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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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nx666
작품등록일 :
2024.07.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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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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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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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달아나, 주아나 (10)

DUMMY

은빛 강이 펼쳐진 새벽하늘 아래, 주아나가 가파른 암벽에 매달려 있었다. 창문으로 건물을 빠져나와 담벼락까지 넘는 데는 성공했지만,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병사들이 막고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부스럭, 오른발로 짚은 곳이 살짝 부서지면서 돌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소리라도 들린 것일까, 위쪽에서 불빛이 가까워져 갔다. 주아나는 바위틈을 잡은 손가락에 바짝 힘을 주어 몸을 밀착시켰다.


다행스럽게도 불빛은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지금이야 적막하기 그지없대도 언제 소란스러워질지 모를 일이었다. 시체를 발견하는 게 늦든 빠르든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터였다.


주아나는 슬쩍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찔한 높이였지만 경사가 직각은 아니어서 떨어져도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온몸이 쓸리고 한군데는 부러질 게 확실했다.


“흐읍.”


주아나가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쉰 뒤 본격적으로 암벽을 내려갔다. 집중하면서도 머리가 복잡한 건 선택지가 적어서였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하지?’


해안 쪽으로 간다면 배가 필요했다. 훔칠만한 배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훔쳐도 문제였다. 작은 배로는 대양을 넘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큰 선박이 필요한데, 주아나는 그런 것을 몰 수 있는 항해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전부를 고려해서 아무리 희망적으로 생각해봐도 망망대해에서 말라 죽어가는 모습만 그려졌다. 그렇다면 남은 건 내륙으로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협곡 밖에 무엇이 도사릴지 알 수 없었지만 달리 선택이 없었다.


땅에 내려섰을 때 주아나는 온몸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머리까지 축축했지만, 밤 기온이 그리 낮지 않아 금방 마를 듯했다.


누군가에게 들키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바위와 나무를 벗 삼아 주택지로 들어섰다. 달빛을 받아 그늘진 골목길은 미로처럼 얽혀있었다. 직감에 의지해서 방향을 잡았다.


주아나는 벽에 몸을 바싹 붙인 채로 움직였다. 집 그림자가 은신을 한층 돋보이게 해주었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지만, 뛸 수 없는 두 다리는 차분하기만 했다.


때때로 멈춰서서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바람 소리, 그 외는 모든 것이 고요했다.


좁은 골목이 끝날쯤 넓은 거리가 나타났다. 주아나는 주변을 경계하며 망설였다. 열린 공간은 들킬 위험이 컸다. 하지만 돌아갈 만한 길도, 시간도 없었다.


주아나는 골목 한편에 높게 쌓인 나무 상자 뒤에 숨었다. 일전에 봤던 것과 같은 철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슴이 희망으로 부품과 동시에 철렁 내려앉았다. 언덕 위 건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경계가 삼엄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망루를 지키는 병사까지 합하면 족히 열은 됐다. 경기를 치르면서 경험을 쌓았다고는 해도 훈련된 병사 열 명을 상대로는 승산이 없었다.


“이건···불가능해.”


주아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현실을 직시했다. 승산이 있다고 해도 호각 한번 불면 순식간에 불어날 터였다. 강행 돌파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어둠 속으로 몸을 기대자 차가운 벽돌이 등에 와 닿았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생각해. 뭔가,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눈을 감고 온갖 가능성을 떠올렸다. 밧줄로 절벽을 오르는 모습, 변장해서 통과하는 장면, 땅굴을 파는 상상, 심지어 불을 질러 시선을 끈다는 극단적인 방법까지도.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현실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절망감이 밀려와 한숨을 내쉬던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말발굽 소리에 주아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어둠을 뚫고 마차 한 대가 성문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주아나는 천으로 가려진 아치형 짐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희미한 불씨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 즉시 짐마차 흔적을 역행해갔다. 순찰병 눈을 피해 몸을 숨기기를 여러 번, 지나가길 기다리는 시간은 느리게만 흘러갔다.


한 시간이 넘는 긴장된 여정 끝에 주아나가 도착한 곳은 도시 끝자락이었다. 넓은 부지를 감싼 울타리 너머로 질서정연하게 잠든 크고 작은 마차들이 보였다.


주아나는 골목에 숨어 그곳을 관찰했다. 하나뿐인 입구를 마족 둘이 지키고 있었다. 병사가 아닌 건지 헐렁한 옷차림에 나른한 표정이 전부였다.


입구에 걸린 횃불이 맥박치듯 흔들릴 때마다 그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줄어들었다 했다. 둘은 뭔가를 피워 물고 있었고, 뿜어지는 연기는 공기에 천천히 녹아들었다.


