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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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nx666
작품등록일 :
2024.07.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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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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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4)

DUMMY

황자가 목검 손잡이를 빙그르르 돌려 날이 아닌 면을 세웠다.


“신앙심이든 존경심이든 전부 폭력 안에서 꽃잎을 맺지. 그건 참 안타까운 일이야, 왜인 줄 알아?”


무력감에 굴복한 주아나를 지긋이 응시하던 황자는 자기 질문에 스스로가 답했다.


“미천한 것들일수록 그런 게 결여되어 있거든, 바로 너처럼.”


우월감을 드러낸 황자가 망설임 없이 목검을 내리쳤다. 주아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리면서 팔로 얼굴을 감쌌다. 공기가 저항하며 만드는 숨결은 소름이 돋았다. 어떤 고통이 찾아오든 끔찍이도 아플 터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팔뚝에서 느껴진 건 날카로운 통증이 아니었다. 작은 두드림을 느끼고 실눈을 떠보니, 목검이 비켜나간 것이 보였다.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시는 겁니까!”


입구에서 라드가 성난 얼굴로 달려오고 있었다. 꽉 쥔 주먹 사이로 가루 같은 것이 흘러내렸다.


“오빠···.”


모래판으로 곧장 올라온 라드는 몸을 낮추어 주아나부터 감쌌다. 부드러운 손길로 등을 토닥여주었지만, 눈만은 확실하게 황자를 노려보았다. 그것이 따가웠는지 황자가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치켜세우며 으쓱거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네 동생이 버릇을 고쳐보라기에 교육하고 있었을 뿐이야. 진정하라고, 죽이려던 게 아니었으니까.”


능청스러움이 라드를 더욱 화나게 했다.


“검을 놓친 아이를 공격하는 게 버릇을 고치는 겁니까!”


대답 없이 몸을 돌린 황자는 넓은 보폭으로 다섯 걸음만큼 멀어진 다음 돌아섰다.


“말했잖아, 교육이라고. 높은 사람에겐 아랫사람을 일깨워줄 의무가 있는 거다.”


황자는 교육이라는 부분까지는 짜증스럽게 말했고, 뒤로는 선생처럼 말했다.


“지금 저랑 말장난하시는 겁니까?”


“나는 진심인데, 너는 왜 그걸 장난이라고 생각하지?”


안 그래도 찢어진 황자 눈이 더욱 가늘어지더니, 무언가를 발라 윤이 나는 입술 사이로 딱딱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황자라는 지위를 가졌대도, 대가문 자식에게 그럴 권리는 없습니다.”


라드가 이를 악물었다.


“권리를 정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야. 그게 불만이면 네 동생처럼 검을 잡고 건방이라도 떨어보던가.”


“형님, 그만두세요.”


분노와 냉정이 마찰하던 그때였다. 소리도 없이 나타난 2황자가 중재에 나섰다. 제 형과 달리 몸집이 작았고, 순한 얼굴에는 둥근 안경까지 끼고 있었다. 열여섯 살임에도 변성기가 오지 않았는지 목소리가 흐르는 샘물처럼 가늘었다.


“닥쳐, 키실.”


1황자 가멜린은 핏줄에게도 친절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라드는 재빠르게 주아나를 안아 올려, 아래쪽 평평한 돌의자에 앉혔다.


“쥬, 여기서 기다려.”


“오빠···하지 마.”


주아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소매를 붙잡자, 라드는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언제나 따뜻했던 손이 지금은 차갑게만 느껴졌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불안을 달래주는 나긋한 목소리에 결국 주아나는 손힘을 풀 수밖에 없었다. 라드가 벽면 거치대에서 목검 한 자루를 꺼내어서 모래판으로 올라갔다. 파동 같던 눈빛이 목검을 쥐자 되려 차분해져 있었다.


가멜린은 눈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다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열 살부터 검술을 배우기 시작했어. 조건은 어떤 인간보다 특별했지. 굳이 안 배울 이유가 없던 거야. 심지어 재능까지 있었어. 저런 머저리와는 다르게 말이야.”


가멜린이 한 곁눈질은 동생 키실을 경멸하고 되돌아갔다.


