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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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nx666
작품등록일 :
2024.07.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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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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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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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달아나, 주아나 (9)

DUMMY

주아나는 바닥에 엎드려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실리아가 걱정돼서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오지 말라고 했잖아, 계속 말했잖아. 오지 말라고···오지 말라고.’


창 너머로는 비명도, 윽박도, 폭력도 없었다. 고요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디로 데려갔을까? 죽이려는 것일까? 실리아도 소녀들처럼 사라져 버리는 걸까? 또다시 찾아온 상실이 주아나를 덮치면서 마음을 산산조각 냈다.


‘다 내 탓이야, 전부 내 탓이야. 아아···내 존재가 문제인 거야···.’


자학뿐인 밤이 지나고 아침 해가 떠오르기 직전, 병사들이 실리아를 무성의하게 끌고 와서는 주아나가 있는 곳으로 집어넣었다.


“실리아···.”


주아나는 기다시피 해서 실리아 곁으로 다가왔다. 내려다본 그녀는 엉망이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드러난 젖가슴과 허벅지, 벗겨진 피부와 베어진 상처들, 흔들어보려야 어디 한군데 잡을 곳이 없었다. 메마른 안구로 얼마 남지 않는 눈물마저 흘렀다.


“왜 울고 그래, 주아나.”


실리아 목소리는 바람결처럼 미약했다.


“흑흑···미안해···전부, 전부 내 탓이야···내가 그렇게 굴어서···그것 때문에···실리아가···.”


“자책하지 마. 너는 오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억지를 부렸던 거야. 네 탓이 아니야.”


실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주아나 뺨을 어루만졌다.


“아니야···흑···내가···내가···.”


“주아나.”


“···응.”


실리아는 눈을 감고서 이를 꽉 물었다. 침묵이, 흐느낌이 두 사람을 감쌌다. 그러길 한참 만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나 사실은 알고 있었어.”


“뭘?”


주아나가 애처로운 눈길로 실리아를 보며 물었다.


“돌아갈 수 없다는 거···다시는 동생을 만날 수 없다는 거···그래서 너한테 고마워. 사실 나 동생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거든. 근데 너를 보면서 달라졌을 동생을 그려볼 수 있었어···나 이제 실비안을 보러 갈 수 있겠지?”


“나만, 나만 두고 가지 마···.”


실리아가 까만 눈동자로 천장을 아련히 바라봤다. 그곳에 동생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일까? 주아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런데···있잖아···.”


실리아 음성에는 말보다 울먹임이 더 많았다. 부풀어 오르던 점막은 이내 풍선처럼 터졌다.


“나···나···너무 무서워. 죽는 게···너무 무서워.”


실리아는 서럽게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감정이 진정되었을 때, 바닥을 짚고 있던 주아나 손안에 무언가를 남겨주었다.


“달아나, 주아나. 여기서 달아나······.”


그 말을 끝으로 실리아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몇 분 후 숨을 거뒀다. 주아나는 식어가는 몸뚱이를 껴안은 채로 종일 움직이지 않았다.


저녁이 돼서야 나타난 루츠는 감방 안을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끌어내.”


주아나가 실리아를 꽉 끌어안았다. 뺏길 수 없었다. 또 앗아가게 둘 수 없었다. 하지만 억센 손이 그녀를 손쉽게 떼어내어 벽으로 던져버렸다. 단순히 의지를 지켜내는 데만 해도 힘은 필요한 법이었다.


까만 머리칼이 복도에 붉은 선을 남기며 사라져갔다. 그렇게 주아나는 또다시 빼앗겼다.


『내가 말했지, 넌 가짜라고. 가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어.』


‘닥쳐.’


『오! 불쌍한 주아나.』


‘닥치라고.’


『네 옆에 있는 것들은 전부 죽을 거야.』


‘제발···꺼져.’


『여길 봐, 여길 보라고!』


괴물이 소리쳤다.


‘제발, 날 내버려 둬.’


얼굴을 파묻은 채 보지 않자, 이번에는 어르듯 속삭였다.


『여기 네가 원하는 게 있어, 여길 봐.』


주아나가 쳐다봤다. 괴물 옆에 검은 연기로 만들어진 여자가 있었다.


‘실리아···.’


손을 뻗는 주아나를 기만하듯 괴물은 긴 발톱이 달린 앞발로 여자를 잘라냈다. 허리가 두 동강 난 연기는 한밤에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스르륵 사라져 버렸다.


‘아···.’


『결과조차 예상 못 한 멍청한 주아나. 전부 빼앗긴 불쌍한 주아나.』


‘···말해줘.’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넌 이미 알고 있어.』


‘······.’


『죽은 것이 산 것에게 원하는 건 하나뿐이야.』


괴물은 술병처럼 기다란 콧김을 내뿜고는 자신이 만든 영역을 거둬들였다. 모든 어둠이 짐승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초췌한 주아나가 생기 없는 산호색 눈동자로 바닥에 뭉개진 것을 내려다봤다. 잡혀가는 와중에도 실리아가 숨기려 했던 음식이었다.


