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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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nx666
작품등록일 :
2024.07.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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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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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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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달아나, 주아나 (8)

DUMMY

“네가 죽였어, 네가 죽인 거야, 네가 오빠를 죽였어. 나를 봐, 나도 네가 죽였잖아, 이 살인자야.”


소녀는 입을 움직이지도 않고 말을 하고 있었다. 입술 사이로 피가 폭포수처럼 흘렀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아니라고!”


주아나가 머리를 감싸고 세차게 흔들어댔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전부 가짜야, 모두 거짓말이야.’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밀색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뿌연 먼지가 가라앉자 카멜색으로 뒤덮인 경기장이 드러났다. 그 한가운데 주아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밤처럼 어두웠지만 하늘에는 달도 별도 없었다.


“낄낄낄낄.”


텅 빈 관중석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주아나는 홀린 사람처럼 사방팔방을 둘러봤다. 세 바퀴를 돌았을 때, 아무것도 없었던 바닥에 시체들이 생겨나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전부 주아나가 죽인 사람이었다. 잠시 후 그들 몸 아래로 먹물을 부은 거 같은 검은 구렁이 생겨났다. 그것은 점점 넓어지더니 이내 그들을 삼켜갔다.


절반쯤 가라앉았을 때, 모든 검지가 일제히 주아나를 가리켰다.


“히히히히.”


“깔깔깔깔.”


웃음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처음은 나직했지만, 점점 커지며 주아나를 에워쌌다. 곧이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회전하며 기괴함을 드러냈다. 고작해야 소리일 뿐인데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귀를 막고 쭈그려봐도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다.


‘도와줘···아무나···.’


도움을 갈구하는 목소리는 악몽 세계를 영원히 헤맬 뿐이었다.


주아나가 눈을 떴다. 안개가 걷히듯 확장되는 시야로 제일 먼저 실리아가 보였다. 애타는 얼굴이 세 조각으로 잘려져 있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창살 때문이었다.


“주아······주아나, 정신이 들어?”


“어떻게 된 거야?”


칼칼한 성대로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기억 안 나?”


“거의···.”


주아나는 옆으로 누워진 상체를 일으켜서 냉랭한 벽에 기대앉았다. 온몸이 따가운 듯 욱신거렸고 머리는 아린 듯이 지끈거렸다.


이마 위 관자놀이를 누르려고 보니 가루 같은 게 떨어져 내렸다. 손가락으로 만져보고서야 부서진 피딱지임을 알았다.


“퉤.”


주아나가 고인 침을 뱉어냈다. 피가 반이었다. 혀가 닫는 부위마다 쓰라리고 금속 맛이 났다.


“왜 그랬어? 주인님한테 대든 건 바보 같은 짓이었어.”


실리아는 혼내는 것 같은 얼굴로 울상마저 짓고 있었다. 부조화 자체였다. 가늘게 뜬 눈으로 그걸 보고 있자 부서졌던 기억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기억이 시작되는 지점은 넓은 홀이었다. 한가운데 주아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주변을 에워싼 병사와 노예, 그리고 정면으로는 그로지안이 의자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쿠션 여러 장이 깔아 받치고 있었지만, 체중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인지 종잇조각처럼 눌러진 상태였다.


“그런 행동을 한 너를 용서하면 안 되지만, 이번만큼은 봐주마.”


그로지안은 하관을 출렁거리면서 굵은 음성을 뱉어냈다. 위협적인 톤은 아니었지만 다분하게 건조했다.


“난······.”


주아나는 처박혀 있던 고개를 느릿하게 들면서 선언하듯 말했다.


“안 싸워.”


“이 미친 것이 어디서 감히! 뭣 하느냐?”


그로지안 옆에 서 있던 마족이 노여워하며 외쳤다. 팍! 뒤에 서 있던 병사가 창 자루 끝으로 등을 내려찍었다. 주아나는 허리가 휘어지며 바닥을 짚었다. 호흡이 막혀서 한참을 쌕쌕거려야만 했다.


“안 싸우겠다고?”


그로지안이 거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주아나 눈에 감춰왔던 독기가 다시금 감돌았다.


“그래도 이년이!”


“루츠.”


그로지안은 주아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자기 심복을 불렀다.


“네, 그로지안님.”


“지금껏 사 온 것 중 이런 게 있었던가?”