“스승이란 작자들은 실력은 좋았는데, 하나 같이 명예니, 의무니 심지어 겸손이나 선의 같은 걸 중시하는 자도 있었어. 항상 따분한 얘기만 중얼중얼했지. 전부 쓸데없는 내용이었고, 딱히 관심도 없었어. 근데 그들이 하는 말 중에서 딱 하나만은 궁금하더라고. 제국 최고의 검은 카소에 있다. 스승이고 기사고 전부 똑같이 지껄였어. 심지어 황제가 가진 가장 강력한 병기라는 여섯별마저도 카소와 맞서 이길 수 있냐고 물어보면 선뜻 대답을 안 하는 거야. 도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 의문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여기 남아 피를 가렵게 했어.”


가멜린은 손가락으로 왼쪽 가슴을 지그시 누른 채 둥글게 돌려댔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라드는 모든 말을 들었지만, 마치 듣지 않은 것처럼 딱딱한 표정이었다.


“동생이 보는 앞에서 실수인 척 네 팔을 부러트리면 가려움이 사라질까? 그대로일까?”


가멜린은 장난감을 과시하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껑충 뛰어서 목검을 내려쳤다. 힘을 뺀 것처럼 보였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동생보다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맞물린 목검 사이로 가멜린 얼굴이 다가왔다. 몸에서는 지독한 향수 냄새가 풍겼다.


“그런 걱정은 멀쩡하게 서 계실 때나 하시죠.”


라드도 지지 않고 말했다. 맞물린 목검을 밀어내며 가슴을 겨누어 휘둘렀다. 가멜린이 두 발짝 물러나고도 모자랐는지 상체를 살짝 눕혀서 피했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라도 한 발짝 물러나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예측을 깨고서 돌연 시야가 닿지 않는 하단에서 공격이 올라왔다. 모랫바닥을 쓸면서 올라온 목검이 사타구니를 지나 명치와 턱을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스쳐 갔다.


“헙.”


주아나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가 오빠가 멀쩡한 걸 알고 안심했다.


춤을 추듯 돌아서 처음 자리로 돌아간 가멜린은 기고만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혓바닥에 허세만이 있던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후 모래 위를 분주히 움직이는 그림자는 가멜린이 휘두르는 목검이었다. 라드는 사납게 이어지는 일격을 전부 막아냈다. 간혹 물러나게 할 심산으로 반격하기도 했지만, 추가타를 날리지는 않았다.


가멜린은 그걸 무시로 받아들이는 듯했지만, 그건 무시가 아니라 배운 대로 하는 것이었다. 라드는 상대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신중함이야말로 최우선으로 해야 할 기량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걸 배우지 못한듯했다.


“너도 네 동생만큼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가멜린이 내뱉은 음성은 달아오른 열기로 바스러진 듯 거칠어져 있었다. 그는 방어로 일관하는 상대를 오래 참아줄 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황제인 아버지조차 자신과 동일선상으로 놓으며 만인을 개미쯤으로 여긴다는 소문이 자자한 자애주의자, 그런 인간에게 라드는 고작해야 정원에서 꿈틀대는 벌레 한 마리에 불과했을 것이었다.


단순한 공격을 멈춘 가멜린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하늘 높이 치솟은 목검이 갑자기 네 갈래로 늘어났다. 그건 이름만 들어본 어느 기사의 기술이었다.


그것을 처음 본 라드는 어느 게 가짜고 어느 게 진짜인지 분간해내지 못했다. 가려낼 만한 시간도 부족했다. 짧은 시간 동안 내린 선택은 전부 쳐내는 거였다.


행동은 판단보다 한발 앞섰다. 라드 목검이 순식간에 찌르기를 네 번을 했다. 부딪히는 소리는 단 하나였다. 그 결과로 가멜린이 멀찌감치 밀려나 착지했다.


주아나는 위치상 오빠가 어떻게 공격을 파훼했는지 정확히 볼 수 없었다. 대신 기사들이 짓는 놀란 표정을 목격했다. 심지어 여섯별이라 불리는 다섯 명이 찰나지만 눈살을 찌푸린 것도 보았다. 2황자만이 조금 다른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 재밌네.”


가멜린이 웃으면서 인상을 구겼다. 관자놀이로 횡행하듯 핏줄이 두드러지며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러든 말든 라드는 초연하게 자세를 잡았다. 그게 상대를 더 자극한 모양이었다.


“팔 한 짝으론 모자라겠다, 너.”


격양해진 음성을 신호 삼아서 가멜린은 다시금 목검을 휘둘렀다. 내뱉은 말을 지키려는 듯 노리는 건 왼팔이었다. 라드가 재빠르게 몸을 비틀며 공격을 쳐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목검이 지나간 자리로 잔상만이 남아 수증기처럼 흩어졌다. 마력이 만든 허상이었다.


