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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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nx666
작품등록일 :
2024.07.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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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8:4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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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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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달아나, 주아나 (7)

DUMMY

6개월이 지나자 아누스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그렇지만 눈은 오지 않았다. 더위가 약간 가시고 밤공기가 서늘해졌을 뿐이지, 한낮에 내리쬐는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다.


주아나는 변화를 겪고 있었다. 키가 부쩍 자랐고, 잠들 무렵이면 성장통에 시달렸다. 앞으로도 더 크려는 모양이었다.


물론 키가 자란 이유가 성장통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 6개월 동안 주아나는 경기를 네 번이나 더 나갔고 전부 살아서 돌아왔다.


첫 번째로 만난 건 살집이 좋은 남자였다. 그는 육중한 둔기를 힘으로만 휘둘렀다. 공격 면적은 넓었지만, 눈으로 좇을 수 있을 만큼 느리고 단순한 공격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둔해지던 남자는 십 분을 못 넘기고 탈진해버렸다. 주아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서 심장을 꿰뚫었다. 빠르고 고통 없이 죽여준 건 상대가 아닌 자신을 위한 배려였다.


두 번째 경기에 나온 중년 남자는 얍삽한 외모만치나 말과 행동이 거칠었다. 시작되자마자 비틀린 말을 쏟아내며 정신을 산만하게 했고, 음란한 시선으로는 몸을 꼬집어댔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비열한 짐승 같았다.


방패를 익숙하게 사용했지만, 압박에 비해서 공격적인 능력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그도 오래 걸리지 않아 검에 꿰어졌다.


세 번째 상대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였다. 뻣뻣한 가죽을 갑옷처럼 두르고 양날 도끼 두 자루를 휘두르며 돌진하는 모습은 흡사 야생마 같았다.


그저 무식해만 보이던 방식이 되려 제약이 있는 주아나에게는 위협적이었다. 공격을 몇 번 막은 것만으로 이가 빠지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가벼움을 기준으로 고른 검이라 도끼날과 내구성이 같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무식한만큼 체력 소모도 빨랐다. 눈에 띄게 지치자 허점이 드러났고, 처음이자 마지막 찌르기가 목을 관통했다.


네 번째는 청년인지 소년인지 모를 애매모호한 남자였다. 처음부터 겁을 잔뜩 먹은 얼굴이었고, 들고 있는 검마저 심하게 하늘거렸다. 무기를 가진 게 무슨 소용일까 싶은 그런 목숨을 빼앗는 일은 지금껏 중 가장 쉽고 간단했다.


그게 한 달 전이었다. 주기적으로 볼 때 조만간 또 경기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주아나는 마족어를 배우는 일도 등한시하지 않았다. 이제는 일상적인 건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자연스레 관중들이 자신을 사막양이라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마족어를 알려준 실리아조차 몰랐다.


주인 그로지안은 주아나를 경기 외로는 부려 먹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관심을 두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상 없는 사람 취급이었다.


그런 대우가 주아나에게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 눈치 볼 것이 없으니 몸을 단련하는 데 열중할 수 있었다. 불어가는 근육만큼이나 발목도 호전되면 좋았을 테지만, 끊어진 힘줄이 다시 붙지 않는 이상에야 더 나빠지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문뜩문뜩 이곳 환경과 처지에 익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공포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많은 영상 중에서도 가장 끔찍했던 건, 쭈글쭈글해져서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 자신이었다. 그런데도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육체도, 지식도, 경험도, 모자란 것투성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어스름한 방으로 실리아가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표정이 어두웠다.


“주아나.”


주아나는 불렸다는 사실조차 곧바로 인지하지 못할 만큼 의식이 멀리 떠나있었다.


“주아나.”


실리아가 다시 한번 부르고서야 대답이 들려왔다.


“왜?”


“내일 거기 간대.”


“응.”


주아나는 듣는 순간 거기가 어디인지를 알았다. 그래서 단답형으로 말한 것뿐인데, 실리아는 그게 싫었던 모양이었다.


“그게 다야?”


“뭐가?”


“매번 그런 반응이잖아.”


실리아는 걱정 반, 실망 반인 얼굴이었다.


“그럼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 건데?”


“뭐든 그거보단 낮겠다.”


주아나가 근력 운동을 멈추고 낡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실리아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그래도 별생각은 들지 않았다.


“걱정은 아무 도움도 안 돼.”


“그렇다고 어떻게 걱정을 안 해.”


무심한 반응 때문인지 실리아는 답답함을 감추지 못해 했다.


“그런가?”


하지만 감정에 말뚝이 박혀있음을 모르는 주아나는 그저 의아할 뿐이었다.


