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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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nx666
작품등록일 :
2024.07.11 19:03
최근연재일 :
2024.08.06 18:46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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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740

작성
24.08.0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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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사막양 (1)

DUMMY

주아나는 밤이 되고 마부가 잠들면 통에서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짐칸 바로 아래 잠자리를 편 탓에 통 속에서 하루를 더 보냈다.


그리고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온몸이 쑤시는 건 물론이거니 피부도 쓰라렸고, 갈증과 어지럼증까지 주아나를 괴롭혔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신중해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주아나는 참지 못하고 뚜껑을 들어 올렸다. 곧장 신선한 공기와 밝은 빛이 통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흐읍, 흡···.”


목을 한껏 들어 올려서 데워진 공기를 빨아들였다가 내뱉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띵한 기분이었지만 오래가지 않아 상쾌함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너무 몰입해서였을까, 마차가 심하게 덜컹거린 순간에 뚜껑이 손바닥을 벗어나 버렸다. 뚜껑은 다른 통과 턱에 한 번씩 부딪힌 다음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토록 큰 소리를 마부가 듣지 못할 리 없었다.


“워, 워워워.”


역시나 마부는 고삐를 당겨서 마차를 세웠다. 이어서 짐칸을 확인할 요량으로 오다가 멀찍이 떨어진 뚜껑을 먼저 발견했다.


“아니 저게 왜···.”


마부는 이상함을 느낀 거 같았지만, 위화감까지는 발견하지 못한 듯 뚜껑을 주우러 걸어갔다.


“불량이 섞여 있었나?”


가림막을 걷고 짐칸으로 올라선 마부가 열린 나무통을 유심히 살폈다. 누군가 손을 댔던 분명한 흔적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구기면서 뚜껑을 덮었다.


“에잇, 어떤 망할 놈인지 모르겠지만 천벌이나 받아라.”


마부가 툴툴거리면서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 순간 예리한 금속이 목에 대어졌다.


“움직이지 마.”


“알겠으니까, 죽이지 마.”


마부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양손을 어깨 위로 치켜들었다. 곁눈질로 주아나 얼굴을 확인하고는 왜 하필 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가 어디쯤이지?”


“말할 테니까, 이것 좀 치워줘.”


마부가 불안한지 눈알을 내리깔아 단검을 쳐다봤다.


“그건 안돼.”


“나는 너에게 위협이 될만한 걸 가지고 있지도, 배운 적도 없어.”


마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말투에서 약간이지만 짜증스러움도 묻어났다. 하나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주아나는 진실 여부를 알아내려는 것처럼 마부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목을 타고 올라온 검정 문신이 턱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볼을 지나 귀 아래까지 이어져 있었다. 검정 문신을 가진 마족은 1계층이라 하여 인간으로 치면 평민과 같았다.


마부에게 특별한 과거가 있지 않은 이상에야, 말마따나 위협이 될만한 기술은커녕 무기조차 만져본 일이 없었을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비록 저들 사회에서는 가장 낮은 신분이라 해도, 인간을 동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족속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태도만 봐도 그랬다. 목숨이 위협받고 있음에도 제 할 말은 다 하려는 듯이 굴고 있지 않은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


주아나 목소리가 강압적으로 변하자 마부는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알겠어, 알겠어. 궁금한 게 뭐라고 했지?”


“여기가 어디냐고.”


“어디냐고 물어도 마땅히 알려준 지명 같은 건 없어.”


“거짓말!”


주아나는 목에 댄 칼날을 더욱 밀착시키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윽박질렀다.


“정말이다.”


침착하고 딱딱한 말투, 덜컥 믿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거짓이라 보기도 어려웠다.


“그럼, 가려던 곳. 아, 아···.”


주아나는 어렴풋이 들었던 단어를 기억해내려고 애썼다.


“아셋, 사막양 네가 도망친 아누스보다 훨씬 큰 도시지.”


“그래 거기, 거기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재촉하듯 말이 빨라진 건 궁금한 게 많아서는 아니었다.


“여기서 아셋까지는 부지런히 가면 이틀거리야.”


‘날 속이려는 걸 수도 있어.’


주아나는 의심과 칼날을 거두지 않았다. 간략한 정보를 얻었다지만 이정표가 되어주기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지 안전해질 수 있을까? 그것이 관건이었다.


‘이자를 죽이기 전에 더 많은 걸 얻어내야 해. 그런 다음 마차는 버리고 말만 가지고 가자.’