둘이 나누는 잡담 소리가 새벽바람을 타고서 주아나가 숨은 곳까지 들려왔다.


“사막양은 이제 나오지 않으려나.”


“그로지안님이 한번은 용서해주지 않으실까.”


“근래 그 녀석만큼 재밌는 놈이 없었는데 말이야.”


신기하게도 그들은 주아나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탈출을 모색 중인 주아나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내용이었다.


주아나는 건물을 돌고 돌아 입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울타리를 넘었다. 그런데 하필 넘어간 곳이 마구간 앞이었다. 말 한 마리가 잠투정이라도 부리는지 푸흥푸흥거려댔다.


“너희 잠을 깨울 생각은 없단다. 지나갈 때까지만 조용히 있어 줘.”


마구간을 향한 작은 속삭임, 말들이 알아들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는 부탁이었다.


끝에서부터 칸막이를 넘어 다니면서 마차를 살폈지만, 계속해서 텅 빈 짐칸만이 실망을 안겨줬다. 만약 전부 비어있어 계획이 불가능해진다면 이후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중간부터는 입구가 가까워 좀 더 은밀하게 움직였다. 주아나 눈이 횃불과 마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갔다. 숨 막히는 긴장 속에 어느덧 세 칸만이 남아있었다.


이미 전부를 확인한 양 머릿속으로 다른 방법을 강구하면서 가림막을 들추었다. 그런데 거기에 원하는 것이 있었다. 짐칸은 정교하게 배열된 나무통으로 가득했다. 공기 중에는 비릿한 향기가 떠돌았다.


주아나는 심호흡하고 짐칸으로 올라탔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건 이런 간단한 일조차도 벅차고 힘들게 했다. 나무통 사이에 발을 밀어 넣고서 뚜껑 고리를 잡아당겼다.


바로 열리리라 예상했지만, 뚜껑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더 큰 힘을 주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다른 통도 시도해봤지만 역시나 똑같았다.


우선은 내용물이 가득 차지 않은 통을 찾는 데 집중했고, 짐칸 끝자락에서 반쯤 채워진 통을 찾아냈다. 이제 뚜껑을 열어야만 했다.


주아나는 단검을 이음매 부분에 찔러넣었다. 그런 다음 손잡이를 지렛대 삼아서 세게 눌렀다. 칼날이 휘어지는 게 보일 때부터는 부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힘을 조절했다.


어느 순간,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을 밀어 넣은 부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주아나는 단검을 옆 통에 올려놓고 밧줄 고리를 다시 한번 잡아당겼다. 여전히 열리지는 않았지만, 아까만치 꿈쩍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더 힘을 주자 뚜껑이 삑삑거리며 조금씩 빠져나왔다.


없는 힘까지 끌어다 쓴 끝에야 뚜껑이 퐁 하고 열렸다. 동시에 고약한 냄새가 몰아쳤다. 통 안을 살펴보니 소금에 절여놓은 생선이 반쯤 차 있었다.


“뭘 들었다는 거야?”


“분명 무슨 소리가 났다니까.”


그때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주아나가 침을 꼴깍 삼키면서 눈을 내리깔았다. 흐리멍덩한 생선 눈알들이 어쩔 거냐며 선택을 종용하는 듯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주아나는 한 손에는 뚜껑을 다른 손에는 단검을 쥔 채로 통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미끈거리는 감각에 몸서리쳐졌지만, 다리가 접히면서 찾아온 발목 통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선들이 가슴께까지 올라오자 그제야 겨우 뚜껑을 닫을 수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을 넣거나 할 틈이 없어서 뚜껑을 걸쳐놓는 정도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제부터는 오로지 운에 달려있었다. 통을 확인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만이 주아나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혹시라도 발각됐을 경우를 대비해 단검과 눈은 위로 향하게 뒀다.


잠시 후 경비가 마차 칸에 들어섰다. 아슬아슬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절로 쿵쿵거렸다. 경비는 마차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여기저기를 만지작거리고 들추어 보았다.


“봐, 아무것도 없잖아.”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뭔가 들었단 말이야.”


“여우가 전갈이라도 잡았나 보지.”


의심을 거두지 않는 경비를 두고서 동료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는 먼저 되돌아가 버렸다.


“흐음, 흠.”