다음 날, 투기장에 도착한 주아나는 맨 처음 넣어졌었던 방을 다시 배치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날 기억이 되살아나는 건 아니었다.


순서상으로 보면 주아나 경기는 정오쯤이면 시작했어야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순서가 밀렸다. 본인은 몰랐으나 그것은 사막양 인기가 생각보다 높아서였다.


주아나는 대기하는 동안 오늘 상대가 누구일까를 궁금해하기보다는 몸을 풀면서 차분한 마음을 유지했다. 앞선 경기들이 빨리 끝난 덕에 마지막 경기도 조금 이르게 시작됐다.


오늘은 특별히 검과 함께 단검도 한 자루 챙겼다. 다리가 무거운 만큼 경량화는 필수 요소였지만, 날이 상하거나 부러졌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경기장에 올라서자 관중들이 주아나에게 붙은 별명을 부르짖으며 열광했다.


“사막양! 사막양! 사막양!”


주아나는 관중석이 아닌, 중앙에 우두커니 선 고철을 바라봤다. 은색이었을, 그러나 지금은 군데군데 녹슬어 적갈색을 띠는 전신 갑옷이었다. 아무래도 그것이 오늘 맞불을 상대 같았다. 다가가는 동안 다행이라고 생각된 건, 갑옷 속에 숨어있는 사람이 장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자, 메인 경기입니다! 사막양 대 복수자!”


“모든 걸 앗아갈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진행자 목소리가 두 번에 걸쳐 메아리쳤다. 이어지는 고요한 정적은 긴장감을 만들어내어 공기를 짙게 물들였다.


주아나는 복수자라 불린 존재를 위아래로 관찰했다. 아무리 봐도 작은 눈구멍 말고는 뚫린 곳이 없었다. 도대체 어디를 공략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었다.


무기실에 있는 방어구라고 해봐야 고작 방패 정도였다. 한쪽에만 저런 걸 주는 건 불합리하지 않은가. 물론 자신에게 갑옷을 주었더라도 착용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저 무거운 걸 입고서는 한 발짝 이상은 떼지 못할 게 분명해.’


머릿속에서 무겁다는 말이 반복됐다. 필시 무거운 갑옷을 입은 만큼 빠르지 않을 터였다. 단단하기야 하겠지만 비집고 들어갈 공간 하나 없으랴.


거리도 충분히 떨어져 있겠다, 주아나는 검을 비스듬히 들고서 상대가 먼저 움직이길 기다렸다. 잠시 후 삐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 고철은 예상대로 아주 느렸다.


한가로이 산책하듯 걸어와서는 기다란 장검을 엉성하게 휘둘렀다. 주아나는 그것을 옆걸음으로 피한 뒤 검으로 옆구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까앙! 강철끼리 상박하여 경쾌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갑옷은 흠집만 났을 뿐 멀쩡했다. 미세하게 진동하는 검날을 진정시키는 동안 투구 속 눈이 다시금 주아나를 쫓았다.


다음 공격도 역시나 피하기 쉬웠다. 피한 다음 반대편 옆구리를 베었더니 녹가루가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중간중간 관절 부위도 노려봤다. 무릎, 팔꿈치, 겨드랑이 순이었는데 가장 취약할 줄 알았던 겨드랑이마저도 날이 튕겨 나왔다.


주아나는 경험을 토대로 거리를 벌리고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상대가 따라붙으며 낮게 검을 휘둘러댔지만, 애꿎은 땅만 긁어댔다. 그러다가 한번은 투구 안면을 후려쳤다.


“앗.”


투구 안짝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애초 예상했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자?’


순간 주아나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지금까지 상대로 동성을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의문은 잠깐이고 도는 일은 계속됐다. 하지만 집중력이 분산되었던 것인지, 장검을 버리고 달려드는 상대에게 반응이 늦어버렸다.


급한 대로 가슴과 투구를 연속해서 베어봤지만, 그것이 저지력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양팔이 주아나를 덥석 껴안더니 그대로 꼬꾸라졌다.


쿵! 육중한 갑옷에 깔린 주아나가 고통 어린 신음을 토해냈다.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통증 속에서도 검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손안에 잡히는 게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찾을 경황도 아니었다.


정신이 없던 와중에 혹시 몰라서 챙겼던 단검이 떠올랐다. 주아나는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어 감긴 상태로 허리를 더듬었다. 넘어진 충격으로 완갑과 몸 사이에 충분한 틈이 벌어져 있어 단검을 쥔 팔을 빼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팔을 빼고 봤더니 날이 바깥쪽으로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주아나는 곧장 손잡이 부분으로 투구 옆면을 후려쳤다. 울림이 자기 뇌까지 흔들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꺄아악!”