마음속으로 그렇게 결정을 내리자, 잊고 있었던 갈증이 다시금 찾아왔다. 마른 입술 사이로 애원인지 협박인지 모를 음성이 흘러나왔다.


“물, 물은 어딨어?”


“잠깐 손을 내려도 되겠지?”


주아나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부는 오른손을 천천히 내려서 허리 뒤편으로 보냈다. 곧이어 물이 담긴 가죽 자루가 튀어나왔다. 내내 느릿한 움직임을 유지하면서도 겁먹은 표정은 아니라는 게 아이러니했다.


살이 오른 듯 퉁퉁한 가죽 자루를 낚아채 앞니로 마개를 뽑자, 물 냄새가 사르르 올라왔다. 그것을 맡은 주아나는 욕망을 억제할 수 없어 고개를 젖히고 자루를 세웠다.


꿀꺽꿀꺽, 구강을 적시기도 전에 식도로 넘어가는 물은 건조한 날씨에도 냉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실수록 중독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방심을 불렀다. 마부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검을 쥔 팔을 쳐냈다. 그런 다음 주아나 어깨를 밀치고 마부석으로 달려갔다.


넘어지는 걸 피하지 못한 주아나는 곧바로 일어섰지만, 바퀴는 벌써 굴러가는 중이었다.


“이랴! 이랴!”


어찌어찌 짐칸 턱을 잡아냈지만, 불편한 다리와 급조된 움직임으로는 말 네 마리가 뿜어내는 가속을 버텨낼 수가 없었다.


“안돼···.”


점차 미끄러지던 손이 떨어져 나가고 주아나는 앞으로 꼬꾸라졌다. 마차가 멀어지는 것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분노한 주먹이 이름도 모를 잡초를 짓이겼다.


“젠장, 젠장.”


마부를 놓친 건 치명적인 실수였다. 절대 살려 보내서는 안 되었다. 쉬지 않고 달려가서 신고부터 할 게 틀림없었다. 또한 얻어내야 할 것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는데, 고작 갈증을 참지 못해 이 사달을 일으키다니.


갈증, 그래 물! 주아나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서 마차가 멈추어 있었던 자리로 달려갔다. 바닥에 떨어진 가죽 자루를 발견하자마자 잽싸게 들어 올렸지만, 물은 이미 쏟아질 만큼 쏟아진 후였다.


무게를 가늠해 보니 반도 안 되는 양이었다. 그나마 이것이라도 건진 걸 다행으로 여기면서 마개를 닫아 허리에 보물처럼 옭아맸다.


이제 어쩐단 말인가, 주아나는 답답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다. 누런 풀과 빼빼 마른 나무가 전부인 초원이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멀리까지 펼쳐져 있었다.


주아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생각에 빠졌다. 아누스에서 출발한 지가 얼추 하루, 아셋까지는 이틀거리라고 했다. 마부가 그대로 아셋으로 갈지, 아니면 방향을 틀어서 아누스로 돌아갈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최소 하루에서 이틀이면 추격이 시작될 거라는 것이었다.


말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이동 수단이라고는 두 발뿐이었다. 그마저도 한쪽은 멀쩡하지 않은 상태이니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멀리 달아나야 하는데, 선뜻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다리가 풀려서도 아니고 가지 말아야 할 방향을 몰라서도 아니었다.


주아나는 겁도 없이 먼저 걸어가는 그림자를 보고 나서야,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


일주일을 걸었지만, 초원은 여전히 계속됐다. 아지랑이처럼 흐물거리는 지평선을 바라봐도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전보다 더 메마르고 삭막해졌을 뿐이었다.


삼 일째 되는 날에 비마저 내리지 않았더라면 진즉 탈수로 쓰러졌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날 받아둔 물마저 방금 마신 몇 방울로 끝이 나버렸다.


아직 추격자들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그게 언제까지고 이어질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서인지 추격을 포기했다거나 처음부터 쫓아오지 않았을 거라는 망상이 들기도 했다.


정오가 막 지났을 무렵, 주아나는 기운을 다해 무릎을 꿇었다. 갈증과 허기, 그 한계가 이제야 찾아온 모양이었다. 어쩌면 지금껏 버틴 게 기적일지도 몰랐다.


‘여기가 내 무덤인 걸까.’