고작 저것이 목숨값이라니, 허망함을 넘어서 허탈함마저 들었다. 그리고 소중하기까지 했다.


주아나는 힘겹게 음식을 주워 모아 억지로 집어삼켰다. 이것이 괴물이 강요하는 운명이라면 더는 거부하지 않으리.


이튿날 밤에 루츠가 찾아왔다. 주아나는 그를 보자마자 납작 엎드려서 용서를 구했다.


“다시는 대들지 않을 테니,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친하게 지내던 년이 죽으니까 정신이 든 모양이구나.”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목소리가 떨리도록, 간절하도록 최대한 애를 썼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잘 먹혀들었다.


“시키는 대로 왔다 갔다나 할 것이지 피곤한 짓을 하고 말이야. 그로지안님이 부를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라. 모든 건 그분 뜻이니까.”


주아나는 루츠가 완전히 나가고야 몸을 일으켰다. 실리아가 남겨준 머리핀을 입 안에 넣어 숨겼다. 혹시 몸수색하더라도 이곳까지는 하지 않을 터였다.


한 시간쯤 지나서 루츠가 돌아왔고, 주아나는 중앙 건물로 끌려갔다. 복잡하게 이어진 통로를 지나고 지나자 나선형으로 된 돌계단이 나타났다. 끝없이 이어진 계단 끝에는 육중한 철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로지안님, 데려왔습니다.”


루츠는 살짝 열린 철문 앞에 서서 그렇게 말한 다음, 병사 하나를 시켜서 문을 열게 했다. 그 순간이 주아나에게는 기회였다. 또 다른 병사가 한눈파는 사이, 고개를 숙여서 머리핀을 손바닥에 뱉어냈다. 그리고 재빨리 소매 안쪽에 걸 터 숨겼다.


안으로 들어서는 동안 심장이 북처럼 뛰어댔다. 하지만 방 한가운데 앉아있는 그로지안을 보자 쿵쾅거림이 사르르 가라앉았다.


“저기 묶어.”


병사들이 안쪽 벽면에 세워진 쇠기둥으로 주아나를 끌고 가 손과 발을 묶었다. 묶은 부위를 몇 번이나 재확인하는 꼼꼼함까지 보였다.


“모두 나가봐.”


그로지안이 말하자 시녀 둘을 포함한 다섯은 고개를 조아린 뒤 방을 빠져나갔다. 철문이 쾅 하고 닫히는 무거운 소리가 방안을 몇 번이나 울려댔다.


마지막 메아리가 사그라들자, 그로지안은 탄력 없는 뱃살을 공기로 가득 채운 후 입을 열었다.


“루츠한테 애원했다고?”


“주인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할 테니, 그러니 제발, 제발 살려만 주세요···.”


주아나는 간절한 눈길로 그로지안을 마주 보았다. 이번 연기는 얼굴을 쳐다보면서 해야 하는 경우여서 어릿광대처럼 표정까지 신경 썼다. 그런데 그로지안이 불만족스러워 보였다.


“좀 특별할 줄 알았더니···.”


“제가 뭘 또 잘못한 게 있다면···반드시 고칠게요.”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몸이 바짝 굳어졌던 주아나는 이유를 듣고 나서 되레 화가 났다.


“꺾이지 않는 애는 무슨 비명을 지를지 정말로 궁금했는데, 어쩔 수 없지.”


그로지안은 가학적인 욕구를 채우지 못했다는 실망을 버젓이 드러내면서 몸을 일으켰다. 과도한 체중에 눌려있던 철제 의자가 끼이익하고 긴 소음을 토해냈다.


그로지안이 등을 돌려 탁자 쪽으로 걸어가는 사이, 주아나는 머리핀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밧줄을 자르는 데 집중했다.


“어떤 걸로 시작해야 이 실망감을 채울 수 있을까?”


그로지안은 예술가 같은 표정으로 눈앞에 늘어선 고문 기구들을 열렬하게 훑어보았다. 열 손가락이 악기를 연주하듯 길고, 짧고, 날카롭고, 휘어진 것을 훑으며 더듬었다. 그런 갈등은 몇 분이나 이어졌다.


그때 툭 하고 밧줄이 끊어졌다. 섬유가 두꺼운 밧줄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주아나는 떨어지는 밧줄을 왼손으로 잡아내 말아쥐었다. 이제는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됐다.


“이걸 안 쓴 지 오래됐군.”


그로지안이 즐거운 표정으로 들고 온 것은 화살촉을 연상케 하는 날카로운 기구였다. 그것을 얼굴 가까이 들이밀어 보여주었다. 충혈된 눈동자는 종교적인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번들거렸다.


“정말로 아름답지 않니? 이게 파고들면 너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나한테 선사해줄 거야.”


흥분해서인지 그로지안 목소리는 간교하게까지 들렸다.


“너한테 박혀도 그런가 보자, 이 미친놈아.”


“뭐?”


그로지안이 머리를 기울이면서 의문을 드러냈다. 그 순간 주아나는 왼손으로 그로지안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오른손에 쥔 머리핀으로 목을 마구 찔렀다. 지방으로 두꺼워 봐야 결국 살덩이였다. 날카로운 게 파고들지 못할 리 없었다.


