자 좌익수 성학수
8번 타자 투수 구현일
9번 타자 2루수 길례태
외국인 선교사들은 어디까지나 들러리를 서기 위해 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 9번 타석에 배치되었다.
전체적으로 밸런스 자체는 청팀이 훨씬 좋았다. 우리의 주전 선수가 5명이나 들어갔고, 특히 주전 투수인 김훈이 들어간 것 하나만으로도 크게 먹고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여기에 더해 키스톤 콤비인 영복이 만복이와 안방마님인 허영수가 들어간 탄탄한 수비진이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거기에 더해 중견수로는 조금 모자라도 외야 수비 자체는 뛰어난 남상혁이 중견수에 자리 잡고 있고, 송구가 조금 불안한 영복이와 만복이를 커버해주기 위해 1루에 제이손이 들어간 점도 수비를 한층 더 탄탄하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대신 주전이 정해진 이후로는 거의 연습에 나오지 않고 취미로 야구를 즐겼던 송중연과 박근삼은 확실한 구멍이었고, 배재학당의 김현장도 아직 어린 나이기에 큰 활약을 해줄지는 물음표라는 점이 아쉽다.
타선은 1번부터 5번까지는 쉬어갈 타선이 없었지만, 하위타선은 많이 부실한 편이었다. 그래도 9번 타자인 제이손이 한건 해준다면 다시 1번부터 5번이 불을 뿜을 수 있으므로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백팀은 전체적인 밸런스는 좀 떨어지더라도 우한진의 존재감 하나만으로도 일단 먹고 들어갈 수 있었다.
포수도 영수에 꿀리지 않는,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영수보다 나은 부분도 있는 한민수가 버텨주고 있고, 내야 수비도 3루에 현정훈, 유격수로 불안하긴 하지만 땜빵 정도는 가능한 이윤상, 1루는 말할 필요도 없는 우한진, 그리고 2루에 길례태가 나오기 때문에 든든했다.
외야에도 일단 김산 하나를 중견수에 박아놓고 시작하니 안정감이 생겼고, 나도 하도 구르다 보니 객관적으로 봐도 1인분 정도는 해줄 수 있는 수비수가 되었고, 처음에 나에게 우익수를 맡겼던 한진의 말대로 이쪽으로는 공 자체가 잘 오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을 많이 덜고 있다.
타선은 2번부터 클린업 트리오까지는 무게감이 확실하고, 특히 우한진이 있다는 거 하나로 끝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대신 하위타선의 무게감은 청팀보다는 떨어지는 편이라는 게 좀 아쉬운 점이었다.
단, 백팀은 좌익수 성학수는 그렇다고 쳐도, 투수인 구현일이 김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클래스 차이가 나기 때문에 투수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큰 핸디캡을 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근데 다행인 점은 이번 이벤트전은 고의사구 가능 횟수가 단 2회로 한정되어 있으므로 한진의 타석이 최소 두 번은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이런 이벤트전까지 너무 정규 게임처럼 해버리면 관중들이 원하는 장면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 최고의 선수가 나오는데 그에 걸맞은 장면을 보여줄 기회도 주지 않고 모두 고의사구로 걸러버린다? 관중 입장에서는 탄식이 나올 것이다.
어쨌든 한진의 타석이 보장된다는 점 하나로 주전 선수 대부분과 투수 자리를 청팀에 몰아주고 나서야 밸런스가 잡히는 느낌이다.
이렇게 팀이 정해지고 나서는 경기 전날까지 또 훈련으로 한바탕 구르게 되었다. 이벤트전에 합류한 선수 중에서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많이 구르게 되었다. 덕분에 경기 날이 다가오자 최소한 관중의 탄식을 유발할 플레이는 하지 않게 되었다.
경기에 앞서 우리는 홈런더비와 여러 팬서비스 행사도 시범적으로 진행해 보기로 하였다. 대외적으로 우리가 야구를 널리 퍼트리는 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함이니 그러한 백성들이 마음을 열게 하려면 일단은 많이 베풀어야지. 일종의 마트 시식 코너처럼 말이다.
홈런더비는 경기 중에는 몰라도 훈련 중에는 그래도 비거리가 좀 나오는 김산, 현정훈, 한민수 등이 출전하기로 했는데 사실 우승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지. 당연히 실전에서도 매 경기 홈런을 제조 중인 한진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선수들이 밑으로 깔아 주는 들러리를 서는 것 같다고 기분 나빠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한진이 절대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일종의 스승 위치에 있는 데다가, 그냥 이런 이벤트에 출전한다는 기대와 떨리는 감정이 커서이다.
팬서비스는 아직 우리가 야구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대의 팬서비스 데이처럼 거창한 선물을 준비하지는 못했고, 야구를 체험하는 코너를 통해 기록이 잘 나온 사람에게 야구공을 증정하기로 했고, 경기장에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1인 1추첨권을 주고 나중에 추첨을 통해 선물을 증정하는 이벤트 등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준비를 해도 사람들이 경기가 열리는지 알지 못하면 도로 아미타불 아니겠는가? 홍보가 필요한 때인데, 이럴 때는 또 대한매일신보를 찾아가야지.
양기탁은 또 대박 건수를 하나 물어왔다면서 흔쾌히 광고 1면을 훌륭하게 도배해주었다. 특히 광고문구에 선착순이라는 문구를 박아 놓았는데 이 마법의 단어가 큰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실제로도 아직 관중석 규모가 작아서 5천 명도 받기 힘든 크기였으므로 뒤에 오는 사람들은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맞이한 날이 바로 오늘이 되겠다.
중요한 날이기에 한 명도 늦지 않고 경기장에 나와 간단히 몸도 풀고 다 아는 얼굴이기에 서로 농담도 건네며 긴장도 풀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서서히 관중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많은 관중이 이벤트를 즐길 수 있도록 미리 짜놓은 동선을 통해 적당히 관중을 받으면서 이벤트에 참여시키고 관중석으로 이동시켰다.
아, 물론 오늘이 팬서비스 데이지만 그래도 지인 찬스는 있을 수밖에 없는 법. 단골인 혜월과 기생들이나 이 야구장을 건설하는 데 큰 도움을 줬던 배재학당 일동과 관계자 역시 프리패스였다.
그리고 오늘의 시구자 역시 고종처럼 쉽게 볼 수 없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 야구단의 팬이자 이 배재학당 야구장을 건설하는 데에 큰 힘을 쏟아주었던 김현장 선수의 어머니가 시구를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이도 아니고, 주위에서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인물도 시구 같은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 의미를 만들어 선정한 시구자인데,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까?
뭐 알아차리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쉬운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밀려오는 관중들과 소통하면서 열심히 팬서비스 데이를 진행했다. 나도 그렇지만 다른 선수들도 이렇게 주목을 받는 경험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기에 땀을 삐질 흘리면서도 내심 뿌듯해하는 것이 보였다.
관중들도 마찬가지 이런 대규모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어리둥절하면서도 즐기는 것이 보이는 흐믓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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