상체가 기우는 게 느껴지는데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주위로 피어오른 건조한 흙먼지가 얼마 날지 못하고 뒤통수와 등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도 주아나는 감겨오는 눈꺼풀을 감당하지 못하고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세상이 어슴푸레하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바램과 염원이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실망감으로 맥없이 고개를 돌려보니, 몰려오는 어둠에 저항하는 마지막 빛줄기가 지평선 너머로 지워져 가는 게 보였다.


‘···대체 왜···.’


죽을 수조차 없는 운명인가? 나를 죽게 두지 않으려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신이라는 작자에게 전달되기라도 한 것인지, 눈앞으로 계시가 나타났다.


스으윽, 꼬불거리며 기어가는 생명체를 향해서 주아나가 손을 뻗었다. 쓰러질 때만 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혀를 날름거리며 공격적으로 구는 뱀을 쉽게 잡아버렸다.


“이것도 당신 권능입니까? 아니면······너야?”


주아나는 형체조차 없는 존재와 그날 밤 이후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 괴물을 연달아 떠올렸다. 그것도 잠깐, 이내 뱀 머리를 맨손으로 뜯어내고 껍질을 벗겨냈다. 해본 적도 없는 일을 신기할 정도로 능숙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발견할 틈도 없이 살이 드러난 몸통을 팽팽하게 잡아당겨서 이빨로 깨물었다. 한 움큼을 쭉 찢어내자 비릿함이 거세게 올라왔지만, 깨어난 생존본능 앞에서 그런 건 무의미했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고, 또 깨물고 찢고 씹고 삼켰다. 간간이 뼈가 씹히면 그것만 골라 뱉어내고 계속 먹어댔다.


“우웩, 웩.”


꼬리 부분만 남았을 때 주아나는 고통스러워하며 등을 세우고 엎드렸다. 먹었던 게 모조리 쏟아져 나왔다. 일주일을 굶어놓고서 날것을 온전히 씹지도 않고 삼켜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아, 하아, 하아···.”


토사물로 막혔던 기도가 뚫리고 가쁜 호흡이 터져 나왔다. 입술로는 위액과 침이 질질 흘렀다. 그런 상태이니 누군가 옆을 지나가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그것을 뒤늦게 알아챈 주아나가 단검을 꼬나쥐고 일어났다. 하지만 손이 덜덜 떨려왔다. 겁을 먹어서가 아니라 몸 상태가 나빠서였다. 그런 사실을 숨기려고 팔에 힘을 주자 이번에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자신을 지나치고도 못 본 것처럼 가고 있는 상대를 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그러는 와중 결단을 내린 것은 머리가 아닌 입이었다.


“당신, 누구야?”


위협적인 목소리를 낸다고 냈지만, 실상은 그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상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서, 내 말 안 들려?”


듣지 못할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거기다 두 번이나 불렀는데도 멈추지 않는 걸 보면 무시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서라고!”


주아나가 소리쳤다. 그제야 들었다는 것처럼 고요히 걷던 두 발이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그 움직임은 마치 얼어붙은 호수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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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사막양 (2) 24.08.06 3 0 12쪽
» 20화 사막양 (1) 24.08.05 4 0 11쪽
19 19화 달아나, 주아나 (10) 24.08.03 6 0 12쪽
18 18화 달아나, 주아나 (9) 24.08.01 8 0 13쪽
17 17화 달아나, 주아나 (8) 24.07.31 6 0 12쪽
16 16화 달아나, 주아나 (7) 24.07.30 8 0 12쪽
15 15화 달아나, 주아나 (6) 24.07.29 8 0 12쪽
14 14화 달아나, 주아나 (5) 24.07.27 10 0 13쪽
13 13화 달아나, 주아나 (4) 24.07.26 8 0 12쪽
12 12화 달아나, 주아나 (3) 24.07.24 6 0 12쪽
11 11화 달아나, 주아나 (2) 24.07.23 6 0 12쪽
10 10화 달아나, 주아나 (1) 24.07.22 6 0 14쪽
9 9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9) 24.07.21 6 0 12쪽
8 8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8) 24.07.20 7 0 12쪽
7 7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7) 24.07.19 7 0 14쪽
6 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24.07.18 8 0 12쪽
5 5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5) 24.07.16 6 0 14쪽
4 4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4) 24.07.15 6 0 12쪽
3 3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3) 24.07.14 6 0 14쪽
2 2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2) 24.07.13 8 0 13쪽
1 1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1) 24.07.11 1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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