“몇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가두고 물도 주지 말아봐.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그로지안이 입꼬리를 찢으면서 웃었다. 잔인스러우면서도 징그러운 표정이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로지안이 안으로 들어가자, 루츠는 병사들을 시켜서 주아나를 마구 구타했다.


“눈과 귀에 새겨넣어라.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루츠가 지켜보는 노예들에게 차가운 목소리 말했다. 그것은 경고이며 위협이었다. 구타는 주아나가 피범벅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이후로는 기절했기 때문에 기억이 끊어졌다.


“왜 안 싸우겠다는 거야? 지금까지 잘 돌아왔잖아. 앞으로도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정신이 오락가락해서인지 실라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뭐라고?”


“쭉 이기면 앞으로도 같이 있을 수 있잖아. 왜 거부하는 거야?”


실리아가 다시 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거기선 무기를 고르게 하고 그걸로 서로를 죽이게 시켜. 창으로 찔러 죽이고, 검으로 베어 죽이고, 도끼로 잘라 죽여. 그래서 안 할 거야.’


그렇게 주절주절 설명하면 실리아가 수긍할까?


‘나는 여섯 명을 죽였어. 고향이 바뎀인 남자, 뚱뚱한 남자, 마른 남자, 건장한 남자, 그리고 남매, 그래서 이제는 그만 죽이고 싶어.’


이렇게 말하면 실리아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혐오할까? 동정할까? 무시할까? 그도 아니면 차라리 화를 내볼까?


‘그곳에 가본 적 없으면서, 사람도 죽여본 적 없으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마!’


그렇게라도 상처받아서 눈앞에서 사라져준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을지도 몰랐다.


“주아나?”


“······.”


“무슨 말이라도 해봐.”


실리아는 이제 징얼거리고 있었다.


“돌아가.”


주아나는 전부 귀찮아졌다. 보는 일도, 듣는 일도, 말하는 일도, 생각하는 일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실리아가 음울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또 올 테니까, 우선은 쉬고 있어.”


“올 거 없어.”


주아나가 차갑게 되받아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점점 작아지던 발소리는 문이 열렸다가 닫히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혼자가 된 주아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열기가 덜 식은 밤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창 너머 검푸른 하늘이 주름져 보이는 건 눈이 부어서였다. 모래 한 줌을 뿌려 전부가 알알이 박힌 것 같은 별 밭으로 죽어가던 소녀 얼굴이 투영돼 보였다.


“오빠···.”


주아나는 라드가 간절하게 그리웠다. 모두가 그리웠지만 오늘만큼은 유독 오빠가 보고 싶었다.


“으아아앙···으아앙···.”


주아나는 탄생일로 돌아간 것처럼 밤새도록 울었다.


실리아는 오지 말라고 해도 매일매일 찾아왔다. 누군가에게 발각된다면 무사하지 못할 텐데도 무슨 용기에서인지 오는 걸 멈추지 않았다.


주아나는 실리아가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오든 말든 쳐다보지도 않았고, 몰래 가져다주는 음식과 물도 손대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실리아는 포기하지 않고 말을 걸어왔다.


삼 일이 지나자 실리아는 더 이상 주아나를 설득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사사로운 이야기들이었다.


듣기에는 차라리 그게 나았다. 설득하는 이나 그걸 듣는 사람이나 고통스러운 건 매한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굶어 죽는대도 더는 누군가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복수는 어쩌고?』


그날 밤, 그동안 어둠 속에 꼭꼭 숨어있던 괴물이 연기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것이 내는 음성은 마치 유리를 발톱으로 긁는 듯했다.


“거기서 사람들을 죽인다고 복수가 되는 건 아냐!”


주아나가 반박했다.


『죽이지 않았으면 네가 죽었겠지.』


다시 한번 유리를 긁는 듯한 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그건······.”


주아나가 말을 더듬자, 괴물은 기회라도 잡은 양 몰아붙였다.


『저주고 복수고, 전부 허풍이었어?』


“아니야!”


『이대로라면 너는 어딜 가도 환영받을 수 없어. 그건 너도 잘 알잖아.』


“아니야, 아버지도 오빠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어린애처럼 굴지 마!』


괴물이 소리쳤다. 그 목청은 주아나가 바닥을 짚고 버텨야 할 만큼 우렁차고 사나웠다. 숨결이 피부 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숨어있다가 인제 나와서 나한테 뭘 원하는 건데!?”


『내가 원하는 걸 묻는 거야?』


“그래!”