살갗이 뚫리는 동안 그로지안은 눈동자를 쉴 새 없이 깜빡였다. 얼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면 지금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뒤늦게야 인지한 것인지 통통한 손을 들어 올려 주아나를 밀치기 시작했다. 핏방울이 문대지면서 주아나 얼굴은 진흙탕에 빠진 양 변해갔다. 주아나는 수십 초 동안 찌른 다음에야 목덜미를 풀어줬다.


“끄르륵···그르륵···.”


그로지안은 피가 콸콸 쏟아지는 목을 부여잡은 채로 뒷걸음치다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밧줄을 전부 푼 주아나가 떨어진 고문 기구를 주워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어서 주아나가 내려다보는 위치였다. 첨탑 아래 모든 이를 부리면서 거만하게 군림했던 존재도 죽음 앞에서는 나약한 육신일 뿐이었다.


“지금까지는 그 애들 몫이고, 이건 실리아 몫이야.”


그로지안을 냉랭한 눈길로 내려다보던 주아나는 커질 대로 커진 눈에 고문 기구를 쑤셔 박았다.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알이 터졌고 그로지안에게는 완전한 죽음이 내려졌다.


주아나는 누워서 꿈쩍하지 않는 자를 뒤로하고 방을 살폈다. 한쪽 구석에 옷가지가 쌓여있었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들어 얼굴과 팔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런 다음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주아나가 봤던 아이들 옷도 섞여 있을 테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나가기 전 고문 기구가 가득한 탁자에서 단검 하나를 챙겼다. 조심스럽게 철문을 여는 동안 누군가 지키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됐지만, 그랬다면야 진즉에 들어왔을 터였다.


계단에 선 주아나는 빌어먹을 고문실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마무리를 짓고 탈출해야 했기에 충동을 참아냈다. 그리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계단을 내려갔다.


병사 하나가 나무 의자에 앉아서 계단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내려온 건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서 지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던 그때, 병사 고개가 한쪽으로 푹 꺾였다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십여 분을 지켜보는 동안 그런 일이 두 번이나 더 있었다. 주아나는 병사가 졸고 있다는 확신이 서자 행동에 나섰다. 절뚝, 절뚝, 숨까지 참아가면서 소리를 죽였다.


통로와 통로를 잇는 모퉁이를 돌아서고야 겨우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그것마저도 소리가 들릴까 봐 손바닥으로 입을 막은 채였다.


이대로 이곳을 빠져나가느냐? 그럴 순 없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순찰하는 병사를 한차례 흘려보내고 숨고 숨어 기어코 어느 방 앞에 도착했다.


주아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실리아와 함께 지냈던 방보다 세 배는 넓은 방이었다. 한쪽 벽에 침대와 방주인이 보였다.


침대로 다가간 주아나는 상체를 접어 누워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했다. 목적한 이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상체에 올라탔다. 그런 다음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목젖에 단검을 꽂았다.


“끄르···끄···끄르···.”


루츠가 팍하고 눈을 떴다. 팔다리를 풀썩거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목이 관통되었으니 제대로 된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주아나는 단검을 한 번 더 밀어 넣었다. 어마어마한 고통 때문인지 루츠는 눈을 까뒤집고 혼절했다.


‘실리아가 겪었을 고통은 이 정도가 아니었을 거야.’


그리 생각하며 단검을 뽑았다. 그리고 심장에 박아넣었다. 또다시 얼굴과 옷이 피범벅이 되었다. 주아나는 간헐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몸에 탄 채로 고개를 한껏 젖혔다.


너무 피곤했다. 잠을 자라면 종일이라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두운 천장 너머로 지켜보는 눈동자를 마주하자 잠이 전부 달아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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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화 달아나, 주아나 (10) 24.08.03 6 0 12쪽
» 18화 달아나, 주아나 (9) 24.08.01 8 0 13쪽
17 17화 달아나, 주아나 (8) 24.07.31 6 0 12쪽
16 16화 달아나, 주아나 (7) 24.07.30 9 0 12쪽
15 15화 달아나, 주아나 (6) 24.07.29 8 0 12쪽
14 14화 달아나, 주아나 (5) 24.07.27 10 0 13쪽
13 13화 달아나, 주아나 (4) 24.07.26 9 0 12쪽
12 12화 달아나, 주아나 (3) 24.07.24 7 0 12쪽
11 11화 달아나, 주아나 (2) 24.07.23 6 0 12쪽
10 10화 달아나, 주아나 (1) 24.07.22 7 0 14쪽
9 9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9) 24.07.21 7 0 12쪽
8 8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8) 24.07.20 8 0 12쪽
7 7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7) 24.07.19 8 0 14쪽
6 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24.07.18 8 0 12쪽
5 5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5) 24.07.16 7 0 14쪽
4 4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4) 24.07.15 7 0 12쪽
3 3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3) 24.07.14 7 0 14쪽
2 2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2) 24.07.13 9 0 13쪽
1 1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1) 24.07.11 20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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