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좀비가 살아남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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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묵향
작품등록일 :
2024.07.0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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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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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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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어디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

DUMMY

남자가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발걸음으로 확인했지만, 움직일 기미가 없는 여자를 어정쩡한 자세로 안고 서 있어야 했다.


여자를 밀치면 다칠 것 같았고, 헐벗은 몸이라 신체에 손을 대는 것이 극도로 꺼려졌다. 하지만 여자는 요지부동이었다. 내 품에 찰싹 달라붙어서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큼큼 흐음”


내가 빨리 떨어지라는 듯이 잔기침을 하자, 여자는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뒤로 한 발짝 물러나 벽을 보고 주저앉았다.


흐느끼던 울음소리도 조금 잦아들고, 내 귀에 또렷하게 들리던 빠른 심장 소리도 조금 잦아들었다.


헐벗은 여자와 단둘이 있는 게 이렇게 적막하고 어색한 일인지 몰랐다.


서둘러 침대로 다가가 이불을 가져다 여자에게 슬쩍 덮어 주었다. 여자는 움찔하더니 이내 이불을 주섬주섬 챙겨 자기 몸을 감싸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걱정하지 말아요. 건드리지 않을게요.]


내가 스윽 스케치북을 내밀자, 경계의 눈빛이 스르륵 풀리며 안도에 한숨을 쉬었다.


이건 절호의 기회였다. 붙잡혀온 사람들이 있는 곳과 얼마나 잡혀있는지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나는 여자와 대화를 시도했다.


[여기는 어떻게 온 거에요?]


내가 자꾸 스케치북을 들이밀자 의문스럽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아 저는 말을 못 해요]


“아... 죄송해요. ”


그제야 여자의 입이 열렸다.


[괜찮아요. 그보다 어디서 오셨어요?]


“저는 경원시에서 왔어요. 같은 마을 사람들 여럿이랑 같이요.”


[이렇게 잡혀 온 인원이 많나요?]


“네. 많아요. 제가 있던 창고에만 10명 가까이 있어요.”


[창고는 어디에 있어요?]


끝없이 질문을 쏟아내자, 여자는 의심의 눈초리를 하고서 내 눈치를 봤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소리를 내가 위에 알린다면 그녀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는지 입을 닫았다.


나는 그녀를 살짝 떠보기로 했다. 경원시에서 잡혀 왔다면 차헌터의 쉘터 사람일 확률도 있었다. 쉘터들이 아는 차영진의 이름을 댄다고 해도 여자는 유명한 차헌터에게 반응은 하겠지만, 진짜 차헌터의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름을 바닥에 적었다.


[김택현, 김한석, 최정민]


그녀의 눈이 더없이 커지며,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어떻게 알아요?”


그녀의 반응을 보니, 내 예상이 적중했다. 헌터들은 유명해서 이름을 대는 게 효과가 없다. 하지만 차헌터의 주변인은 일반인이라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차헌터가 쉘터 간의 싸움에서 그들을 보호하려고, 전쟁 중에는 이름을 부르지 않은 탓에 다른 쉘터들은 차헌터 동료들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철저히 주변인을 보호하려는 차헌터의 배려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저는 차헌터님도 알지만 동료인 택현이 아저씨랑도 잘 알아요.]


“김택현씨랑 친분이 있다고요? 당신은 다이너마이트 쉘터 사람 아닌가요?”


[저는 차헌터가 보냈어요. 쉘터에서 잡혀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요.]


여자가 울먹이는 얼굴을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말했다.


“잊지 않았군요. 우리를 잊지 않았어요.”


그때 문 앞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우리를 정탐하기 위해 제국의 누군가가 사람을 보낸 것이다.


[밖에 사람이 있어요. 조심해야 해요.]


고개를 끄덕인 여자가 큰 소리로 신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나와 같이 바닥에 글씨를 적어 의사소통을 시작했다.


[저는 최유라예요]


여자의 목소리 연기는 누가 들어도 격렬한 행위가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믿게 할 만큼 완벽했다.


[곧 차헌터가 이곳을 칠 거예요.]


격렬한 신음을 흘리는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모르게 어디에 몇 명이 있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여자도 바닥에 글자를 적었다.