『푸하하하하.』


괴물은 바닥을 구르면서 요란하게 웃어댔다. 거대한 몸뚱이가 돌 때마다 까만 연기가 조각처럼 떨어져나왔다.


“뭐가 웃긴 건데!”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어.“


어째서인지 몰라도 주아나는 괴물이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았다.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뿔을 낼 수 있는 것도 그래서였다.


『내가 원하는 걸 네가 모를 순 없어.』


”나는 널 몰라. 넌 항상 멀리서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잖아.“


『넌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질질 짜고 있었을걸?』


”물어본 거에 대답이나 해!“


조롱하듯 장난스럽던 괴물 표정이 싸늘하게 급변했다.


『내가 원하는 게 네가 원하는 거고, 네가 원하는 게 내가 원하는 거야. 우린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걸 원해왔어.』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주아나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복수는 피로 이루는 거야. 너는 이미 그것에 중독됐어.』


”거짓말!”


주아나는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비열하고 굴고, 냉혹하게 행동해, 그리고 감정은 버려. 그게 진짜 너야. 지금 넌 가짜야.』


괴물은 달을 가렸다가 지나가는 구름처럼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리게 물러났다.


“가지 마! 진실을 말해! 아니라고 말하고 가라고!”


어째선지 주아나가 뛰는 속도보다 괴물의 느려터진 뒷걸음이 더 빨랐다. 연기 속으로 사라져가는 괴물은 마침내 눈만을 남겨놓은 채로 속삭였다.


『넌 붉은 강을 타고 떠내려갈 운명이야. 그걸 잊지 마.』


“이리 나와! 숨지 말고 나오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따라가 봤지만, 더 이상 응답은 없었다.


주아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손을 뻗은 채로 정신을 차렸다. 이마를 지그시 누르고 몸을 일으켰다.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먹고 마시기를 거부하니 몸이 까라졌다. 괴물과 나눴던 대화도 잘 생각나질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말만큼은 확실하게 기억났다.


‘붉은 강, 운명······개소리야 그딴 건.’


“주아나, 괜찮아?”


실리아였다. 그녀가 언제 왔는지 모를 정도로 주아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


주아나는 지금 대화할 기분이 아니었다. 기운도 없는 데다 꿈으로 머리마저 무거웠다.


“더 말랐네. 역시 가져다주는 양으로는 모자라지?”


실리아는 물과 음식이 버려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다정하게 굴었다. 그것이 매번 주아나에게 작은 죄책감을 덧씌웠다.


“가···그만···그만 와.”


주아나는 하얗게 갈라진 입술로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싫어.”


하지만 실리아는 단호했다.


“동생을 버려두는 언니는 없는 거야.”


그때였다. 출입구가 열리고 불빛이 들어왔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전부 네년 짓이었구나.”


횃불을 든 병사를 따라서 루츠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왔다. 불쾌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아, 아, 아니에요. 그냥, 그냥 걱정돼서 살펴보러 온 거에요. 정말이에요.”


실리아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런 와중에도 가져온 물과 음식을 주아나 몸 아래로 밀어 숨겼다.


“변명은 그로지안님 앞에서 마저 들어보자. 저년 끌고 나와.”


양손을 포갠 채로 어쩔 줄 몰라 하던 실리아는 병사가 머리채를 잡아채자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안돼···”


주아나는 창살 너머로 손을 뻗어 실리아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과거, 어떤 순간처럼 닿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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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화 달아나, 주아나 (10) 24.08.03 6 0 12쪽
18 18화 달아나, 주아나 (9) 24.08.01 9 0 13쪽
» 17화 달아나, 주아나 (8) 24.07.31 7 0 12쪽
16 16화 달아나, 주아나 (7) 24.07.30 9 0 12쪽
15 15화 달아나, 주아나 (6) 24.07.29 8 0 12쪽
14 14화 달아나, 주아나 (5) 24.07.27 10 0 13쪽
13 13화 달아나, 주아나 (4) 24.07.26 9 0 12쪽
12 12화 달아나, 주아나 (3) 24.07.24 7 0 12쪽
11 11화 달아나, 주아나 (2) 24.07.23 6 0 12쪽
10 10화 달아나, 주아나 (1) 24.07.22 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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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8) 24.07.20 8 0 12쪽
7 7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7) 24.07.19 8 0 14쪽
6 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24.07.18 8 0 12쪽
5 5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5) 24.07.16 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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