얼마 있지 않아 눈구멍으로 비명이 새어 나왔다. 동시에 갑옷이 살짝 떠올랐다. 주아나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양 손바닥으로 오른쪽 가슴부위를 힘껏 밀어 올렸다. 그러고도 조금 모자라 오른 무릎까지 끌어올려 힘을 보탰다.


갑옷이 뒤집히면서 먼지를 일으켰다. 주아나는 그걸 삼켜가면서 갑옷에 올라탔다. 그런 다음 가슴과 옆구리를 잇는 연결부를 벌리고 단검을 찔렀다.


살을 파고드는 느낌이 손잡이를 통해서 확실하게 느껴졌다. 단검을 뽑아서 치켜들자 녹슨 갑옷 위로 피가 점처럼 찍혀댔다.


투구 속에서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주아나가 마무리를 짓고자 안면 덮개를 들어 올렸다. 뿌연 먼지 아래 드러난 것은 코피를 흘리면서 억울한 표정으로 울고 있는 또래 여자였다. 노려보는 눈동자가 어딘가 모르게 익숙했다.


“왜 우는 건데?”


저도 모르게 질문이 나갔다. 그래 놓고 ‘내가 왜 이런 걸 왜 묻고 있지?’라고 생각했다.


“네가···네가 우리 오빠를 죽였으니까.”


소녀는 경련이라도 난 듯 오른쪽 눈을 찡그리기를 반복했다.


“나는 네 오빠가 누군지도 몰라.”


“···한 달 전에···네가···죽인 게···내 오빠야.”


“그건······그건···어쩔 수 없는···.”


주아나는 소녀의 오빠를 기억하고 있었다. 겁에 질려있던 모습이 선명하기까지 했다. 더 나아가 그를 죽이던 자기 모습까지···갑자기 위장에 뱀 한 마리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건틀릿을 낀 손이 목깃을 잡아 주아나를 끌어당겼다.


“너무 아파···인제 그만 보내줘, 오빠 곁으로···.”


달짝지근한 입 냄새를 풍기는 소녀는 이미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초점도 흐렸다. 멀어져가는 의식을 억지로 잡으려고도 하지 않는 거 같았다.


눈물이 만든 한줄기 길에서 주아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정면으로 소녀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였다.


“푸웁.”


뒤늦게 식도를 타고서 올라온 내부 출현이 기침처럼 주아나에게 뿌려졌다.


“아, 아아···아아.”


주아나는 자기가 떨어트린 단검 소리에 놀라 움찔했다. 이어 갑옷에서 내려와 엉덩이를 직직 끌면서 물러났다. 소녀로부터 몇 미터나 멀어진 후, 몽유병자처럼 벌떡 일어나서는 들어왔던 벽으로 달려가 쾅쾅 쳐대기 시작했다.


“열어! 열어! 열라고! 이 문 열라고!”


비애와 조급함이 담긴 목소리가 채찍처럼 경기장에 울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관중석도 술렁거렸다. 곧 쿠르릉대며 벽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아나는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미친 여자처럼 벽을 타고 넘었다. 그러나 안에는 마족 병사가 대기 중이었다.


“놔! 놓으라고!”


주아나가 몸부림쳤다. 운 좋게 한쪽 팔이 풀려서 주먹을 날려봤지만, 되려 배만 얻어맞았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희멀건 위액이 쏟아졌다. 그러나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아나를 다시 경기장 안으로 던져넣었다.


주아나는 쏟아지는 야유 속에서도 콩벌레처럼 웅크리고 꼼짝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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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화 달아나, 주아나 (10) 24.08.03 6 0 12쪽
18 18화 달아나, 주아나 (9) 24.08.01 8 0 13쪽
17 17화 달아나, 주아나 (8) 24.07.31 6 0 12쪽
» 16화 달아나, 주아나 (7) 24.07.30 9 0 12쪽
15 15화 달아나, 주아나 (6) 24.07.29 8 0 12쪽
14 14화 달아나, 주아나 (5) 24.07.27 10 0 13쪽
13 13화 달아나, 주아나 (4) 24.07.26 9 0 12쪽
12 12화 달아나, 주아나 (3) 24.07.24 6 0 12쪽
11 11화 달아나, 주아나 (2) 24.07.23 6 0 12쪽
10 10화 달아나, 주아나 (1) 24.07.22 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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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8) 24.07.20 8 0 12쪽
7 7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7) 24.07.19 8 0 14쪽
6 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24.07.18 8 0 12쪽
5 5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5) 24.07.16 6 0 14쪽
4 4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4) 24.07.15 6 0 12쪽
3 3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3) 24.07.14 6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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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1) 24.07.11 1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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