자기 청각을 확신했던 경비는 못내 아쉬운 듯 목소리를 가다듬고야 자리를 떴다. 발소리가 희미해질 때쯤 주아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일단 한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안도감이 들자 통 속 환경에 신경이 곤두섰다. 뚜껑 틈새로 새어 들어올 빛이 없으니 당연히 보이는 것도 없었다. 마치 시각이라는 감각 하나를 상실한 기분이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는 제약감까지 더해지자, 두려움도 한층 커졌다. 주아나는 이럴 바에야라는 생각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자 그로지안과 루츠가 떠올랐다. 과연 그들에게 선사한 것은 무한히 이어질 고통일까, 아니면 영원한 안식일까?


‘네 말대로 했잖아. 숨지 말고 어서 나와서 대답해줘.’


괴물은 또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주아나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멈춰!”


마차가 천천히 멈춰 섰다. 그와 함께 주아나도 잠에서 깨어났다.


‘얼마나 잔 거지?’


지금이 아침인지 점심인지 그도 아니면 늦은 오후인지, 주아나는 시간을 알 수가 없었다. 혹 하루가 지나가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방비하게 자버린 걸 반성하던 그때 마부석 쪽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켓으로 보내는 진상품이요.”


“예외 없는 검문이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로지안님을 살해한 범인을 찾고 있다.”


“아이고, 어떤 흉악한 놈이 그랬답니까?”


마부는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막양이라고 들어봤겠지, 그 노예가 범인이다. 혹시라도 아켓으로 가다가 발견하게 되면 즉시 신고해라.”


‘나를 찾고 있어.’


주아나는 한 단계 도약하는 것처럼 의식이 명료해졌다.


“그러지요. 보면 당장이라도 잡아놓겠소.”


“그 노예는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괜한 짓 말고 신고나 똑바로 해.”


“꼭 그렇게 하죠.”


대화가 끝나고 얼마 안 있어 가림막이 걷혔다. 너무 코앞에서 들리는 소리라 주아나는 바짝 긴장하며 단검을 꽉 쥐었다.


“한참 전부터 밀봉된 것들이라 보나 마나요.”


어느새 다가와 설명하는 마부 때문인지 병사는 짐칸으로 오르려던 걸 멈추고 내부를 훑는 것으로 대신했다. 주아나에게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만약 짐칸으로 올라섰다면 곧장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도 있었을 터였다.


“확실히 숙성이 잘 된 냄새군.”


“그렇지요.”


“남은 게 있으면···.”


“알죠, 알죠. 따로 빼놓은 게 있으니 다녀와서 챙겨드립죠.”


비위를 잘 맞추는 음성을 듣고 있자니 본적도 없는 마부 얼굴이 넉살 좋게 그려졌다.


“통과!”


병사가 외치는 소리에 맞춰서 마차가 출발했다. 드디어 아누스를 벗어난다고 생각하자 몸이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실리아가 떠올랐다.


‘미안해···그리고 고마워.’


그녀 영혼은 고향에 다다랐을까? 그토록 그리워하던 동생을 다시 만났을까? 주아나는 실리아가 눈앞에 나타나서 전처럼 주절주절 떠들어주었으면 싶었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무섭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오히려 반갑고 기쁠 게 분명했다.


“우리 가족이 있는 곳에 도착하거든, 내 안부도 전해줘. 잘 있다고, 그곳으로 가는 게 조금 늦어지겠지만 기다려달라고 꼭 좀 전해줘.”


주아나는 어딘가 있을 실리아가 이 부탁을 들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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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달아나, 주아나 (10) 24.08.03 6 0 12쪽
18 18화 달아나, 주아나 (9) 24.08.01 8 0 13쪽
17 17화 달아나, 주아나 (8) 24.07.31 6 0 12쪽
16 16화 달아나, 주아나 (7) 24.07.30 8 0 12쪽
15 15화 달아나, 주아나 (6) 24.07.29 7 0 12쪽
14 14화 달아나, 주아나 (5) 24.07.27 9 0 13쪽
13 13화 달아나, 주아나 (4) 24.07.26 8 0 12쪽
12 12화 달아나, 주아나 (3) 24.07.24 6 0 12쪽
11 11화 달아나, 주아나 (2) 24.07.23 5 0 12쪽
10 10화 달아나, 주아나 (1) 24.07.22 6 0 14쪽
9 9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9) 24.07.21 6 0 12쪽
8 8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8) 24.07.20 7 0 12쪽
7 7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7) 24.07.19 7 0 14쪽
6 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24.07.18 7 0 12쪽
5 5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5) 24.07.16 6 0 14쪽
4 4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4) 24.07.15 6 0 12쪽
3 3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3) 24.07.14 6 0 14쪽
2 2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2) 24.07.13 8 0 13쪽
1 1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1) 24.07.11 1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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