[이제부터 자세히 알아볼게요.]


[장총리에게 말해서 당신을 자주 찾을게요.]


우리 둘은 야동을 찍듯이 신음을 흘렸다. 절정이 온 듯, 우리가 마지막 숨을 내뱉자, 문밖에 발걸음 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이미 깊은 밤이라 모두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최유라는 침대에서 나는 바닥에서 자기로 했다. 옷을 걸치지 않은 그녀를 위해 나는 이불까지 포기하고 맨몸으로 땅바닥에서 자야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자, 남자들이 방문을 거칠게 두드려 우리를 깨웠고 문을 열자, 남자들이 들어와 순식간에 최유라를 거칠게 끌고 나갔다. 질질 끌려가는 최유라를 보며 다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구조해 드릴게요.’


최유라가 나가고, 나도 나갈 준비를 했다.


축사의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는, 장총리가 말한 미션에 성공해야 했다.


가방에 구슬이 있는지 확인하고, 차헌터의 애 검을 옆에 차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문을 나서자, 문밖에서 대기하던 경비대원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임헌터님 장총리님께서 기다리십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중한 태도로 나를 장총리에게 안내했다.


장총리는 경찰 차장실을 자신의 집무실로 삼고, 거기서 상주하고 있었다.


나를 안내하던 경비대원이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장총리님 임헌터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거라.”


경비대원이 차장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주며, 깍듯하게 안으로 모시는 제스쳐를 취했다.


“임헌터 때마침 잘 왔다. 그래 어제 그년은 맘에 들더냐?”


활짝 웃으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자, 장총리가 껄껄대며 웃었다.


“만족했다니 되었다, 다음번에는 더 괜찮은 계집을 넣어주마.”


최유라를 다시 만나야 했기 때문에 나는 스케치북을 들었다.


[다음에도 그 여자였으면 좋겠습니다.]


장총리는 나를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남자란 이 여자 저 여자 맛봐야 하는 게 이곳 다이너마이트 쉘터에 암묵적인 관습이었다. 


“일편단심 스타일인가?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그년을 불러주마. 그리고 주군을 모시는 것도 일편단심이길 바라마.”


장총리의 허락이 떨어졌다. 이제 언제든 최유라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내 감사 인사를 받은 장총리가 흡족한 듯, 나를 바라보고 시답지 않은 말들을 꺼내는 통에, 지겨워서 하품이 새어 나오려고 했다.


차장실 문에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게나”


차장실 문이 열리고,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차가운 얼굴로 들어왔다.


“최헌터 어서 오게! 여기는 이번에 합류하게 된 임찬영 헌터라네”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악수를 권하며, 새로운 헌터를 보고 생글생글 웃었다.


그런 나를 개무시하듯, 내 손을 탁 쳐내고는 바로 소파에 앉아 불량한 자세로 장총리를 쏘아보았다.


“황제가 시켜서 오기는 했다만, 이런 핏덩이를 데리고 원정이라니, 나보고 죽으라는 건가?”


장총리는 유능한 아부의 달인답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최헌터를 달래기 시작했다.


“최헌터 너무 그러지 맙시다. 임헌터가 나이는 어리지만 혼자서 쉘터 밖에서 살았을 정도로 생존능력 하나만큼은 대단하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최헌터가 누굽니까? 우리 다이너마이트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강헌터 아닙니까?”


최헌터가 탁자 앞에 놓인 재떨이를 벽에 집어 던졌다.


“닥쳐. 그딴소리 듣자고 온 거 아니다.”


이상했다. 최헌터의 위협에서 장총리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마치 이 사람은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국을 위해 대업을 이루셔야죠! 이번엔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대업은 무슨, 약쟁이들 약 떨어져서 폭동 일으킬까 봐, 전전긍긍해서 약 구하러 가는 거면서...”


“그래도 이번에 성공하시면 최헌터의 여동생을 돌려주시기로 황제께서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만 아니었으면 여기 있지도 않았다.”


둘의 대화를 자세히 듣다 보니, 장총리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서로 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


서로를 해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공생관계에 가까우니 서로를 도와야 했다.