진짜 가멜린은 반대편에서 나타났다. 목검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공기를 갈랐고, 그는 미소를 지었다. 팔이 부러지는 것보다 좀 더 많은 걸 앗아가더라도 ‘아이고, 실수.’라며 넘겨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가멜린은 계속 웃지 못했다. 그가 느낀 건 무더운 여름날 잠깐씩 불어오는 그런 바람이었을 것이다. 눈을 깜빡였을 때 코앞에 라드가 있었다.


가멜린은 움찔하여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오른 손목이 겨드랑이에 끼어있는 탓이었다. 살기 어린 일격에 실었던 힘이 꺾어진 손목으로 되돌아와 시큼한 통증을 일으켰다.


원치 않게 목검을 놓치는 순간, 복부로 발이 날아들었다. 가멜린은 뒤로 세 바퀴나 굴렀다. 한쪽 무릎을 꿇고 주먹으로 바닥을 짚은 형을 본 키실이 호들갑 떨면서 다가왔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저리 꺼져, 너도 죽여버리기 전에.”


가멜린은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징그러울 정도로 불거져있었다. 포식자처럼 사납게 변한 눈을 본 키실이 겁을 먹고 슬금슬금 물러났다.


“황자님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하시죠.”


라드가 모래에 박힌 목검을 뽑아 던졌는데 하필 그게 가멜린 앞에 또 한 번 박혀 섰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가멜린은 아무 말 없이 목검을 잡고 일어섰다.


숙였던 고개를 들자, 손에서 생겨난 푸른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환영처럼 목검 전체를 뒤덮었다. 강렬한 기운을 이기지 못한 나무가 쩍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것은 단순히 마음을 품는 걸 넘어 상대를 진짜로 죽이겠다는 의지에 발현이었다.


라드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자존심이 상했더라도 저렇게까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가만히 있지 말고 좀 말려봐요.”


라드가 호위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정확히는 여섯별이라 불리는 다섯 기사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묵묵부답에 어떤 행동도 취하질 않았다. 그저 석상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 다른 기사도 눈치만 볼 뿐 어찌할지를 몰라 했다.


가멜린이 목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이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었다. 만약 이대로 똑같이 힘을 사용한다면 둘 중 한 명은 크게 다친다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뒤편에 앉아있는 주아나에게도 여파가 미칠 터였다.


기어코 라드는 전쟁터로 내던져진 신병 같은 얼굴이 되었다. 상황이 내재한 힘을 끌어내라 몰아붙이는 게 분명했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그때 훈련관 입구로 라노스가 들어섰다.


“가멜린 황자님, 그쯤에서 그만하시지요.”


라노스가 천천히 걸어왔고, 가멜린은 그보다도 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싫다면?”


가멜린은 수치와 분노가 응축된 눈으로 라노스를 바라보면서 겨울바람보다 차갑게 읊조렸다.


“억지로라도 막아야겠죠.”


“당신이? 나를?”


가멜린이 조소를 내뿌렸다.


“그래야 한다면요.”


라노스가 대답했다. 굵직한 목소리는 실내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가멜린은 한동안 라노스를 노려보았지만, 곧 살기 어린 기운을 거두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얼굴에 번졌던 붉은 기와 핏줄은 모두 사라졌지만, 대신 다른 것들이 서려 있었다.


“주인이 죽어도 가만있으면 참이냐?”


가멜린은 라노스를 무시하듯 지나쳐서 여섯별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처음 모습 그대로인 그들은 어떠한 설명이나 변명도 하지 않았다.


“돌아간다. 이곳에서 볼일은 끝났어.”


가멜린이 등을 돌리고 들으라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쌩하니 훈련장을 걸어 나갔다.


“아버지!”


주아나가 라노스에게 달려와 품에 안겼다. 울음은 터트리지 않았지만, 머리를 파묻고 어리광을 피워댔다.


“휴···.”


라드가 식은땀을 닦아내며 한숨을 쉴 때, 2황자 키실이 입을 열었다.


“형님은 아마도, 이 일을 잊지 않을 겁니다.”


키실은 라드와 라노스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건 충고입니까? 경고입니까?”


“재미난 걸 보여준 보답이라고 해두죠.”


키실이 뜻 모를 미소를 지으면서 라노스를 향해 고개를 까딱거렸다. 이어 그도 형을 따라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가멜린···키실···.”


라노스는 딸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1황자와 2황자 이름을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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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7) 24.07.19 8 0 14쪽
6 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24.07.18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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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3) 24.07.14 6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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