“임헌터 이번 임무는 원래 김헌터와 같이 가기로 되어있었지만, 부상으로 최헌터님과 함께하게 되었네”


나는 장총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최헌터에게 웃는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응시하던 최헌터가 벌레 보듯 내 손을 무시했다.


“방해나 되지 말아라, 방해하면 너도 죽인다.”


나도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 쓰레기들이 약에 취해 있을 때, 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구조해 도망가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벌레들에게 독약을 준다는 마음이었다. 내가 본 이곳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최헌터의 협박에도 나는 씽긋 웃어주었다.



***


김택현은 차헌터를 말리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차헌터님! 진정 좀 하세요. 이러다가 혈압으로 쓰러지십니다.”


차헌터가 사로잡은 좀비를 일방적으로 패고 있었다. 김택현의 눈에도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으~ 악! 개 같은 좀비 새끼! 내가 가만 안 둬!”


차헌터는 찬영을 완벽하게 가르쳐서 보내려고 했다. 계획이 실패할 확률을 줄이기 위해, 급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교육했다. 그런데 또 뒤통수를 맞았다.


검을 가지러 간다는 녀석이 돌아오지 않았다.


해가 지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찬영을 찾으러 나서기로 했을 때였다.


강할아버지가 차헌터의 등짝을 후려치며 말했다.


“찬영이 녀석을 찾는 게지?”


“찬영이가 어디 갔는지 아십니까?”


강할아버지가 품에서 작은 편지봉투 하나를 차헌터에게 건넸다.


“찬영이 좀 그만 괴롭히게 어른이 돼서 애들을 괴롭혀 쓰겠는가?”


“할아버님이 하실 말씀은...”


차헌터의 등짝에 또 한 번 불이 붙었다.


“어디 어른이 말하는데 말대꾸하는 겐가! 요즘 것들은 쯧쯧”


강할아버지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 제 갈 길 가셨다.


겨우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차헌터가 찬영이 남긴 편지를 열어봤다.


[계속 훈련하다가 제가 먼저 죽을 것 같아서, 지옥 훈련을 피해 다이너마이트로 먼저 갑니다. 지도에 연락할 곳을 표시해 두었습니다. 이틀에 한 번 연락하겠습니다. 그리고 검 빌려 갑니다. 죄송합니다.]


아차싶었다. 차헌터는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가서 자신의 애 검을 찾아 헤맸다.


그토록 아끼던 애 검의 존재는 사라진 후였다.


“이···개새끼가!”


차헌터는 차마 좀비라 부르지 못하고, 울화를 풀기 위해 욕설을 내뱉었다. 도저히 분노를 주체할 수 없자, 쉘터를 빠져나와서 쉘터 근처에 있는 좀비들을 학살하며 분노를 달랬다.


손에든 무기라곤 쇠몽둥이뿐인 차헌터가 걱정되어서, 김택현이 달려와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차헌터는 쇠몽둥이로 좀비를 패서 죽였다. 그의 분노에 좀비들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 나갔고, 김택현도 차헌터 말리기를 포기하고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그저 방관했다.


한참을 좀비에게 분풀이하던 차헌터의 몽둥이질이 멈추자, 김택현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디로 갔든 서울만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다행히 도망간 게 아니라 파괴자 놈들한테 갔으니, 우리한테는 득입니다. 곧 찬영이 녀석이 소식을 알려오겠죠.”


“내 새끼가 무사하지 못하다면, 이번엔 좀비가 아니라 택현이 네가 이 꼴이 될 거다.”


김택현은 온몸에 있는 모든 모공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새로운 경험을 맛봐야 했다.


차헌터는 김택현을 많이 아꼈지만, 이번만큼은 김택현의 설득이 먹히지 않았다.


애검 도난 사건 이후로 한빛 쉘터는 더 이상 경계 근무를 서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좀비의 출현이 전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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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이딴것도 제국이라고? 1 +1 24.08.20 47 2 12쪽
34 34#다이너마이트쉘터로 +1 24.08.17 5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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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미모의여인! +1 24.08.15 63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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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새로운 보금자리 +1 24.08.13 65 2 12쪽
29 29# 안전한 쉘터로 가는 길 24.08.10 6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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